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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갈색 머리카락 사이의 파란 눈동자는 에메랄드처럼 빛났다.
하얀 손가락만 나오는 장갑을 낀 그녀는 거침없는 솜씨로 지게차를 운전하며
트레일러 안에서 크레이터를 꺼내 창고 한 켠에 차곡차곡 내려놓았다.
나는 넋을 놓고 그녀의 아름답고 화려한 동작을 바라보았다.
지게차와 함께 탱고를 춘다면 바로 저런 춤사위가 나오리라!
시카고의 여전사
WOMAN Warrior In CHICAGO
(단편 200자 원고지 204장)
Wolfkang Lim
1. 철의 여인
Iron Woman
황금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눈부신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I-57 번 하이웨이 북쪽 방향, 시카고를 향해 달린다. 여섯 개의 차선이 분주한 차량의 행렬로 이어지고 있는 I-294 인터체인지를 막 지나자마자 앞서 달리던 트럭이 갑자기 급정거했다. 타이어에서 연기가 나며 심하게 좌우로 요동쳤다. 나도 순간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고 간신히 트럭을 멈추었다. 등줄기에서 진땀이 흘렀다. 제각기 분주하게 달리던 모든 차량이 완전히 정체되었다. 앞뒤로 줄지어 서 있는 차들은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이웨이가 혼잡할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심한 트래픽은 예상하지 못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꼼짝 못 하고 주차장으로 변한 하이웨이 위에 갇혀 있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분명히 대형사고가 났거나 비상사태임을 직감했다.
텍사스의 라레도는 태양보다 수만 대의 트럭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더 뜨거운 곳이다. 도시 전체가 트럭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트럭이 많다. 미국과 멕시코를 잇는 국경에 위치하여 자유무역의 붐을 타고 초고속 성장을 한 물류의 중심도시로 무려 하루에 12,000대의 트럭이 국경을 넘는다. 하이웨이에서 꼬리를 물고 들어오고 나가는 트럭들은 라레도 시내 곳곳마다 굉음을 뿜어내며 달린다.
직선으로 뻗은 35번 하이웨이 주변에는 야생 선인장이 줄지어 서서 손바닥을 흔든다. 선인장은 핏방울 같은 붉은 꽃을 피우는데 꽃말이 ‘불타는 사랑’이다. 진홍색 꽃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한번 박히면 오래도록 잊지 못할 괴로움을 주므로 함부로 만지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불타는 사랑도 그런 고통이 따른다.
디스패처로부터 시카고까지 가는 화물의 송장을 건네받고 기름에 절어서 비릿한 지옥 같은 이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트레일러를 훅업 했다.
53피트 트레일러에 실린 화물은 20,000파운드로 평소에 싣는 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화물로 크레이터라는 커다란 나무상자가 나란히 실려 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구글로 최종 목적지가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임을 확인하자 이것은 마치 하늘이 내게 선사한 최고의 기회라고 여겼다. 더구나 연휴가 낀 황금 주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트럭으로 시카고를 수도 없이 지나다녔건만 단 한 번도 시내를 구경하지는 못했다. 이번 주말을 시카고에서 보낸다면 가 보고 싶었던 곳을 둘러 볼 수 있다. 밀레니움 공원을 산책하거나, 클라우드 게이트 주변을 기웃거리거나 윌리스 타워에 오르는 것도 좋겠지. 운 좋으면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감상하거나 미술 박물관을 관람 할 수도 있겠지. 혹은 시간이 남으면 워터하우스 같은 역사적 건물을 돌아보거나 부두에서 오하이오 비치까지 걸어 가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목적지 시카고를 바로 앞에 두고 앞뒤로 꽉 막힌 하이웨이에서 벌써 30분, 차량들은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고 기다림에 지친 운전자들이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목을 길게 내밀어 앞쪽을 바라보았다.
CB 라디오 채널 19번을 통해 트럭 운전사들 간의 무선교신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이웨이가 완전히 차단됐어. 아마도 대형 사고가 터진 거 같아. 누군가 총소리를 들었다고도 했어.
