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집 [권기만]
섶섬이 보이는 돌담집에 가면
어른도 벌거벗고 아이가 됩니다
파도는 이중섭이 즐겨쓰는 붓
파도 끝에서 허공으로 몸 뒤집는 그의 붓은
은종이에 엎질러진 바다의 내면
거기에 갇힌 건 그가 처음입니다
벌거벗은 아이가 모래판에서 해와 씨름을 하면
섶섬이 울룩불룩한 파도를 황소처럼 몰고 와 응원합니다
그림자가 돌담에 쌓여 파도가 높아지면
집게발에 잡힌 그리움이 파도 끝에서
해 질 때까지 해 질 때까지 물눈물 피웁니다
그가 마련한 집은
코딱지만한 은박지가 고작이지만
바다는 한 번도 좁다 한 적 없습니다
아직 다 그리지 못한 코흘리개 눈빛
오종종한 은박지에 맡겨놓고
유채만 저 멀리서 손 흔들고 있습니다
섶섬이 보이는 낮은 돌담집에 가면
수만 페이지의 파도를 넘기다
크레용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노을
아이들 얼굴에 덧칠하느라 홀딱 벗은 사내
어쩌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발 달린 벌, 문학동네, 2015
* 그림에 대한 취향은 다 틀리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두 화가가 최고다.
우열을 가리기 어렵겠지만 박수근과 이중섭이다.
두 분 다 가난과 궁핍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살았고 한국의 대표화가임이 분명하다.
생존한 화가는 그래도 명성과 부를 조금은 누렸겠지만 두 화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화가 이중섭은 내가 태어나기 오년 전에 별세하였고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이중섭의 부인은 올해 팔월에 별세하였다.
1921년에 태어나 2022년에 별세하였으니 101세로 나와는 60여 년을 동시대인으로 살았다.
화가 이중섭이 일찍 별세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그림, 더 많은 가족 사랑이 있었을 텐데
많이 안타깝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이다. 내년 4월까지 전시한다고 하니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로봇이 그림을 설명해 주는데 딱히 좋은 건 아니다.)
이중섭화가가 우리나라 화가라는 게 자랑스럽다.
첫댓글 이중섭....
그림에는 사랑과 즐거움이 넘쳐나지만
이름에서는 늘 슬픈 냄새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