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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과 큐빗
“채은숙씨랑께요!”
최사장의 돌발호명에 옆자리회원과 밀담 나누던 채은숙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 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채은숙은 담임선생님의 눈을 속이며 장난치다 얼결에 대답하는 아이 같았다.
“네!”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한 일인데도, 올인회원들에겐 코미디로 받아들여지는 채은숙의 동문서답이었다.
웃음소리가 무질서하게 터졌다.
최사장의 섹소폰연주에 일시 정지됐던 카페아웃인의 착 갈아 앉은 분위기가 해제됐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 속에서 채은숙은 자신이 어떤 실수한 것이 아닌가 의아했다.
최사장의 지명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긴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떨떨한 채은숙을 가리키며 최사장이 말했다.
“바로 조오 숙녀랑께요.”
채은숙은 깜짝 놀라 최사장의 말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최사장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요, 조숙녀 아니에요.”
최사장은 여자라는 일상적인 말보다 더 정중하게 조오기저기 있는 숙녀라고 말했는데 채은숙은 ‘조숙녀’로 알아들은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름을 조숙녀로 최사장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채은숙처럼 최사장도 채은숙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최사장은 채은숙이 겸손해서 자신이 숙녀가 아니라고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다시말해, 채은숙이 스스로 숙녀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허지만 최사장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사장은 얼른 자신의 프로포즈에 대해 수정했다.
“본인을 필 꽂히게 한 숙녀가 채은숙이란 숙녀가 확실하지만이라. 채은숙씨가 아니라면 아니어라. 나는 괜찮당께요.”
채은숙은 또 최사장의 말을 오해했다. 자신의 이름이 채은숙이 아니라면 아니란 말을 자신의 이름이 채은숙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알아들은 것이다. 서로가 엇갈린 것은 심한 사투리 때문이었다. 채은숙이 황급히 말했다.
“맞는데요?”
“머이요? 맞다고라? 그라몬 본인을 OK하는 거이 맞다요?”
“네 그래요. 채은숙이 확실히 맞아요.”
“흐미. 진짜 맞지라?”
“네 맞아요. 확실해요. 면허증 보여드려요?”
“오메, 맞다요. 좋아하는디 무슨 면허증이 필요하다요? 면허증은 위반했을 때 필요한거시지라.”
최사장과 채은숙의 일문일답을 듣던 올인회원들은 완전 까무라쳤다. 동문서답이 아니라 별문별답이었기 때문에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살다보면 어두를 잘라먹고 어미만 듣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칫 대형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지금, 채은숙과 최사장도 돌발직전이다.
두 사람 사이에 전혀 다른 의미의 말들이 난무한 책임은 채은숙이다.
옆자리회원과 밀담을 나누는 바람에 최사장의 프로포즈를 알아듣지 못해 최사장과 말이 꼬인이게 된 화근의 주범은 채은숙이므로 채은숙은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한다.
허지만 정상 참작의 사유도 있다.
최사장이 심한 고향사투리로 채은숙을 조숙녀로 만들 뻔한 것은 과실에 해당된다.
그러나 인생사 매사는 사필귀정이다.
정도로 가고 옳게 살면 어려움은 있을지라도 결국 바르게 일이 풀리는 법이다.
채은숙과 최사장의 경우도 그렇다.
채은숙은 자신의 이름이 ‘조숙녀’가 아니고 채은숙이 맞다고 연거푸 확인시켰다. 그러나 올인회원들의 웃음소리로 인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더욱 당황해지기만 했다.
회원들이 저렇게 배를 째고 웃는 이유가 뭘까?
채은숙은 번뜻 그 이유를 깨달았다.
회비때문이야!
지난 8월5일이 올인 월 회비 납부하는 날이지만 6일에 입금한 것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올인의 총무인 최사장이 지금 회비 독촉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모두 주5일근무로 인해 파생된 불행이다.
그래서 쑥스러웠다. 그러나 분명히 입금했기 때문에 채은숙은 당당하게, 조급하게 말했다.
“저 이번 달 회비 엊그제 입금했는데요.”
채은숙의 말에 카페아웃인의 웃음소리는 폭풍우처럼 더욱 거세졌다. 인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태를 넘어버렸다.
채은숙은 올인회원들의 웃음소리에 안절부절 못하며 다시는 회비 늦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진짜 창피했다. 그래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사과했다.
“제가 사정이 좀 있었어요. 다시는 안 늦도록할께요. 딱! 한번만 봐주세요.”
기죽은 채은숙의 말에 회원들의 웃음소리는 거의 발광상태가 됐다. 광란이었다. 그 소란 속에서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던 회원이 채은숙을 겨냥하고 소리쳤다.
“절대 봐주면 안돼요! 큐빗사랑의 화살 맞았는데 봐주는 법 없소! 안그렇습니까? 여러분!”
“맞소 맞소!”
“옳소! 옳소!”
반대 의견다수로 카페아웃인은 떠들썩했다.
채은숙은 회비하루 늦게 낸 이유로 올인회원들이 거의 난동수준으로 자신을 야유한다고 생각했다.
채은숙은 회원들의 야유에 시어빠진 파김치가 됐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회비 하루 늦게 냈다고 몰아세우는 회원들이 너무 매몰차서 서운하다 못해 분통이 터졌다. 어떤 인간은 수백억 떼먹어도 끄떡없는데 겨우 몇 만원 회비, 하루 늦었다고 공개적으로 창피 주는 올인회원들과 운영진이 야속해서 눈물이 났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허지만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채은숙은 자신이 가장 약했던 지난 일들을 잠시 떠 올렸다.