-하이웨이에서 총격이 벌어졌다는군. 그로 인해 수십 대의 차가 다중충돌사고가 발생해서 정리되려면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는군.
-젠장, 나는 폭력적인 아메리카가 싫어. 총기 사고가 넘치고 있어
-AK 자동소총까지 무장한 갱단과 경찰차 300대가 동원 된 대단한 전쟁이었다는 소문이 있어.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거야? 영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총격전이 주말 하이웨이 위에서 벌어지다니 정말 미쳐버린 미국이다.
-맞아. 미국은 각종 총기 사건의 비극이 매일 일어나고 있어. 사소한 시비부터 원한과 복수로 죽고 죽이는 싸움부터 무작위로 대량 살상을 하는 소시오패스와 사이코, 경찰의 과잉대응에 의한 살상까지 총은 아메리카 대륙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
-그거 알아? 바로 이 시카고가 '총격과 범죄'의 도시로 악명이 높다는 것을.
-시카고는 ‘바람의 도시’가 아니라 ‘전쟁의 도시’야.
미국에 있는 총의 숫자는 미국 인구보다 많다. 어처구니없지만 사실이다.
지역 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에 따르면 지난 금요일에도 밤부터 월요일 새벽 사이에 총 33건의 총격 사건이 벌어져 63명이 다쳤고 12명이 숨졌다. 시카고의 총격 사건 사망자 수는 연간 700명을 넘는다. 미국 1·2위 도시인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연간 총격 사건 사망자를 합친 수 600명보다 많다. 올해는 지난 7일까지 시카고의 총격 사건 사상자 수는 1785명에 달한다. 2017년과 2016년엔 한 해 사상자 수가 각각 3567명과 4369명에 달했다. 시카고에서는 하루 10명 이상이 총격으로 다치거나 죽는다. 총격 사건은 흑인과 히스패닉이 모여 사는 시카고의 남부와 서부 지역에 집중됐다. 갱단들이 마약, 매춘, 불법도박사업 등 이권을 놓고 세력 다툼을 벌이고, 이 빈민가들의 젊은 층은 범죄와 마약에 물들어 갱단에 가담하고 있다.
시카고가 이렇게 험악한 것은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뉴욕에 정착했던 아이리시 갱단과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금주령 때문에 엄청난 이권이 달린 시카고의 밀주사업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이는 잔인한 전쟁을 했다. 알 카포네, 딜링어, 벅시 등 당시의 갱스터들이 그 악명을 날렸다.
비극과 폭력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탓에 나는 하이웨이 위에서 꼼짝 못 하고 3시간 동안 묶여 있는 것이다. 바람의 도시에서 재수 없는 날이다. 결국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었고, 이미 정상근무가 끝나버린 시간이어서 모두 퇴근했을 것을 걱정하였다. 회사는 시카고 서쪽에 있는 데칼 이라는 오래된 타운에 있었다. 높은 굴뚝이 보이고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낡은 건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50년에서 100년은 돼 보였다. 크기에 비하여 너무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대쪽에는 잡목들로 우거진 숲이 있어서 으슥하고 음침했다. 군데군데 조그만 사각 유리창이 깨져있어서 검은 모자이크가 폐허 건물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트럭에서 내려 철문 옆에 있는 인터폰을 누르자 여러 번의 신호가 울린 끝에 대답이 있었다. 건물 좌측에 있는 3번 도크에 대라는 말과 함께 철컹 소리를 내며 철망으로 된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회사에 미리 전화로 늦겠다고 연락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화물을 실은 채로 주말을 완전하게 손해 볼 뻔했다. 서둘러서 트레일러 문을 열고 후진으로 도크에 댄 후 서류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게차를 운전하며 나타난 사람은 국방색 카고 바지에 가죽조끼를 입었고 할리 데이비드슨 크롬 장식이 달린 부츠를 신었다. 시카고 불스의 황소 그림이 박힌 모자 아래로 흑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푸른 눈동자는 에메랄드처럼 빛났다. 하얀 손가락만 나오는 장갑을 낀 그녀는 거침없는 솜씨로 지게차를 운전하며 트레일러 안에서 크레이터를 꺼내 창고 한 켠에 차곡차곡 내려놓았다. 나는 넋을 놓고 그녀의 아름답고 화려한 동작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뒤로, 올리고, 내리고, 돌고.......
