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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의 김난도 교수가 쓴『트렌드 코리아 2019』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적 생활패턴 만들어낸 소비에 대해 평가하면서 기업이 어떤 생산과 소비를 형성할 지에 대해 쓴 경영철학, 경영정책관련 서적입니다. 이 책에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시대가 변화되어 왔고 생산품이 시대상황을 어떻게 반영하며 소비를 촉진시켰는 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019년 당시 어떤 유행이 펼쳐질지 예측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때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다음 해에 생겨날 경제환경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현상을 분석하고 다음 세대에 대해 예측하는 수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견은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처음부터 마지막 종말까지를 이 사회를 잘 설명하고 세상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너무나 정확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말씀을 볼 때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시대가 어떤 지, 우리가 이런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혼란한 세상, 앞이 막막한 세상, 도무지 제대로 정신차리지 않고는 바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믿는 자로써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지혜와 지식으로 하루하루 이 시대를 분석하며 살아가는 것, 앞으로 어떤 미래가 우리에게 펼쳐질지 예상하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 한계가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앞으로 어떤 트랜드가 펼쳐질지, 어떤 상황들속에서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갈 것인지 발견하고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말세 때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마지막 때에도 지혜롭게 그 모든 일을 헤쳐 나가며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을 준비하며 예비된 백성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 우리가 정말 지혜롭게 살아가며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까지 구원을 지키는 사람, 첫째는 지혜와 순결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를 양으로 비유하고 불신자들이 가득한 이 땅을 이리떼로 표현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이리 가운데로 양을 보냄과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상식적 가치관으로 ‘양’은 온순하고 순진합니다. 하지만 ‘이리’는 포악하고 잔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이리가 득실대는 세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인 성도들은 아주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뱀처럼 지혜롭게 하라’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지혜롭게 살아가는 백성들은 또한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세상은 죄악이 만연하여 죄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인간의 가치관은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된다’라고 가르칩니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원리원칙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의 과정보다 결과만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정결, 순결, 깨끗함, 바른 삶을 강조하지 않고 어떻게든 출세만 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택한 백성, 구원받은 성도는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할 것’을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순결함은 연약함으로 보이고 순진함과 순수함은 실패하는 인생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순결함이 있어야 목자가 양을 지킬 수 있습니다. 순결함이 있어야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순결과 지혜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곳은 사람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7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하나님 백성이 세상에 나가 살아갈 때 “사람들을 조심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읽은 본문에서 ‘삼가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뜻은 ‘거리를 두고 마음을 지키라’라는 의미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성도들이 모든 세상 사람들을 다 멀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무조건 멀리한다면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불신자인 세상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과 생각과 가치관, 인생철학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세상이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의 악한 사람들은 우리를 공회에 넘길 것이다’라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기 기록된 ‘공회’는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을 재판하는 산헤드린 공회를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 종교적 문제를 다루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치권을 인정받고 정치적인 내용까지 다루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지방의회, 국회같은 곳이지만 이 당시 이 곳은 행정과 사법을 한꺼번에 다루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보니 이 공회까지 끌려가지 않더라도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 있는 회당에 잡혀 그 곳에서 조사받고 고문당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고문의 근거, 예수님을 전한다는 사실이 핍박의 근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신자와 불신자는 엄연히 다른 사회에 살아갑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생각과 가치관이 다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마태복음에서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가치관과 생각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의식을 잘 분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일상생활에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항상 주의하고 조심하며 그들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할 때 조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거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과 행동속에 어떤 가치관이 있는 지 뱀처럼 살피면서 비둘기처럼 평화롭게 다가가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억압하고 괴롭혀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용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속이 어떨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참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연애살인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잘 사귀다가 어떤 이유로 폭행하고 죽이고 애인이라고 말했던 젊은이들이 파국으로 끝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죽자살자 한 순간도 떨어져 있기 싫어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알콩달콩 심기를 건드리며 깨 볶던 사람들이 이렇게 살인자, 살인피해자가 될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사귀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전제는 불가능하겠지만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정말 그냥 모른 상태로 살았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 지내게 될 때 저와 여러분이 이리에게 물려가는 양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삶속에서 지혜와 순결을 잃어버리지 말고 잘 살피며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영혼도 죽고 육신도 죽고 지옥에 떨어진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만 믿고 지혜와 순결을 지키며 살아갈 때 마지막까지 구원을 지키는 하나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혜와 순결로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참 그리스도인의 역량이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까지 구원을 지키는 사람, 둘째는 증거자로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18절입니다.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에 민감하여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힘든 상황이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 권력자앞에 끌려갔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증거가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선교사역을 보고하였습니다. 그 후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죽임을 당할 뻔 하고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자신이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밝히며 로마에 가서 가이사에게 심판받겠다고 말합니다. 