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스탐, 오초아 떠나고 박세리 부진한데도 여전히 건재
세계 여자 골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를 꼽는다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72승을 거둔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44·스웨덴)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꾸준한 성적을 내며 ‘롱런’하는 선수를 꼽는다면 단연 캐리 웹(호주)이 될 것이다. 39세였던 지난해 웹은 미국과 유럽, 호주 투어에서 트로피를 3차례 들어올렸고 40세가 된 올해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벌써 2승을 보태 통산 41승(LPGA 투어 역대 최다승 랭킹 10위)을 달성했다. 현역 여자 골퍼 중 최다승 기록을 매년 새롭게 쓰고 있다.
소렌스탐·오초아 떠나고, 박세리 부진에 허덕이는 동안… 캐리 웹 오히려 상승세
캐리 웹은 1990년대 소렌스탐, 박세리(36)와 함께 경쟁했던 여자 골프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다. 소렌스탐은 2008년 은퇴했고 박세리는 2010년 25번째 우승 이후론 LPGA 투어에서 우승을 추가하지 못했다. 새로운 ‘여제’로 군림했던 로레나 오초아(32·멕시코)도 골프를 떠났고 청야니(24·대만)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수많은 스타들이 뜨고 지는 가운데 웹은 2014년 현재 세계 랭킹 6위에서 5위로 올라서는 등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다. 통산 상금 1868만7695달러(약 200억원)를 쌓아 역대 2위인 그는 소렌스탐의 1위 자리(2257만3192달러·약 242억원)도 넘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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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연못에 뛰어드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캐리 웹.
지난해 LPGA 투어 숍라이트 클래식 우승 당시 선두에 5타 뒤진 채 4라운드를 출발해 2013시즌 최다 타수 차 역전 우승 기록을 세웠다. 올해도 호주여자오픈에서 5타 차, 파운더스컵에서 6타 차이를 마지막 날 뒤집어 같은 기록을 세웠다. 젊은 선수들이 흔들릴 때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는 ‘베테랑의 힘’이다. 프로 전향 21년차인 웹은 현재 메인 스폰서가 없어 호주를 상징하는 캥거루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우승의 기쁨이 바래지지도 않지만 우승하기가 쉬워지지도 않는다”는 명언도 남겼다.“나는 은퇴해도 지금까지 이룬 업적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젊고 내 안에 연료가 많이 남아있다”“나는 단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우승할 수 있다는 느낌 없이는 대회에 나서지 않는다”젊은 시절 웹은 ‘초년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1974년생인 그는 20세였던 1994년 프로 전향해 1995년 유럽 투어 신인상을 차지했다. 이듬해 미국 투어에 진출해 두 번째로 출전한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데뷔 첫 해에 4승을 거두며 상금왕과 신인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1997년 3승, 1998년 2승을 거둔 그는 1999년 6승, 2000년 7승을 올리며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2년 연속 차지했다. 2001년엔 커리어 그랜드슬램(여러 해에 걸쳐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 최연소 달성 기록을 세웠다. 26세였던 2000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자격 조건을 이미 다 갖췄으나 LPGA 투어에서 10시즌 이상 뛰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5년을 더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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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현(왼쪽부터)과 캐리 웹, 박세리가 1999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각각 자신의 LPGA 투어 신인상 트로피, 올해의 선수상 트로피, LPGA 투어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세 선수는 같은 시기에 LPGA 투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웹은 ‘한때 성공했던 선수’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갔다. 2002년에 들어서면서 우승 행진은 한풀 꺾였지만 깊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없었다. 2002년 2승, 2003·2004년 각 1승을 거둔 그는 2006년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5승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 2009년 1승, 2011년 2승, 2013년 1승을 이어왔다. 우승이 없었던 2005·2007·2008·2010·2012년에도 2010년(공동 4위)을 제외하고는 최고 성적이 준우승이었다.웹은 “나는 당장 은퇴해도 지금까지 이룬 업적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젊고 내 안에 연료가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단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내가 우승할 수 있다는 느낌 없이는 대회에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탄탄하고 부드러운 몸 만들기웹이 ‘초년 성공’의 모델에서 ‘롱런’의 모델로 연착륙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웹은 “이 나이에도 우승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스트레칭과 웨이트 트레이닝”이라고 밝혔다. 웹의 스윙 코치인 이안 트릭스(호주)는 “웹은 지난 몇 년 동안 근육의 밸런스를 맞추는 훈련을 열심히 해왔다”며 “몸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발달시켜 좋은 스윙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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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당시 22세의 캐리 웹. 웹은 그 해 이 대회를 포함해 4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웹은 과거 전성기 때는 체력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25세가 되면서 스트레칭을 처음 시작했고 최근에는 필라테스에 푹 빠졌다. 웹은 “내가 젊었을 땐 골프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이 별로 강조되지 않았고 샷을 하기 전 허리를 몇 차례 돌리는 것이 스트레칭의 전부였다”며 “하지만 요즘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골프의 한 부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 때마다 물리치료사를 동반한다는 웹은 “내 인생에서 요즘처럼 몸매를 탄탄하게 가꾼 적이 없다”며 “이 나이에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부상을 피하려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웨이트 트레이닝을 늘리기 위해서는 골프 훈련 시간을 어느 정도 줄여야 했는데 이것이 웹에게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웹은 “예전에는 샷 훈련을 많이 하면 그 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이제 훈련의 종류가 달라졌고 골프 연습장에 오랫동안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15년 동안 함께 훈련해온 트레이너 크리스 바나(미국)가 웹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량을 조금씩 늘려갔다. 4년 전부터는 필라테스를 추가했는데 “무척 재미있어서 강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웹은 말한다.내 안의 ‘괴물’과 이별하기체력 단련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의 단련’이었다. 웹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경쟁심이 매우 강했던 한편으로 부정적인 사고에 끊임없이 시달려 왔다며 “내 안에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한동안 우승이 없던 시절엔 “경기 도중 기차가 두 귀 사이를 통과하는 것처럼 머릿속이 시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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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광인 캐리 웹은 대회가 없는 겨울 동안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취미다. LPGA 투어 홈페이지