지게차와 함께 탱고를 춘다면 바로 저런 춤사위가 나오리라!
오랜 시간을 하이웨이에 서 있었고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볼일이 급했다. 화장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직원휴게실 맞은편에 있었고 휴게실에서 여러 명의 웃음소리와 함께 남자들의 거친 말투가 흘러 나왔다. 또렷하게 귀에 박히는 욕설과 그 사이마다 총 또는 기관총이라는 단어가 섞여 나왔다.
“줄리어스 시저가 오코너스 상사에게 개박살났지.”
“오코너스 상사가 새파랗게 젊은 놈들을 훈련하고 M310으로 완전 무장했다는 소문은 사실 같아.”
“지난번에는 와탕카가 무너지고, 이제 시저도 깨지고 한동안 오코너스 상사를 꺾기는 어려울 걸.”
“이번 주말이 기대된다. 아마도 마지막 대격전이 터질 거야.”
대화 내용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오늘 하이웨이에 있었던 총격전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마치 시카고 불스 농구 게임을 이야기하듯 떠들어댔다.
볼일을 마치고 손을 씻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나이가 들어오다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면서 물었다.
“후 더 헬 아유? ”(누구냐?)
놀람과 의혹이 잔뜩 섞인 말투를 던진 백인계로 보이는 사나이는 주머니가 여럿 달린 재킷과 카고 바지를 입었고 군화를 신었다. 단정한 머리칼과 말쑥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아 전혀 사무실 직원처럼 보이지 않는다.
“트럭 드라이버.”
“차이니스?”
“노, 아이 엠 코리안 아메리칸.”
“그럼 난 아이리시 아메리칸이겠네.”
내 대답을 재미있게 생각했는지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트럭 운전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어디를 다니는지, 이것저것 묻더니 커피 한잔 마시자며 직원 휴게실로 나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안에 있던 직원들의 대화가 뚝 그치고 일제히 나에게 눈길이 쏟아졌다. 아마도 동양인이 불쑥 나타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긴장된 기류가 흘렀다.
“신경 쓸 것 없어. 물건을 가지고 온 트럭 운전사야. 매그가 물건을 내리면 곧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나를 안내한 아이리시 남자가 가볍게 말을 던지자 그중 한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매그는 역시 철의 여인답게 지치지 않는군.”
어색한 공기가 조금 풀리면서 다시 그들만의 대화로 돌아갔다. 그들의 옷차림 역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보기에 고급스러웠고 스포티했다 모두 부츠와 재킷을 입었다. 문득 이 회사가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종류의 화물을 싣고 수도 없이 많은 북미의 회사를 다녀봤지만 지금처럼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곳은 처음이었다. 입구에 자동 철문이 생각났다. 북미에서는 입구에 철문이 있는 회사는 드문 일이다. 뭔가 있다.
머신에서 커피를 뽑아 건네주는 그 사나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물었다.
“뭘 만드는 회사입니까?”
동시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쟈니...”
그들 중 하나가 중얼거리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커피를 건네준 사나이의 이름이 쟈니라고 짐작했다. 쟈니는 가볍게 손을 그들에게 흔들어 보이고 태연하게 미소까지 띠며 대답했다.
“3D 프린터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주문받아 만들지. 우리는 숟가락부터 자동차까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갖고 있어.”
“와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3D 프린터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미래의 신 혁명을 일으킬 신기술로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렇게 낡고 허름한 공장에서 이런 장비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3D 프린터를 본적이 없어.”
“그래? 따라와. 내가 보여 주지.”
쟈니는 흔쾌하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 간 곳은 넓은 공간으로 유리문이 막혀있고 십여 대의 기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레오 그리고 안젤로!”
