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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윤 정 모
그녀의 호미가 지나간 자리는 바랭이, 명아주, 개망초 따위가 뿌리를 쳐들고 더부룩하게 누워 있었다. 더러는 잡풀 사이로 간신히 잎을 내민 2 년근 더덕이 호미날에 잘려 나와도 그녀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작년에 박아둔 말목은 눈비에 거의 쓰러졌고, 어쩌다 제대로 서 있는 것엔 어디서나 먼저 자라 농작물을 망치는 사광이풀이 기세좋게 줄기를 감아놓았다. 며느리배꼽으로도 불리는 그 사광이풀 가시줄기에 손이라도 찔리면 그녀는 포달지게 말목을 뽑아 아무데나 홱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던져진 말목엔 지난 가을까지 꽃을 피워낸 더덕줄기가 하얗게 말라붙었거나 거둬주지 못한 꽃씨가 말목 밑동에 제멋대로 싹을 틔워 여린 잎들이 촘촘히 엉켜 있기도 했다. 작년만 해도 꽃씨를 내버려두지 않았을 뿐더러, 혹시 새싹이 발견되면 조심스럽게 모종을 내던 그녀였다. 그런데 전에 없이 파종은커녕 3 년근 밭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봄이 다 가는 오늘에야 그녀는 이렇듯 호미질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집요하게 늙은 냉이뿌리를 찍어내고 있었다. 그 서슬에 힘없이 잘려 나간 둘레의 더덕 잎들이 애잔하게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시선을 일깨우기도 전에 혈귀처럼 달겨드는 햇살에 시들새들 진을 빨렸다. 그녀의 호미는 이미 눈도 생각도 없었다.
못된 것은 악심으로 자란다더니.
그녀는 이빨을 악물고 냉 이뿌리를 두 손으로 잡아당겼다. 이윽고 뿌리가 뽑혔다. 그녀는 하얗게 살찐 육질의 뿌리를 흐미날로 짓이겼다. 이마의 땀이 그 힘에 밀려 송알송알 비어져나왔다. 깊은 골 쪽에서 못자리에 물이라도 퍼올리는지 경운기 엔진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려왔다. 그녀는 호미를 놓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왜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괜히 머리수건을 벗어 타악탁 털었다.
저놈의 경운기 소리!
그녀는 집 쪽으로 걸어갔다. 어둑한 부엌으로 성큼 들어가 살강 위에 손을 올렸다. 거기 반쯤 남은 소주병이 있었다. 그녀는 이빨로 마개를 벗기고 두어 모금 꿀꺽꿀꺽 마셨다. 안주도 없이 입을 닦고 그녀는 숟가락으로 병마개를 톡톡 두들겨 막았다. 그녀는 잠깐 부뚜막 구석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지난 겨울부터 마시기 시작한 소주병들이 거미줄이나 하얀 먼지를 쓰고 줄줄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다시 밭으로 나갔다. 경운기 소리가 딱총처럼 끝없이 공기를 쏘아대고있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어깨에 걸어두었던 수건을 머리에 썼다. 새참을 내가느라 밭둑을 가로질러 가던 아낙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국이네, 이제 밭 꼴이 보이남?”
아랫마을 부녀회장이었다. 그녀는 못 들은 척하고 몸을 돌렸다. 자기가 김을매온 자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흡사 이 빠진 머리기계가 지나간 듯 호미가 놓친 잡풀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풀밭, 그것이 10여 년간 애지중지 일구어오던 자신의 더덕밭이었다.
어머니, 전 죄가 없어요. 그런데 그들이 말해요. 죄는 네 머릿속에 있다고. 전 그 죄를 찾으려고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낱낱이 뒤져보았어요.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 찾을 수가 없었어요.
미련한 놈!
