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에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고 주차도 수월하게 해내서 시간이 많이 남은 김에
저녁을 먹고 공연을 보려고 찾은 음식점이 곰국시 집이었습니다
먹고 나서 공연을 다 보고나니 마침 오늘 공연이 딱 이 곰국시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후기 제목에
곰국시와 깍뚜기가 등장합니다
곰국시같이 기본기가 탄탄하고 더없이 내공깊은 국물에 쫀쫀한 면발을 자랑하는 런던심포니의 첫맛에 놀라고 끝까지 속이 편하고 포만감을 주는 명연주와
자칫 느끼해질까봐 때맞춰 입장한 깎두기처럼 유자 왕은 유려한 테크닉과 압도적인 비주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낸 다시 먹고 싶은, 아니 다시 또 보고싶은 호연이었습니다
<1부> 의 시작을 알린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은 보통 오케스트라 공연 첫곡으로 많이들 서곡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그 오케스트라가 어떤 음향을 내 줄지 가늠이 되는 편이죠
첫 프레이징부터 놀랐습니다 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오늘 저는 내내 런던 심포니 현악부에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고음현, 저음현 할 것 없이 어느 파트든 소리가 지나치게 가볍지고 무겁지도 않은 질감좋으면서 안정된 소리에 확 귀가 열렸고 다들 어찌나 열심히 보우잉을 하시는지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어요
현악부가 큰 음량에서는 온 몸을 감싸주는 듯한 폭넓은 소리도 제대로 홀에 반향되고 아주 작은 피아니시모에서도 음 하나하나가 알알이 새겨지듯이 들리는 그 섬세함에 또 놀라고.......
기대는 쭉 높아졌습니다
이제 유자 왕의 라피협 1번 차례입니다
등장부터 예상대로 시선강탈하는 그녀입니다
유자 왕의 라피협 1번에서 좋았던 것은 역시 대단한 테크닉과 리듬감으로 기량을 발휘하는 유자 왕의 연주에
런던심포니가 발판을 잘 깔아주어서 친숙하지 않은 라피협 1번이 잘 들렸다는 것이고
아쉬웠던 것은 유자 왕의 연주는 빠른 템포에서보다 느린 악장에서는 잘 집중이 안되는 것이
그녀의 한계같기도 하고 라피협 1번의 한계같기도 하고 또 저의 한계같기도 하고
확 다가오지않았습니다
제가 앉은 위치가 정확히 유자 왕의 발이 보이는 위치였는데 가보시(앞굽)가 높은 킬힐을 신고 페달을 밟는 그녀의 발이 너무 걱정스럽고 입고 있는 의상을 신경쓰기도 하는 것 같고 좀 몰입을 방해하는 면이 있어서 불호의 느낌이 좀 올라오고 있는데 어머 의외의 모습을 목격합니다 유자 왕은 빠른 템포의 일부 구간에서 리듬을 입으로 따라 부르면서 치네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애같은 표정의 그녀를 보게 되니 선입견이 사라집니다 정말 피아노치는 게 좋아서 몰입하면서 연발탄같은 타건을 날리는 그녀~ 매력이 있네요 인정!!!
다만 본인이 정한 컨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시그니처같은 폴더식 인사도 등장 퇴장할 때 뭔가 불안해보이는 모습이 어떤 아티스트인지 잘 전달되지는 않지만 그녀가 라피협 1번을 선택한 이유도 알 것 같고(그녀의 장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오늘 공연에서는 앵콜을 3곡이나 준비해 왔는데 역시 앵콜곡에서도 갈리는 것이 첫번째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는 전혀 와닿지가 않았지만 2번째, 3번째 곡에서는 그녀다운 임팩트있는 강점을 보여주면서 잘 마무리하네요
깊은 맛은 없었지만 맛있었던 깎두기 같았습니다 없었으면 좀 허전했겠죠?
인터미션이 끝나고 이제 <2부>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차례입니다
인터미션에 가만히 보니 오르간이 열리고 오르간 주자가 미리 대기하고 있는 것이 시선에 포착됩니다
실루엣이 멋있는 오르간 주자는 오르가니스트 리처드 가워스 입니다
지휘자 파파노경은 포디엄에 서자마자 바로 연주를 시작하는데요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은
2악장으로 구성되고 각 악장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1악장 1부 아다지오-알레그로 모데라도, 2부 포코 아다지오 부분에서 예습할 때 연주하는 교향악단마다 무척 다르게 들리고 느낌이 잘 안오는 악장이었는데 아 정말 런던 심포니 현악부는 제가 잘 안들렸던, 잘 공감이 안되었던 모든 부분을 해소해 줍니다 특히 현악부와 오르간이 화답하듯이 빌드업되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스미는 겁니다 이런 느낌이 들 줄 몰랐습니다 전 1악장이 너무 좋았어요
잔잔히 1악장이 끝나고
2악장 1부 알레그로 모데라도-프레스토, 2부 마에스토소-피우 알레그로-몰토 알레그로 부분에 오니
이제 런던심포니 현악부, 관악부, 타악부 전 파트가 풀 스윙합니다
파파노경은 음량조절을 기가 막히게,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조율해서 음악이 더 입체적으로 들리게 할 뿐 아니라 느린 부분, 빠른 부분의 대비가 확실하여 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각 악기군이 어디파트가 잘하고 못하고 말할 수준은 이미 넘어선, 모든 파트가 너무 잘해서 압도당했습니다.
2악장 피날레 부분에서 오르간이 와앙~ 하고 시작하면서 모든 파트가 다같이 호응하듯 덤벼드는데 아 진짜 어것이 교향곡이구나 싶었습니다. 모든 악기군이 다 자기몫의 소리를 내면서 조화도 이루고 대비도 보여주고 그리고 마침내 대장정의 피날레를 위해 질주하는 하나 된 오케스트라!!! 여태까지 들었던 오케스트라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에 그저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니...... 오는 데 들인 많은 시간과 비용 이상의 기쁨을 얻어갑니다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터져나옵니다
몇 차례의 커튼 콜 후에 파파노경이 직접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다음 앵콜이 좀 조용한 곡이니 캄다운하라고 유머있게 말하고 포레의 <파반느> 를 연주합니다 참 적절한 선곡인 것 같아요
현악부, 관악부, 하나씩 인사하듯이 나오다가 오케스트라 전체가 아름답게 홀을 감싸듯 그들의 전부을 꺼내 보여주는 듯한 앵콜곡~ 런던심포니 반갑고 좋은 연주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