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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창덕궁 대조전의 뒤편에는 순종내외가 쓰던 목욕탕과 洗面室이 있지만,
옛날에는 화장실이 없었듯이 王과 王妃의 목욕탕도 있었을 리 없다.
그러면 왕의 목욕은 어떻게 하는가.
장소는 왕이 거처하는 침실에 붙은 조그만 방이며, 이 방은 세수하는 방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넓은 유지(油紙.기름종이)를 방바닥에 깔아놓고 큰 함지박이 놓여있다.
이는 목욕을 위한 專用物이며, 옛날부터 궁중이나 우리 민간 가정에서나 함지박은 생활용품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왕의 몸을 담글 정도니 꽤나 큰것이었다.
통나무를 판 것이므로 몇백년은 됨 직하다는 것이다.
대조전에 내려오던 것은 화재 때 타 버렸으며 이후 신식 목욕탕이 생겼으니 있다 해도 쓰이지 않았을 것이이 함지박에 洗水間 內人이 더운 물을 붓고 옆에 찬물을 갖다가 놓는다.
비누는 팥비누,수건은 곱고 부드러운 무명이었다. 궁중 용어로 수건은 [수긴]이라 한다.
목욕 준비를 완료해 놓으면 시녀상궁이 왕이 갈아입을 내복(內服)을 갖다가 대령해 놓고 나가면 봉보부인(奉保夫人ㆍ왕의 유모)이 왕을 모시고 들어와서 씻겨 드린다는 것이다.
왕의 玉體는 아무나 감히 손을 댈 수 없어서 순종도 신식 목욕탕이 생겨난 뒤에도 유모가 들어가서 씻겨 드렸다고 김상궁은 증언하였다.
유모가 이미 故人이된 경우에는 보모상궁(保姆尙宮)이 한다.
왕비 역시 마찬가지로 친정에서 따라들어온 유모와 시녀(本房內人)가 씻겨 드렸는데, 왕비든 궁녀든 조선조 시대 귀한 여인들은 절대로 완전히 벗고 씻지 않는다는 것이다.
<숙종실록>
"오시(午時아침11~오후1시)에 임금이 온천에 나가 머리를 500 바가지 감고, 배꼽 아래를 2각(二刻.30분) 동안 담갔다."
여러 임금과 마찬가지로 숙종 임금도 각종 질병에 시달려서 온천행을 자주 했다고 나옵니다.
배꼽아래를 30분 담갔다는 것은
지금의 <반신욕>이랑 같다고 봐야겠죠.
"사시(巳時,오전9시~11시)에 임금이 온천에 나가 머리를 200 바가지 감고, 다리 아래를 일각(一刻,15분) 동안 담갔다."
이것은 숙종임금이 지금의 <족욕>을 했다는 것과 같겠지요.
감사ㆍ感謝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