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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게시글
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詩 앞에서 외 / 황동섭
동산 추천 0 조회 53 15.07.13 21:3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詩 앞에서 / 황동섭

 

 

울면서 내게서 돌아섰다

어려운 말은 하지 말자고,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비가 온다

우산을 받쳤으나

가랑이가, 종내는 어깨까지 다 젖는다

기다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멈짓 멈짓

벌써 나는 그의 뒤에 서 있다

 

 

 

 

 

 

의자 / 황동섭

 

 

날개가 없으므로 비상을 꿈꾼다
엉덩이의 체감으로 이해하려는 나를
너는 무거운 사상으로 짓누른다

 

가면을 쓴 무의식이 네 개의 발 중
어느 하나라도 부러뜨릴 용기가 없다
고독 속에 불안하게 앉아서 소유만을 믿고 싶은가?
존재란 말하지 않음으로 빛나는 것
절제는 권력의 위엄을 높여준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절룩거리며 뒤를 따르는 너의 입과 눈으로
욕망은 부드럽게 소화된다

 

나는 정중동(靜中動), 편견은 다리를 마비시킨다
낡음과 불구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

 

 

 

 

면벽(面壁) / 황동섭

 

   그는 무릇 나체의 사상이란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은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이것이 그의
   입버릇이 되었다  - '황금의 환상', 다무라 류이지

 

 

벽과 벽 속엔 늘 사람이 들어 있고
유골의 잔해 속엔 수없는 벽이 녹아 있다
천 년을 넘어서야 과묵한 벽은

 

기울듯 고개를 끄덕인다
모서리와 시간의 개입이 없다면, 벽은

 

신과 소통을 위한 냉철한 문이며 성전이다
벽은 벽을 끌어내리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벽을 쌓아 못을 박고 갈라진 벽은 사람을 가둔다

 

한철을 겨우 넘긴 화해, 담쟁이를 내세우는 게 아니었다
입이며 눈이며 귀인 그를 벽으로만 보는 편견이 위험하다

 

벽은 벽의 의미에 가득 차서 벽을 낳는다
아름다운 것이 벽을 죽인다는 말은 낭설일 뿐이다

 

어서 벽 속으로 들어가라 

 

 

 

 

*******************************************

 

시인의 말

 

비 오는 날은 소주 한 잔이 예의가 아닐까?

비가 온다

건너편 다이소 가게의 점원들도 오도카니 서 있다

너무 밝은 조명이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짙은 녹색의 가로수 은행나무가 우산 쓴 행인들에게

길을 비켜준다

나는 어쩌다 토요일 오후  3시가 넘어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이 넓은 세상에서 하필

내 눈앞에 떨어져 흐르는가

작은 여유를 갖고 싶었던 걸까, 내 심사를 알아서

어떤 끌림이 있었을까

간이역을 내려서 누군가를 만나러 온 길인가

독주 한 잔 만큼으로 내 입으로 들어와 주면 안 될까

게으른 당신의 시계에서 건들거리는 바늘처럼

거리를 걸어볼까

노랗거나 빨갛거나 하나의 우산을 당신의 손과

마주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어저께 이웃한 노인 요양기관에서 실려나간 침대

하나는 지금쯤 어디에 놓여 있을까

그의 온기는 언제까지 기억될 수 있을까

빠른 속도로 흐르는 먹구름은 무슨 바쁜 일이 생겼을까

사이렌 울리며 달려갔던 소방차는 이제 그 불씨를

다 재웠을까

배현정 뼈다귀 해장국집엔 가끔은 배현정이 오지 않을까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을 이유 없는 슬픔이라 하자

자동차 바퀴만한 뿔테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가수 조영남의 허풍이 부럽다

그런 그도 지기와 이별을 한 아픔이 있다

사랑과 증오와 배반은 어떤 함수의 색깔일까

대각선 저쪽의 치과병원엔 어느 노파가 틀어진 금니를

수리하고 있을까

옆 사람이 피우는 담배 연기와 냄새는 나를 거쳐

어디로 가는 걸까

말은 하지 않고 생각을 하라는, 오늘 운세의 말씀은

지당하건만 실천하지 못했다

나를 감싸는 우울이 우산을 거두라고 한다

정말로 비를 사랑한다면,

안녕!     

 

/ 황동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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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7.15 13:52

    첫댓글 감사히 모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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