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Paris)
프랑스의 수도로, 프랑스 북부 일드프랑스 지방의 중앙에 있다.
센강 중류에 있으며, 면적은 105 km2.
인구는 2023년 1월 기준으로 2,102,650명이며, 프랑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권에 해당되는 일드프랑스 레지옹의 주도이자
그랑 파리 메트로폴의 핵심 코뮌이다.
파리시를 포함한 일드프랑스의 전체 인구는
2023년 기준 12,271,794명으로 집계되어 프랑스 전체 인구의 19%에 달한다.
또 일드프랑스의 총 GDP는 2019년 기준 7390억 유로에 달하여
유럽에서 가장 경제력이 높은 수도권 지역으로 꼽힌다.
“예술의 도시”라는 별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파리는 회화에서 조각, 패션,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파리 컬렉션이나 요리경연대회 개최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의류 문화와 음식 문화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정보 발신지가 되고 있다.
개선문(凱旋門, Triumphal Arch)은 전쟁터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황제 또는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문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국민이 이룩한 공적을 기념할 목적으로 세운
대문 형식의 건조물을 말한다.
에투알 개선문( Arc de triomphe de l'Étoile)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서쪽 끝,
샤를 드골 광장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개선문이다.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개선문 아래에는 당시 전쟁에서 프랑스가 거둔
모든 승전보들과 지휘관들의 이름이 양각되어있다.
개선문 아래에는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무명용사들의 무덤이 위치하여 있다.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
프랑스 파리의 광장으로 샹젤리제 거리 동쪽에 튈르리 공원과 사이에 위치한다.
면적은 86,400m2(8.64ha)로 파리에서는 가장 넓은 광장이다.
1755년, 앙제 자끄 가브리엘에 의해 설계된 이 광장에는
원래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의 발발로 기마상은 철거되고,
이름도 “혁명 광장”으로 고쳐졌다.
1793년 1월 21일 프랑스 혁명 중에는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0월 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형장이기도 했다.
1795년 현재의 “콩코드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시작했고,
공식 이름이 된 것은 1830년이다.
콩코드(Concorde)는 화합, 일치라는 뜻으로,
이 광장의 이름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넘어 평화와 화합으로 나가자는
프랑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광장의 중심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룩소르(Luxor) 오벨리스크(클레오파트라의 바늘)가 놓여 있다.
기원전 12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집트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것으로
1829년 이집트의 총독이자 군사령관이던 알바니아 출신의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다.
오벨리스크에는 프랑스로의 운송 과정이 묘사되어 있으며,
4년의 운송 기간이 걸렸다.
최상단 부분에 소형 피라미드 모습의 금박이 있었으나
아시리아인의 침입과 페르시아인의 점령 과정에서 분실되었는데,
프랑스 정부에서 복원 작업을 벌여 1998년 5월 14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복원 자금에는 약 1백 50만 프랑이 소요되었으며, 수명은 약 40년이다.
복원으로 인해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이전보다 2m가량 높아지게 되었다.
오벨리스크(Obelisk) 또는 방첨탑(方尖塔)은 높고 좁으며 4개의 면을 지닌,
점점 가늘어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꼭대기를 지닌 기념 건조물이다.
고대 방첨탑은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는데,
태양 숭배 즉 태양신 라 혹은 호루스 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최대의 것은, 이집트 제18왕조
하트셉수트 파라오의 카르나크 신전에 세운 것으로 높이 30m이다.
오페라 가르니에
(OPERA GARNIER 프랑스어 : [ɔpeʁa ɡaʁnje])
1,979 석 규모의 오페라 하우스입니다
프랑스 파리 3구에 있는 오페라 광장(Place de l'Opéra)에
나폴레옹 9세 황제의 명령으로 1861년부터 1875년까지 파리 오페라를 위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르 누벨 오페라 드 파리(le nouvel Opéra de Paris, 새로운 파리 오페라)라고 불렸지만,
곧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7년 바스티유 광장에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인 오페라 바스티유가 문을 열 때까지
파리 오페라와 관련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주요 극장이었다.
현재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를 주로 발레에 사용하고 있다.
샹젤리제 거리 Avenue des Champs-Élysées)
프랑스 파리시에 있는 2km 길이 도로의 명칭으로,
동쪽의 콩코르드 광장 오벨리스크에서 서쪽의 샤를 드골 광장 에투알 개선문까지이다.
샹젤리제란 이름은 엘리시온 들판(Elysian Field)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들판은 행복한 영혼이 죽은 후에 가는 곳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믿던 장소였다.
샹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Elysées)에는
레스토랑, 명품 브랜드(루이비통, 몽블랑, 겔랑, 페라리 쇼룸 등),
다양한 상점의 플래그십(세포라 ...) 및 클럽으로 가득하다.
그랑 팔레(Grand Palais)와 쁘띠 팔레(Petit Palais),
팔레 드 라 데쿠베르트(Palais de la Découverte),
루이 비통(Louis Vuitton) 문화 공간 등 주요 박물관이 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1160년 건축 시작 1345년경에 완성되었다.
프랑스 파리 시테 섬 동쪽 반쪽에 있는 프랑스 후기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이 대성당은 지금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 건물로서
파리 대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흔히 프랑스 고딕 건축의 정수로 이야기된다.
이 대성당은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인 비올레르뒤크에 의해
파괴된 상태에서 보호되어 복구되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성모 마리아를 의미함).
19세기 초에 대성당은 황폐한 상태였으며,
도시계획가들은 노트르담의 철거까지 고려했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빅토르 위고는 이 대성당의 찬미자로
대성당의 전통을 일깨우기 위해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를 썼는데,
이 소설은 대성당의 운명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는 운동이 이어졌고,
결국 1845년에 복원이 되었다.
생트샤펠 성당(Sainte-Chapelle)
프랑스 파리의 시테섬의 서쪽에 있는 프랑스 후기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14세기까지 프랑스의 왕들이 살았던 궁전인
시테궁 안에 지어진 왕실 예배당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파리 대법원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이름은 프랑스어로 ‘성스러운 예배당’을 뜻한다.
생트샤펠은 프랑스의 왕 루이 9세가 예수의 수난에 관련된
자신의 성유물 수집품을 보관하기 위해 건축을 지시했다. 그
중에서도 예수의 가시 면류관은 중세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성유물 중 하나로서
나중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콩시에르주리와 더불어 생트샤펠 성당은 시테섬에 남아 있는
카페 왕가의 왕궁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이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손상되어 19세기에 복원되기도 했지만,
생트샤펠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13세기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유하고 있다.
생트샤펠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더이상 교회 건물로 쓰이지 않으며,
이웃한 콩시에르주리 등 옛 궁전 건물들과 함께
프랑스 국립건축물센터의 관리를 받고 있다.
첫댓글
멋진 파리의 여행을 잘 봅니다
사진 보존을 참 잘 하셨습니다
세잎 클로버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