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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참가목적(參加目的)
1
살성(煞星)
그 사나이는 오후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불쑥
나타났다. 그런 다음 술을 한 병 시켜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별 이상한 놈 다 보겠군.'
우칠(于七)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사나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통강집(通江集).
이곳은 장강을 사이에 두고 금릉을 마주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평상시라면 이곳은 금릉을 가기
위해 장강을 건너려는 사람들로 제법 붐비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 금릉에서 무림대회가 개최된 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금릉으로 갔기 때문에 통강집은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우칠도 무림대회를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나 빌어먹을 장방(帳房)이 그에게 가게를
맡기고는 자기 혼자만 낼름 금릉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혼자 주루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주루라고 해봐야 겨우 탁자 너덧 개만 있고
의자도 다 합쳐서 스무 개 남짓 하는 조그만
곳이었다. 게다가 요 며칠 사이에는 손님이라고는
그야말로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적어서 그도 아예
문을 닫고 무림대회나 구경하러 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낯선 사나이는 무림대회에는 관심도 없는
지 벌써 몇 시진째 구석 자리에 말없이 앉아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그 사나이의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나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본 우칠은 그가 몹시
건장한 체구의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허름한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를 대충
아무렇게나 뒤로 묶어 길다란 머리 꼬리가 허리
부근까지 내려와 있었다. 뒤에서 본 목덜미와 등의
근육은 우칠이 보기에도 부러울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었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그 자의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칼인데 녹이 잔뜩 슬어 있어 그것으로는 무라도
자르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칼집마저 없어 그
녹이 슨 도신이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 보였다.
'저 자도 무림인일까?'
우칠은 궁금하여 그에게 물어 보려 했으나 왠지 그
자의 곁에만 가면 가슴이 섬뜩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날은 저물어 하늘에는 붉은 황혼이 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지자 씻은 듯이 푸르기만
했던 하늘은 황홀하리 만치 붉게 물들어졌다.
그때 갑자기 말없이 앉아 있던 흑의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칠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덩달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흑의사내는 탁자 위에 은화 두 냥을 올려놓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고가장(古家莊)은 어디에 있느냐?"
그 음성을 듣자 우칠은 절로 가슴이 떨려 왔다.
그 음성은 한 점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아주
무감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칠은 겁먹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더듬거렸다.
"저...... 고...... 고가장으로 가시려면......
밖으로 나가셔서 오른쪽 길로 쭉 올라가시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흑의사내는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곧 그의 몸은 떨어지는 석양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멀어져 갔다.
그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서야 우칠은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우......."
우칠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별 이상한 놈을 다
보겠다고 생각했다.
하나 그는 자신이 방금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살성(煞星)을 만났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할 것이다.
고가장은 통강집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쯤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고가장의 장주는 고검령(古劍嶺)이란 인물인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세한 내력을 알지 못했다.
단지 주위 사람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십여 년
전에 이곳에 와서 고가장을 차렸으며 말투에 멀리
서북(西北)지방 사투리가 심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보고
그쪽에서 오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었다.
황혼 무렵.
붉은 노을이 대지를 온통 물들이고 있을 때
고가장의 정문 앞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흑의를 입고 칼집도 없는 녹슨 칼을 허리춤에
찬 장발의 사나이였다.
흑의사내는 고가장의 정문 앞으로 가더니 문득
큰소리로 외쳤다.
"신도비응(神刀飛鷹) 고검령!"
그 한 소리만을 외친 후 흑의사내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정문 앞에 우뚝 서서 우두커니 석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삐꺽!
잠시 후, 굳게 닫혔던 고가장의 정문이 열리며 한
명의 인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키가 훌쭉하게 크고 청의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날카로운 눈으로 흑의사내를 살펴보았다.
한동안 그의 전신을 쓰윽 살피던 청의중년인은 불쑥
물었다.
"귀하가 나를 불렀소?"
흑의사내는 오연히 석양을 올려다본 채로 입을
열었다.
"신도비응 고검령, 청해(靑海)의 제일고수. 한 자루
연철금도(軟鐵金刀)와 비응신법(飛鷹身法)으로 한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했음."
청의중년인, 고검령의 눈초리가 꿈틀거리며 예리한
안광이 뿜어 나왔다.
"용케도 내 정체를 알았구려. 귀하는 누구요?"
흑의사내는 말없이 자신의 칼을 두드렸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의식적인 행동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내 칼을 받아야만 대답해 주겠다는
무언(無言)의 시위 같기도 했다.
