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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가마귀의 깃털 모양은 이 작품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통하는 비주얼 장치다. 필자 제공 |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대척점에 살리에리가 있듯이, 에드거 앨런 포의 극적인 삶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기 위해 경쟁자이자 비평가였던 그리스월드 목사가 등장한다. |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라는 그룹이 있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팀원은 영국의 두 젊은 음악가, 앨런 파슨스와 작곡가
에릭 울프슨이다. 음악적으로 의기투합한 두 젊은이는 그들의 첫 음반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과 이야기가 담긴
1975년 앨범 ‘상상과 미스터리의 이야기들(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이었다. 전 세계로 800만 장 이상
팔려나가며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린 명반이다. 프로젝트 그룹의 해체 이후 에릭 울프슨은 뮤지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심리학자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이디아나’,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이야기를 다룬 ‘가우디’,
그리고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겜블러’ 등이 있다.
한 시대 풍미한 작곡가 에릭 울프슨이 음악
작업
우리나라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도 에릭 울프슨이 음악을 만든 작품이다. 음악 대부분이 그가
2003년 발표했던 음반 ‘모어 테일즈 오브 미스터리 앤 이매지네이션’을 활용하고 있다. 에릭 울프슨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생전에 정식
무대 버전으로까진 만들어지지 못했으나, 2009년 독일에서 에드거 앨런 포의 서거 200주년을 기념해 뮤지컬이 첫선을 보이게 됐고, 다시
우리나라 제작사가 이 작품의 판권을 획득해 우리말 무대가 꾸며지게 됐다.
‘미국의 셰익스피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는 겨우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였다.
포는 1809년 1월 19일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출과 두 살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숙부에게 입양되는 등 그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치 못했다. 1826년 포는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했는데
어린 나이에 도박과 술에 빠지게 됐고, 화가 난 숙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 결국 입학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만다. 1833년
발표한 ‘병 속의 수기’가 관심을 끌고 그로 인해 37년까지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되지만, 여전히 폭음과 빈곤한 삶을
벗어나진 못했다.
1835년 스물여섯이 된 포는 열세 살짜리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한다. 짧은 행복의 시기에 그는 ‘어셔가의
몰락’이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등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가 신혼이었던 때가 바로 미국의 대공황시대였고, 궁핍한 결혼 생활 중 버지니아는 병을
앓기 시작해 가난과 결핵으로 고통을 겪다가 5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유명한 시 ‘애너벨 리’는 바로 버지니아의 죽음을 둘러싼 작가의
개인적 아픔이 투영된 것이다.
역시 1945년 발표된 그의 대표작 ‘갈가마귀’도 작가의 비극적인 삶을 떠올리면 더욱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 포는 마지막 죽음조차 처절할 정도로 비극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생애의 마지막에 알코올중독과 행려병자의 모습, 그리고 정신착란에 둘러싸인 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포’의 삶과 죽음, 극적으로 보여주는 무대
연출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이고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친절하기보다 압축되고 함축적인, 마치 그가 쓴 시를 연상케 하는 극 전개로 대중성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히 갈리지만, 포의 비극적이고 처절했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비범함이라는 극적 대비를 적절한 무대장치와 상징적 이미지, 노래들을 통해 잘 구현해내고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에 나오는 탐정 뒤팽으로 훗날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탄생에 영감을 주었고, 도스토옙스키나
프랑스 파리의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그의 작품세계를 염두에 두고 공연장을 찾는다면 더욱 가슴 찡한 감동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대중적이라기보다 다소 난해하면서도 예술성이 강조된 작품이지만,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정상급 배우들의 활약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주인공인 포 역으로는 마이클 리와 김동완, 최재림 등이 등장하고 있고, 포를
시기하는 평론가 그리스월드 목사 역으로는 최수형, 윤형렬, 정상윤 등 가창력을 인정받은 인기 뮤지컬 배우들이 무대에 나온다.
이
뮤지컬의 상징적 이미지는 깃털이 달린 펜이다. 마치 새의 몸에서 빠져나온 듯한 깃털 혹은 희미한 그림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퇴폐적이면서
비극적이었던 포의 인생을 상징한다. 이 이미지는 커다란 무대장치를 통해 끊임없이 몽환적인 이미지로 활용되며 객석의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그의 시 ‘갈가마귀’를 읽고 무대를 감상하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얻게 되는 무대 위의 비주얼이다. 꼭 영문학도가 아니더라도 무대에서
경험해보면 좋을 예술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뮤지컬 작품이다.
에드거 앨런 포 감상 TIP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를 통해 즐겨라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특유의 선율과 분위기가 가득하다. 규칙적인 드럼 소리와 신시사이저
소리는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생생하다.
앨범을 구해보자
더 후의 ‘토미’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처럼, 앨범이 이미 무대적 구상을 담고
있다. 뮤지컬을 보고 음반을 들으면 머릿속에 입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에드거 앨런 포를
알자
그의 작품을 읽고 작품을 감상하면 감동은 몇 배로 늘어난다. 소설이 부담스럽다면 시를 읽고 공연장을 찾아보자.
특히, ‘갈가마귀’ ‘애너벨 리’는 필수다.
<원종원 교수/뮤지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