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14,2-10; 마르 12,28ㄱㄷ-34
+ 찬미 예수님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가 우리 본당에 부임한 후 그간 미사 때 열두 차례 봉독되었는데요, 마르코 복음으로 6번, 마태오 복음으로 4번, 루카 복음으로 2번 봉독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앞으로도 제가 같은 복음으로 여섯 번 더 강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세오경에는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하는데요, 랍비들은 이 중 어떤 계명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습니다. 또한 모든 율법이 흘러나오는 하나의 원리를 찾고자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무어라 말씀하실지 율법 학자는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는 신명기(6,4-5)의 말씀인데요, 모든 유다인들은 하루에 두 번, 즉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또는 저녁기도 때에 이 말씀을 낭송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뒤이어 다른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레위기(19,18ㄴ)의 이 말씀도 많은 랍비들이 인용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의 특별한 점은 이 두 계명을 한데 묶으셨다는 것입니다. 율법 학자는 첫째 가는 계명을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라시면서 두 계명을 함께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613개의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십계명을 단 두 계명으로 요약하십니다.
율법 학자는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시며 율법 학자를 칭찬하시는데요, 이 대화도 중요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제사란, 성전에서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기원후 70년,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는 더 이상 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보다 일찍 이 제사를 폐기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이것을 제사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바로 오늘 복음 말씀 때문인데요,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는 율법 학자의 말을 예수님께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제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를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드려야 할까요?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호세아서에도 동물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제사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라는 말씀인데요, 당시에 황소는 가장 값비싼 제물이었습니다.
미사 때 사제와 교우들이 번갈아 가며 기도문을 바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입술을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이고, 가장 값비싼 제물인 황소보다 더 값있는 봉헌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는 바를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실천하도록 정성껏,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 드려야겠습니다.
호세아서 전체를 통해 호세아 예언자가 백성들을 질책한 내용은 세 가지인데요, 첫째는 강대국인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한 것, 둘째는 자기 힘 또는 인간적 수단과 방법을 믿은 것, 셋째는 우상 숭배입니다. 그리하여 호세아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하라고 말합니다.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9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여기서 ‘돌보아 주다’로 번역된 ‘아슈레누’라는 단어는 아시리아를 뜻하는 ‘앗슈르’와 비슷하게 발음됩니다. 즉 아시리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돌보신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절인 10절의 말씀은 본래 호세아서가 아니라, 후대에 지혜문학 작가에 의해 덧붙여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는 말씀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셨다”는 말씀과 비슷합니다.
또한 제1독서는 ‘강대국이나, 자기 자신이나, 우상’을 버리고, ‘한 분이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라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지실까요?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사랑의 정점에서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 그것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데, 보고 있기가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도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이 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삶에서 실천해야겠습니다.
성 다미아노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