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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 그대
상주에서 오란다
慶尙道는 慶州府와 尙州牧의 첫 글자
그래서 상주는 일찍 웅부였다.
옛 사벌주인 상주
후삼국의 영웅 견훤이 어릴 적
늑대가 젖을 먹였다는 일화의 고장
거기 가서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자
예천 용궁에서 갈라지는 상주문화권
이웃이면서 막상 잘 모르는 곳
그러나 婚脈 世誼 아직도 이어지는 그 곳
거기 오작당에 벗이 있어
參商之歎 풀려고 보잔다.
그대 君子
氷炭은 寒熱처럼 서로 상극인데
盛暑에는 隆寒을 생각하고
雪冬 때는 熱夏를 바라나니
人情이 每每如是 하도다
오늘은 三伏의 더운 날
動扇濁足의 계절
장마가 걱정되나
매미 소리 들리겠지
오작당의 외진 정자
그 앞에 淸淨溪流
오가는 이 별반없어 멱 감기 좋단다
오라는 데는 가야지
오작당의 음식범절
湯肉蔬菜 안주하고
웃고 떠들며 술로서 洗心하고
가는 세월 잡아보자
不亦悅乎 그대 君子
○ 2011. 7. 28. 조완희씨 초청 모임
參席: 강백기 강신중 권 규 권영기 권창룡 권혁태 김백용 김종국
김종길 김종헌 김창회 김호준 김호철 류근하 류일곤 류종환
류중대 박기신 박종우 박찬혁 성기호 심재오 이동과 이동수
이방수 이병하 이 부 이상필 이상호 이원휘 이원흥 이재운
이필주 이항증 장동수 정춘목 정해창 최진돈 황의석
류정하 변재환 고수현 류회붕 류완성 송만수 김호문
訪: 상주 悟昨堂
君子 그대
樹木이 자라면서
울울창창 숲 되어도
바탕은 떡잎이요
濫觴之水 모여흘러
長江大河 도도해도
새암이 根源일세
根本은 미약해도
風霜年輪 쌓인 나무
그늘이 두터웁고
百川收納 滄溟 또 한
넓고도 깊으도다
사람도 이같아야
熱成의 세월인양
잡힌 주름 골이 되어
率性智慧 폭이 넓고
마음은 바다 같아
오지랖이 넉넉토다
尙州의 養眞堂은
豊城趙門 古宅이라
길게 누운 甲長山東麓에
悟昨堂이 같이 한다
別院樓亭 수려하며
古木이 늘어서고
思泉에서 솟은 물은
長川되어 흐르도다
流水發源 샘물이요
삶의 根源 조상인데
祖先思慕 後人善導
思泉長川 뜻이었다.
그대 君子”
지난 7월 28일 상주의 오작당 會同 때는 얼마나 더웠든지, 伏中 더위 처음인듯 마음
이 간사했다.
등걸 걸친 초간종손(권영기)씨 만 한복 맵씨가 온전했으나 모두들 갗춰입은 모시옷이
땀에 젖어 들붙었다.
올 여름은 나날이 비가 내려 서울쪽도 심했는데,
그 날은 아침나절 뻔하길레 안동포 중의적삼과 모시 소두렁이
차려 입고 나서는데 웬걸 아래층 마당에 황토물이 흥건했다.
황당하여 다시 막옷으로 갈아 입고 아이 등에 업혀 큰길까지 나셨다.
그런데 嶺의 남녘은 활짝 개인 날씨에 복중 더위가 대단했다.
양진당의 사당 참배 때는 입은 옷이 가당찮아 남부끄러워 망설이는데
君振(김종길 씨)이 내꼴 보고 “그만 됐네 들어가셰” 하는 말에
엉거주춤 전진하여 알묘를 마쳤다.
양짐당은 규묘도 컸지만 여늬 종택과 달라서 2층 누대로 지은 것이 특색이
었다. 그옆 오작당은 주손이 조정희 씨였다.
이 집은 일찍 임난 때 의병을 창의 하였던 黔澗公(趙 靖:1555~1636.贈 吏曹參判)
께서 1601년 繞浦에 세워서 양진당 건립 이전의 종가였으나, 증손 되는 立齋(趙
大胤)께서 이곳 思泉에 이건한 후 사천파의 종택이 되었다.
이번 모임은 바로 오작당 주손의 계씨인 조완희 씨의 주선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 완희 씨가 우리 모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참석해 줄 것을 부탁한 결과
그렇게 많이 모였다고 생각한다.
세월에 장사 없듯이 해가 갈수록 조금씩 변모하는 망년지우들이 그기 모였다.
오작당의 주손 형제분이 안팍으로 무더운 날씨에 애를 쓰는 모습 미안스러운데
주손께서서는 혹여 대접에 실수라도 있을까 바 치념이 대단했다.
특히 인동의 而明(장동수씨)이 하루 먼저 동행하여 옥류정 구석구석 청소를
거들고 당일에도 그집 식구처럼 구슬땀을 흘리며 함께 일하는 모양 보기에
놀랍고 서로간의 친분을 생각하게 했다. 오작당 방문 때 증편, 별식등 음식
범절은 안주인의 안목이며 옥류정 회식 접대도 정성이 깃들었다.
