단 이틀간의 소변조절에도 그토록 흥분했을 정도로 완이의 야뇨증은 심각합니다. 흥분할 정도의 기쁨은 단 이틀! 하루는 콘실크를 아침저녁으로 먹여보고, 하루는 자기 전에 먹여보고... 이래저래 어떻게하면 끝장낼 수 해보지만 다시 시작된 질펀한 야뇨증에 태균아빠의 한마디가 모든 걸 정리해줍니다. '팔자소관八字所關 인걸 어쩌누!'
팔자소관, 각자의 운명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라는 낙관적이고도 참으로 비관적인 말! 그토록 믿고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않은 거부감은 여전히 저에게는 유효하지만, 이제는 기대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뭐때문에 이리 애를 태우나!
근 몇 개월, 준이와도 생활도 너무 평온해서 감사할 지경이었는데 늘 토요일이 문제였습니다. 토요일에는 무조건 밖에 나가기를 거부하니 운동시키기가 참 어려웠는데 (제주도 오기 전 늘 주말에 집으로 보낸 준이가 아마 토요일에 집 밖을 나온 일이 없었을 겁니다) 지난 토요일 만보걷기 나선 날, 왠일인지 순순히 잘 따라나섭니다. 지미봉둘레길 걷기하는 동안 표정도 아주 좋습니다.
준이가 토요일 함께 움직여 준 것만도 고마와서, 일요일 도예마치고 다시 나선 걷기행! 표선가까이 달사봉 오름산책로를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처음가보는 곳이라 호기심을 안고 준비하는데, 산책로 초입부터 차에서 안 내리겠다는 준이의 고집과 폭력적 행동에 부딪치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바닷가에 가서 차에서 안 내리겠다고 버티는 것은 늘상이니 포기상태지만, 걷기까지 이러면 정말 큰 일이다싶습니다. 간만에 준이의 침뱉기에 더해진 저를 향해 날아오는 팔휘두름에 휴대폰까지 날아가니 '무기력'이 팔자소관이라면 어쩌겠는가! 무기력, 무의지, 무열정은 준이의 대명사인데 힘이 넘치고 의지와 열정의 화신인 저와 살아야하니 무엇이 옳고 결과적으로 좋은가는 나중에 따져 보아야 할 일입니다.
달사봉 둘레길 걷기는 완전 실패! 간만에 자기 성에 발을 디딘 인간을 보고 피에 굶주린 드랴큘라가 물불안가리고 달려들 듯, 달사봉은 모기천지에다가 어찌나 으악스럽게 달려드는지 모기퇴치스프레이를 엄청 뿌려대야 합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태균이와 준이가 천연으로 모기퇴치 스프레이를 만들어온 것을 가져오기 다행입니다.
그 와중에도 완이는 어찌나 여기저기 물렸는지 피부가 부어오르고 태균이는 준이가 오지않는다고 계속 징얼대고... 최악의 둘레길 걷기입니다. 사람발길이 적어 자연때가 좀 켜켜히 있기는 하지만 숲 속이라 확실히 시원하고 여타 제주도 곶자왈처럼 제법 숲이 우거져 있어 참 좋은데 모두의 심사는 분노모드입니다.
어제 완이의 운동화거부로 크록스로 걷기를 했더니 안 되겠다싶어 양말이라도 신겼더니 잠시 눈에서 벗어나면 바로 벗으려는 지독한 촉각방어도 이제 제 소관의 시한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양말 하나 견디지못할 촉각방어 상태라면 희망의 불씨가 자꾸 꺼지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제가 지켜볼 때는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고 있지만 눈 밖에만 벗어나면 바로 벗어 내팽겨치니 다시 신으라고 소릴질러대야 합니다. 양말이나 옷이 뒤집혀 진 것을 인식하는 것은 요원한 바램일 뿐, 이것까지 손 대려면 24시간 따라다니면서 모든 행동에 폭풍잔소리를 해야하니, 큰 줄거리 한 두가지만 집중해야 합니다. 집에서 신고온 크록스도 한 짝을 어디에 내팽겨쳤는지 새로 사주었습니다.
최악의 걷기를 마치고 바다로 오니 두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서 놀고, 여전히 차 안에서 버티고 있는 준이가 밉고, 딱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바보짓이란 준이가 적나라하게 하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 수 많은 사람들의 행태이기도 하니 누구를 탓하리오!
준이가 뭘 스스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준이아버님의 생전 볼멘소리가 준이와 준이아버님의 팔자소관이었는지도! 뭘 스스로 하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는지 자신의 팔자한탄이었는지 그 말이 자주 생각납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결과임에도 우리는 외부에서 그 해답을 찾곤 합니다. 자식은 내 분신입니다. 내 안에서 나의 자식 문제 해결점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완이의 스스로 독학 수영실력이 하루 2-3시간 바닷물 놀이에서 일신우일신입니다.
물놀이마치고 10분 남짓이면 집에 도착하니 젖은 옷 입고 버티기 훈련은 얼추 성공해가고 있습니다. 촉각방어와의 싸움은 아직도 길게 가야하건만 분명 집으로 돌아가면 전투에의 의지가 없는 부모님들이기에 어찌될 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완이와의 삶은 반 나절만에 엉망진창으로 바뀌는 차 속 상황과 똑같아집니다.
적을 알려고하는 노력! 그게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요? 적을 알 필요가 없는 안락한 팔자가 팔자소관이라면... 그건 저보다 훨씬 나은 삶이기에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참! 모기물린 상처 치료에는 바닷물이 최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청 물어뜯긴 완이조차 말끔하게 모기자국이 사라졌으니...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네요.
첫댓글 염천 더위에 고생 많으세요.
완이의 수영 독학이 놀랍습니다.
물 속에 얼굴 묻는거 무서워하는 아이들 많은데
완이가 모든걸 수영 배우듯이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준이는 천혜의 기회, 행복을 거부하니 참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