고검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난 십여 년 간 청해를 떠나 이곳에 은거해
살았소. 귀하가 내 과거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무림인이 아니니 쓸데없는
시비를 일으키지 말고 이대로 돌아가시오."
흑의사내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다.
그는 떨어져 가는 석양을 응시한 채로 불쑥 말했다.
"십여 년 전 당신은 친구를 죽이고
월영도(月影刀)의 비급을 훔쳐 이곳으로 달아났소.
당신은 월영도법을 다 익혔소?"
고검령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귀하가 어떻게 그걸......?"
그는 곧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흑의사내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일 도(一刀)를 받아 낸다면 나는 이대로
돌아가겠소."
고검령은 당혹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흑의사내의 진정한 의도를 알지 못해 그를
뚫어지게 주시했으나 흑의사내는 여전히 석상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고검령은 내심 번개같이 생각을 굴렸다.
'이 자의 정체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그때 일을
알고 있는 이상 살려 둘 수 없다. 마침 얼마 전에
월영도법을 모두 완성했으니 이 자를 상대로 시험해
볼까?'
그의 눈가로 점차 진한 살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월영도법은 청해지방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도법으로 달그림자가 번뜩이면 상대의 혼(魂)은
어느새 구천(九天)을 헤맨다고 하는 무서운
도법이었다.
고검령은 우연한 기회에 친구 한 사람이 월영도법의
비급을 입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몰래 그 친구를
살해한 후 월영도법의 비급을 훔쳐 이곳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십여 년 동안 월영도법을 익히기
위해 밤마다 수련을 계속했으며 얼마 전에야 비로소
그 도법을 모두 터득할 수 있었다.
고검령은 슬쩍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그의 허리에는 금빛 찬란한 요대가 매어져 있었다.
요대는 폭이 조금 넓었는데 자세히 보면 중앙에
손잡이처럼 되어 있는 문양이 돌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검령의 손은 그 손잡이를 살짝 움켜쥐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흑의사내는 묵묵히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 그가 있는 곳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흐흐...... 이 놈! 월영도의 아래서 처음으로 죽는
영광을 누리게 해주겠다!'
고검령은 살소(殺笑)를 흘리며 연도(軟刀)의
손잡이를 잡아 다녔다.
채앵!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그의 허리띠가 칼로 변하며
시퍼런 도기를 뿌려 냈다. 고검령은 칼을 뽑는 여세를
이용해 비호같이 흑의사내에게 달려들며 칼을 그어
댔다.
"이 놈! 이것이 바로 월영도 중의
월몽영(月蒙影)이다!"
스스슥!
붉은 노을 사이로 마치 달 그림자를 연상케 하는
초생달 모양의 도영(刀影)이 나타났다. 그 도영은
눈부신 속도로 우두커니 서 있는 흑의사내를 향해
날아들었다.
흑의사내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떨어지는
석양만 쳐다보고 있었다.
막 달빛 그림자가 그의 미간을 가르고 지나가려는
순간, 흑의사내의 손은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녹슨
칼의 손자루를 잡아갔다.
번--쩍!
동시에, 무언가 뇌전(雷電)같고 섬광(閃光)같은
것이 그의 허리춤에서 찬연히 피어 올랐다.
고검령은 엄청난 광경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피처럼 붉은 노을을 뿌리며 서산 너머로 떨어지고
있던 석양이 뇌전 같은 섬광에 의해 잘라지는 광경을
본 것이다. 그 섬광은 태양을 갈랐고, 달 그림자를
갈랐으며, 그의 머리마저 함께 가르고 지나갔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노을 너머로 터져 나왔다.
고검령은 머리통이 완전히 잘려 나간 채 몸뚱이만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잘려진 목에서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주인 잃은 몸뚱이는 몇 번을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쿵!
진한 피비린내가 주위를 진동시켰다.
흑의사내의 허리춤에는 여전히 칼집도 없는 녹슨
칼이 처음의 상태 그대로 매어져 있었다. 그는 목이
분리된 고검령의 시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노을 너머 남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자건. 이번에야말로 너를 이렇게 베어 줄
테다......."
그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신형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핏빛 노을을
받으며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의 신형이 사라져 간 남쪽. 그곳은 바로
무림대회가 열리고 있는 금릉이 있는 곳이었다.
* * *
무림대회 칠 일(七日)째.
오늘은 예선이 열리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다.
