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각산 태고사(三角山 太古寺)를 찾아서 지난 2월 14일 오전 7시 55분, 정릉 청수장에서 칼바위능선을 타고 9시 59분, 보국문 에 이른 다음 보국문에서 노적사를 가기 위하여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태고사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10시 33분이었습니다. 태고사 는 5년 전 한 번 참배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아쉬웠던 것은 원증국사탑을 참배하지 못 하고 온 점이었습니다. 노적사가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우선 태고사를 찾아 법당 에 들어 참예(參詣)하고 원증국사탑도 가 보고자 발걸음을 태고사로 옮겼습니다.  태고사는 여기서 200m 거리에 있습니다.  태고사 가는 길  10시 40분경 태고사에 도착했습니다.  태고사 대웅보전으로 가는 축대 및 계단이 인상적입니다. 좌측은 종무소 겸 요사채로 보이는데 사진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유서 깊은 태 고사에 왔으니 태고사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입니다. 태고사(太古寺)는 고양시 북한동 15번지(대서문길 406) 북한산성 안에 자리한 한국불 교 태고종 사찰입니다. 이 절은 고려 충혜왕 복위 2년(1341)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국사가 창건하 였습니다. 보우국사는 당시 옆에 있는 중흥사(重興寺)의 주지이기도 했는데, 이후 5 년간 태고사에 주석했다고 합니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는 동안의 역사는 잘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조선 초 무렵 부터 폐허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임진ㆍ병자 양난이 일어나 는 등 외침이 자주 있자 외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을 대대적 으로 새로 쌓았는데, 이때 승군(僧軍)의 주둔을 위해 옛터에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태 고사는 다시금 예전의 법등을 잇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산성 축성과 방비에 관련하여 창건되거나 중건된 절은 태고사ㆍ중흥사를 비롯 전부 12개 사찰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승병을 주둔시키기 위한 목적이었 습니다. 태고사에는 경서(經書)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斗) 및 화약용 흑탄 1600여 석이 비축되기도 했으며, 당시 절의 규모는 131칸에 이르는 대가람이었 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 사세가 기울고 6.25 때 전파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64년 청암(靑岩) 스님에 의해 중창되면서 이 절은 점차 발전하여 1980년 비각이 완공되었 고, 1989년 대웅보전과 요사가 증개축되었습니다. 또한 현재는 인접한 중흥사를 복 원하기 위한 불사를 추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태고 스님이 중흥사에 계시면 서 태고사를 창건했던 인연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희귀목 귀룽나무 희귀목 귀룽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잘 모르는데 안내판을 보니 매년 3월 20일 경에 백 설 같은 꽃이 핀다고 하니 그 무렵에 오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래의 정 보를 보면 꽃이 5월에 핀다고 하니 3월 20일 경은 음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 어린가지를 자르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잎은 어긋나고 잎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으며 긴 달걀 모양으로 생겼다. 꽃은 5월에 총상(總狀) 꽃차례로 무리져서 하얗게 피며 꽃줄기는 밑으로 약간 처진다. 핵과(核果)인 열매는 6월에 동그랗게 검은색으로 익으며 맛이 떫다. 가지를 비틀어서 뗏목을 묶는 데 쓰고 가지에서 나는 냄새를 이용하여 파리를 쫓기도 한다. 