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8일(화))아침에 집을 나선다. (대전)지하철을 타고 판암동 종점에서 내린다.
해맑은 봄날에 대청호반 벚꽃을 보러가는 길이다.
종점역인 판암역구내에 붙여있는 대전지하철 건설을 요약한 공사준공표지판이 눈에 띈다. (1997-2005)
아득한 시절로만 여겨지는 것들. 구체적인 것들은 사라지고 다만 한 줄로만 기록될 것들.
워싱톤 D.C.의 도시계획시에 지하철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러시아의 급경사 진 에스컬레이터의 모습이 대비되어 떠오른다.
지도자의 선견지명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생각해본다.
지하철 판암동 종점 대합실에서 일행을 만나 시내버스를 이용해 오리골로 간다.
왜 오리골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는 온조의 위례성을 <오리골>이라 하고, 비류의 미추홀을 <메주골>이라 한다고 하는 구절에서 또 무어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리를 나타내는 오리인지, 새 종류인 오리인지..... )
아무튼 내려서 대청호 갈대밭을 헤치고 들어간다. 좁은 길이 나 있으니.
철 지난 갈대솜밭 사이로 대청호반의 왕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물 빠진 대청호반 가장자리로 둘레길이 드러나있다.
옛날 방죽 안에는 말조개가 있다는 것도 보고 백로며 해오라기가 열심히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이정표와 만난다. 대청호5백리길 안내도를 보니 캄캄한 눈에 광명이 든 기분이다.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백골산성도 나오고, 신선봉으로 가는 금성 마을 입구 표지도 보인다.
다른 일행들은 이미 가 본 신선봉 유적지는 나는 초행이라 호기심이 살짝 일어난다.
대청호에서 금성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 커다란 바위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고개를 넘어서니 벚꽃이며 자목련 등이 활짝 피어 아름답기만 하다.
출사 나온 사진작가들도 만나고, 맨발 걷기 이야기도 나누고
동화시절을 연상케하는 모습 속에서 한 컷 찍는 일행들
출사나온 사람들이 뿌린듯한 꽃잎들
길바닥이 너무 매끈거려 땅의 감촉을 느낄려고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 올라간다.
신선봉 유적지가 보인다.
축대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신선바위라고 쓴 안내 푯말이 보이고, 부지런한 성지기는 벌써 봄나물 찾기에 열중이다.
저 바위 틈 사이로 들어갈 수 있고, 그 속에는 글씨도 있다고 일러준다.
주역 공부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는 말도 들려주고.
아무런 사전 준비도, 지식도없이 나온 나로서는 웬 횡재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별로 높지 않은 산마루에 이런 바위들이 있다니, 신기하게만 보인다.
바위들과의 만남. 신선이라는 이름이 주는 묘한 느낌도 더해서.
점점 호기심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위에 다가가 본다. 통천문 처럼 벌어진 틈새 두 개의 바위 위로는 덮개 바위가 누르고 있다.
이것이 주역공부하는 사람들에게 一, 二, 三으로 보인 것인가.. 짧은 앎으로는 다만 더듬거릴 뿐이다.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정상부근에서 만나는 통천문(通天門)이 떠오른다.
이 문을 지나면 하늘나라로 이어진단 말인가?
사람하나 넉넉하게 지날만한 틈, 바닥에는 제법 돌계단처럼 정돈되어있고, 양 벽에는 무슨 글자가 왼쪽에는 붉은 색으로 佛자 같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각자로 새겨져 있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 보니, <성성주인옹, 황황상제위> 와 <호신발(號神發 초서체>이라는 글씨란다.
야산 이달 선생의 이야기도 있고...)
자세히 들여다 보기.. 여전히 까막눈이다.
통천문같은 신선봉 바위 뒷편에는 묘한 바위가 떡 서 있다.
그 앞에는 제단같이 다듬은 돌도 서 있고. 바위 중간에는 기둥을 꽂은 듯한 커다란 구멍도 보이고...
앞 신선바위 우에는 누군가가 뿌린듯한 것들이 보인다.
흰 찹쌀 씻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세 가운데에 있다.
우리 일행이 그 바위 위에 앉아 (무엄하게도) 좌우 경치를 즐긴다. 신선이 된 것처럼.
푸른 대청호와 왕벚꽃, 멀리로는 백골산성이 있는 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환산성이 있는 고리산줄기도 보인다.
우리의 발걸음이 닿은 곳들, 옛날 생각에 젖어본다.
대청호반과 왕벚꽃들
내려갈 때는 반대편 길로 들어선다.
조금 내려가니. 낯익은 안내판이 보인다. 신선봉 유적 기념물 제32호. 이제야 정식 이름을 알게 된다.
제사 유적인지, 보루인지, 아무튼 삼국시대 유적으로 보인다니 ,, 감회가 서린다.
씩씩하게 내려오는 일행들
신선봉 유적지로 가는 길 안내판을 만난다.
조금 더 내려오니 비룡교차로라는 표지판도 만난다.
비름들(비룡동)표석이 있는 곳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버스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몇 마디 물어본다.
비름들 유래며, 신선봉 유적에 대해서, 별로 얻는 것이 없다. 대전대학 쪽 가는 길만 확인한다.
버스 타는 대신에 대전대학 가는 길로 들어선다. 이왕 나선 길 걸어서 가보기로 한다.
걷는 것보다 확실한 독서는 없는걸까.
(<비름들>과 신선봉 유적과는 무슨 연관성이나 없는지, 빌고 빈다는 뜻으로 자꾸만 마음이 쏠린다)
포장된 임도에서 흙길로 된 지름길이자 샛길로 해서 갈현성이 올려다 보이는 갈고개를 지난다.
(갈고개 정상에도 돌탑이 있고, 갈현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누군가가 막걸리 한 병을 제물로 바친듯 비스듬히 놓여 있다.)
사람들은 산 고개마루에 왜 그리 돌무더기 돌탑을 쌓기를 좋아할까?
민속인가,, 미신인가... 그냥 해보는 것인가...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내려오니 용운동 둘레산길 안내판이 보인다.
갈현성(葛峴城) 가는 길 안내도 있다.
<갈고개>가 한자로 써서 <갈현>이라 한다. 순 우리말과 한자로 표기된 이름이 함게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두식 표기법의 등장. 왜 <갈고개>인가? 또 궁금해진다.
갈고개를 넘어온 일행은 판암역에서 지하철 타기로 합의하고 제법 피곤해진 다리로 걷는다.
용운동 국제수영장도 지나고, 성당도 지나고....
늦은 점심을 찾아 먹는 사이에 늙은 주인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덤으로 듣는다.
부처님도 돌아 앉으신다는 시앗 본 할머니의 한 평생살이가 왜 가슴을 짓누를까.
가슴먹먹한 점심 뒷이야기를 뒤로 하고 우리는 헤어질 준비를 한다.
물론 다시 만날 것을 가슴에 품고서 말이다.
(2023.04. 14일 자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