초반 벽두부터 강호의 이름난 절정고수들이 속속
등장했으며 그들의 실력만큼이나 열기 또한 뜨거웠다.
이날 중인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인물은 단연
구환도(九環刀) 철독행(鐵獨行)이었다.
철독행은 사실 그리 유명한 고수는 아니었다.
광동(廣東)지방에서 약간의 명성은 떨치고 있었지만
강호무림의 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라서기에는 많이
미흡한 인물이었다.
한데 지난 몇 년 간 그의 무공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해 있었다.
그의 첫 상대는 절강(浙江)의 호걸인
반룡곤(盤龍棍) 하일존(夏一尊)이었는데 철독행은 단
일 초만에 그의 반룡곤을 부러뜨려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하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반룡곤을 무너뜨린 그에게 도전한 인물은 강호의
유명한 살성인 냉면인도(冷面人屠)
이잔심(易殘心)이었다. 이잔심은 철독행보다 열 배는
더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손속이 잔인하고 무공의
위력이 끔찍할 정도로 악독해서 그와 겨루어 살아난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하나 이잔심은 더 이상 남을 해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철독행의 구환도에 단 오 초를 견디지 못하고
도하고혼(刀下孤魂)이 되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그때처럼 놀라운 광경은 본 일이 없다고
떠들어댔다.
세 번째로 싸운 인물은 이잔심의 친구이며 자신도
역시 강호무림에 악명을 자자하게 떨치고 있는
유령무영귀(幽靈無影鬼) 전무영(展無影)이었다.
전무영은 손속도 잔인하지만 신법 하나만은
강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절정고수였다.
철독행은 세 번의 칼질만에 그의 두 다리를 잘라
버렸다.
이제는 아무도 철독행을 광동에서 온 촌놈이라고
놀리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강호무림에 또
하나의 무시무시한 도객(刀客)이 나타났다고
떠들었으며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에 바빴다.
사마결은 철독행이 주위의 엄청난 환호를 들으며 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며 감탄을 했다.
"엄청나게 발전했군. 예전에는 그저 평범한 고수에
불과했는데......."
조자건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자를 알고 있소?"
사마결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 년 전에 한번 만난 일이 있소. 그때는 오늘처럼
강하지 않았었소. 내가 몇 수 접어 두고 겨루어도
이길 정도였으니까. 한데 오늘 보니 전혀 딴 사람이
된 것 같소."
조자건은 잠시 침음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오?"
"글쎄...... 나도 잘은 모르오. 아무튼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았는데 실력이
모자라서 고민하고 있었소. 제법 의지도 굳고 재질도
있는 것 같은데 익힌 도법이 별볼일 없어 이류고수
축을 벗어나지 못했었소.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오?"
"그는 몹시 흥미 있는 무공을 사용하고 있소."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엇이오?"
"그가 사용하는 도법은 한 가지 검법을 도(刀)로
운용한 것이오."
사마결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조자건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무결검법(無缺劍法)."
그 말에 사마결은 깜짝 놀랐다.
"아니 무결검법이라면 칠십 년 전의
화씨세가(華氏勢家)가 사용하던 바로 그......."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화씨세가의 독문검법(獨門劍法)이오."
2
섬광(閃光)
사마결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씨세가는 칠십 년 전에
천하제일가문(天下第一家門)으로 명성을 떨쳤었다.
그들의 무공은 전혀 흠잡을 데가 없고 전문적으로
상대의 허점만을 노리기 때문에 당시 무림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무공을 당해 내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그들이 사용하던 검법은 너무나 완벽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무결검법이라고
불렀다.
물론 나중에 그들의 검법은 태극문의 창시자인
태극천자 위지독고에 의해 깨어졌지만 그들의
무결검법만은 지금도 가끔씩 노강호(老江湖)들의 입을
통해 거론되고 있었다.
사마결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가득 떠올랐다.
"그게 정말이라면 이상한 일 아니오? 철독행이
어떻게 화씨세가의 무결검법을 익힐 수가 있단
말이오?"
사마결이 의아심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화씨세가의 유일한 후계자는 물론 당금천하의
제일고수인 무적초자 화군악이었다.
하나 화군악이 사용하는 검법은 당년에 화씨세가가
명성을 날렸던 무결검법이 아니었다.