작은 가지 말린 것을 구룡목(九龍木)이라고 하는데, 체증에 쓰거나 다리에 나는 부스럼에 생즙을 내서 바르면 효과가 있다. 7월에 잎을 삶아서 나물로 먹으며, 열매는 날것으로 먹기 도 한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며 북쪽으로 갈수록 많이 분포한다.」  보호수 안내판 ......................................................................................................... ⊙ 품 격 : 마을 나무 ⊙ 수 종 : 귀룽나무 ⊙ 지정번호 : 경기 - 고양 - 17 ⊙ 지정일자 : 1994. 5. 12 ⊙ 수 령 : 150년 ⊙ 소 재 지 :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15번지 ⊙ 수 고 : 23m ⊙ 나무둘레 : 2.3m ⊙ 관리책임자 : 효자동장 ⊙ 특기사항 희귀목으로 태고사 경내에 있는 나무이며, 매년 3월 20일 경이 되면 나무 전체가 하얀꽃으로 덮히는데 마치 백설 같이 된다고 한다. 특히 고찰인 태고사와 어우러 져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고 있다. .......................................................................................................... 웅장한 축대 가운데의 계단을 오르면 아담한 대웅보전이 나옵니다. 대웅전 옆으로 비각이 서 있는데, 원증국사의 탑비를 모신 비각입니다.  대웅보전 정면 3칸, 축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로 청암 스님에 의해 1989년 증개축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대웅보전의 모습 주련이 있어 옮겨 봅니다.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무여불 천상천하 어느 누가 부처님과 견주리오. 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역무비 시방세계 둘러봐도 비길 자가 전혀 없네. 世間所有我盡見 세간소유아진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살피어도 一切無有如佛者 일체무유여불자 부처님을 따를 자가 천지간에 없습니다.  우보처 대세지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관세음보살 법당에 석가모니불을 모셔서 대웅보전이라 하였는데 좌우보처를 뵈오니 관세음보살 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 통상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은 아미타불 협시보살로 모셔지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유행인지 여기 저기 원칙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습 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만덕을 갖추셨기에 대자대비의 원력은 관세음보살로 나타나고, 지혜의 큰 힘은 대세지보살로 나타난 것이라고.... _(())_  지장탱화(地藏幀畵)  신중탱화(神衆幀畵)  칠성탱화(七星幀畵)  원증국사탑비(高陽太古寺 圓證國師塔碑)를 찾았습니다. 태고사는 태고 보우국사께서 창건한 절이므로 간단하게나마 보우국사에 대하여 알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기술해 봅니다. 태고 보우 국사(太古普愚國師) 태고 보우 국사(太古普愚國師 1301~1382)는 고려 말기의 스님으로, 휘는 보우(普愚) 또는 보허(普虛)이며, 법호는 태고(太古), 시호는 원증(圓證)이고 탑호(塔號)는 보월승 공(寶月昇空)입니다. 국사는 고려 충렬왕 27년(1301)에 경기도 양근에서 홍주 홍씨 연(延)을 아버지로, 삼 한국 대부인 정씨를 어머니로 하여 태양이 품에 드는 꿈을 꾸고 임신하여 대덕 5년 (1301) 9월 21일에 출생하였습니다.
