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명장이라는 호칭을 듣는 기존 감독들 중에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은 김응용, 김영덕, 김인식 감독... 굳이 우승이라는 조건을 배제하면 김성근 감독도 당연히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이들 중에서 누가 가장 뛰어나냐는 질문에는 100% 공감이 있을 수 없겠지만, 이들에게 공통된 것이 뭐냐는 것에는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맡고 있는 팀에 맞는 야구를 펼친다는 것이다.
팀에 맞는 야구라... 말은 쉬워보이지만 실제로 적용되기 어렵다. 굳이 예를 들자면 사실 04-06년의 이순철 감독의 실패는 본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야구를 선수들이 못 펼쳐줬기 때문이다라는 변명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쁘게 말하면 선수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이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위에 언급된 감독들은 김성근 감독을 제외하면 기존의 스타 선수복도 있었지만, 신예들을 키워내어 팀의 플러스 알파로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전력 이상의 성적을 얻어냈다. 김응용 감독이 해태 타이거스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김영덕 감독이 빙그레 이글스를 강팀으로 성장시킨 것, 김인식 감독이 두산 베어스를 신구조화와 세대교체를 매년 진행하면서도 96시즌을 제외하고는 처참한 실패를 겪지 않게 했던 것, 김재박 감독이 다양한 조건 하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우승으로 이끈 것 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뚜렷한 실적이다.
반면 이순철 전 감독이 엘지에서 수모를 겪으며 남긴 것은 08년도 드래프트 2차지명권이 첫번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의 재위기간에 그가 얻었던 유망주들은 뚜렷이 성장한 경우가 없었고, 그나마 베스트 라인업에 들은 이들도 국내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신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한 명 건질 수 있었던 이용규도 기아로 보내버렸다. 이는 자신이 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팀을 자신에 맞추려고 하는 감독은 선수운이 따르지 않을 경우(강병철옹처럼 아주 운이 좋은 경우 제외) 어떤 실패를 겪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 엘지는 이광은감독이라는 또하나의 구제불능의 사령탑을 가졌던 전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 역시 단기에 물러나서 그렇지 기존의 천보성 감독이 이어오고 있던 자율야구의 장점을 짓밟고, 악순환에 빠뜨렸다는 점에서는 팀역사상 최악의 감독(이순철감독보다 더 심한...)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 분에게 3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롯데의 수모가 우리 것이 될 수도 있었다고까지 생각한다. 나는 김동수를 잡지도 못하고, 노송을 그렇게 무참히 떠나보냄으로써 팀케미스트리를 완전히 망가뜨린 그에 대해서는 팬들이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 것에 오히려 가끔 이순철 감독에 약간의 동정을 느낄 때도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실패는 차지하고 핵심으로 들어가보자. 김재박 감독의 야구는 어떤 것일까? 그냥 일개 팬의 입장에서 볼 때에 한 마디로 '이기는' 야구다. 물론 감독 중 누가 이기기를 바라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있다면 앞에다 '어떻게 해서든'이라는 말을 추가하겠다. 김재박 감독이 현대에서 보여준 야구의 큰흐름은 이기기 위한 작전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팀에 맞추어서 이기기 위한 방법을 바꿔왔다는 점에서 우리 엘지의 앞에서 언급한 두 명의 이 감독들과는 차이가 있다.
초창기 현대의 자금력은 무척 좋았다. 당시 그들은 지금의 삼성 이상으로 저돌적으로 우승을 향해 매진한 팀이었다. 아마야구 대어들을 싹쓸이했고, 그들을 바탕으로 트레이드(전준호, 박재홍 영입)와 현금을 통한 스카우트(박경완, 조규제, 마일영 영입)를 통해 팀의 구멍들을 메워나갔다. 그러나 이들이 더욱 무서운 점은 자금 사정이 나빠진 이후에 있다. 핵심 선수들을 팔면서도, 외국인 선수 영입의 성공(쿨바부터 시작해서...)퍼레이드와 신인투수 지명 성공(조용준, 이동학,오재영 등), 기존 선수의 업그레이드(권준헌, 황두성, 이상렬, 강귀태, 이택근 등)를 통해 전력을 유지해 나갔고 팀구성원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오직 승리만을 위해 매시즌, 아니 매경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쌍방울처럼 무참히 무너지지 않았고(최소한 아직까지는), 팬층이 얇아서 그렇지 과거 배구의 고려증권의 마지막 전성기를 방불케 할 만큼 헝그리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멋진 프로팀이다. 이런 그들에게 96년의 해태를 제외하고는 엘지, 두산, 에스케이, 삼성 등이 한국시리즈에서 차례로 무릎꿇었고, 80%의 시리즈 승률은 해태를 제외하고는 현재 최고의 성적이다. 이런 팀을 이루어내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그 제일의 공로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김재박감독이 이제 우리팀의 수장이 되었다.(내년에 엘지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새옹지마'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럼 현재 우리팀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10년프랜차이즈 스타는 자유계약 선수가 됨과 동시에 팀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투수진은 에이스는 고사하고,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얻은 선수도 없으며, 선발과 중간, 마무리 어느 한 쪽에서도 4위권에 들어갈 전력으로 아무도 봐주지 않고,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공격은 1번타자의 부재로 부터 시작되어 빠른 호흡의 공격템포와 부적절한 선구안 등과 맞물려 과거의 찬스에 강했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수비는 평균적인 수준은 된다고 볼 수 있지만, 키스톤 콤비, 핫코너, 1루수 그 어느 자리에도 팀을 리드할 수 있는 핵심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 나마 외야 수비가 낫다고 하지만, 외야수가 수비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자주 온다는 것 자체가 팀전력이 약체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신인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고...
