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당 박정례
포덕 73년(1932) 경남 남해 출생
부산시지부 순회교사
부산시지부 여성회장
"정성이 없으면
안 들리고 안 잡히지요"
열여덟에 시집을 오니까 시아버지 혼자 천도교에 다니셔서 열 나도 한번 가 보았더니,
대학교수 같은 지식인이나 나 같이 못 배운 사람도 한 자리에서 도를 배울 수 있는 게 너무 좋대요.
다른 사람들 보니까 나도 빨리 배워서 저 자리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나는 한글 한자 안 배워서 모를 때니 까 누가 주문을 외우라고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떻게 하라는 심고문도 모르고 무조건 다닌 기라.
그 당시 묵암 #신용구 선생님께서 순회를 오시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마치 큰 명절 같이 그럴 때
나는 "나도 마흔 살만 되면 선생님처럼 되게 해 달라고 심고문을 지었어요. 베를 짜서 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베를 짜다가 교회에 너무 가고 싶어서 시일식을 보러 가면 시어머니께서 시아버지한테 역정을 내시는데 시아버지께서는 무조건 내편이 되어 주시는 것이 너무 좋았고.
입교도 안하고 이래 쭉 다니기만 하다가 우이동에서 수련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한 번 가 볼려고 날을 잡았는데,
남편이 외항선을 탔었는데 배가 입항한다는 소식이 왔는 기라
그래, 딱 사흘만 수련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됐어요 ·
그 때는 밤을 새워서 여섯 시간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가야 하는데
간밤에 비가 너 무 많이 와서 철길이 다 끊어져 버렸는데 다행히도 나는 서울에 무사히 도착한 후였으니 신기하지요. . .
이리 저리 어떻게 겨우 우이동으로 찾아들어 갔어요.
나는 그 때 천도교에 미치기만 미쳤지, 천도교가 무엇인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정도였지요.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하니까 그저 잘 하는 줄만 알았고,
오관실행은 밥을 먹고 반찬을 안 먹으면 안 되는 것처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여기서 다시 그 무엇을 못 얻어 가면 나는 다시는 천도교를 안 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잤다고
그런데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서 너무 답답한 기라 ·
그래도 천천히 조심조심 말을 들어보니까
그 당시 #이영복 교령님이 뭐라 하나 하면
'출퇴근 시간이 1시간쯤 걸리는데 그 시간에 경전을 얼마 씩 보신다' 고 강의를 하시더라고 ·
그럼, 나는 경전을 하루에 한 번도 안 보는데 나도 그렇게 하기로 하고,
또 #임운길 교화관장님이 주문을 입에서 안 떨어지게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그땐 나는 염념불망도 몰랐지요 ·
오 , 그럼 나는 하루에 저녁 청수 모실 때 105회 밖에 안 했는데 이것도 하나 얻었고,
또 어떤 분이 말하기를 '일을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두지 말고 그대로 계속 쉬지 말고 하라' 고 하는데,
나는 무슨 일이나 한 달쯤 하게 되면 그쳐버리는 기라. ·
남해에서 일을 재미나게 할 때는 장독을 반짝반짝 깨끗하게 잘 닦다가도 어느 정도 지나게 되면 안 씻고 그러더라고 ·
그래, 이번 기회에 세 가지 할 일을 찾게 된거라.
일을 시작하면 언제까지 계속 하는 것,
주문이 입에서 안 떨어지는 것,
경전을 봐야 되는 것,
이 세 가지를 찾았으니까 이제 됐다 싶어서
교화관장님한테 "나는 이번에 아무것도 못 얻어 가면 천도교를 안 할려고 왔는데 이 세 가지를 하면 되겠습니까?" 했더니
그런 것이 다 수련 과정이니 놓치지 말고 나아가면 된다. 그러시더라고.
그 다음에 용담정에서 수련할 때 또 교화관장님께서 오셨는데,
수련실 액자에 있는 글을 다 적어서 옆에다 토를 달아 달라고 했더니 토를 다 달아 주셨어요.
그 때는 다행히 내 이름 정도는 쓸 줄 알았는기라.
또 어떤 액자에 한문글자가 있는데
열세살 때 배운 큰 대(大)자하고 그 밑에 하늘 천(天) 자가 있어서 글자를 세어보니 스물한자라
아! 저게 주문인가 보다. 내일 모레 교역자 수련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배워야 되겠다.그러면 지기금지 네 자하고 옛날에 알고 있던 두 자(大,天)하고, 열 다섯자를 이틀 동안 배워야지, 했단 말이네. 천도교와서 글을 배우니 그기 좋더라고.
또 한참 #월산 선생님 모시고 이백 명씩 용담에서 수련할 때
#이소원 사모님이 양손에 염주를 들고 이래저래 돌리고 해서
지금 뭐하냐 했더니 주문 삼만 독을 한다 카더라고.
옛날에 의암성사님도 삼만 독을 하셨다는데, 그래, 나도 이틀을 같이 같이 다니면서 따라 해보니까 할 수 있겠다 싶대.
그기 뭐이가 좋은가 하믄
어떤 사람을 꼭 만나려고 새벽에 그 집에 갔는데 그 사람이 나가서 저녁에야 온다고 하는 기라.
이럴 때 기다리면서 주문을 외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기다리는 시간도 너무 좋더라고.
주문 삼만독 할려면 하루가 다 걸리는데 온전히 주문만 외울 수 있으니 야, 이 시간 좋다 하고.
