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856〉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 1922~2004)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잡히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다뉴브강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 1959년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춘조사)
*오늘도 엄동설한의 날씨입니다. 강추위 때문에 어제 내려 쌓인 눈들이 거의 녹지 않고 주변 산야를 하얗게 덮고 있어, 더욱 추워 보이는 2월 초순이군요.
다음 주 대보름이 지나고 이번 추위가 풀리면 더 이상 큰 추위가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농촌에서는 이번의 추위가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눈도 많았고 나름의 강추위도 왔으므로, 농작물이나 화훼에 악영향을 미치는 각종 벌레나 해충이 크게 줄지 않을까 기대되는 이유라고 할까요?
겨울과 관련된 詩 작품을 고르다 보니 오늘은, 예전에 실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우리가 고등학교시절 배웠던 이 詩가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잘 어울릴 듯 생각되더군요.
이 詩는 이념 대결이 최고점에 이르렀던 시절인 1956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소련의 위성국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났던 반공 ․ 반정부 투쟁인 헝가리사태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물론 시인이 현장에 가서 본 적은 없겠지만 당시 상황을 상상하면서 죽어가는 한 소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긴장감 높고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하겠습니다.
시인은 탱크를 앞세운 소련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던 이 사건을 글로서 고발하면서, 다뉴브강을 한강으로 헝가리의 불행을 한국의 불행으로 연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詩를 통해 헝가리사태라는 국제적인 비극과 6.25와 남북 분단이라는 우리의 비극을 일체화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반공(反共)과 자유 수호라는 가치를 강조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이런 이유로 70,80년대 반공을 강조하던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춰 그 당시 교과서에 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편향성을 차치하고서 현재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봐도, 이 詩 가 작품성이 뛰어난 점은 분명해 보이는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