완벽주의자인 웹은 스스로 매우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자신이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쉽게 좌절했다. 모든 기술과 조건이 100% 완벽할 때에만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넌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야’라고 말하며 심하게 자책했다고 한다. 2005년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연설에서 “골프의 매력은 하루는 사랑스럽고 하루는 증오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스에서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든지 나는 다시 일어나서 도전할 것이다. 완벽에 결코 이를 수 없다고 해도, 이것이 내가 완벽에 가까워지는 나만의 방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웹은 안드레 애거시(테니스), 이안 소프(수영) 등 스포츠 스타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심리 코치와 함께 긍정적인 멘탈을 갖는 훈련을 했다. 스윙 교정보다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 훨씬 더 어려웠고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웹은 “이제는 몇 번 우승했는지, 세계 랭킹 몇 위에 올랐는지보다 나 자신에게 우승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었는지로 스스로를 평가한다”며 “젊은 선수들을 따라잡으면서 우승 경쟁에 뛰어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회에서 ‘톱10’에 들어도 전에는 왜 우승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에게 화를 냈지만 지금은 좋은 플레이를 한 것에 대해 감사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웹은 “젊은 시절 나는 우승하고 나서도 그 결과를 즐기지 못한 채 곧바로 다음 우승을 향해 도전했다”며 “그런 식으로는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나가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경기 도중에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공을 홀에 넣을 방법만 찾는다면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때때로 샷이 좀 흔들려도 이제는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고 말했다.강풍이 불거나 햇볕이 내리쬐는 등 어려운 조건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쉽고 편한 코스에서는 ‘상황이 좋으니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좀더 완벽해지려고 애쓰게 된다”며 “힘든 상황에선 기술적인 생각을 덜 하게 되고 머리를 비울 수 있기 때문에 집중이 더 잘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웹은 “내 문제점 중 하나는 스스로 지나치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스트레스 받을 만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엔 경기하면서 만족하거나 즐거운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웃는 일이 드물었다”며 “계속 그런 식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면 괴로워서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골프 밖의 삶’ 100배 즐기기시즌 중엔 골프에 모든 것을 쏟아붓지만 시즌이 끝나면 골프를 완전히 떠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만의 롱런 비결 중 하나다. 웹은 주로 시즌 초반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경향이 있다. 대회가 없는 겨울 동안 부모, 자매 등 가족과 함께 취미를 즐기며 스스로 생기를 되찾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낚시광인 웹은 틈만 나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황새치, 백새치같은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온다. 휴대폰 배경 화면엔 늘 커다란 물고기 사진이 담겨 있다고 한다. 웹은 “물고기와 씨름하면서 인내심과 강인함, 불굴의 의지를 배운다”고 했다. 매년 휴식기에 바다에서 몇 달씩을 보내고 새로운 시즌을 맞아 코스로 돌아오면 보기를 하거나 버디를 놓치는 실수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기분이 새로워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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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광 캐리 웹이 잡아올린 물고기. LPGA 투어 홈페이지
웹은 “15년 전이라면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라며 “다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이제는 그것을 위해 죽고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내 골프를 즐기고 있지만 이제는 골프장 안에서의 일을 골프장 밖으로 갖고 나오지 않는다”며 “골프 성적과 나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분리하고 골프 이외의 삶을 충분히 즐기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새로운 목표최근 웹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골프가 112년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호주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많은 것들을 이루고 나니 삶을 바꿀 만한 새 목표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며 “최근 몇 년 동안은 대회에 나가 첫 티샷을 할 때도 스스로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웹은 2010년 골프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고향인 호주로 건너가 시드니 올림픽 개막 전날 성화 봉송을 했다. 그날의 추억을 ‘골프가 내게 허락해준 가장 멋진 기회’라고 설명할 만큼 올림픽 무대를 동경해왔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뛸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실제로 주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앞으로 2년 뒤, 42세가 될 때까지 스스로 최고의 기량을 유지해 나갈 이유가 생긴 것이다.웹은 “내가 계속해서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당근’이 생겼다”며 “올림픽 출전은 현재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장기적인 목표”라고 했다. 그는 “올림픽에서 샷을 단 한 번만 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 기회를 잡고 싶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