쟈니가 양팔을 벌려 그들을 소개했다. 왠지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를 연상시키는 이름이었다. 처음 대면한 3D 프린터는 마치 인형 뽑기 기계처럼 생겼지만, 인형은 없고 크기가 더 컸다. 한가운데에 실버 코팅된 받침대 있고 위에는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 팔이 달려있다.
“대단해! 정말 멋있고 대단해!” 나는 연신 감탄했다.
“MARKFORGE 4X! 인류 역사상 가정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머신이지! 첨단 테크놀로지에서도 최고의 프린터!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한 나의 장난감 베이비!”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지?”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만들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지. 천재적인 예술가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경이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단지 작고 간단한 물건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야. 바이올린, 카메라, 미래의 수퍼 자동차 뭐든지 이름만 대. 모두 만들 수 있어. 필요하다면 당장 섹스토이도 만들어 줄 수도 있어.”
그가 나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자 그가 고개를 흔들며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야! 그렇다는 거지 뭐! 중국에서는 전기와 배관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춘 5층 건물을 3D 프린팅 머신으로 지었고, NASA에서는 우주인들을 위한 햄버거 피자까지 만들어내고 있어. 마술 같은 현실이 실현되고 있어. 두 앞다리를 잃고 걷지 못하는 개에게 두 다리를 만들어 준다면 감동적이지 않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머신이 무엇을 만들어 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 인간의 손, 팔, 다리를 만들고 귀 코, 안구, 콩팥이나 심장까지도 만들어 낸다면, 한번 상상해 봐! 멋지지 않아?”
쟈니의 말에는 도전과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마치 IT계의 거성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듣는 듯 했다. 그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발을 스캔하면 그 발에 꼭 맞는 고급운동화가 생산되어 나오거나 텍스트를 넣으면 한 권의 책이 나오는 3D 프린터는 이미 시장에 나왔다. 3D 프린팅 머신은 인류가 돌칼과 돌도끼를 만들어 낸 이래 창작하고 생산하는 작업에 가장 경이적인 혁명을 가져올 신기술이다.
구경을 마치고 창고로 돌아오자 지게차의 여자는 마지막 크레이터 하차를 모두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철의 여인!”
그녀가 깜짝 의외라는 듯 파란 눈을 깜박였다.
“안에서 쟈니를 만났습니다. 레오와 안젤로를 보여주었는데 정말 멋진 녀석들이었습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 답지 않은 행동이었군요. 나는 매그놀리아입니다. 모두 매그라고 불러요. 철의 여인은 동료들이 붙여 준 별명이고…….”
“별명처럼 강하면서도 아름다워요. 내 이름은 울프입니다.”
내가 본 인상 그대로 말했지만, 호감을 얻기 위한 작업용 멘트로 여겼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물 송장에 거칠게 펜을 놀려 싸인 한 다음 내게 넘겨주었다.
“시카고에서 음식을 맛있게 하는 레스토랑을 혹시 아세요?”
“미쉘린 스타를 찾는 건가요? 고급스러운 코스요리 같은?”
“아니, 데이트 상대가 없어서 그냥 캐주얼한 곳이 좋습니다.”
“그럼 배터 앤 베리스가 좋겠네요. 링컨 파크에 있어요. 또는 밀레니엄 파크 부근에 와일드베리 팬케이크나 죠의 해산물 요리가 소문난 맛집으로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죠.”
진심은 그녀에게 안내를 부탁하고 싶었지만 마음뿐이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늘 밤, 회사 야드에 트럭을 주차해도 괜찮을까요? 시내를 구경하고 싶은데.”
“윌리스 타워에 가고 싶은 거죠?”
“거기보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가고 싶어요.”
“ 리카르도 무티는 시카고가 자랑스러워하는 훌륭한 지휘자지요.”
회사 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여자가 무티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반가웠다.
“클래식을 좋아하시는군요?” 기회다 싶어서 반사적으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아니에요. 나는 그가 이탈리안이라서 알뿐, 나는 힙합이 더 즐겨요.”
직감적으로 그녀도 이탈리안일 것으로 짐작했다. 터프하지만 솔직한 말투가 인상 깊게 새겨졌다. 탄탄한 몸매가 옷과 잘 어울렸다.