그녀는 풀썩 주저앉아 호미날을 낚아챘다. 그녀 앞에 방동사니와 쑥부쟁이가
우뚝 서 있었다. 어디서 기어왔는지 며느리미씨깨잎까지 쑥부쟁이 줄기를 타고
있었다. 햇살이 그 악초 잎새에 물빛 입김을 감실감실 풀어주었고 바람 한 줄기가 이파리들 사이로 버너처럼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자 잡초 한 매듭이 쑥 자라 오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호미를 겨누어들고 힘껏 그 뿌리를 내려쳤다. 그러나 호미날에 딸려 나온 것은 제법 살이 오른 더덕이었고 그녀는 황새냉이와 함께 그 더먹도 휙 던져버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녀의 호미날엔 아주 섬세한 촉각이 있었다. 혹시 더덕뿌리에 호미날이 스치면 벌써 그녀의 손에 쥐가 나면서 안쓰러움이 앙가슴을 타고 홀렀다. 게다가 잡풀이 자랄 틈도 없이 그렇게 여러번 김을 매왔지만 밑동까지 잘라먹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덕배기의 외딴짐 천여 평의 이 텃밭은 그녀의 땀으로 키우는 꿈동산이었다. 아들이 겨울방학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면 그녀는 곧 손수레를 밀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잘 썩은 나뭇잎 거름을 끌어날랐고 해토가 되기 바쁘게 냉이며 쇠뜨기의 싹들을 말끔히 뽑아준 뒤 산엽비를 놓고 삭은 말목을 바꿔 꽂았다. 그러면 더덕은 그 여름 폭풍우 속에서도 거뜬히 줄기를 올리고 해가 따가와질 때면 저마다 보라색 종꽃을 맨 꼭대기에 내걸고는 일제히 종을 치듯 알싸한 향기를 흔들어댔다. 그녀가 장에 가거나 품을 팔고 돌아올 때도 더덕 향기는 아들처럼 언덕 저 아랫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것이었다. 해는 짧고 시간은 겉돌아 손바닥만한 산다랑이논에서 벼를 걷고 나면 어느새 꽃은 시들어 있고 그녀는 급히 사료부대를 얻어와 꽃을 따 모았다. 한 차례의 무서리가 지나가면 그녀는 이윽고 삼년근 더덕을 캐기 시작했고 그때쯤 안성 아줌마가 털뱅이 차를 몰고 왔다. 언제나 치마 속에 전대를 두르고 있는 그 아줌마는 굵기가 고른 그녀의 더덕을 두말 없이 일등품으로 쳐주었다. 안성아줌마가 작물을 싣고 돌아가면 그녀는 제법 두툼해진 잠방이 속에서 돈뭉치를 어루만지며 너볏이 웃다가 갑자기 사방을 훼훼 돌아본 뒤 빠르게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방이 속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손수건으로 돌돌 말아서는 아들의 사진틀 뒤에 감춰두는 것이었다. 그 일이 끝난 뒤 그녀는 또 아들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웃었다. 그럴 때 그녀는 얼굴 근육뿐만 아니라 코와 귀, 흙일로 모지라진 손끝에까지 자란자란 웃음을 피워올리는 것 같았다. 더우기 돐날부터 높은 대학에서 찍은 사진까지 찬찬히 훑어보는 동안 아들이 젖을 빨 때처럼 젖줄이 찡 돌면서 산모만이 느낄 수 있는 거대한 희열이 가슴 가득 차오르기도 했다.
그려, 인석아. 이제 사진틀 하나 더 사서 졸업 사진 붙이고 박사 사진 붙이고 장관님 사진을 붙이는겨.
조합회원도 아니고 보증인도 없어서 농협 빚조차 얻어 쓸 수 없는 그녀는 더덕과 품팔이로 아들 농사를 지어왔다. 마을사람들은 장학생 아들에게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더덕을 낸 모갯돈에다 수박 모종일부터 모심기, 뽕잎홅기, 담배밭, 고추밭, 채소밭까지 품을 팔아 보태도 아들의 일년 하숙비가 빠듯했다. 그래서 그녀는 산다랑이에서 나오는 아끼바리 여섯 가마를 깡그리 내고 정부미를 바꾸어 먹으면서 한푼이라도 돈을 만들려고 기를 썼다. 하긴 조금 여유가 돌 적도 있었다. 밭둑에 심은 동부나 콩나물콩이 뜻밖에 여러 말 나오거나 콩금이 부쩍 뛸 맨 몇만 원의 가외돈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쩌다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해마다 가을만 되면 이른 아침 주인 없는 동산에 올라 밤새 떨어진 대추나 아람부른 알밤을 주워 나르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것이 잘하면 두어 말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내다 팔았을 떼 그녀는 비로소 아들의 속옷이며 몸보신시킬 닭이며 인삼 한 뿌리라도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바람 한줄기가 지나갔다. 그녀는 호미를 놓았다. 두더지처럼 마구 땅을 파대던 그녀의 호미날에 성급하게 자란 더먹줄기가 걸려 뽀얀 진액을 뿜고 있었다.
