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855〉
■ 2월 (오세영, 1942~)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 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 1992년 시집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시와 시학사)
*2025년도 벌써 2월 초순. 세월의 빠름은 물이 아니라 화살과 같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고 있군요.
2월이 되면 우리는 춥고 답답하던 겨울을 지겨워하며 예쁜 꽃이 피어나는 봄에 대한 기대가 커집니다. 그런데 입춘(立春)이라는 절기가 지났어도 눈이 내리고 한겨울보다 더욱 추운 요즘입니다. 지금 같아선 꽃망울을 물던 매화가 화들짝 놀라서 쏙 들어갈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오늘 아침에는 하얀 눈이 또, 펑펑 내리며 쌓이고 있습니다.
이 詩는 2월에는 성급하게 봄을 기대하는 우리의 바램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매년 2월 하순이 되면 실제로 이 詩처럼,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매화가지에 꽃순이 올라오고 있으며, 외투를 입고 외출하기가 애매한 시기인 건 분명할 것입니다. 또 맑은 햇살이 비치면 곧 봄인 듯하다가 진눈깨비가 들이치는 등 변화불측한 계절이다 보니, 시인이 눈으로 보이는 현상은 본질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이 詩 첫째 연에서 지적한 대로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라는 말이, 노년에 접어든 우리 세대에게는 시리게 가슴에 와닿는 오늘이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