“트럭을 주차할 수 있는지 회사에 물어볼게요. 별일 없는 한 주말 동안 주차할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부르릉 지게차로 우아한 춤사위를 날리며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녀가 돌아와 정문 철망 바깥쪽 구석에 주차해도 좋다는 말을 훌쩍 던지고 사라졌다.
스틸 우먼 매그놀리아, 별명처럼 강한 매력이 넘친다.
철은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카고 광장에 두꺼운 철을 자르고 붙여서 15미터가 넘는 대형 예술 작품을 세워 놓았다.
‘홀로 예술작품을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일이다. 말이라도 꺼내 볼 걸.....’
회사 앞에 한편으로 철망에 바짝 붙여 트럭을 주차했다. 주섬주섬 옷을 바꿔 입고 시카고 시내로 나갈 준비를 했다. 박물관은 이미 닫은 시각이라 내일 한꺼번에 돌아보기로 마음먹고 일단 CTA 열차를 타고 밀레니엄 역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확인하고 하이킹 배낭에 물건을 챙겼다. 핸드폰, 스위스제 주머니 칼, 소형 헤드랜턴, 물통을 겸한 보온병, 비옷, 수건, 책 한권, 선글라스, 그리고 3단 접이식의 등산 스틱 이것들은 언제나 배낭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다.
모자를 쓰고 트럭에서 나와 주위를 살펴보았다. 트럭 운전을 오래 한 경험에서 나온 습관이다. 매일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주변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또 돌아오는 길을 잘 봐두어야 헤매지 않는다. 공장이 있는 동네는 주거지역과 경계에 있어서 그리 위험하거나 혼잡하지 않았다.
서너 정류장을 가면 열차 역이므로 버스를 타기보다 걷는 것을 택했다. 길을 따라 가다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모퉁이에 서 있을 때 붉은 색의 체로키 지프가 바로 내 발 앞에 정차했다. 짙게 썬팅 한 창문이 내려지고 푸른 눈동자가 나타났다. 철의 여인 매그놀리아가 얼굴을 내밀었다.
“시내로 가는 길이라면 태워 줄 테니 타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친절을 받아들였다. 운전하는 남자는 휴게실에서 본 얼굴이었다. 뒷문을 열자 뒷좌석에 비스듬히 앉은 사내가 안쪽으로 옮겨 앉으며 심드렁하게 뱉었다.
“쟈니 더 브레인은 이걸 좋아하지 않을 텐데.”
“너는 네 궁둥이나 걱정해. 울프, 네 옆에 버릇없는 친구는 글렌애스야.”
“발음 똑똑히 해, 나는 애스가 아니고 글렌개리야.”
“그리고 샘 네일스.” 그녀가 운전하는 남자를 가리켰다.
“나는 망치가 못돼서 못일세.”
그가 뒤로 손을 뻗어 주먹을 내밀었다. 나도 가볍게 주먹 인사를 했다. 엉겁결에 그녀 때문에 타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글렌개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울프는 시카고에 오신 손님이자 우리에게 물건을 배달해 준 트럭 운전사이니까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는 것이 예의지.”
“그럼!”
경직된 내 표정을 읽어 낸 듯 조수석에서 앉아 있는 매그놀리아가 말하고 샘이 맞장구쳤다.
“아무려나. 나는 신경 끄겠어.”
글렌개리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시큰둥한 말투로 대답했다.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불편했지만 시내까지 갈 동안만 잠시 참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후의 햇살이 시카고 빌딩 사이로 가려지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체로키는 차들 사이로 빠르게 달렸다. 나는 어정쩡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 계속 창밖의 거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차 안의 공기를 깨뜨리며 전화벨이 울렸다. 매그놀리아가 재킷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얍……. 뭐?, 오케이, 알았어!”
짧은 통화를 마친 매그놀리아가 샘에게 전했다.
“샘, 장소가 바뀌었다. 지금 즉시 로코의 레스토랑으로 간다. I 90로 올라가 스카이웨이로 가. 빨리!”