채은숙은 힘들고 지칠 때 언제나 절망이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연사한 어머니와 그 충격으로 떠돌다 객사한 아버지.
세상에 남은 단하나의 혈육인 여동생이 이유 없이 석 달간이나 사경을 헤맬 때.
채은숙은 좌절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버리고 여동생을 지켜냈다.
그리고 울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쏟아지는 올인회원들의 야유와 멸시 들이 창피하다고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최사장도 채은숙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지켜봤다.
채은숙은 분통이 터져 입술을 깨물었지만 최사장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질근, 아랫입술 깨무는 채은숙이 최사장에겐 더없이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최사장은 가슴이 아팠다. 채은숙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은 자신의 프로프즈에 단단히 마음 상한 것으로 착각했다.
일방적이었던 자신의 프로포즈가 채은숙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생각하자 최사장은 얼른 사과하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좁쌀만큼도 마음 아프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이 뭐여?
개 같은 팔자에 저토록 아름다운 나으 은숙씨를 넘보는 건 죄악이여.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디, 욕심이 태산이었던거이여.
흐미, 처음부터 본인의 원본이 잘못되었는디 본인에게 사랑 줄 수 없는 거이 당연지사여.
허지만, 나으 은숙씨 없이 본인 마음 허전해서 워찌 산다요?
최사장도 목이 메었다.
그러나 사랑을 위한 길이 채은숙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라고 다짐했다.
모두 최사장의 오해였다.
채은숙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고, 언제나 자신을 감추고 살아야하는 삶이, 고독하고 처절한 외로움이었다. 그 처절함은 가슴에 동공을 만들었고, 뿌리박힌 그 동공을 메우려고 시작한 것이 골프였다.
골프를 시작하고 비로소 잃었던 웃음을 차츰 되찾아 가게 해 준 것은 골프모임 올인이었다.
올인의 더없이 좋은 사람들과 라운드하며 교우한다는 사실에 행복했는데. 몇 푼 안 되는 회비 때문에, 지금 자신을 능멸하는 회원들 속에서 채은숙은 갈등했다.
그 갈등의 끝은 이제 더 이상 올인에 있을 수 없다는 종결로 이어졌다.
아쉽지만, 안타깝지만.
올인과 자신의 인연은 오늘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기어이 솟아 오른 한 방울의 눈물을 삼키지 못했다.
최사장은 채은숙의 눈가에서 빤짝이는 채은숙의 눈물을 보고 가슴이 미어져 터질 것 같았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에게 상처를 준 자신이 너무 괘씸하고 증오스러워 가혹한 처형이라도 받고 싶었다.
최사장은 한순간이라도 빨리 채은숙을 편하게 원위치로 돌려주고 싶었다.
최사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최사장이 사과의 말을 하려는 순간 채은숙도 마음의 정리를 끝내고 당당하게 최사장을 향해 말했다.
“고거이.”
“저는 큐빅인조다이아몬드도 없고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은 없어도 단 한번 약속을 어겨 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회비 하루 늦게 된 것은 은행이 없는 오지에서 일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총무님께서 하루 늦었다고 너무 다구치면 제가 갈 곳이 없네요.”
채은숙의 말을 듣고 최사장이 깜짝 놀랐다.
“흐미! 머이다요? 지곰 머이라했쏘? 회비라했소? 좋한다는디 회비가 머이요? 좋아하는디 회비가 다 있쏘? 그라고 큐빅은 또 머시다요? 큐빅은 가짜 다이아몬든디 고거이 워째 여기서 설친다요? 호메! 이거이 뭔 낭패다요? 워찌 세상이 이리 타락해뿌렀쏘? 하이고 가슴이 폭발할카요!”
최사장의 깊은 탄식에 카페아웃인은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때 큐빗이라고 외쳤던 회원이 일어나 채은숙에게 머리를 숙인 후 정중하게 말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큐빅이 아니고 큐빗 즉 큐피트 였습니다. 제 발음이 나빠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머리 숙여 사과드리겠습니다.”
뒷자리회원의 설명에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그래 두 분이 오해하셨나봐!”
“큐피트는 사랑의 화살인데 큐빅으로 알아 들으셨네?”
“그러게 발음이 나쁘면 살인도 나는 법이야!”
웅성거리는 소리에 최사장은 깊은 혼돈에 빠졌다.
채은숙의 머리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반전했다.
최사장보다 채은숙이 사태를 재빨리 짐작했다.
“그럼 제가 큐피트화살 맞았다는 거에요?”
그 순간 진회장의 말이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에서 울렸다.
“네 채은숙님, 채은숙님께서 큐피트화살 맞았시유.”
머리털 나고 제일 놀란 두 눈을 뜨고 채은숙이 비명을 질렀다.
“네에? 제가요? 누구한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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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발음 잘못으로 웃음거리가 되었군요
잘보았슴니다.
김일수님 주말주일 잘보내셨죠?
오늘도 신나는 날되세요
채은숙이 앞에놓고 그렇게 비웃고 해도 착한 은숙씨군요..
이름이 이쁘잖아요?....ㅋㅋㅋ
허지만 올인회원들이 진짜 비웃은 건 아닙니다
친하면 언제나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죠.
오늘도 고운날 행복하세요
함께한 동료들의 비웃음을 당한채 채은숙 마음이야 말로 바다처럼 넓네요..
최사장 그런 애인 놓치지말고 꼭 프로포즈에 성공하길 바랍니다.
그래야할텐데 글쎼 어떻게 될지 저도 궁금합니다
오늘 아침 젠틀맨님이 보내주신 마지막오디로 간편건강 아침식사 대용했네요..ㅋㅋ
항상 친절하신 젠틀맨님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