서산에 해 기울면 귀소본능이 작동하는지 언제나 그랬듯이 그날도 당일
回程 여럿 있었으나 酒席은 새볔까지 이어졌다.
그 중에 益汝(류중대 씨)가 대취하여 고성객기 청년같아 그 기운이 부러웠고,
대꼬쟁이처럼 않아서 밤을 세운 命宰(이동과 씨)는 다음날 대구 所看事를
잘 보았는지 궁금했다.
今年의 君子會同은 상주의 오작당에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밝고 푸근한
가운데 묻어나는 인정 느끼면서 그 막을 내렸다.
내년부터는 主客이 모두 지치고 마는 한여름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더위에 수고한 오작당 내당에 우리의정성을 전했으며
○ 춘양의 권진사댁과 갈암종택,송소고택 그리고 정부락 씨에게 기념패를 드렸다.
○ 이동수씨의 부친상을 뒤늦 알게 되어 조의가 소흘했던 점 죄송하고
○ 강백기 씨댁 혼사도 있었다.
○ 향산 이만도 자정순국 100주년 기념 뮤지컬 「 락-나라를 아느냐」 특별
공연이 국회의사당의 한옥 사랑제에서, 국회사무총장과 매일신문사장 초청으로
박희태 국회의장과 많은 내빈의 참석하에 성황을 이뤘다.(2011년 9월 7일 저녁)
李 晩 燾 1842(헌종8년)~1910년(융희4년)
조선 고종 때의 학자. 자는 觀必, 호는 響山, 본관은 眞城, 1866년(고종3)
문과에 급제, 成均館典籍, 正言, 校理, 應敎, 司諫, 執義등등을 역임.
1894년(고종31) 갑오경장을 반대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 때 5賊臣의
매국죄를 논하는 소를 올렸으며, 1910년 한일합방 때 24일간 단식하고
순국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 참석자 명단의 이 부 씨가 주손이며 증손자이다.
◆弔 文◆
君子 그대 어디로 가는가
-俊游 勝友 (金俊植) 를 보내며
金俊植 91938~2011) 字는 應順 본관은 光山 성균관대 사학과 졸업,
역임(한국학진흥원 자문위원,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이사, 안동문화원장.
수상(2009년 옥관문화훈장, 경북자랑스런 도민상)
광산김씨 예안파 18대 종손(후조당 종가)
嗚呼라, 이래서야 사람 사는 것이 어찌 산다고 할 수 있으리요. 그래서
한 세상 살다 보니 삶이 별 게 아니라고들 한다. 억천만 겁 歲月 속에 暫時
暫間 머물다가는 過客 같은 人生!
그 삶에서 겪는 榮枯盛衰와 生老病死의 無常함이여...
마음까지 축축하게 적시며 그칠줄 모르는 지루장마 빗소리 窓틈으로 스미는
데, 하늘의 變怪로다 하고 일시 생각이 흐트러질 때 문득 요란한 전화 소리
에 감짝 놀라 받고 보니 甲峴 懼夫(權赫泰)로부터 응순 別世訃音하나니, 순간
멍한 가운데 시간이 멎었도다.
傷念에 젖어 벽도 쳐보고 대중없이 서성거리다가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나 時間이 흘렀는지 애써 傷心을 추스르고 책상 앞에 앉아 그대를 생각
하노라.
오호, 슬프도다 응순이여! 그대 정녕 넘나들 수 없는 곳으로 떠났는가,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제 여기 벗들에게 남게 된 것은 대화 중에 그대 떠오르거나 더러 생각나
는 片想뿐일세. 이것이 死別後의 별 수 없는 세상인심이로다.
지난 6월 21일 義城丹厓의 朴誠之, 奉化海底의 金穆應, 永川甲峴의 權懼夫 그
리고 安東朴谷 柳乾應과 함께 그대 문병 갔을 때만 해도 內心 걱정은 무거
웠으나 이다지도 빨리삶의 끈을 놓아버릴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생각해 보니 작년 여름 갈암종택에서 밤을 지세워 논 것이 절정인듯,
그대 열창과 재담이 좌중을 압도했거늘, 아- 이제는 한낱 추억으로 남겠지!
올 봄 4월 송소고택 회동시에 그대 왈,
必佑(金宗九)가 아프다카이께네 내가 덩달아 아프다고 흘린 것을 追友江南
농담으로 웃어 넘겼는데 이렇듯 弄假成眞되어 俊游勝友 그대를 보낼줄이야...
嗚呼 참으로 애석하도다. 다만 그때 함께 찍은 사진속에 더는 늙지 않을
그대 모습 남아있네.
大自然속에 포함된 작은 人間이 언어와 문자로 소통하는 高貴한 존재
로서 자연과 또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며 思惟의능력으로 宇宙의 신비를 벗
기고 神의 영역까지 넘보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비록 가공스러우나 막상 死
別의 문제만은 극복 할 수 없었도다.