그는 순전히 스스로의 각고(刻苦)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 낸 검법을 사용했는데 아무도 그 검법의
내력이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무명검법(無名劍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화군악이 무결검법을 익히지 않았는지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사용을 안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단지 화군악마저 무결검법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지난 칠십 년 간 강호에는 어느 누구도 무결검법을
익혔다거나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씨세가와는 전혀 무관한 철독행에
의해 펼쳐졌으니 사마결이 놀라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체 철독행은 누구에게서 무결검법을 배웠단
말인가?
가장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은 화군악이었다. 하나
이것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화군악은 지난 몇 년 간 무적검수맹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만화원에 틀어박혀 단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만화원의 경비는 철통 같아서 외인(外人)들은
절대로 그 안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접근조차 할 수가
없다.
만에 하나 접근했다 할지라도 화군악이 무엇 때문에
무결검법을 전수해 주겠는가?
아니 화군악이 무결검법을 알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화군악이 아닌 다른 사람은 더 더욱
생각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화씨세가의 인물들 중 지금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은 화군악이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화군악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의문점이 너무나
많았다.
사마결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자 조자건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그렇게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소. 그가
누구에게서 배웠건 무결검법을 익힌 것은 분명하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될 거요."
사마결은 찌푸렸던 눈살을 펴며 히죽 웃었다.
"조형도 알다시피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미 아니오? 다음에 철독행을 만나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내막을 알아내고야 말 테요."
조자건은 아무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사마결은 다시 그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의 무림제일통(武林第一通)이란
별호는 당신이 가져야 할 것 같소. 아무리 봐도
나보다 아는 게 더 많은 것 같으니 이거 참 창피
막심하구려."
조자건은 가볍게 웃었다.
"무공방면에 대해서는 아마 그럴지도 모르오. 나는
어려서부터 온갖 종류의 무공을 두루 보아 왔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안목이 넓은
편이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방면에 대해서는 당신이
더 전문가가 아니오?"
사마결은 껄껄 웃었다.
"하하...... 그렇지도 않다면 나는 아마 화병이
나서 돌아 버리고 말았을 거요."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에 대 위에서는 다시
격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멀리 신강(新疆)에서 온
오행마자(五行魔子) 좌대괴(左大魁)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좌대괴는 두 사람의 절정고수를
간단히 격파하고 입가에 득의 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흐...... 중원(中原)에는 약골(弱骨)들만 모인
모양이군. 이래서야 싱거워서 어디 싸울 맛이
나겠나?"
그가 오만무도한 웃음을 짓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천천히 대 위로 올라왔다.
올라온 인물을 본 좌대괴의 눈살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그는 짙은 회삼을 입은 아주 뚱뚱한 몸매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어찌나 뚱뚱했는지 그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보는 사람이 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양쪽 소매는 터무니없이 넓어서 뚱보청년이
그 넓은 소매를 펄럭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조차 했다.
좌대괴는 어처구니가 없어 낄낄거렸다.
"흐흐...... 중원에 아무리 인재가 없어도 이런
뚱뚱보까지 나와 설치다니...... 정말 한심하군."
그가 비웃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뚱보청년은 계속
다가와서 그의 일 장 앞에 우뚝 섰다.
그런 다음 좌대괴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그 시선을 받자 좌대괴는 문득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져 왔다.
그 시선에는 무어라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냉기(冷氣)가 어려 있었던 것이다.
좌대괴는 눈썹을 곤두세우며 물었다.
"네 놈은 누구냐?"
뚱보청년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그는 얼굴에
기이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글쎄...... 이것도 웃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의 다른 부분은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입
부근의 근육이 가느다란 선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웃음보다도 괴이하고
음산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뚱보청년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을 보자 좌대괴는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이런 찢어 죽일 놈이.......'
좌대괴는 마음속에 살심이 들끓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벼락같은 일장(一掌)을 내갈겼다.
꽈르릉!
그의 손에서 오색기운이 담긴 강력한 장력이 뿜어
나왔다. 바로 좌대괴가 자랑하는
오행마장(五行魔掌)이었다.
오행마장은 다섯 가지의 상이한 기운이 담겨 있어
정면으로 격중 당하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는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뚱보청년은 천천히 양손을 들었다. 그가 손을
들어올리자 넓은 소맷자락이 활짝 펼쳐져 그의 손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좌대괴는 문득 뚱보청년의 소맷자락
사이에서 무언가 빛나는 물체가 번뜩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크기가 어른의 손바닥만했는데 너무도
내뻗는 빛이 강렬해 정확한 모습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좌대괴는 그것이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어서
륜(輪)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좌대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번쩍!