13세 양주 회암사(檜巖寺) 광지선사(廣智禪師)를 스승으로 하여 득도하였습니다. 19세 때에 가지산(迦智山) 총림(叢林)에서 만법귀일(萬法歸一)의 화두(話頭)로 선지를 참구하였으나 대중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하였습니다. 38세에 전단원(栴檀園)에서 동안거를 하던 중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습니다. 41세 때인 충혜왕 복위 2년(1341) 삼각산 중흥사에 임직하면서 동암(東庵)을 짓고 주 석했는데 이것이 태고암(太古庵)입니다. 여기서 태고암가(太古庵歌 )를 지었습니다. 46세 때 원제(元帝)가 국사의 고명함을 듣고 초빙함에 두 차례에 걸쳐 법문을 한 바 황제가 감동하여 금란가사 300령(領)을 하사한 일화가 있습니다. 또 임제선사(臨濟禪 師)의 18대손이요, 당시 중국에서 으뜸가는 고승 석옥청공(石屋淸珙 1270 -1352)선사 를 만나 인가를 얻어 법맥을 이었으며, 귀국하여 불법을 편 후 불교통합을 단행, 오교 구산(五敎九山)을 단일종(單一宗)으로 묶고 한국불교의 전통법맥을 재확립한 후 전법 에 힘쓰시다, 우왕 8년인 1382년 12월 24일 양근(楊根) 미원(迷源)의 소설산암(小雪山 庵)에서 세수 82세 법랍 69세로 입적하셨습니다. ※ 양근(楊根) 미원(迷源)의 소설산암(小雪山庵)은 현재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 리'라고 하는데 폐사된 지 오래여서 태고보우국사의 탑과 비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임종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人生命若水泡空 인생명약수포공 사람의 목숨은 물거품처럼 빈 것이어서 八十餘年春夢中 팔십여년춘몽중 팔십 여년 평생이 봄 꿈속과 같았네. 臨終如今放皮帒 임종여금방피대 임종을 맞는 지금 가죽부대 버리나니 一輪紅日下西峰 일륜홍일하서봉 한 바퀴 붉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네. 국사의 법구를 다비하니 사리(舍利)가 수없이 출현하여, 그 중 사리 100과(顆)를 왕에 게 올리니, 왕이 더욱 공경하여, 유사(攸司)에게 명하여 원증(圓證)이라는 시호를 내렸 습니다. 그후 문인(文人)들이 석종(石鐘)을 만들어 사리를 봉치(奉置)한 곳이 네 곳인데 ① 양산사(陽山寺 경북 봉암사) ② 사나사(舍那寺) ③ 청송사(靑松寺) ④ 태고암(太古 庵)이며 소설산(小雪山)에도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고양태고사 원증국사탑비(高陽太古寺 圓證國師塔碑) -보물 제611호- 탑비 앞에 안내문이 있어 옮겨 봅니다. 「중흥사(重興寺)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이곳 태고사를 창건하여 5년간 머물었던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의 행적과 업적을 새긴 탑비이다. 원증국사(圓證國師 1301~138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호는 태고(太古)이다. 13세에 회암사(檜巖寺)로 출가하여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하였다. 1346년(충목왕 2년)에 원나라에 가서 선종(禪宗)의 일파인 임제종(臨濟宗)의 법손 청공 (淸珙) 밑에서 공부하고 그 법을 받아 귀국하였다. 그후 공민왕(恭愍王)의 왕사(王師)가 되었으며, 한때 신돈(辛旽)과 대립하다가 속리산 에 금고 되기도 했으나 신돈이 죽은 후 국사(國師)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승려가 1,000여 명에 이르고, 당대의 대신이었던 최영(崔瑩)과 이성계(李成桂)가 그의 제자로 비문에 적혀 있을 정도로 고려 말기 불교계의 거목이었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 (知訥)과 함께 한국불교의 초석을 다진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증국사탑비는 1385년(고려 우왕 11년)에 건립되었다. 당대의 문장가 이색(李穡)이 비문(碑文)을 짓고 명필인 권주(權鑄)가 글씨를 썼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비의 조각이 형식에 그치고 있어 퇴화된 느낌을 준다.」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 원증국사탑비의 전체 높이는 3.42m이며 재질은 화강암입니다.  전액(篆額)에 원증국사탑명(圓證國師塔銘)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은 당대의 문인 이색(李穡)이 지었고, 글씨는 명필 권주(權鑄)가 썼습니다. 비몸의 앞면 윗부분에 '원증국사탑명(圓證國師塔銘)'이라는 전액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 보우국사에 대한 내용을 해서체로 새겼습니다.  용부(龍趺)의 모습 탑비의 용부는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등에는 육각형의 육각수문(六角水文 일명 龜甲文)이 조각되어 있고, 머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린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에 홈을 파고 비몸을 세웠는데, 비좌는 조각이 없이 간결합니다.  