어머니, 여긴 몹시 추워요. 부탁이에요, 어머니. 제가 입던 속내의와 털양말
을 좀 넣 어주세요…….
못된 놈! 누가 잡초처럼 엇길로 가랬어. 누가!',
그녀는 다시 호미를 잡고 콩콩 땅을 찍어댔다. 그러다가 호미를 던지고 일어
났다.
그녀는 다시 남은 술을 톡톡 털어마시고 부엌을 나섰다. 별안간 현기증이 머
리통을 꽉 조였다. 그녀는 잠깐 부엌 문설주를 잡고 있다가 천천히 사랑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종이가 떨어져 나간 외짝 바라지 문틈으로 쥐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반들반들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단걸음에 다가가 왈칵 문을 열었다. 쥐는 간 곳이 없고 컴컴한 방안에 갇혀 있던 퀴퀴한 습기가 그녀를 덥쳤다. 시어른이 돌아가신 뒤로 아들이 차지하고 언재나 늦도록 공부를 하던 방…… 그녀는 문지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 나 법무부 장관이 될껴.
법 장관? 어따, 그렇게 높은 사람이 되면 어쩔란디?
엄마 비행구 태우고 세계일주 시켜주는겨.
비행구는 어지러버 싫은디?
그럼, 금반지 사줄껴?
아녀, 국이가 참말로 그런 사람이 되믄 갈치, 고등어, 명태, 조기, 소갈비…… 듬뿍듬뽁 사서 잔치를 하는겨.
엄마, 괴기 먹고 싶은겨 ? 지금 가서 미꾸리 잡아오까?
그녀의 눈에 굵은 눈물이 매달렸다. 그녀는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문질러버렸다. 망할 놈!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더덕밭 저쪽 끝머리 조팝나무 사이로 빈 함지를 이고 내려가는 부녀회장의 모습이 안개 사람처럼 어른거려 보였다.
엄마, 붙었어! 붙어! 돈도 쬐끔만 내면 되여!
대학에 붙던 날 아들은 밭 사잇길로 달려오며 소리쳤었다. 그녀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아들을 얼싸안았다.
어이구, 내 새끼! 니가 어떻키 그 별을 땄냐? 내 창다구에서 나온 것이 뭔 심줄로 법 장관이 되는 핵굘…….
그날 이창과 마을사람들이 언덕배기의 이 외딴집으로 몰려왔었다.
국이 엄마, 이제 홀아씨 고생은 다 끝난겨. 아, 옛날에 이 강석이도 들어가지 못한 핵교 아니남? 국이는 인물이여. 우리 마을에 인물이 났단 말여.
아들이 금덩이, 별덩이같이 그저 신기해 보이던 날, 그너는 서방보다 먼저 시어른을 생각했었다. 서방이라고 해야 고작 3 년을 함께 살았을 뿐이었다. 국이가 세 살이 되던 해에 늦은 입대를 하더니 무슨 액신이 불렀는지 월남으로 갔고, 곧 제대해서 귀국한다던 사람이 뼛가루만 돌아왔다. 그녀는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짐짝처럼 남겨두고 죽어버린 서방이 야속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러자 시어른이 말했다.
넌, 국이가 있는데도 그렇게 우느냐.
외아들을 잃고도 묵묵히 손자에게 생선을 발라주던 어른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목숨값을 받았을 떼는 한 열홀 집을 비우더니 어느 날 느닷없이 돌아와서는 천자문 한 권과 더덕 씨를 내놓았다.
텃밭에 이 더덕을 해보아라. 한 3년 잘 기르면 잡곡보다 훨씬 이문이 많다더라.
그리고 손자의 손을 끌고 사랑으로 가서는,
국아, 이 할애비도 등 너머 쬐끔 본 글이라 잘은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부텀 국이랑 할애비랑 천자공부를 하는겨. 그라고 내년에 핵교에 들어가서는 언문공
부를 하는겨. 알았쟈?
일곱 살짜리 국이는 한달 만에 책씻이를 했고 그날 노인은 장에 가서 고기 한 근을 사왔다. 그렇게 13년간이나 한지붕 밑에서 살아온 시어른, 품일을 나가 늦게 돌아올 때는 처마 밑에 훤한 전기불을 내걸어 놓았고, 깨나 콩을 이고 장에 갔다가 어두워서 돌아오면 언덕배기 자드락길까지 나와 기다리던 어른이었다.
