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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하지 말라
20: 13-17
13. 살인하지 말찌니라
14. 간음하지 말찌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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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에는 유영철 이라는 33세 된 남자가 무고한 사람들 19명을 무차별 살인을 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살인 사건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모든 죄가 다 악하지만 살인죄는 가장 악한 죄악이고 보통 사람의 감정으로는 저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면 극도의 미움이나 분노로 거의 미치다시피 해야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살인범에게는 사형 등의 극형으로 다스리지만 살인사건은 늘어만 갑니다.
1974년 캄보디아에서는 공산화 전쟁에 100만이 죽었고, 전쟁 후에 크메르루즈가 1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느냐고 하니까 국민을 적절한 숫자로 조절하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했습니다(킬링필드). 공산주의는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며,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스탈린은 실패한 실험인 공산혁명을 위해서 수 천 만 명을 죽였고, 중국과 북한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요즘은 모슬렘 자살특공대가 자기 몸에 폭탄을 두르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돌진합니다. 자기네 사상이나 주장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사람 생명보다 중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싸움꾼을 이웃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체제 경쟁으로는 남한을 이길 수 없음을 보고, 가만히 있다가는 자기네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이 될까 겁이 나니까, 세계를 속이면서 핵무기를 만들어 남한을 인질로 삼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달라는 것을 다 주지 않으면 이판사판이니 이 폭탄을 터뜨려서 너도 죽고 나도 죽을 것이라고 협박을 하면서 세계를 상대로 긴장감을 높여 갈 것입니다. 이제 6자회담에 나와서 우리를 핵보유 국가로 인정해 달라고 하면서 남한을 인질로 삼고 또 한바탕 긴장을 높여갈 것입니다. 순순히 핵무기 해체할 테니 경제원조나 좀 해달라고 할 생각이었으면 세계를 속이면서 핵무기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핵무기가 무엇입니까?
한꺼번에 몇 십 만 명의 생명을 죽이는 무기이고, 한꺼번에 나라 한 나라를 궤멸시키는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이것을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나 무서워서 이것은 절대로 써먹지 말자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은 서로 신사협정을 맺었는데, 북한이나 이란 같은 막다른 골목에 있는 나라들은 핵무기를 만들었다 하면 누가 뭐래도 써먹을 나라이지 신사적으로 절제할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이 6계명에는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아주 간단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뿐입니다. 살인에 대한 말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명령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여 하나님 앞으로부터 쫓겨났을 때, 가장 먼저 생긴 것이 살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자기가 농사지은 곡식을 가져다가 제물로 삼았고, 아벨은 자기가 기르던 양을 잡아다가 제물로 삼았습니다. 사람의 죄를 사하려면 생명이 대신 희생을 당하고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피가 없는 제물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곡식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피 있는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아벨만 인정받고 자기는 거절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아벨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동생이 혼자 있는 시간에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살인입니다. 시기와 미움이 결국 살인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인을 하면 자기도 망하는데 자기도 망할 줄 알면서도 왜 살인을 저지를까요? 그것은 제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고, 사람 생명이 얼마나 귀한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줄을 알아야 자기 생명도 아끼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히 보호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한 개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너무나 귀한 생명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닮은 존귀한 생명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누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갑니다. 만약 이런 짓을 방치하면 세상은 서로 죽이는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살인은 미움과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생기는 분노의 감정은 다른 누구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거절당했을 때 일어납니다. 혹은 누구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부당하게 고통을 받게 되었을 때 분노의 감정이 생깁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이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잘 참아냅니다. 자기가 참지 못하고 사사롭게 보복하면 자기도 보복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아냅니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키도록 자극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단입니다. 사단이 사람의 마음을 극도로 악한 짓을 하도록 충동질하고 참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나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자극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폭력적인 방법이 나오게 되고 심하면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살인은 사단이 마음을 뒤흔들어서 발생하는 악입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자였다.”(요8:44)고 했습니다. 첫 살인자인 가인을 사단이 조종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단을 가까이 하면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살인이란 무엇인가요?