君子 그대 응순이여, 부모한테 받은 그대 목숨, 한세상 잘 살었으나 이제 시
위 떠난 화살되어 어디론가 사라진 후, 비록 빛 바랜 나이지만 늙음조차도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 우리들이 점점 위축되고 초라해 지는도다.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인데 괜한 망령이겠지!
20년 전 신미(1991년) 정월 그대 생가 계씨인 효직(충식)을 빼앗기듯 놓쳤을
때 한갖 淺識短筆을 놀려 知己 잃은 記情을 표했는데, 오늘 그의 伯兄인 그
대가 떠난 뒷글 조차 쓰게 되다니 참으로 서글픈 인연이로다.
사람 사는 곳에 언제나 만남과 이별이 있나니 다 부질없는 넉두리 같아서
이쯤하고, 한 수 노래를 읊어 그대와 永訣를 告하노라.
첫 방문인 그때
그대집 사랑에 초석이 깔렸다
그대 先丈과 저만큼 마주서서
어른께서 정중하시고
청년은 공손하게
초대면 절을 나누나니
이것은 자식 벗을 貴히 여기는
法家의 온당한 격식이었다.
바로 그집 그대집은
先烏川 後君子里의
光金 後凋堂宗宅이요
그대는 선택된 宗統이었다.
남 부러운 그 자리
代를 이어 애 쓴 흔적
군자리에 완연한데
古宅은 장중하고 新築은 윤이 나네
거기 댓돌에 이끼 끼고
그대 체취 풍겨난다.
평소에 時中之道
明哲保身 군자생활
허물이 비켜갔다.
그만하면 할 일 다한 듯이
그대 훌쩍 떠나가니
고택마을 숨 죽이고
얼굴들도 그늘진다.
평소에 豪酒하여
감정이 넘쳐나면
노래는 늘 즐겁고
재담 해학 곁드리며
웃음소리 끝이 없다.
손이 들면 술상부터 나오고
술없는 모임은 없었다.
저녁나절 술시되면
인음증이 발동하여
누굴 불러서도 마시나니
어쩌다 혼자되면
반주는 당연하고.
남의 걱정 들으면서
술마시며 얘기하고
친구가 찾아오면
얘기하며 술마신다.
이덧, 즐기는 척 좋아하며
시름을 덜어 낼 때
속에는 거은 것이 쌓이는데
병원은 가기 싫고
설마 태평 지내다가
필경, 이 지경이 되었구나
지극히 슬프면 눈물이 없어지고
크게 슬프면 눈물이 없어지고
크게 원통하면 말을 잃고 마나니
이는 斷腸가족 심정일따.
지금
塵世의 뜬 구름이 비가 되어
하염없이 내리는데
그대 부음 들은 벗들
생사의 허무함을 빗속인양씻으리라
그대 君子
이제 永劫의 꿈을 꾸소서.
辛卯 8月 16日
벗들 代筆 李某 哭挽
○ 의성 김씨 사빈서원 복설중창 낙성식 때 김종구 씨가 경과보고를 했다는
말을 듣고, 內心으로 아픈 사람치고는 어지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난 달 중순쯤 통화시에 생기있는 음성을 듣고 많이 좋아진
감은 느꼈다. 그때 그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했다.
- 항암치료라는 게 고약스런 모양인데, 안그래도 독두인 자네가 낭패났네
- 야 이사람아 말도 어디 머리뿐인가, 전신에 털이란 털은 다 빠져 뿌렸네.
뭘 연상했을까. 그 말 끝에 둘이서 한참동안 크게 웃었다. 웃으니까 좋았
지만 소세포성 페암이란 그의 병을 그는 식구처럼 안고 살아야 될듯 했다.
응순을 보내고 난 후 솥뚜껑 보고 놀란격이 됐다.
君子 그대
툇마루에 나앉으면
아직 서성거리는 老炎이 따갑다.
아침 저녁
西風은 나뭇끝에 서늘하고
머뭇머뭇 늦더위 끝자락이 겹친다.
종일 자지라지던
窓外寒蟬소리 잦아들 때
후원황율도 기다린듯 갈라터진다.
길게 뽑은 가녀린 목
하늘하늘 코스모스
자연의 몸짓 같고
청명하늘 드높아
마음까지 상활하니
우주숨결 신비롭다.
梧桐落葉 못 보아도
군자 그대, 天下가을 알리로다.
그대 군자
일년에 한 번, 그 만남이 너무 멀어
만날 핑개 만든 것이 바둑 두는 자리로다.
棋枰上에 圍棋妙算 하루해를 즐겨보자.
○ 초청일시: 금월(10월) 25일 화요일 오전10시
○ 장 소 : 을지로4가 대림상가453-1호 (진성이씨서울화수회)
※ 바둑판은 상계의 섬人 이동승 교수가 협찬하기로 했으며 사무실을
확장(45평) 하여 씨름을 해도 될 정도임
○ 당일회비:50.000 원(식대.경비.우승기념패와상금으로씀)
※ 늦어도 20일까지는 참여여부를 알려줘야 준비에 차질이 없겠음
○ 심판: 김호준 진행 :류일곤
※ 우승 : 권석장(우승패및 상금 전달)
悟 逸 齋 에서 逸 窩 趙 완 熙 옮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