뭔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거나 계획이 틀어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어떻게 하지? 물어볼 틈도 없이 샘이 신호도 주지 않고 즉시 좌회전 차선으로 변경하여 적색 신호등 앞에서 멈추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뭔가 좋지 않아.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글렌개리가 여전히 심통한 말투로 비아냥거렸다. 나의 시선은 계속해서 창 바깥쪽으로 두고 일부러 외면했다. 이때 체로키 옆으로 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다가왔다. 짙은 유리창의 쉐보레 말리부가 체로키 옆에 나란히 정차했다. 창문 유리가 천천히 내려가고 비트가 강한 랩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검은 물체가 창밖으로 나왔다. 유리창 너머로 하얀 눈동자가 나타났다. 나와 매그놀리아가 동시에 외쳤다.
“헉!” 나도 모르는 비명을 내질렀고 매그는 “왓더? 뭐야? 고 고 고......” 몸을 낮추며 샘을 재촉했다. 샘이 액셀러레이터를 콱 밟자 타이어에서 고음의 미끄러지는 소리와 나면서 돌진하고 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불이 번쩍하며 탕! 탕! 연속적인 두 번의 파열음이 터졌다. 총알이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유리 파편이 튀고 뭔가 빠른 속도로 귀를 스쳐 지나갔다. 무조건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고개를 의자 사이에 처박고 있는데 언뜻 글렌개리의 손에 권총이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체로키가 자동차를 피해 달리는 중에도 총성은 뒤에서 계속 들리고 뒤 유리창에도 총탄 구멍이 생기며 유리 파편이 튀었다.
“개새끼들! 우리를 미행하고 있었어.”
“어떤 놈들이지?”
“불개미13은 아닌 것 같고, 샌드맨의 패거리들인 거 같아.”
“아직도 쫓아오고 있어! 글렌! 어서 쏴!”
글렌개리는 창밖으로 총을 내밀어 뒤따라오는 검은 색 말리부를 향해 응사했다.
“탕! 탕!” 고막을 둔탁하게 때리는 진동이 생생했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듣는 총성이었다. 매그놀리아의 손에도 반자동권총이 들려 있었다. 둘은 각각 창밖으로 총을 내밀어 추격해 오는 차를 향해 반격했다. 추격은 계속되었고 나는 아예 바닥에 내려앉은 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이때 글렌개리가 조끼 안에서 권총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오! 노! 난 총 쏠 줄 몰라!”
“정말이야? 내가 가르쳐 주지. 이걸 뒤로 당겨 그리고 겨냥한 다음 방아쇠만 당기면 돼. 반자동 권총이니까 식은 죽 먹기지.”
“노! 노! 안 돼!”
“이봐, 살고 싶다면 받아! 죽고 싶다면 그대로 있고!”
파랗게 질린 나는 권총을 받아 들 용기가 없었다. 심장에서 터질 것 같은 박동이 요동치고 관자놀이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에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행스럽게 뒤따라오던 총소리가 그쳤다.
“이제 따돌린 것 같아.”
샘이 백미러를 살피며 말했다.
“괜찮아? 울프.”
매그놀리아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몸을 일으키자 어깨에서 유리 조각이 부스스 떨어졌다.
“이 겁쟁이는 아주 완벽해. 말짱하네!”
글렌개리가 반자동권총을 재킷 안에 집어넣으며 빈정댔다.
“글렌! 그는 운전사지 전사가 아니야.”
귀밑이 쓰리고 따끔거려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묻어 나왔다.
“죽지 않아, 유리 파편이 스친 것뿐이니까.” 글렌개리가 흘깃 본 다음 건성으로 말했다.
“지금 어디야?” 매그놀리아가 묻자
“워싱톤 스트리트를 지나 가필드에 왔어.”
샘이 대답했다.
“차를 멈춰! 난 당장 이 차에서 내릴 거야!”
정신을 차린 내가 요구했다.
“안 돼!”
매그놀리아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왜 안 돼? 나는 이런 것과 어울리지 않아.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내가 좀 더 거칠게 항의했다. 솔직한 심정은 이런 사건에 엮이는 것이 두려웠다.
