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천사지 부도
현무, 용머리에 거북이 몸통을 하고 비석을 등에 지고있는 부도비를 예전에 보고왔습니다.
"왜? 현무는 거북이 몸통에 용머리를 얻었을까?, 왜 그 위에 부도비를 올렸을까?"
잘 생긴 현무의 콧구멍을 쑤셔도 보며 질문을 해봤지요.
이제 아래 글에 답이 있습니다.
비석은 법력 높은 고승이 살아 생전 뭔 일을 했나 나열 됐을 것이고
그것을 등에 지고 서있는 현무는 또 다른 고승을 기다리겠다는 미래 암시였다는 것을
한 세상살면서
쥐박이처럼 역사에 죄짓지 말고 올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무언의 압력
삶 전체가 역사입니다. 조중동에 쓰여진 문자에 속지 않으려면 쥐박이 현재 삶을 보듯
현무가 두눈 부릅뜨고 쳐다 보고 있습니다.
예전 비석이 올곧게 서있는 부도비를 보고와 찍은 사진을 올려봤습니다.
사신의 올바른 인식
강우방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우리 모두는 역사학자입니다. 아마도 역사를 가장 모르는 학자는 바로 역사학자라고 생각해 봅니다. 전적(典籍)에만 의지하는 역사학자의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문자언어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무량한 조형언어를 읽는 역사학자를 아직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체가 역사입니다."
청룡
백호
현무
주작
오행의 원리에 따르면, 봉황(鳳凰)은 赤鳳이라야 합니다. 봉황에 무슨 암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적봉이라 하면 황이 빠집니다. 그래서 만든 말이 주작(朱雀)입니다. 그런데 雀은 참새란 뜻입니다. 그래도 주작이라 하여 붉은 봉이라 인식합니다. 사람들은 주작과 봉황의 구별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왜 다른지 의문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봉황의 몸에는 청룡의 비늘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해 전 상여의 용수판(龍首板)의 목에 비늘이 있는 것을 보고 '봉황과 용을 함께 표현했다'고 생각하며 대단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좋아했었지요. 그러나 그게 아니고 '봉황 역시 용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비슷한 말 같아도 인식의 차이는 반딧불과 번개불의 차이입니다.
용은 연꽃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지요. 물을 상징하고 생명을 상징하니까요. 그래서 주작의 입에서 연꽃이 나오고, 주작의 꼬리에 연꽃이 있어서 영기에서 봉황이 화생하고 그렁 봉항의 입에서 연꽃이 나오는 연화화생의 표현원리를 보여주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용은 항상 청룡(靑龍)이라 불러야 하는데 그저 용이라 부릅니다. 사신의 개념 안에서 청룡이라 불러야 하나, 그 개념 안으로부터 끌어내어서 그저 용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백호를 그저 호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용을 청룡이라 불러야 용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백호는 항상 백호(白虎)라 부릅니다. 호라고만 부르지 않습니다. 호라고 부르지만 그 때는 이미 사신 중의 백호가 아니라 산에 사는 호랑이입니다. 조선시대 흉배의 호는 항상 백호라 부릅니다. 즉 사신 중의 백호라는 의미이며, 산에 사는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뿔만 없을 뿐이지 몸은 청룡처럼 길게 변형시키며, 몸에는 청룡의 불꽃무늬로 등 부분을 장엄합니다. 청룡 가운데는 뿔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뿔은 영물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며 기린에도 표현하고 용이라 하더라도 뿔을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뿔의 유무가 절대적 기준은 아닙니다.
현무(玄武)는 항상 현무라고 부릅니다. 흑무(黑武)라고 아니 합니다. 그윽한 의미를 띤 玄자를 씁니다. 그러면 왜 武자를 씁니까. 武는 동물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그것이 의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북방은 언제나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만리장성을 쌓았을까요. 그래서 북방의 상징을 두 마리의 용이 얽힌 역동적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용을 얽히게 하면 청룡과의 관계가 복잡해 집니다. 그래서 용의 속성을 지닌 거북이를 등장시키되 거북이 용의 속성을 지니도록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거북이의 머리를 용 머리 모양으로 하여 청룡의 모습과 어울리게 하여 가장 강력한 영기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현무에 대한 기록을 찾으려고 애 씁니다. 그러나 기록이 있을 리 없습니다. 용에 대한 기록을 믿을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기록을 너무 신뢰하면 안 됩니다. 바로 눈 앞에 생생한 조형언어로 된 기록이 있는데 왜 도서관에 가서 못 된문자기록을 찾으려고 시간을 허비하고 게다가 잘못된 기록을 찾아내고는 의기양양합니까.
다섯 해 전, 쿄토에서 심포디엄이 있었습니다. 이노우에 선생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쿄토의 가와라마치를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선생은 고개를 돌리며, 백호가 용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제 발표논문을 읽고 비로소 백호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정말 몰랐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아마도 제 이론에 동의한 분은 이노우에 선생이 처음이었고 아직까지 유일합니다. 이노우에 선생은 절감하는 듯 깊은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열린 분이지만 제 '영기화생'의 이론만은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그 분의 심정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이론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일 분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사신도에 대한 제 이론을 펼 때가 가까워 왔습니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우리 모두는 역사학자입니다. 아마도 역사를 가장 모르는 학자는 바로 역사학자라고 생각해 봅니다. 전적(典籍)에만 의지하는 역사학자의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문자언어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무량한 조형언어를 읽는 역사학자를 아직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체가 역사입니다.
* 연화화생이란 심청전을 생각하면 됩니다. 연꽃속에서 부활하여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연꽃을 부활의 의미로 사용한 이미지를 극적인 소설로 승화한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