김재박 감독이 맡게 될 트윈스의 모습을 나쁘게 표현하자면, 위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년 성적을 생각할 때 명심해야 할 점은 김재박 감독은 적장으로서의 현재 엘지의 전력에 대해 어느 정도 객관화된 시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시'라고 불리는 그가 팀을 맡겠다고 나선 이유는 단지 감독으로서의 최고 대우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나친 비관 역시 금물이라고 본다.
현재로서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유망주들의 분발이나 신인대박과 같은 일종의 도박성 기원말고는 우리팀이 갖고있는 전력은 그만큼 타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이다. 이런 상태에서 김재박 감독이 취할 라인업은 수비와 주루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다행히 약화된 투수력은 볼넷을 남발하는 악습만 시정된다면, 잠실이라는 구장효과로 어느 정도 단기간의 상쇄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공격력의 약화는 단기간에 시정되기에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병규라는 팀의 간판이 빠져나간다 그리고 뚜렷한 신진급 선수의 수혈도 없다는 최악의 가정 하에서 생각하면, 주어진 찬스에서는 한 점이라도 더욱 확실히 빼내기 위해서 야수들에게는 센스있는 주루 플레이와 작전소화능력, 팀플레이가 요구될 것이다. 또한 야수들은 자신이 들어서는 타순과 상황에 따른 판단에 따라 역할을 인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생각하는 야구를 하게 되기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수비에서도 현재 박진만이 보여주고 있는 생각하고 미리 움직이는 핵심을 얻어내기 위해 김재박 감독이 야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내야수들의 옥석고르기가 더욱 박차가 가해질 것이다. 선수들이 감독이 요구하는 것들을 완전히 익히는 데에는 올 한해의 동계훈련만으로는 택도 없을 것이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가능성을 보이는 선수들로 김감독은 라인업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할 때 내년 라인업은 아직 김재박 감독의 머릿속에서 짜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본인은 추정한다. 아마 현대에서 발언했던 대로 "확실한 주전은 아무도 없다" 정도가 내년 시범경기가 마무리되어가기 전에 기대되는 멘트일 것이다. 굳이 예상하라면 박용택 선수 정도가 고정 라인업... 이성렬의 성장이나 타포수 영입이 없을 경우 7-8 타순에 배치될 조인성 선수 정도가 머리에 떠오를 뿐 야수 중에서는 확실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투수진 역시 부상이 없다는 가정 하에 봉중근, 이승호, 정재복, 심수창, 우규민, 최원호, 김기표 정도의 선수를 제외하고는 1,2군의 경계선에 있던가, 트레이드카드로 쓰일 가능성을 누구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도 내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용병선발과 관리에 있어서의 새 코칭스테프의 능력 혹은 현대시절 슬쩍(?) 해왔을 후보리스트에서 뽑힐 용병들의 플러스 알파의 전력 기여도에
있다. 또 팀의 구멍을 메워온 현대에서의 수완이 우리 팀에서도 발휘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봉중근 선수를 위시한 신인들과 수 년째 노래불러온 유망주들의 성장이라
는 숙원이 이뤄지기를 조용히 빌 뿐이다. 최소한 말 그대로의 팀리빌딩을 위한 첫시즌이라는 점에서 본인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3년 안에 우승하겠다."라고 김재박 감독
은 말했다. 3년이다. 1년이 아니다. 90년우승 이후91년과 92년 잠수기간이 있었고, 93년의 플레이오프에서의 간발의 아쉬움을 거쳐 94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 때의 전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행복한 20세기말을 보낼 수 있었다. 아무리 내년이 좋지 않더라도 3년째에는 우승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우승이 아니라도 좋다. 다만 "우승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설레임을 갖고 팬들이 시즌을 기다릴 수 있는 트윈스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기어다니기 시작해서 일어나고, 걷고 뛰게 되는 아기의 성장과정처럼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넘어지게 될 우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 시간 나는 대로 야구장을 찾아 조용히 응원하고자 한다.
첫댓글 너무 너무 좋은글입니다...^^
진정한 트윈스이 팬이시군요^^
좋은글 감사해요~~^^* 글 쓰신다거 고생하셨네요~
그나마 이광은감독이 욕을 덜먹는건 그래도 선수시절에 엘지에 공헌한 바가 크기 때문이겠죠..
옛날 생각나.. ㅜ_ㅜ 이광은 감독님 시절은 아쉽지만... 이순철이 싫어
오~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멋진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