그녀의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그 물결은 흐느낌처럼 조금씩 목을 넓
히더니 어느 순간 그녀의 심사를 왈칵 거머쥐었다.
아녀! 그녀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툭 쳤다. 더립게 괴기를 밝히던 늙은이였어. 멸치도 괴기라고 그것마저 넣지 않으면 된장국에 수저도. 대지 않은겨. 걸핏하면 애를 데리고 개울로 나가 천렵을 하면서 손자의 머리통을 여물게 하려면 괴기를 많이 먹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당신 입을 모시느라 그랬던겨. 제 아들이 죽었다는데도 입에 괴기를 넣으면서 산 사람이 중하다고 주절댔잖남. 그게 어디 애비로서 할 짓인겨. 그려, 그 영감 죽을 때를 보란 말여, 열세 살박이 손자 된장찌개엔 멸치가 들어가고 당신에겐 그게 없다고 턱없는 노망을 떨더니 끝끝내 괴기 타령을 하면서 죽었잖남. 국이놈 못되게 된 것도 다 그 할애비 탓인 겨.
그녀는 문지방을 차고 일어났다. 전에는 시어른이 국이의 가리사니를 깨쳐줬다고 믿어왔었다. 그러나 이제 아니었다. 노인이 애초에 그놈의 천자책만 사오
지 않았어도 국이는 공부에 인이 박히지 않았고 그 무서운 대학까지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걸쭉한 기름 같은 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녀는 그것을 잦혀버릴 듯 밭 쪽으로 활활 걸어갔다.
그녀는 호미를 들기 전 잡초가 무성한 밭을 휘둘러보았다. 그 더덕밭은 이제 넝마가 되어버린 자신의 육신이었다. 그러자 가슴이 벌쭉 열리면서 비수 같은 악의가 솟구쳤다. 그녀는 재싸게 호미를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언덕으로 쑥 올라와 그녀의 집 길로 들어섰다. 그녀는 공연히 놀라서 풀썩 주저앉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날도 그랬다. 지난 가을이었다. 안성 아줌마가 돌아가고 막 사진틀을 바라보고 있을 때 웬 낯선 남자가 기척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30대로 보이는 그 사나이는 방안을 훼훼 둘러본 뒤 대뜸 국이는 어딜 갔느냐고 물었다.
국이라구유? 그 애가 어째 집에 있남유. 핵교에 있지.
그녀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그렇게 대담했다. 사나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 집는 갔다고 했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아, 그럼 국이네 핵교가 벌써 방학을 했남유?
그녀가 되묻자 사나이는 그게 아니라……·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때쯤 또 한 사나이가 뒤꼍을 돌아나와 사랑방 문을 열어보고 있었다.
근디 댁들은 뉘시오?
국이 학교선뱁니다. 좀 만날 일이 있어서요.
무례한 작자들이긴 했지만 국이 선배라니까 조금 마음이 놓여서 그녀는 안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아, 아닙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다음에 또 오죠.
그리고 사나이들이 등을 돌렸다. 몇 걸음 걸어나가다가 한 사나이가 마을 앞
조비산을 가리키며 친구에게 말했다.
저게 옛날엔 조패산이었대. 한양을 등진 산……·그래서 역적산이라고 했다더군.
흠, 그래서 역적산이 역적놈을 낳았단 말인가?
그 다음 말은 거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역적산과 역적놈? 이상하게도 그 말이 오래도록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보름쯤 후였다. 이번
엔 국이의 학교 친구가 찾아왔다.
국이어머님, 보름 전에 국이가 집으로 오다가……·지금 교도소로 넘어갔읍니다.
교도소? 죄수놈들이 사는 데 말인겨? 옳지, 그러니까 우리 국이가 벌써 그 법 장관인가 하는 시혐에 붙어버렸단 말인겨?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다그쳐 물었다. 범 장관이 되겠다던 자식이 법관은커녕 죄수가 되어
잡혀 갔다는 것이었다.
“국이 엄마, 마음 붙들었구먼.”
가까이 온 사람은 남자같이 생긴 끝자엄마였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둘레둘레 호미를 찾았다.
“그러, 고생하는 자식을 보더라도 국이엄마가 마음 잡아야 하는겨.”