“내리고 싶다면 그냥 내리게 해 줘. 아마 다섯 걸음도 못 가서 총 맞아 죽을 거라고 장담하지. 내기해도 좋아.”
글렌개리는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그의 비꼼은 여전히 내 비위를 상하게 했다. 하지만 차창 밖을 보고 나서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했다. 트럭 운전을 하면서 미국 여러 도시를 다녀 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지금 지나가는 곳은 슬럼가의 한가운데였다. 거리에 어슬렁거리는 검은 무리들과 철장으로 막힌 주유소 창구, 건물에 그려진 무시무시한 그래피티와 알 수 없는 문자가 어지럽게 널렸고 심지어 창문을 판자로 막은 건물도 가끔 보였다.
“매일 4명이 총 맞아 죽는다는 시카고 최고의 우범지역인 게토의 한가운데 와있어. 여기는 경찰들도 오지 않는 곳이야.”
나는 귀밑에 난 상처의 피를 닦은 다음 배낭에서 밴드 에이드를 꺼냈다.
“허헉! 이제 보니 준비된 전사였네! 배낭 안에 또 뭐가 있어? 수술용 나이프와 바늘이 있겠지. 저격용 총이나 단검이 있는 거지? 아니야 쌍절곤이 있겠지.”
“닥쳐!”
매그놀리아가 몸을 돌려 밴드 에이드를 낚아챈 다음 귀 아래 목덜미에 붙여 주었다. 따끔해도 낯선 여자의 손길이 닿자 기분이 묘했다.
붉은색 체로키는 2층짜리 낮은 건물이 늘어선 상가 앞에 멈추어 섰다. 믹키스 간판이 있는 건물이었다. 레스토랑이라는 부분은 불이 꺼져있어서 믹키스만 환하게 보였다. 그 앞에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앞에서 서성대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가운데 서 있는 사나이는 쟈니였다.
“내리는 게 좋을걸.”
샘이 체로키에서 묵직한 가방을 꺼내면서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매그놀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또다시 총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얼른 그들을 따라나섰다.
“이봐! 한바탕 시가전을 벌였다면서? 와! 점점 대범해지고 있어.”
“큰 껀은 아니었어, 단지 한 클립 주고받았을 뿐, 샌드맨의 조무래기들이였어. 괜찮아.”
그들은 주먹을 내밀고 손을 맞잡고 어깨를 부딪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손에 비디오카메라를 든 남자가 체로키에 난 총탄 자국과 깨진 창문을 근접 촬영하고 나서 렌즈를 나에게로 돌렸다.
“오~ 새얼굴!, 이 멋진 사나이는 누구야?” 내 앞으로 다가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작은 키에 몸은 뚱뚱한 체격에 꽉 끼는 재킷을 입었다. 그의 가슴에도 소형 카메라가 고정된 것이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고프로였다. 그는 카메라 렌즈를 내 얼굴에 바짝 들이댔다.
“소니 치바? 와썹? 부르스 리?”
모두가 나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아마도 반경 10킬로미터 내에 있는 유일한 동양인이 바로 나일 것이다.
“헤이! 미스터 류! 아무 말이나 해봐!”
그가 카메라를 내게 클로즈업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당신은 용병이지? 저격 전문이야? 춉춉 가라테? 소드 마스터? 오케이 당신이 무엇이든 관계없어. USC를 대표해서 WAR ZONE 전투지역에 온 걸 환영해!”
그는 카메라를 이쪽저쪽 거칠게 돌려댔다.
“나는 제이케이 닥, 래퍼이자 싱어이고 배우이자 프로듀서야!”
그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알아들을 수 없이 매우 빠른 발음으로 지껄였다. 이때 체격이 우람한 흑인이 비디오카메라맨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제이케이 닥! 너 유튜브에 한 번만 더 올리면 평생 기어 다니게 만들어 줄 거야.”
“아, 커몬! 내가 너를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어. 내 뮤직비디오에 너의 탄탄하고 섹시한 엉덩이 좀 찍게 해 줘.”