로마시민권자는 사형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로마까지 가서 황제인 가이사로부터 재판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로잡힌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기 위해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그 곳에는 총독관저가 있었기에 우선 총독과 대면하여 조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에게 심문받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마침 방문한 분봉왕 아그립바 왕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로마로 이송된 사도 바울은 로마 황제를 만날 기회와 로마시민에게 복음을 전할 상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붙잡히고 압송되는 과정이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갈 때마다 그 이유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가 핍박받을 때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한 번은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는데 그들은 그 곳에서 찬양과 기도를 하였습니다. 왜냐면 이 모든 일에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찬양과 기도하는 중에 큰 지진이 일어났고 감옥문이 열렸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그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고 간수와 주변 사람들이 구원얻게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면 사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가기 전에 미리 이야기했으면 감옥에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7~4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 대 /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우리가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에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난을 통해 권력자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절박한 상황, 위기의 순간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바로 그 다음 구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9,20절입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황당한 일을 당하고 어려운 순간을 경험하게 될 때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 우리 주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말씀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답답하고 암담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 때 도무지 길을 알 수 없고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3장 11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이 모든 상황속에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지만 결국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 우리가 굳건히 그 어려움을 담대히 견디게 할 능력은 바로 성령으로 인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에 매여서 살아가는 신앙인은 오늘 당하는 고난과 고통, 핍박과 박해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속에는 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뜻이 있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절대 우리 인생에 무의미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일, 힘든 상황속에서는 내가 이겨낼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끌어다가 사람들 앞에 세울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실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5절입니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예수님께서 택하신 제자들, 사도들이 세상 권력자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죽임을 당했고 주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도 수 많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복음전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더 강력하게 보존되었고 교회도 더욱 부흥하며 성장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성령님께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생각나게 하시고 생각난 말씀을 담대하게 외치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우리가 천국복음의 길을 걷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가 전도자로 살기 위해 많은 훈련을 요구받습니다. 정말 체계적인 전도훈련을 통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민감하고 그 때 그 때마다 신실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참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참다운 전도자는 성령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고 성령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하는 구원받은 백성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까지 구원을 지키는 사람, 마지막 셋째는 참고 견뎌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2,23절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말세지말 이 시대에 우리에게 닥칠 수 많은 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시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연재해와 각종 전쟁과 다툼들, 온갖 불협화음들 갈등들로 인해 환란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신앙인은 이런 환란에 더하여 신앙으로 인한 괴롭힘, 신앙으로 인한 핍박을 당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이런 고난, 이런 환란의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우리가 해결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가복음 13장 1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싸워 이기며 정말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삶에서 항상 참고 인내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깨달은 구원의 은혜를 유지하며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그 날까지 구원받는 백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를 성령님께 맡기며 끝까지 견디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내 힘과 노력으로 경건을 추구하거나 거룩해지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완전한 성화를 이뤄내기 위해 내 노력으로 영화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로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은혜속에 구원에 합당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삶에서 참 구원의 완성은 주 안에서 주님께 맡기며 참고 인내함으로 주님만 바라볼 때 가능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4,5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 인간은 전적인 부패, 전적인 타락, 전적인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기를 소망하며 승리하신 하나님, 승리하신 주님, 승리하신 성령님으로 담대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정말 엄청난 혼돈이 사회를 흔들어 놓고 있는 말세지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가치관은 정말 인간의 상식으로도 이해불가능할 정도로 죄악을 판가름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우리는 정말 무엇이 참인 것인지, 어떤 것이 진실인 지 분별해 내기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TV뉴스와 각종 신문 뉴스를 봐도 똑같은 일에 대해 서로 다르게 분석하고 서로 다르게 평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들으면 이것이 맞는 것 같고 어떻게 들으면 저것이 맞는 것 같은 정말 잘 판가름하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때에는 사탄마귀가 영혼이 혼란스러워지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순결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고 지혜롭게 세상속에서 살아가기 힘든 시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찾아올 완전한 심판의 날, 종말의 때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은 심판의 날, 종말의 때를 절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받은 자에게 종말은 오히려 새 역사, 새 희망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구원의 완성입니다. 구원을 모르는 사람에겐 세상 끝이 두려움이고 죽음이겠지만 우리에겐 평안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을 걱정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한 다음 그 이후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것입니다. 준비한 자는 평안합니다. 주께 삶을 맡기는 자는 평안합니다. 평안은 준비하고 맡기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 선물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7,18절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세상이 혼란하게 돌아가며 사회에서 서로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서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이 시대 세상 종말이 보이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하루도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