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7일 (목)
제목 :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하 4:32-44 찬송가: 197장(구 178장)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중심 단어: 엘리사, 아이, 죽다, 여호와, 기도하다, 눈을 뜨다, 길갈, 흉년, 독, 없어지다
주제별 목록 작성
길갈의 흉년
38절: 흉년이 듦/ 먹을 것이 없어 국으로 끼니를 대신하려 함
39절: 국에 넣을 재료조차 없음
42절: 음식이 턱없이 부족함
43절: 백여 명에 이르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굶주림을 경험함
도움말
1. 들호박(39절): 달걀 모양의 야생 박으로 맛이 쓰고 설사와 복통을 일으킨다.
2. 죽음의 독(40절): ‘죽다, 사라지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죽음, 음부, 염병’이라는 의미로, 히브리인들은 ‘쓴 맛’과 ‘죽음’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말씀묵상
하나님의 선물
길갈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도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앞서 아내에게 빚더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선지자의 제자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왕하 4:1-7), 당시 선지자들의 생활은 형편없었습니다. 엘리사는 지금 굶주린 백여 명의 제자들 앞에서 사환에게 큰 솥을 걸어 국을 끓이도록 명령했습니다(38절). 하지만 당장 국에 넣을 채소조차 없자, 제자 중 한 명이 급히 들에 나가 식물을 구해 왔습니다(39절).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구해 온 식물에는 독성이 있어서 전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40절). 이런 상황 앞에 엘리사의 처방은 간단했습니다. 솥에 가루를 뿌려 독이 없어지게 한 것입니다(41절). 이는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현실적인 선물이었습니다.
계속되는 기적
바알 살리사에서 온 한 사람이 보리떡 스무 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가져왔습니다(42절). 사환은 이것으로 백 명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있었기에 무리가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43-44절). 사환은 앞서 죽은 아이를 살리는 기적까지 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적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능력은 죄와 사망에 거한 자를 생명으로 옮기는 영적인 사건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은 가난과 불임, 배고픔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결과로 채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가난한 자와 굶주린 자들에게 충만한 위로를 베푸십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길갈의 흉년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엘리사는 흉년이 든 길갈 땅에서 어떤 기적을 행했습니까(41-44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변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어제는 라마나욧선교회 9월 소식지를 편집하면서 한마음 기도회 때 받았던 교회들 중심으로 기도제목을 다시 편집해서 올렸다. 들꽃가족들의 기도제목과 작은 교회들의 기도제목을 보면서 우리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중보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죽었던 아이를 살려주신다.
수넴여인을 따라 들어온 엘리사는 문을 닫고 여호와께 기도한다. 그런데 기도만 한 것이 아니다.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자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지만 분명한 것은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 살려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엘리사의 입, 눈, 손, 몸으로 아이가 입이 열리고, 눈이 떠지고, 손을 움직이며 몸이 따뜻하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또 집 안에서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린다.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야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사환에게 이른다.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아무것도 없나이다”“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능력은 엘리야, 엘리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아이의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자 엘리사가 게하시를 부른다.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여인이 오자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그러자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간다. 그런데 왜 다음 대사가 없을까?...
돌아보면 내 안에 이런 간절함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능력 없는 목회자’라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아서 비겁하게 도망친 것은 아닐까?
또 기도해서 치유되고 회복됨으로 ‘능력 있는 목사’라는 말을 듣고 싶어 간절히 기도한 것은 아닐까?
오늘 성도들과 작은 교회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기도 만 할 수밖에 없다!’는 핑계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나의 비겁한 모습을 보며 자책하게 된다. 더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의 마음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엘리사가 길갈에 갔을 때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었다. 흉년, 기근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함께 한다는 것이 좋을 때는 좋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아있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들호박을 따서 국을 끓여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먹다가 소리를 지른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그때 엘리사는 “당장 버려라! 잘못하면 다 죽는다!”라고 하지 않고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솥에 던지고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말한다.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진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먹게 하라!” 맛있게 요리했기 때문에 먹게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먹게 하라는 것이다.
지난달 어느 목사님이 내게 어려운 부탁을 하셨다. 다음 달에 드릴테니 20만원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급하셨으면 나에게 부탁을 하셨을까? 돈이 없어서 누군가 부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잘 알기에 받을 생각 없이 보내드렸다.
어제 목사님께서 문자로 계좌번호를 물어오셨다. ‘선교비로 보내 드린 겁니다!’라는 문자에 ‘고맙다고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답장을 하신다.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감사했고 갚으실 상황이 되었다는 것에 또 감사했다. ‘주님! 이 종에 통장에 넉넉히 채워주세요 그래야 나눌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먹어야 살 수 있기에 독을 제거하고 ‘먹게 하라!’는 말이 오늘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엘리사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드렸다.
‘처음 만든 떡’ 곡식을 처음 수확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첫 열매’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흉년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준비해서 멀리서 엘리사를 찾아 온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가 나눈다.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사환이 보기에도 엘리사 혼자 먹으면 모를까 어떻게 이것을 나눌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지만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나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먹고 남게 하실 것이다 라고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정말 나눴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어찌보면 엘리사의 때와 지금의 때가 비슷하게 아닐까?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마음의 흉년이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 흉년의 때에 엘리사의 능력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일까?
사랑의 주님. 이 종에게 엘리사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 그 마음으로 채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죽음의 자리,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독이 든 국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자리, 귀한 것을 혼자 먹기에는 마음에 걸리지만 함께 나눠 먹기에는 부족한 자리... 주님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하든 살려내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 먹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것을 나누려는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지게 하셔서 이 흉년의 때에도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들꽃공동체, 라마나욧선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qoQx98eS6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