“뭐라고? 카메라를 네 똥구멍에 처박기 전에 꺼져! 이 자식아 !”
대부분 전투 재킷을 입었고 앞이 불쑥한 것으로 보아 모두 권총 한두 자루쯤은 차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우범지역이라 해도 총이 이렇게 흔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시카고가 총격 사건이 가장 많기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매그놀리아와 샘이 쟈니와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레스토랑은 깡패 소굴이자 아지트였다. 일반 손님이라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웨이트리스도 사납고 억세게 보였다. 안쪽 테이블에 수석에서 차분하게 신문을 읽고 있는 반백의 노인에게 쟈니와 일행이 다가갔다.
“안녕하시오? 로코 루치아노.”
반백의 노인은 신문에서 눈을 들어 돋보기안경 너머로 모두를 살펴보더니 천천히 안경을 벗고 몸을 의자 뒤로 한껏 기대며 가늘게 실눈을 떴다.
“쟈니 더 브레인이 이곳까지 왔을 때는 뭔가 중요한일이거나 아니면 날 죽이러 왔겠지.”
“로코, 더 럭키맨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시카고에 없습니다.”
로코는 가늘지만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눈으로 두 사람 뒤에 서 있는 나를 지그시 째려보았다.
“흐음, 전에 없던 신인이 있었군. 틀림없이 대단한 용병이겠지.”
쟈니는 돌아보지도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보다시피 그는 총도 필요하지 않아.”
쟈니가 몸도 돌리지 않고 손을 들어 툭툭 내 가슴께를 쳤다.
그제야 그들이 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어색하게 서 있기만 했다. 나를 용병으로 데려온 전사라고 소개하는 것이 겁이 났다.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매그놀리아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가서 한잔하는 게 좋겠어.”
나는 그녀가 이끄는 테이블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쟈니는 샘이 들고 온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내 작은 선물입니다. MAG350 완전 자동식 최신형 머신 건으로 탑 오브더 라인입니다.”
로코가 자동 기관총을 감탄의 눈으로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흠 나는 늙어 가는데 세상은 혁신적으로 변하는군.”
“배틀 그라운드에 나오는 UMP9 모델 복제판입니다. 단발 연사 모두 가능하고 5.56mm 소형 탄을 초당 4.8발씩 발사속도를 가졌고 무엇보다 가볍고 작아서 시가지 전투에 최적입니다.”
로코가 눈을 치켜떴다
“놈들이 노리는 게 바로 이거군.”
“그렇습니다.”
그는 쟈니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이제 뭔가 중요한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매그놀리아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요? 왜 나를 용병이라고…….”
그녀는 눈짓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로코 루치아노는 전통이 있는 로코코 패밀리의 보스입니다. 지금은 거의 은퇴한 상태지만 그 영향력은 뉴욕, LA까지 미칠 정도로 건재하고 로얄 멤버들이 많아요. 지금까지 모두 스물두 방의 총알을 맞고도 살아나왔다 해서 ‘더 럭키’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쟈니가 뭔가 중요한 딜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신형 기관총을 선물한 거 같아요.”
이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과 타이어 소리가 나고 이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타다다다다 탕탕탕, 연달아 나는 총소리에 묻혀버렸다.
기관총이었다. 레스토랑의 유리창이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여러 발의 총탄이 나무와 벽에 파고들었다, 그릇이 깨지며 튀어 오르고 실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메그는 나를 테이블 아래로 잡아끌었다. 총격은 한바탕 번개처럼 내려치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엔진 소리와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를 내며 포드 트럭이 반대편 거리로 내달렸다. 뒤늦게 총을 꺼내든 몇몇이 단발의 총을 쏘며 쫓아갔지만 그들이 타고 온 포드 트럭은 사거리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쟈니 더 브레인과 럭키 로코 류치아노는 몸을 일으켜 테이블에 앉아 의연한 자세를 취했다.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아수라장속에서 둘은 무언가를 주고받았다.
나는 갱들이 우글거리는 이곳에서 빠져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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