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강병로
그의 집 안채엔 너럭바위가 있습니다.
땅에서 솟은 그대로,아니 태초에 용암이 흘러내린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그 바위에 까마귀와 부엉이가 내려앉으면 그는 붉은 낮술에 취합니다.
취생(醉生)!
이 불멸의 시간에 그는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립니다.
운무에 휘감긴 산허리가 허공에 눕고,바람은 구름 속에 머뭅니다.
그에게 어제와 오늘,내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삶.백두대간 구룡령의 산채,
‘취산몽해 체로금풍(醉山夢海 體露金風)’에서 붙박이 망명객으로
그리고,만들고,쓰며 삼희삼락(三喜三樂) 하는 그는 누구일까요.
지월당 박황재형!
그에 대해 최삼경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살도 뼈도 한숨도 눈물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나는 가끔 형의 그림과 삶을 보면서 내 안의 그 많은 잔망과 오만과 허물을 바라본다.
아마 그래서 아직은 사람의 형용은 지키고 있으리라.
구룡령 산봉우리 아래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사람.
그래서 나는 그가 고맙고 존경하게 된다”.
에코캐피탈 락(樂) 갤러리 장현근 대표는 한 발짝 더 내딛습니다.
“세상과 의절하고 자연과 합일치를 이뤄 돈오(頓悟)의 섭리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박황재형을 만난 지난 6월 한 낮.
그는 취했고,나는 무료했습니다.
그러다 한 순간,
‘그는 어떤 맛일까’ 궁금했지요.
‘자연과 하나가 됐다’는 그에게서 우러나는 향기는 어렴풋한데 맛은?
수수께끼는 그의 집 밖,텃밭이랄 것도 없는 수풀 무성한 산기슭에서 우연찮게 풀렸습니다.
오미자(五味子)!
꽃 진 자리에 구슬처럼 박힌 녹색의 알갱이들이 간밤에 흩뿌린 빗방울을 눈물처럼 매달고 있었지요.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다섯 가지 맛을 간직한 흔치 않은 사람.
그날,망설임 없이 박황재형과 ‘오미자’를 한 쌍으로 묶었습니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을 품은 오미자 한 알 한 알에는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심장을 강하게 하고 혈압을 내리는 강장제로 쓰거나 기침,갈증을 치료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한의서 ‘의림촬요’에서는 “열이 많고 목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고 했고,
‘용재총화’에는 ‘소갈증에 오미자탕이 좋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요한건 사람이 사람에게 어떤 맛으로 남느냐는 것.
오미자 붉게 익는 올 가을엔 오미(五味)를 품은 박황재형과 달달하게 취해야겠습니다.
글쓴이:강병로 <산야초 이야기 집필자> 강원일보 전략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