이수(螭首)부분 이수(螭首)는 1단의 받침 주위에 연꽃을 조각하고, 구름무늬에 쌍룡을 조각하였습니다  비각 위에 자리한 청암대종사(靑岩大宗師) 부도탑 청암스님은 6.25때 폐허가 된 절을 1964년부터 중창하는 등 힘쓰며 오늘의 태고사를 있게 한 주역이며, 2001년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으며 2008년에 세수 96세, 법랍 82세 로 입적(入寂)하셨습니다.  산신각 밑의 영천용왕당약수(靈泉龍王堂藥水) 약수 위에 용왕당을 마련하여 용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기온이 찼지만 물맛을 보고 자 한 바가지 떠서 마시니 뱃속이 다 시원하더군요. ^^  물맛이 어떠하신가요?  산신각(山神閣) 대웅보전 뒷편 영천용왕당약수 윗쪽, 원증국사탑에 오르는 계단 옆 바위에 의지하여 지은 특이한 형태의 산신각입니다. 화강암 암벽에 돌로 쌓아 만든 산신각은 맞배지붕 의 건물입니다. 태고사에는 소위 삼성각이 없습니다. 단출한 산신각이 눈길을 끕니다.  암벽에 그대로 그린 산신탱화 산신각에 들어 산신님께 예를 올리고 산신을 뵈었습니다. 마치 석굴에 들어 온 듯한 기분이 납니다. 꼬리를 치켜세운 호랑이가 자못 호기롭게 보입니다. 흰수염이 가슴 까지 내려온 산신은 왼손에 파초선을 들고 고요히 앉아 있고, 동자는 호랑이 뒤에서 천도(天桃)를 공손히 받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통적인 탱화기법이 아니어서 특이 하기도 하여 잠시 머물다 물러나왔습니다.  벽면은 그냥 바위 그대로인데 여기에 채색을 하여 산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산신님께 이번 산행의 안전한 산행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끝까지 안전한 산 행이 이루어지기를 합장 기원하고 물러나왔습니다.  원증국사탑에 오르는 계단 지금부터 5년 전에 왔을 때 원증국사탑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친 적이 있어서 이번엔 꼭 들러서 참배하고자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원증국사의 탑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원증국사탑비의 바로 윗쪽 산위인데 빙 돌아 오른 것입니다.  오르고 보니 부도탑 2기가 보입니다.  부도탑 2기의 모습입니다. 앞에는 태고종을 창종하여 초대 종정을 지낸 법운대륜대종사(法雲大輪大宗師) 사리 탑이고, 윗쪽은 태고 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입니다.  태고종중흥종주 법운대륜대종사(太古宗中興宗主 法雲大輪大宗師) 사리탑 태고종중흥종주 법운대륜대종사(太古宗中興宗主 法雲大輪大宗師)는 누구인가 《가사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을 통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법운대종사(法雲大宗師 1883~1979)는 근세의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스님으로, 1969년에 한국불교태고종(太古宗)을 창종(創宗)하고 초대 종정에 추대되었습니다. 휘는 진종(振宗), 법명은 대륜(大輪)이며 법호는 법운(法雲)입니다. 속성은 박(朴)씨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입니다. 아버지 중보(仲甫)와 어머니 경주 김씨 사이에서 고종 20년인 1883년 8월 18일(음 5. 15) 강원도 간성군 현내면(縣內 面) 저진리(楮津里)에서 6남매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898년 3월 20일 16세 때 금강산 유점사로 찾아가 곽운(廓雲)을 은사로 동선정의 (東宣淨義)를 계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해 8월 유점사 산내 암자인 반야암(般若庵)에서 대월(大月) 강백으로부터 사미과(沙彌科)와 사집과(四集 科)를 수료하였고, 1899년(고종 36) 금강산 내원선원에서 수선안거(首先安居)를 시작 하였으며,1900년 유점사 강원에서 『치문(緇文)』『서장(書藏)』『도서(都序)』 및 『능가경(楞伽經)』을 수학하였습니다. 1908년 26세 때 설하(雪河) 강백 밑에서 사교과(四敎科) 및 대교과(大敎科)를 졸업하 고 서울로 와서 지금의 조계사인 각황사(覺皇寺)에서 6년간 대중 외호를 하였습니다. 1915년 33세 때 평양시 창전리(倉田里)에 유점사 포교당을 열고 포교활동에 전력하 였으며, 만해 한용운(韓龍運)스님의 항일운동과 불교 유신운동에도 뜻을 같이하여 이를 적극 후원하였고 , 상해 임시정부에 운동자금도 비밀리에 보냈습니다. 