1. 직접살인 -
자기이익을 위해서 고의적으로 폭력으로 사람을 죽이는 직접살인이 있습니다. 강도짓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강도, 린치살인 등이(민35:16) 직접살인입니다. 자살도 직접 살인에 속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결코 그 자신의 것이 아니고 사람이 주관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뱃속에 있는 자기 아이를 죽이는 태아살해도 살인입니다. 한국에서는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1년에 2만 여명의 여자 아이가 산부인과 의사와 부모에 의해서 살해를 당합니다. 인도에서는 200만 명, 중국에서는 500만 명의 주로 여자 아이들이 살해를 당합니다. 결국 아시아의 미래에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다가올 것입니다.
2. 마음의 살인 -
살인의 계명을 인간의 심리에 적용시킨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십계명에는 증거가 명백한 살인행위만 금지하고 있으나 주님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마음, 즉 미움을 살인의 출발점으로 보셨고 미움도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미움- 보기 싫고- 없어지기를 바라고- 죽었으면- 죽였으면- 으로 이어집니다. 미움을 방치하면 결국 살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일3:15)
세상에서 가장 상처를 잘 받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여린가 하면, 누군가 자기를 보고 인상만 써도 상처를 받습니다. 누군가 자기한테 과격한 말 한마디만 해도 마음이 상하고 분한 마음이 남습니다. 대개 성질이 괄괄한 사람은 화가 나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다 쏟아버립니다. 그리고 나면 자기는 기분이 풀립니다. 그러나 그의 분노에 찬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하고 잠도 잘 수 없습니다. 이에 반해서 어떤 사람들은 분노가 생기면 자기 마음속에 깊이 담아둡니다. 그러다가 참다못하게 되면 어느 날 폭발하게 되는데, 욱하고 폭발하는 날 큰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제 6 계명의 핵심은 이런 것입니다.
1. 모든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며 내가 주관하는 것이니 아무도 인간의 생명을 주관 하려고 하지 말라고 엄명 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생명의 주관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2.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 후에 새로운 명령을 주셨는데, 짐승을 식량으로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과,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의 생명이므로 만약 사람의 피를 흘리면 반드시 그 죄 값을 묻겠다고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무릇 사람의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형상 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9:6, 민 35:16).
하나님이 이 계명을 주신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생명을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남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생명도 보호받을 수 없는 세상이 됩니다. 사람들이 남을 미워하고 기분 나쁜 대로 남을 미워하고 미운 사람을 죽인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남의 생명이 귀한 것을 인정해 주어야 내 생명의 존엄성도 보장을 받는 것이고,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어도 그 생명은 보호해 주어야 내 생명도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항상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3. 이 계명은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계명과는 전혀 다릅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계명은 모든 생명체를 다 보호하려는 훨씬 더 적극적인 계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짐승의 생명이나 사람의 생명이 가치가 같다는 사상에서 나온 계명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영혼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의 생명이고, 짐승의 생명은 인간이 부리다가 잡아먹을 수 있도록 사람에게 주신 생명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결국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계명은 사람의 생명을 짐승 생명의 가치나 똑같다고 보는 어리석은 계율입니다.
하나님은 살생을 금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은 짐승을 사람의 식물로 도살하여 먹을 수 있도록 허락 하셨습니다(창9:3).
☛둘째로, 구약시대에는 수만의 짐승들이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길러졌고 제사용으로 도살되었습니다.
그것은 신약에 희생될 고귀한 제물이신 예수님의 상징이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친히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넷째로, 다윗은 목동시절 양을 해치는 짐승들을 쳐 죽였고, 자기에게 덤비는 사자를 찢었던 경험이 있고 그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짐승의 생명은 보호할 것이 아니며, 사람의 생명은 짐승의 생명과 같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살인의 원인은 미움이고 사단에게 미혹된 결과이며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부족입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미운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살인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사죄를 받아야 이 분노의 감정이 해결됩니다. 사람이 가지는 분노와 미움은, 자신이 누구에게 거부를 당해서 생기는 것인데, 하나님이 죄인인 나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마음속에 생겼던 분노는 봄눈처럼 사라지고 송구함과 헌신의 마음이 생깁니다.
