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 2023.1.29) 말씀/ 역대상 4: 1-10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역대상 1장에서 9장까지를 보면 아담에서 시작하여 수 천 년을 지나 이스라엘의 귀환에 이르기까지 기록된 계보들 가운데 500개가 넘는 생소하고 어려운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 생소한 이름들 속에 야베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도 성경을 수십 번 읽었어도 '야베스란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의 프로필도 아주 간략합니다. 9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소개하며 그의 출생 배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는데 그 이름의 뜻은 ‘내가 수고로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말로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간적으로 어두운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거꾸로 나왔는지. 그렇지 않으면 병으로 죽을 고비를 만났는지. 아니면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버리고 도망을 간 유복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야베스의 탄생은 고통이었습니다. 대게 이런 운명적인 출생을 가진 사람들은 인생이 어둡고 부정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형제 중에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기도였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그는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운명적 생의 '고통'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존귀한 자의 반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어떤 기도였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기도이지만, 우리는 오늘 그의 믿음의 기도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평범하지만 기도하며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 이루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축복을 구한 야베스. 야베스가 가장 먼저 기도한 기도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요? “국가적 부흥을 위해? 아니면 이스라엘의 굶주린 영혼들을 위해?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양들을 보내달라고 구했나요?" 아닙니다. 9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그는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달리 '내게 복에 복'을 더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보통 사람들이 구하는 기도와 똑같았습니다. 복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을 보면 '복에 복'을 이라는 반복적인 히브리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느낌표를 5개나 더하거나 아니면 고딕체로 쓰고 밑줄을 그어 강조하는 것과도 같은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삶의 밑바닥에서 벌떡 일어나서 하늘을 향에 두 손을 뻗히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제게 복을 주십시오. 정말 많이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으시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복을 달라는 기도가 운명의 어둠을 가르고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로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는 것입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쩐지 기복 신앙 같고 성숙한 기도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한 영혼을, 나라와 민족을,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될 것같습니다. 개인적이 것을 구하면 어전지 믿음이 작고 이기적인 것같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맞지만 그런데 여기서 야베스가 구한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다릅니다. 그는 자신의 조건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복, 하나님만이 초자연적인 은혜로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을 구한 것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이룰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의 놀라운 복을 베풀어주실 때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복 주시면 저주스러운 자신의 고통스러운 운명도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또 근본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세상의 많은 복을 받아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근본 복을 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일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선행적으로 근본 ‘하나님의 복’을 구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주님이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6:14-15절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와 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그 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인내로 받아 복의 근원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야곱의 인생도 보면 그가 절망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에서를 인하여 두려워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얍복 나루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도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에서의 문제를 극복하고, 이스라엘로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까? 모두가 지방 출신이고 시골에서 자라온 사람들입니다. 무안 청계로 도약한 자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출신 배경 스,펙을 가지고는 어떤 위대한 일을 시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일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야베스의 기도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 제목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잘 이해 하지 못하고 “나는 복을 구하지 않겠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겸손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우려는 기도는 기복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에 나오는 성숙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조건가 형편만 보지 말고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축복을 구해야 합니다(엡 3:20). 아멘.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여주옵소서." 아멘. 둘째,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는 야베스. 복을 달라고 기도한 야베스는 이제 구제척으로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합니다. 지경은 해변, 경계. 미개척지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국가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각 지파들에게 그 약속의 땅을 분배해주던 때였습니다. 야베스는 당시 분배받은 땅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면 현재보다 얼마든지 더 넓은 지경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히려 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렇게 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복음이 우주적으로 퍼져갈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주십시오."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현재 제가 섬기는 일로는 부족합니다. 더 많은 영혼들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내가 가는 곳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지금의 일은 너무 작습니다. 저는 주님을 의지하면 입을 크게 벌립니다. “주님, 나만 만족하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내 가족만이 아닙니다. 