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물소 떼 소동 (베트남전쟁과 나 342쪽)
홍상운 대령이 지휘하는 제29연대는 1966. 9. 25.에 월남에 도착 후 1번도로에 가해지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예하 대대를 사용한 불도저1호작전, 불도저2호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상황판단과 지형의 미숙 등으로 오히려 적으로부터 기습을 당해 전사 4명, 전상 17명의 인명 피해에 이어 소총 6정과 기관총 1정의 장비피해를 냈다.
이때까지 파월한국군이 총기 피해를 입은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다만 기갑연대 제2대대 전우의 시체 유기작전 때 한 번 있었을 뿐이었다.
이 첫 작전의 실패는 오히려 백바사단의 전장병에게 월남전을 결코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되며 쉬운 전쟁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9연대는 계속 불도저3호작전, 불도저4호작전을 폈지만, 다시 적의 기습 사격으로 3명의 전사자를 내는 등 날고 뛰는 베트콩에게 약점을 노출했다. 그러나 제28연대가 주둔한 투이호아까지의 182㎞에 달하는 1번도로를 개통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맹호사단 또한 초기에 바람이 부는 데 베트콩이 접근하는 줄 알고 수류탄을 던지고 총질을 했던 것과 같이, 전투 경험이 없는 병사들은 ‘제 방귀에 놀란다’는 옛 속담처럼 사격군기가 확실히 서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전장에서의 과도기적 전쟁공포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초전에는 흔히 있었던 병폐의 하나라 하겠다.
그러나 사병들의 그런 공포심은 달포를 지나면서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 다음 분제는 너무 용감한 나머지 적의 함정에 빠지는 일에 신경을 써야했다.
백마사단 본대가 파월하기 전 부사단장 백문 준장이 인솔하는 선발대가 닌호아에 도착했다. 숙영지 외각 경계를 위해 야간 매복을 내보냈는데 그 매복 진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수류탄을 투적하고 기관총을 발사하는 등 격전을 방불케 하는 일이 생겼다.
날이 새면서 격전장 전방을 살피니 난데없이 물소 20마리가 죽어 자빠져 있었다. 매복 진지의 백마 사병들이 한 떼의 물소가 몰려 오는 것을 베트콩이 공격해 오는 것으로 겁먹은 나머지, 일제사격을 벌인다는 것이 적이 아니라 물소 떼를 사격했던 것이다.
아침 10시가 지나자, 아니나 다를까 월남 사람들이 떼로 몰려 와 아우성을 쳤다. “물소 값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그 고장의 군수와 경찰서장까지 나타났다.
백문 준장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내용인즉 물소를 죽였는데 물소 값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백마 선발때로 왔으니 돈이 있을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묻기에
“배상해 주고 민심을 달래라.”
고 하며 사령부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3,000달러를 만들어 보내주었다. 나는 “소 임자가 달라는 대로 물어 줘라.”고 일렀다. 그리고 덧붙여 반드시 지방 유지 입회하에 주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소값 흥정을 하는데 시세를 알아 보니 한 마리에 30달러 정도밖에 안 되는데 100달러씩 달라고 한다기에 그대로 다 주라고 했다. 군수와 경찰서장 입회하에 20마리깞 2,000달러를 배상했다. 그렇게 되면 그 물소는 백마 차지가 되어야 옳은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서장이 “몇 마리 줄 수 없는냐”고 사정하더란다. “경찰관이 매일 밤 매복 근무를 하는데 서장으로서 미안해 사기 앙양을 시키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다섯 마리를 떼어 주니 군수가 또 달라고 하기에 또 주고, 소 임자까지 나서서 사정사정하기에 20마리 다 나누어 주었다. 소값 2,000달러 물어 주고 소 20마리 다 나누어 준 것으로 그 해프닝은 끝났다.
그 사건은 손해가 아니었다. 닌호아 인심이 확 돌아섰던 것이다. 과거 프랑스군이나 일본군 그리고 요즈음 미군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외국군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주민들이 “따이한”의 협조자가 된 것이었다. 이 해프닝으로 말미암아 백마는 망아지 과정을 거쳐 이름 그대로 백마로 거듭난 것이었다.
중공의 모택동이 정강산에서 처음으로 게릴라전을 시작할 때, 부하들에게 하달한 8대 요소 중 하나가 “물건을 살 때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정당한 가격을 주도록 하라.”는 것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소값 2,000달러는 결코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몇배 더 아군에게 유익한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맹호 장병이 처음 도착 직후 밤을 무서위했던 것처럼 백마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서, 얼마 동안 기다렸더니 과연 백마도 제값을 톡톡히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