그녀는 대꾸도 않고 여뀌풀을 휙휙 뽑아냈다. 언제는 뿔갱이 자식이라고 그렇게 쑥덕거리더먼…….
“근디, 내일 우리 모. 좀 안 심어줄겨?”
“그럴 힘 없구먼.”
그녀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럼, 국이네 산달뱅이는 안 심을겨?”
“아, 남이야 심튼 말든 뭔 참견인겨?”
그녀가 버럭 역정을 내자 끝자엄마는 고개를 내지으며 돌아갔다.
된서리가 내리고 첫 얼음이 얼던 날, 아들 친구가 또 찾아왔다.
국이어머님, 면회를 좀 가세요. 어머니 외엔 아무도 면회가 되지 않아요. 국인 지금 칫솔도 양말도 없이 그 차가운 마릇바닥에서 고생하고 있읍니다. 어머님, 부탁입니다. 칫솔과 수건만이라도 좀 넣어주세요. 여기 다 사왔읍니다. 책과 영치금……· 친구들이 점심을 굶으면서 모은 돈입니다. 어머님, 이해하시고 제발…….
학생들이 놓고 간 물건 봉지는 여섯 달 동안이나 방 웃목에 있었지만 그녀는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역적이 뛴 놈을 내가 왜 찾아! 그놈은 내 자식이 아녀.
그녀는 입을 앙다물고 쇠비름잎을 암살스럽게 뜯어내고 있었다. 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햇살 때문인지 입술이 바삭바삭 말라들었다.
어머니, 어머님은 아시죠, 전 어릴 때부터 나쁜 짓은 하지 않았읍니다. 대학에 와서도 배운 대로 배운 만큼만 행위했을 뿐입니다. 교수님도, 책에서도 말했읍니다. 법은 만민의 평등을 위해 존재하고 지식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져야 하며 세상의 모든 학문은 사람과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그 본디 목적이 있다……·그렇습니다. 어머니, 전 세상을 향해 그것을 외쳤읍니다. 어머니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던 나쁜 짓, 그런 짓을 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어젯밤 꿈에도 어머님은 절 보지 않겠다고 돌아앉으시기만 합니까. 어머니, 보고 싶어요. 한번만이라도 얼굴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말씀 좀 해주세요. 넌 아직도 내 아들이라고. 애비 없는 후레자식도, 어머니를 욕되게 한 그런 자식도 아니라고……·!
그녀의 팔꿈치가 부르르 떨렸다. 아녀! 넌 내 자식이 아닌겨!
그녀는 꾹 입술을 물었다. 마을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자식에 대한 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히던 날, 자신의 몸뚱이가 온통 걸레쪽이 되던 그날 그녀는 가슴에 튼튼한 기둥을 박았던 자식놈을 통째로 몰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텅 빈 자리에 소주를 채웠다. 그런데 어인 일일까. 그 웬수놈의 자식은 한치도 떠나지 않고 낮이나 밤이나 그녀 주위를 맴돌며 분심만 일으켰다.
국이어머님, 국이는 난리를 꾸민 게 아닙니다. 그 죄를 벗을 때까지 국이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어머님이 도와주십시오.
국이 친구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을 때도 그녀는 끝끝내 등 돌린 채 차라리 그놈이 죽어 없어지기를 바랬었다.
그녀는 호미를 놓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앞섶에 떨어쳤고 날카롭게 닳은 호미날에서는 터무니없이 고운 빛살이 톡톡 튀었다. 쥑일 놈, 이 에미더러 일년˙반만 참으라고, 그러면 졸업 한다고 그렇게 나불거려놓구선…… 그녀는 냉큼 다시 호미를 들었다. 그러나 웬지 호미 자루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첫해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국이는 정말로 의젓하고 귀골스러웠다.
엄마, 집에 있을 땐 그저 엄마 고생하는 것만 보이더니 서울에 가서 보니 다른
사람들의 고생도 보이는겨.
그때 그녀는 가리사니가 트인 놈이라 역시 대견한 말만 한다 싶었다. 그래서 시어른이 살아 생전 곧잘 하던 말을 흉내내며 그려, 남아 20이면 천하를 흔든다고, 세상 두루두루 봐야 하는겨 하고 맞장구까지 쳐주었다.
흥, 제 에미 고생, 남의 고생 보던 놈이 할 게 없어 죄인이 되여? 그녀는 다
시 호미를 쥐었다. 그러나 자꾸만 손아귀에 힘이 빠졌다.