1918년 해인사의 회광사선(晦光師璿)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고, 1925년 43세 때 응성보의(應晟寶儀)의 법을 받고 대륜(大輪)이라는 법호를 받았으니 태고의 22대, 율봉청과(栗峯靑果)의 8대 법손입니다.  한국불교태고종을 창종하고 초대종정을 역임한 법운 대륜대종사 사리탑 1929년 47세 때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소재 안변 석왕사 포교당을 6천원에 매입하여 불이성 법륜사(不二城 法輪斯)로 그 이름을 고쳐서 포교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습 니다. 경전을 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하여 『백유경(百喩經』2천부, 『법화경(法華經)』 「보문품」2천부, 『고왕경(高王經)』 3만부를 간행하여 유포하였습니다. 1938년 해인사의 설호(雪醐) 강백을 초빙하여 법륜사에서 강원을 운영하였으며, 1940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대종사(大宗師) 법계를 받았습니다. 1945년 63세 때 금강산 유점사 주지에 추대되었으나, 1950년 6.25 한국전쟁으로 말 미암아 부산으로 피난가서 동래 온천장에 있는 금정선원(金井禪院)에서 주석하였습니 다. 1951년에는 부산시 서면 당감동 선암사에서 3년 간 안거(安居)하였고, 1954년부터 양산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에서 3년간 정진하였으며, 이북5도 연합불교 교무원 원장을 맡았습니다. 1956년 종립 동국학원 이사에 피선되고, 이어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에 취임하였습 니다. 그러나 1960년 조계종단의 분규로 조계종을 탈퇴하였고, 1969년 한국불교 태 고종을 창종하여 초대 종정에 추대되었습니다. 1973년 권상로(權相老)ㆍ김동화(金東華)ㆍ김포광(金包光) 등에게 위촉하여 3년여에 걸쳐 『신편불교성전』을 찬술하여 간행하였고, 이영무(李英茂) 교수에게 청탁하여 『태고보우법어집(太古普愚法語集)』을 번역 출간하였습니다. 한국불교의 대중화ㆍ현대화ㆍ생활화와 청년불교운동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1979년 음력 12월 18일 세수 97세, 법랍 82세를 일기로 입적하였습니다. 태고종 종단장으로 북한산 태고사 부근에서 다비하였는데, 오색이 영롱한 사리 5과가 출현하였으므로 조명기(趙明基) 전 동국대 총장이 비문을 짓고 이재복(李在福)이 쓴 탑비(塔碑)는 법륜사(法輪寺)에 있고 사리탑(舍利塔)은 태고사(太古寺)에 있습니다. 제자에는 덕암(德庵 : 安興德)ㆍ용복(龍福 : 李在福)ㆍ운제(雲齊 : 李英茂)ㆍ덕산염록 (德山念錄)ㆍ본공서각(本空西角)ㆍ현운봉환(玄雲鳳煥)ㆍ범호재린(梵虎載麟)ㆍ법산경 권(法山炅權)ㆍ무불(無佛 : 南點龍) 등 60여 명이 있습니다.  고양태고사 원증국사탑(高陽太古寺 圓證國師塔) -보물 제749호-  보월승공탑(寶月昇空塔)  고양태고사 원증국사탑(高陽太古寺 圓證國師塔) 안내문 「고려 후기의 승려인 원증국사 보우(普愚 1301~1382)의 사리탑(舍利塔)이다. 보우의 법호는 태고(太古)이며, 왕사ㆍ국사를 거쳐 82세로 입적하자 이곳에 사리탑 을 세우고 탑이름을 '보월승공(寶月昇空)이라 하여 영골(靈骨)을 모셨다. 사리는 이곳만이 아니라 양산사(陽山寺)ㆍ사나사(舍那斯)ㆍ청송사(靑松寺) 등에 나 누어 봉안하였다. 이에 보우의 또 다른 사리탑이 경기도 양평의 사나사(舍那寺)에 있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ㆍ관리되고 있다. 원증국사탑의 형태는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로 탑신(塔身)을 올린 후 도특 한 모습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원형 탑신 몸돌은 위쪽이 좁아져서 지붕돌 밑면에 들어맞게 되어 있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의 건립이 1385년(우왕 11년)이므로 이 사 리탑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의 모습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에 대하여 《전통사찰총서》의 설명을 옮겨 봅니다. 「건축수법은 먼저 크고 긴 돌로써 네모진 석단(石壇)을 넓게 만들어 탑전(塔殿)을 만들고, 그 중앙에 다시 네모꼴의 구획을 마련하고 그 위에 탑을 세웠다. 탑은 일반적인 부도와 마찬가지로 기단부(基壇部)ㆍ탑신부(塔身部)ㆍ상륜부(相輪部) 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기단부 역시 다시 상대ㆍ중대ㆍ하대로 나누어진다.」  