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더니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장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사월
봄 마당에 누가 소풍 왔나?
나요, 나! 할미꽃은 털조끼를 입고
나도! 바람은 햇빛 아래로 옮겨 앉아
나요, 나! 노랑나비는 낙하산 메고
늦게 왔어도 다 왔어
작년 소풍 날 옹기종기 모여
햇살 도시락 나눠 먹은 친구들
빠지지 않고 다시 모였어
사월, 너만 오면 돼
[2023년 아르코문학발표지원작]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양평에서 자랐다. 2000년 『아동문학평론』에 동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는 동시집 『꼬리를 내게 줘』, 『안 괜찮아, 야옹』, 『아빠를 딱 하루만』, 『아기 까치의 우산』 등이 있고, 동시 그림책 『꽃마중』이 있으며, 그림책으로는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분홍 토끼의 추석』, 『귀신 단단이의 동지 팥죽』, 『돌로 지은 절 석굴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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