작년 여름방학 때 국이는 닷새만 집에 있었다. 그동안 칙간을 퍼서 풀두엄을 만들고 산에서 적토를 져와 허물어진 부엌 토벽을 바르고 장독대에 금송화도 갖다 심었다. 그 꽃은 뱀을 막는다 하여 해마다 그녀가 심어왔으나 홀아닥 살림이라 미처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을 녀석이 그렇게 챙겨 심은 것이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면서 국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친구들이 날더러 농돌이라고 불러. 농부의 자식 이란 말이지.
뭐이? 농사꾼 자식이라고 누가 업신여긴단 말여?
그게 아니라, 훌륭한 농투성이 아들이란 뜻인 겨.
원, 무지랭이 농투싸니가 뭐이 훌륭하단겨?
엄마, 가만히 생각해봐. 남자야 돈을 잘 벌어오든 말았든 여자는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나가려고 하잖아? 나라 살림도 그런겨. 농사꾼과 공장 사람들이 이 나라 살림을 악착같이 살아주니까 위대하다는겨.
그리고 떠나던 날 국이는 말했다.
엄마, 이제까지는 도덕과 양심과 사람살이 공부를 했지만 곧 법공부를 할껴.
그래서 훌륭한 범 장관이 될껴.
미친놈! 훌륭한 법 장관이 된다던 놈이 해필이면 까막소로 가?
그녀는 힘껏 호미를 내리찍었다. 그 바람에 더덕 두 뿌리가 한꺼번에 뽑혀나왔다. 그녀는 멈칫 호미를 놓고 더덕을 집어들었다. 못 받아도 50원씩은 받을 놈이 잖여…….
엄마, 장에서부텀 걸어온겨? 창식이네 딸딸이도 나갔다는데 그거라도 얻어타고 오지 그런겨?
나도 얻어탈까 했는디 사람이 원캉 많아야지. 그래서 그냥 걸어온겨.
얼마나 발이 아프까?
중학생 짜리 국이가 그녀의 발을 어루만지며 그저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었다.
국아, 이 에미가 늙어서 더러워지믄 어쩔껴? 그래도 에미랑 살껴?
국이가 종아리를 주물러줄 때 그녀가 물었다.
내 엄만데 뭐이가 더러와?
병들어서 누운 자리에 똥오줌을 싼다믄 말여.
내가 깨끗이 닦아줄껴.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눈물들이 더덕 위로 툭툭 떨어졌다. 근디, 그놈이 뭣 땀시 뿔갱이짓을 했단겨? 머리가 꽉 찬 자슥이 무슨 헛구녕으로 그런 쬘 져?
국이어머님, 그 죄를 벗을 때까지 좀 도와주십시오.
그려, 액신이 붙은겨. 내가 그 자슥을 아는디, 내가 그 창다구꺼정 아는디…… 그러자 별안간 말라붙은 젖 줄기에서 세찬 아픔이 곤두섰다. 때문에 한참 동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훅 큰 숨을 내쉬었다. 그려 그려. 이 미련한 년이 자속보다 못한 생각을 한겨……·그녀는 어느새 들고 있던 더딕을 땅에 묻고 있었다. 그리고 뒤돌아보았다. 까뒤집힌 더덕이 여기저기서 시든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돌아앉아 그것을 하나씩 묻어가기 시작했다.
내일부텀 깨끗이 풀을 매줄겨. 암, 말목도 박고……·누에 집에 가믄 잎을 먹
이고 버린 뽕대가 많을겨. 그걸 얻어와 박아주고 산에 가서 잘 썩은 엽비도 긁어오고……· 아녀, 순서가 틀린겨.
그녀는 호미를 던지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삐 집 쪽으로 걸어갔다. 역 광이 수건을 쓴 그녀의 콧등에서 고롱고롱 숨바꼭질을 했다. 그녀는 수건을 벗어 흙손을 문지르고 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먼저 농문부터 열었다. 가방……·그려, 가방을 찾아야지. 그녀는 허둥지둥 가방을 찾아 아들의 속옷을 챙겨넣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하는겨. 걸어서라도 가야 혀.
그녀는 너무나 바빠진 나머지 아들 사진을 보는 것도 잊고 왈캉 문을 열었다.
-끝-
2016년 3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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