우리교회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독일, 일본, 중국, 네팔, 태국, 로마 미국, 러시아 세계 각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북한에도 선교의 길을 얼여 주셔서 지경을 넓혀주소서” 이런 기도가 바로 야베스의 비전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상황이나 조건이나 운명을 생각하면 이런 기도는 못합니다. "나는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재정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나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저는 신앙이 약하고, 아직 전도도 잘 못합니다. 저는 언어가 딸립니다. 말이 어눌합니다. "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우리가 드리는 기도 역시 자신의 운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의 일들을 아뢰는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와 연약함 + 하나님의 뜻과 초월적인 능력 = 나의 확장된 지경. 위대한 일 성취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포로 생활을 마치고 약속된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이것이 하나님을 나의 삶과 역사에 개입시키는 계산 방법입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 우리 자신을 분석하고 신중, 신중하게 계산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며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기대하고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 1학년 때 기도제목을 쓴 명찰을 붙이고 다녔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나는 장차 154개국(당시)에 다니며 전도여행을 할 것입니다. 세계를 나에게 주십시오.”, 저는 공무원의 아들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공부도 띠어나게 잘 하지 못했습니다. 지방대학에서 대학생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또 지방 대학생들을 데리고 세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시골의 운명이 깊은 대학생들을 세계로 보내셨습니다. 안드레아 쿨만 선교사님은 목포대학에서 첫 유학생 선교사로 독일에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중국, 캐나다,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러한 기도의 꼬투리로 미국, 서독, 네덜란드, 러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일본 뱅글라데수. 인도, 스리랑카, 이태리 등 여러 국가의 땅을 밟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잘 나갈 것같은 역사는 한계 앞에 부딪히고 저는 역사는 후패 하고 저는 제자 양육하고 결혼까지 시킨 리더들을 주변교회들로 흩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꿈이 아니라 여기 무안 청계에 있어야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실패자가 무슨 꿈을 꾸겠습니까? 사람들은 왜 계속 거기 있느냐고 묻습니다. 나 스스로도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커서 곁을 떠났습니다. 사모도 누가를 데리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내가 절망적일 때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역사의 주인이 되셨고,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나는 자유가 되었으며 주님 사랑하고, 한두명 앙들 섬기면 많은 시간을 내 성장을 위해서 쓸수있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줄어들도 양들을 수가 작어졌지만 저는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꿈도 야무지게 우주교회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적은 능력이지만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 가진 것 없어도 베풀고 나누며 살게 해주세오, 시골 청계 변방에 있지만 세계를 섬기데 해주세요. 푸른 초장 교회가 우주교회가 되어서 말씀으로 세상을 먹이게 하여 주세요. 하나님은 상황과 조건이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달라지만 세계가 달라지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청계가 좁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좁았더 것입니다. 쌩떽쥬베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세상을 품어라 세상은 바로 그대의 것이다. 청계에서 우주를 품으면 청계는 우주의 중심이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아침 5시부터 갓궁ㄴ 빵처럼ㄹ 말씀을 세계돛로 대달 합니다. 얼마 전에는 생전 처음의 사람들 세 분이 주님이 하십니다 책을 읽고 교히를 찾아왔습니다. 지난 주는 학창시절 함게 신앙생활하였던 김태영 집사님이 우주교회 단톡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교회 목표는 한 사람입니다. 1년이던 5년이던 한 사람만 더해도 달성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우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주님의 방법대로 나의 지경을 우리 교회의 지경을 넓혀가고 게십니다. 우리는 평범하지만 평범한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gkskla은 우리의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셋째, 주의 손으로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야베스 . 많은 사람들이 지경이 넓혀진 후에는 그 축복을 감당하지 못해서 주저앉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일을 벌려놓고 보면 자신의 능력이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신 복을 두 팔 가득 안고 새로운 지경으로 나아갔어도 능력이 없으면 새로운 환경에 압도되어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이런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는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한 후에는 주의의 손이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손은 무엇을 말합니까? 주의 손은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말합니다(수4:24). 사도행전을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행 1:8. 11:21). 우리가 전도하는 것, 선교하는 것, 우리 자신과 교회가 성장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승천하여 세상을 떠나실 때 주신 최대의 약속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마 28:19 ). 이 약속은 오늘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약속입니다.
네째, 환난을 벗어나 나로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한 야베스. 야베스의 이 마지막 기도는 마무리 기도입니다. 이제까지의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일하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축복을 받은 후에 이 영적 성공에 따르는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성공할 때 실패할 확률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공과 더불어 실패할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큰 역사를 이루어놓고 죄악에 빠져 사역에서 떨어져나가는 사람들, 높은 자리에 오르고 교만하여 떨어지는 사람들, 많은 물질을 벌고 죄악에 빠지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마치 자신이 이룬 것처럼 교만해집니다. 구하였던 복을 얻었으니 아쉬운 것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점점 기도를 못하고 영적으로 안일하여 넘어지게 됩니다. 축복을 감당치 못하면 엄청난 환란이 따르게 됩니다. 야베스는 바로 이것까지 대비했습니다.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는 그가 복을 얻은 후에도 계속해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영적 환난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인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기도제목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여호와 그 얼굴과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축복 앞에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완벽한 기도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 이 마무리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의 마무리 기도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또한 간사하기 때문에 늘 시험에 들지 않도록 대비 기도를 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는 위대한 일을 성취한 후에도 형제들 가운데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성취만 하였고 교만했다면 존귀한 자가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겸손하였으므로 형제 중에 존귀함을 받는 자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서 나의 운명적 조건들을 띄어 넘어서 존귀한 자가 되고, 나의 지경을 넓혀 더욱 더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자들 되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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