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 윤덕노】
◆<一讀> 건빵과 별사탕

○ 건빵
건빵(hardtack)은 과자일까요? 빵일까요?
마트에 가면
대부분 건빵은 과자코너에 있습니다만,
저자는
건빵이 '마른 빵'이라는 뜻으로
수분을 제거한 장기보관이 가능하며,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식품(빵)이라 정의합니다.
건빵의 뿌리는 비스킷으로,
biscuit의 어원은
두번 요리했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biscocuts입니다.
밀반죽을
두 번 구우면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
서양 빵을 처음 본 것이
1534년
포르투갈 선원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어 빵(pao)을
한자로
파모(波牟)라고 표기했으며,
'화한삼재도회'에서
'파모는 찐빵으로
소가 없는 만두'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나라 군대에 중요한 전투식량이나,
건빵의 원형은
일본이
전쟁에 대비하여 만든
제국주의 군대의 산물입니다.
과거 전투 중에
식사를 하려면 불을 피워야 했고,
이는
위치를 노출시킬 위험이 있음으로
주먹밥을 대신할
군용식량 개발이 절실했습니다.
일본은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일본 막부는
에가와 다로자에몬에게
에도(도쿄)만 주변의 해안경비를 맡겼습니다.
해안방어를 위해
에가와가 주력한 것은
서양 포병술 전문가 다카시마 슈한에게서
서양 포술을 전수받는 것과
전투식량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상하는 주먹밥 대신
휴대하기 쉬운
군용식량을 만들기 위해,
사쿠타로에게서
빵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포병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무사들이 모여들었고,
포병술과 함께 전투식량으로
빵의 편리함을 알고
각지에 퍼지게 됩니다.
일본에
미국 페리 함대가 나타나자,
지역별로
주먹밥을 대신할
특색있는
군용 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각지에서 만들어진 군용빵은
서양의 비스킷(군용 하드태크)와 비슷했습니다.
1868년 보신전쟁과
1877년 세이난 전쟁에서
군용 빵이
전쟁 승패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세이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던
다하라자카 전투는
엄청난 빗속에 치루어졌는데,
이때
17일 동안
사무라이 반군은
폭우로 제때 밥을 먹을 수 없었던 반면
관군은
군용 빵 덕분에 든든하게
전투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전쟁때마다
군용 빵을 개선해 나갔으며,
1894년 청일전쟁 때
건빵에
가까운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일본은 이 전쟁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조사단을 파견하여
유럽 군대의 전투식량을 면밀히 연구했고,
그 결과
독일식 군용식량인
비스킷을 응용한
중소면포(重燒麵包)를 만들었습니다.

이 빵은
러일전쟁에 사용되었으며,
중소는 이중으로 구웠다,
면포는 빵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중소면포는
밀가루로 만들어 계속 먹기 질리고,
물이 필요하고,
쉽게 깨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점도를 높이기 위해
밀가루 이외에
쌀가루와 감자녹말을 섞었고,
맛을 개선하기 위해 깨를 혼합했습니다.
1920년 당분 보충을 위해
건빵에 별사탕이 추가되었습니다.

일본의 만주침략이 시작된 1931년 무렵
수첩 크기였던 대형 건면포는
지금과 같은
소형 건빵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건빵에
별사탕이 함께 포장되기 시작했고,
정식 이름은 건면포지만
민간인들은
건빵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일본 육군은
건빵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밀가루를 주원료로 제조하며
건빵 220g, 별사탕 10g을
무명 헝겊 봉투에 담을 것,
보존기간은 7년으로 하는 등으로,
한국과 일본의 군용 건빵의 기본 골격이 완성됩니다.
저자는
민족 감정을 떠나
건빵 하나를 완성시킨
일본인의 연구 자세는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조선 주둔 일본군에
건빵이
지급된 기록은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중에도
건빵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주로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건빵이 대량 생산된 것은
한국전쟁 후반기로 추정되며,
동립산업이
일제가 남긴 적산인
모리나가 제과의 건빵 공장을 불하받아
건빵과 설탕 등의 식료품을 생산했고,
전군에 독점납품했습니다.

하지만 동립산업은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가 드러나면서,
1962년 국유화되었습니다.
○ 별사탕
앞서 설명과 같이
건빵에
별사탕을 처음 넣은 것은 일본입니다.
하지만 별사탕은
포르투갈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 것입니다.
별사탕의 뿌리는
포르투갈의
'콘페이토 (confeito)'라는 사탕입니다.

별사탕이
일본에 처음 전해진 것은
1569년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를 통해서 였고,
오다 노부나가에게 준 선물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인은
별사탕 맛에 빠졌지만,
설탕이 구할 수 없어 귀했으며
제조 기술도
특급 비밀에 속했습니다.
100% 설탕으로 만든 별사탕은
극소수 귀족의 전유물로,
18세기 별사탕은
다이묘들이
쇼군에게 보내는 공물이었으며
차를 마실 때 함께 먹는
최고의 사치품이었습니다.
1920년대 별사탕이
군용 건빵에 넣기 시작했는데,
별사탕에
알록달록한 색을 넣었습니다.
색소를 넣은 것은
만주와
시베리아 눈에 지친 병사들이
별사탕을
얼음조각으로 인식하여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별사탕에 색을 입힘으로써
병사들은
전쟁터의 긴장감에서 해소되는
효과도 생겼습니다.
저자는
건빵에 별사탕을 넣기 시작한 시기가
일본의 중국 침략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합니다.

군용 건빵에 별사탕이 들어간
1931년 일본이
만주국을 설립한 시기고,
건빵에
별사탕 10g 넣는다고 규정한 1938년은
일본의 중국 침략이 시작된 때입니다.
왜 건빵과 별사탕을 같이 먹을까요?
첫째 이유는 수분 공급입니다.
단맛이 나는 별사탕이
침샘을 계속 자극하여,
밀가루로 만든
건빵을 먹으면서도
물을 급히 찾지 않아도 됩니다.
서양의 비스킷은
수프와 함께 먹는 것이 원칙입니다만,
일본군은 물이 없어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별사탕을 넣은 것입니다.
둘째
별사탕은 순수한 설탕의 결정체로,
당분이
체내로 바로 흡수되기 때문에
어느 식품보다도
체내에서
빨리 열량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셋째
높은 온도에서 구운
순수 설탕 결정체이기에
잦은 날씨 변화에도
쉽게 변질되지 않습니다.
넷째
부자들만 먹고
일왕의 하사품으로 쓰이던 별사탕은
병사들에게
사기를 높여 주었습니다.
별사탕 제조의 핵심은
설탕의 확보였습니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면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일본은
타이완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확대하였습니다.

1939년
이미 일본의 설탕 소비량은
현재와 비슷한 1인당 16g에 달합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오키나와 밭은
모두
사탕수수 재배지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설탕값이 폭락하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대량으로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열대 관상수인 소철밖에 없어
'소철 지옥' 이라는불상사가 일어납니다.
|
첫댓글 건빵 별사탕에 대해 잘 보고 배워갑니다 건빵은 정말 좋은 군용 식이지요 나도 6.25 전쟁에 참전 건빵을 비상식량으로 갖고다니며 먹든 생각이 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