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옆 호텔이냐, 학교 옆 시민공원이냐. 서울 종로구 송현동 49-1 옛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터의 미래 모습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건축계가 구체적 대안을 내놔 관심을 모으고 있다.
3만 6642㎡에 달하는 부지를 공공시설로 활용하자며 소유주인 대한항공에 다양한 모델을 제시해온 김원(70) (주)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29일 “종로구청사를 신축한 뒤 그 마당을 미술관과 조각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하자”는 개발안을 내놨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2011년 “구청 부지와 맞바꾼 뒤 한옥 청사를 짓고 문화공간을 확충하겠다”며 내놓은 방안에서 한층 진전된 제안이다. 오는 11월 13일 개관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연결되는 ‘열린 미술관’이자 도심 속 녹지 공원이다.
김 대표는 “시민들이 안국동 전철역에서 걸어서 구청 마당을 지나 미술관까지 가는 동안 숲 속 길을 걷고 자연스레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정독도서관이 나오고 백남준문화재단이 이어지니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처럼 미술관과 도서관이 같은 공간에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대한항공 쪽 의견은 다르다. 2008년 12월 이 땅을 매입한 뒤 서울을 대표할 만한 호텔 건립을 추진해온 대한항공은 “사유지를 놓고 그 용도를 이러라 저러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지으려면 교육청 산하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법령 탓에 지난 5년 여 서울중부교육청과 법정 다툼을 벌여온 대한항공은 대법원에서 패소한 뒤 “앞으로 법이 개정돼 호텔 신축이 허용되면 종로구,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지상 4층 150실 규모의 숙박시설을 지을 것”이라고 장기 계획을 밝혔다. 권욱민 대한항공 홍보실 팀장은 “호텔 외에도 시민들을 위한 문화시설을 함께 지어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5일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 ‘송현 지키기, 서울 지키기-송현동 미 대사관 숙소 부지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송현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역사·자연의 가치에 대한 시민들의 올바른 인식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원 대표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서울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들이 지혜를 모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자료원 중앙일보 2013년 10월30일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