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장석주]
어린 시절 공을 차며 내가
중력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알아야 할 도덕과 의무가
정강이뼈와 대퇴골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변동과 불연속을 지배하려는
발의 역사가 그렇게 길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초록 잔디 위로 둥근 달이 내려온다.
달의 항로를 좇는 추적자들은
고양이처럼 예민한 신경으로 그 우연의 궤적을
좇고, 숨어서 노려본다.
항상 중요한 순간을 쥔 것은
우연의 神이다. 기회들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왔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굼뜬 동작으로 허둥대다가는
헛발질한다. 헛발질 : 受胎가 없는 상상임신.
내 발은 공중으로 뜨고
공은 떼구르르르 굴러간다.
마침내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린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연금술사들은
스물두 개의 그림자를
잔디밭 위에 남긴 채 걸어 나온다.
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이것은 살육과 잔혹 행위가 없는 전쟁,
땀방울과 질주, 우연들의 날뜀,
궁극의 평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절벽, 세계사, 2007
* 전쟁도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지 않는다.
오직 축구만이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이제는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가 구별되지 않는다.
실력이 고만고만해졌다.
게다가 축구공은 지구를 닮아 둥그니 승패가 실력에서 오지 않는다.
우연의 神이 간여해야만 이길 개연성을 갖는다.
애국심은 자기 나라가 경기할 때가 최고조에 이른다.
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죽일놈(?)이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선수들은 표정관리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지든 이기든 지구인이 팀을 나누어 싸우는 전쟁이니 결국 지구인이 이기는 것이라
축제라 생각하고 치킨과 맥주로 흥을 돋구면 좋겠다.
지구의 평화는 잠시 축구를 하는 이 순간이다.
첫댓글 애국심과 축구는 비례합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지구의 평화는 잠시 축구를 하는 이 순간이다....
끝나면 또 전쟁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