또한,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파송하시는 성령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외롭고 상한 마음에 평안과 여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며,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시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사랑을 깨닫게 하심으로 나와 이웃의 생명이 얼마나 존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며, 내가 사랑의 빚을 졌다는 것을 알게 하고, 나를 억울하게 한 사람에게라도 이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남들을 향해 분노를 품었던 마음속에 용서와 사랑과 평안이 자리 잡게 합니다.
마음속의 분노와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사랑의 주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남의 생명을 빼앗고 못되게 사는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들이 서로 죽인 죄, 사단의 감동을 받아서 서로 죽이기 밖에 못하는 인간들, 그래서 영영히 사망을 당해야 하는 인간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사단에게 악한 마음의 감화를 받은 사람은 남을 죽이는 일 밖에 못하지만, 우리 주님은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인간이 저지르는 살인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대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살인자들의 죄를 용서 하기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살인자들에 의해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속에 시기와 미움을 심는 사단을 따른다면 필경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어 사회를 파괴하고 자기 생명도 부지할 수 없게 되지만,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를 희생하러 오신 예수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헌신할 수 있는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행 9장에 보면, 사울이라는 사람은 예수를 알지 못할 때 살기가 등등했다고 써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후,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 예수를 알지 못하면 피해의식과 원망과 미움을 안고 살기등등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알게 되고 그를 마음에 모시면, 마음에 평안이 오고 남을 사랑하게 되며 사랑을 위하여 자기를 버릴 수 있는 따스한 사람이 됩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한때 살기등등했던 사울이 변해서 바울이 된 뒤에 고백한 말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마음으로 고백하며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본받아 사랑의 사람, 헌신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이제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힘을 공급 받읍시다.
성찬식 설교 고전 11: 23-29 ‘거룩한 음식’
거룩한 음식이란 세상의 음식과는 영 다른 음식, 특별한 음식이라는 뜻이다.
1. 자기를 살피게 하는 음식
일반 음식은 이 음식 맛있겠다. 무슨 영양분이 많아서 어디에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이 음식은 자기의 지난날의 삶을 살피게 하는 음식이다. 나 때문에 주님이 이렇게 찢기고 피 흘려 죽으셨으니 내가 죽일 놈이다. 내가 죄인의 괴수라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주의 몸을 분변하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죄를 짓는다.
2. 생명을 주는 음식
이 성찬을 제정하신 주님이 생명을 주는 분이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셨다. 세상 음식은 생명을 연장시켜 줄 뿐이지만 이 음식은 참 생명을 얻게 하는 음식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약속 하신 약속을 기억하면서 이 거룩한 음식에 참여하자.
3. 사랑의 교제를 이루게 하는 음식
한 상에서 같이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교제가 되거든, 하물며 한분 그리스도 예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는 이 거룩한 식사이랴. 우리는 친구나 가족을 지나서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는 것이다.
4. 새 힘을 얻게 하는 음식
음식은 힘을 주는 것, 사흘 굶은 뒤 손에도 맥이 탁 풀렸을 때, 죽 한 그릇만 먹으면 어디서 나오는지 힘이 ‘포르릉’ 솟아난다. 신기한 것이 음식이다.
자동차는 차체가 깨어지면 철판을 대야 하고,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 그리고 자동차가 가기 위해서는 또 기름을 넣어야 하고, 엔진을 위해서는 오일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먹는 음식은 그렇지 않다. 무엇을 먹든지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어떤 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힘이 된다. 그것이 나를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해준다. 하나님이 주신 신비이다. 오늘 먹는 이 음식은 더욱 신비하다. 이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주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힘을 주며, 영원한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나를 하나님께 인정받게 해준다. 이 음식을 먹고 힘차고 바르게,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사랑의 헌신자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