하대석(下臺石), 중대석(中臺石)과 상대석(上臺石) 부분 「하대석은 네모진 형태인데 위에 복련(伏蓮)이 조각되었으며, 중대석은 팔각이고 각 면마다 꽃무늬를 장식했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대칭으로 앙련(仰蓮)을 조각했다.」  탑신부(塔身部) 「상대석은 앙련(仰蓮이) 조각되었는데 그 위에 석종형(石鐘形)의 탑신(塔身)이 받혀 져 있다. 탑신에는 아무 조각도 없다.」  옥개석(屋蓋石)과 상륜부(相輪部) 모습 「옥개석(屋蓋石)은 팔각이며 추녀가 수평에 가깝게 처리되었고 낙수면도 기울기가 매우 완만하다. 옥개석 위에는 상륜부가 보륜(寶輪)ㆍ보개(寶蓋)ㆍ보주(寶珠)의 차 례로 구성되어 있다. 또 보개 위 맨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있는 받침돌이 하나 놓 여 있고 다시 그 위에 연꽃이 새겨진 네모진 돌이 올려져 있다.」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의 정면 모습 「전체적으로 부도치고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면서 기단부와 탑신부 각각 구성이 적당하게 어울려 있어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반면에 기단부에 비해 탑신과 옥개를 비롯한 탑신부가 너무 커 전체 비례는 다소 맞지 않다는 느낌은 있다. 각부의 세부 조각은 매우 섬세한 편이다.」 이상으로 원증국사탑을 감상하고 물러났습니다. 양평 사나사에 원증국사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니 언젠가 사나사를 한번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려오다가 담은 대웅보전과 원증국사탑비의 뒷모습입니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풍광이 멋집니다. 앞의 우측은 종무소와 요사이고 귀룽나무와 해우소도 보이고 멀리는 의상능선도 보입 니다. 음 3월 20일 경이면 귀룽나무에 백설같은 꽃이 핀다 하니 법우님들과 다시 한 번 노적사를 순례할 때 이곳으로 안내를 해 보고자 합니다. 태고사의 전각은 단출하나 이곳에 얽힌 태고 보우국사의 향훈을 의미하면 더없이 의 미 있는 사찰입니다. 다음은 노적사로 향하고자 11시 12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김사합니다. 백우 _()_ _(())_ |
첫댓글 오랫만에 들렀는데 불사를 많이 했더군요.
절 분위기는 좀 삭막했습니다. _()_
날씨가 스산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찾는 이 하나 없고...

날 다시 또 가면 차 한 잔 청해 봅시다. 


_()_ _(())_
귀룽나무에 꽃이 활짝필무렵 가보고 싶어집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_()_
그때 한 번 갔으면 합니다. 남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우선 노적사를 참배한 다음,
사와 태고사를 거쳐, 대남문으로 올라가면 좋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_()_ _(())_
중
즐감하고 갑니다. 다음 산행 때는 필히 함께~~ 양평 사나사 참배도 기대 됩니다....나무묘법연화경()()()
그러지요. 여건이 맞으면 함께하겠습니다. 양평 사나사는 말만 들었을 뿐 미답지라 가고 싶은 곳입니다.


_()_ _(())_
그대 함께 가시지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가 보셨나요

피는 봄에 다시 가 보려고 합니다. 
_()_ _(())_
태고사라는 이름이너무 많네요
대둔산 태고사도 기억나네요
거기옛날잠시 행자생활하던곳
태고 스님게서 머무시던 곳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_()_ _(())_
대둔산 태고사는 그 언저리까지는 갔는데 여건이 맞지 않아서 못 가 본 곳입니다.
꼭 가고자 하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거기서 행자생활을 했군요. 법주사라고 하지 않았나요
원증국사의 탑비 하단부 비문 마모는 아마도 오랜 세월 눈 비로 이수가 가리지 못한
_()_
하단부 마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나 합니다. 태고사 순례기 잘 봤습니다.
아마도 비각이 세워진 것은 얼마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음에 순례할 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_()_ _(())_
감사합니다.
법주사에서 인연안되서태고사 또인연이 안되어서여수 달마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