무언가 눈부신 섬광이 번뜩하자 좌대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그는 무엇이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이마가 쩌억
갈라진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갈라진 이마에서 나오는 선혈이 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중인들은 너무도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뚱보청년이 무슨 수법을
사용해 좌대괴를 쓰러뜨렸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들이 본 것이라고는 뚱보청년이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렸고 그 순간 섬광이 번뜩이며 좌대괴의
이마에서 피분수가 솟구쳐 올랐다는 것뿐이었다.
사마결 또한 좌대괴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혹시나 하여 조자건을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은 그가 무슨 수법을 썼는지 알아보았소?"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했소."
"그가 사용한 것은 륜이었을까?"
"모르겠소."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륜이라면 발출되는 음향이라도 들렸을 텐데 분명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 않소?"
"들리지 않았소."
"그렇다면 륜이 아니라면 대체 그 섬광은
무엇이었을까?"
조자건의 대답은 짤막했다.
"모르겠소."
사마결은 그가 너무나 간단하게 대답하자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짐작가는 거라도 있으면 말해 보시오. 나는 도무지
모르겠으니."
"없소."
"그렇다면 당신은 만약 그 자와 만난다면 어떻게
대비할 생각이오?"
사마결이 농담조로 물어 보자 그때서야 조자건은
정색을 했다.
"내겐 하나의 신조가 있소."
"그게 무엇이오?"
조자건의 눈빛은 혜성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한다는 것이오."
사마결은 그의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것 참 편리한 신조구려. 하지만 저 위불군이란
놈이 사용하는 수법은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게
있음이 분명하오."
이어 그는 슬쩍 조자건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무림대회에서 우승하려면 언젠가는 그와
반드시 격돌해야 하는데 그와 만날 것이 걱정이 되지
않소?"
처음으로 조자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이번 무림대회에서 우승할 것 같소?"
"당신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당신이
무림대회에 참가한 목적도 바로 그게 아니오?"
조자건은 오히려 되물었다.
"내가 무림대회에 참가한 목적이 우승하기
위해서라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아오?"
사마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오? 당신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서 화군악과 겨루어 형님의 복수를 하려는 게
아니오?"
의외로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려. 내가
무림대회에 참가하는 목적은 우승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사마결은 의혹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럼 당신의 목적은 무엇이오?"
조자건의 음성은 아주 담담했다.
"내 무공에 남아 있는 허점을 없애기 위해서요.
무림대회에는 당금강호의 최절정고수들이 모두 참가할
테니 그들과 겨루다 보면 허점들을 한 가지씩 없애
나갈 수 있을 거요. 단지 그 허점들을 없앨 수만
있다면 무림대회의 우승 따위는 누가 차지해도
상관없소."
사마결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당신은 화군악과 겨루지 않을 셈이오?"
조자건의 눈빛은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流星)을
닮았다.
"단 한 군데라도 허점이 있는 상태에서 화군악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를 바 없소. 나의
최선의 목적은 바로 내 무공에 남아 있는 허점들을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오."
그는 나직하나 힘있는 음성으로 말을 맺었다.
"화군악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요."
* * *
칠 일 간의 예선은 모두 끝이 났다.
예선을 통과한 사람은 모두 스물여덟 명이었다.
예선에 참가한 엄청난 숫자를 생각한다면 그 수는
너무나 적은 것이었다.
하나 그만큼 예선을 통과한 인물들의 실력은 뛰어난
것이었다.
예선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결선에 진출한 인물들은
스물네 개 대문파와 열두 개 무림세가의 대표
서른여섯 명이었다. 그들과 예선을 통과한 스물여덟
명은 공정한 추첨을 통해 상대를 결정했다.
조자건의 첫 상대는 열두 무림세가 중 하나인 하북
팽가(河北彭家)의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팽립(彭立)이었다.
팽립은 비록 하북 팽가의 제일 가는 고수이며
강호무림에서 손꼽히는 도객(刀客)이지만 조자건의
상대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사마결의 생각이었다.
사마결은 조자건이 팽립을 꺾고 이차전에 진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노릇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나 세상일이란 종종 예상을 빗나가기 마련이다.
특히, 한 사람을 향해 치밀한 안배(按配)가
준비되어 있다면 더욱 앞 일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첫댓글 ㅈㄷㄱ~~~~~````````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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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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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글구 잘 봅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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