또 뭐이 좋은가 하면 옛날에 총부에 갈 때 밤 열한시 기차를 타면 다음날 아침에 서울에 도착하는데,
한 번은 나 혼자 밤 열 한 시 사십 분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한 30분 지났을까 싶은데 할머니 한 분이 이웃집 가는 차림으로 내 옆에 와서 서시는 기라.
내가 염주를 큰 것, 작은 것 두 개를 들고 주문을 외우고 있을 때라서
이 기 한울님 시험인가 싶으니 주문 값을 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 자리에 얼른 앉혀드리고,
또 중간쯤 오다가 그 할머니가 내리시길래 이제는 내가 앉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니까 할아버지가 한 분이 또 앉았어.
그런데도 그 주문 값 하느라고 밤새도록 여섯 시간을 서서 와도 마음이 좋은거.
제일 힘들다 싶을 때 주문이 너무 좋더라고.
우리 부산시교구는 그 때만 해도 수련을 별로 안 했거든.
밖에서 볼 때는 수련을 참 잘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 했어요.
그래서 화악산에 수련을 가서 한울님 말씀을 바로 듣자 해서 수련을 갔어요.
그런데 수련을 가 보니까 엄마들이 집을 떠나서는 도저히 할 일이 안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수련을 안하면 천도교를 못 할 것 같아서 생각해 보니까,
말하자면 나물에 양념을 다 갖추어 놓고 맛있게 무쳐야 하는데,
그럴 때 손에 묻을까 봐 젓가락으로 무친 반찬하고 손으로 직접 맛있게 무친 반찬 맛이 차이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교인이라도 수련을 하고 안 하고는 많은 차이가 나는 기라.
그렇게 되니까 어찌 됐거나 엄마들이 수련을 가야 되겠는데 집을 떠나서는 갈 수가 없으니까
교구에서 시작한 것이 한 20년 넘게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내 생각에는 포태하기 전에 어머니가 천도교에 미쳐야 되겠더라고.
아빠, 엄마 둘 다 미쳐야지,
어느 한 사람만 미치고 한 사람은 그저 따라다니믄
그 사람은 겉으로는 다 된 것 같지만
만약 자식이 나서 천도교에 미친 부모를 닮으면 다행인데
그저 따라 하는 쪽을 닮으면
조금 하다가 나중에는 안 하게 되드라구.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천도교 수련은 애기를 가지기 전부터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두 살, 세살 되고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이라.
혼자 텔레비전 볼 때가 되면 교회에 데리고 와도 가기 싫은데 왔다고, 오면서 내내 짜증을 부리고 .
그러다가 학교 갈 때 되면 숙제 있다고 꼼짝 못 하고
그러다 보면 때를 놓치고 만다고.
그러니까 그 시기를 놓치지 말고 부모가 열심히 해야 되는 기라
그래서 내 마음은 이래 싶으지.
들이나 논에 나가면 자기가 심은 나무나 곡식이 자기 육신하고 같이 커야 그기 보람이지.
그걸 어떻게 하느냐 하면 주문을 숨쉬듯이 해야 되고,
고등학 교 3학년짜리가 죽을 판 살 판 공부를 하는 것 맨치로
우리도 수도를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렇지 않고 대충 하다 보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격이 되는 기라.
왜냐하면 대학원서를 옛날에 학생이 60명일 때 해 보니까 29등까지도 야간 원서를 써 주는데
나머지는 야간도 안 써 주더라고.
그 나머지는 남 좋은 일만 하 게 되는 거지. 그렇게 되니까 될 수 있으면 현재 고3처럼 우리도 열심히 하자, 이거지.
나는 신앙 생활은 본래 잘 모르니까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하자는 것뿐이라.
하루를 치면 잠 깨면 3시에 일어나 수련하고 하루세 번 기도식 하는 것은 밥 먹는 것과 똑같이 해야 되는 기라.
수련을 해 보니까 세상 사람과는 달리 집안 일은 객이 되고 교회 일이 주가 되어서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더라고.
우리 교구에서 매월 첫째 토요일에 철야 수련을 8년6개월을 했는 기라.
용담정에서 수련할 때
마침 교구에서 하는 철야 수련 기간이라서 용담정에 올라가서 철야 수련을 하고 있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그때부터 첫째, 둘째 토요일만 8시부터 11시까지만 수련하기로 바꾸었다고
꼭 하고 싶은 사람은 9시에 와서 기도식 하고, 1시간이라도 수련을 하면
한울님께서 그 정성을 봐서 10시간 한 것만큼 복을 주실 것 같은데
아직은 그런 사람 들이 적어.
내 욕심 같으면 자기가 밥을 해서 먹을려고 했으면 좋겠는데
항상 남이 차려 놓으면 먹는 정도인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다 내 욕심이지 그게.
한울님이 어느 정도 간섭을 하냐 하면
할아버지가 손자가 넘어질까 봐 등 뒤에서 따라다니는 것처럼
한울님은 우리들에게 잘 해 줄려고 애쓰는데,
정성이 없으면 안 들리고 손에도 안 잡히니까
최선을 다해 나가자 그랬어요.
왜냐하면 그 방안에 있으면 함께 있으니까
부모님 말씀이 잘 들리지만 밖에 있으면 잘 들리지 않으니까
될 수 있으면 그 안에서 떨어지지 말고 열심히 하고 살자 그러지요
병원에 입원 하면 돈도 들고 다른 사람도 고생을 시키는데
수련을 갔다 오면 혼자만 노력하면 새 사람 되어서 만나니까 얼마나 좋나 말이야
어쨌든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본다고
■ 구술일:포덕 145년(2004년)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