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화계의 화제 인물은 작가 신경숙이다. 그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최단기간 내에 1백만부 판매라는 공전의 대기록을 세웠고, 올해도 그 열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작가 신경숙은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젊은날의 고난을 딛고 한국 대표작가의 반열에 오른 변신의 주인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성공 스토리텔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작가 신경숙 이전에 인간 신경숙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1995년에 발표한 자전적 성장소설 <외딴방>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1979년에서 81년까지 구로공단(한국수출산업공단)에서 여공생활을 한 젊은날의 자기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가난 때문에 고향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16세에 상경했던 그는 구로공단의 전기회사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는 영등포여고의 야간학급에 가서 고교과정을 공부했다.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청소년 근로자들을 위해 세운 ‘산업체 부설 특별학급’이었다.
신경숙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새마을>과 <새농민> 잡지에 나오는 수필과 소설들을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 그런 그에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주산, 부기, 타자는 마음 붙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여러 날을 결석해 반성문을 쓰게 되었을 때 대학 노트에 거의 반권 분량이나 되는 긴 글을 써낸 일이 있는데, 국어를 가르치는 담임 교사가 그것을 읽더니 “소설을 써보라”고 권했고, 그 말 한마디가 소녀 신경숙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었다고 한다.
▲작가 신경숙씨가 <외딴방>을 발표했던 1995년 10월, 영등포여고 산업체 부설 야간학급 시절의 국어 교사 최홍이씨를 만났다. ⓒ 조선일보
소녀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공책을 놓고 좋아하는 소설책들을 필사하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열악한 공장 환경에서도 이 소녀가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이라는 기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여공 생활은 3년.
이후 그는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거쳐 1985년, 23세 때에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겨울 우화>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고, 90년대에 한국문학을 화려하게 장식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우뚝 섰다.
<외딴방>을 발표했던 그해 그는 모교를 찾아가 후배들을 만났다. 그의 발걸음을 모교로 옮기도록 움직인 것은 지난 시절의 시련과 아픔을 사랑으로 녹여내는 강한 힘이었고, 그것이 후배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공순이’라는 비칭(卑稱)은 부끄러움을 주지 못한다. 그를 화나게 하는 말도 아니다. 작가 신경숙은 자신이 ‘공순이’였음을 의연히 밝히고 있다.
특히 자신에게 소설 쓰기를 권해 문학의 일깨움을 던져준 국어 교사에게는 “나를 일으켜세운 건 8할이 그 분이었다”며 감사하고 있다.
작가 신경숙에게 그 교사가 없었다면, 산업체 부설 야간학급이 없었다면, 그리고 구로공단이 없었다면 그 인생행로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그건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구로공단과 야간학급과 국어 교사는 신경숙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궤적이며 미래를 향한 관문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디지털기업 7천여 업체가 입주해 있는 대규모 디지털단지로 변한 구로공단.
지난날의 구로공단은 가난한 농가의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도시로 나온 시골 소녀들에게는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하던 식모살이를 청산하고 난생 처음 가져본 직장으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다.
그들에게는 ‘배우지 못한 한’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어린 근로자들을 위한 산업체 부설 야간실업학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1974년.
대기업들은 자체로 학교를 세우고, 중소기업들은 공단 주변의 기존 학교를 빌어 쓰며 교사 인건비만 부담하는 식으로 해서 전국에 1백여개의 산업체 부설 고교와 특별학급이 생겨나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소년 소녀들의 한을 풀어주었다.
▲1977년 4월 19일 구로공단 산하 기업체에서 일하는 어린 근로자들의 야간 부설학급을 예고없이 방문한 박 대통령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학생들의 자세가 매우 진지하고 구김살이 없는 것을 보니 큰 감명을 받게 된다”면서,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하고 고향에 돈까지 부치면서 굿굿하게 자라고 있는 학생들을 대하니 그들의 장래가 촉망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장래에도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국가기록원
―4월19일(화) 맑음
저녁 7시30분 영등포지구에 있는 청소년 근로자 야간학교 수업을 시찰하다.……직장에 다니는 청소년들이지만 다들 머리를 학생형으로 단정하게 다듬고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귀엽고 대견하다기보다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금할 수 없었다.
가정적으로 빈곤하다는 죄 하나만으로 남과 같이 상급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직장을 택하게 된 것이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학생복으로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나는 왜 학교를 못 가느냐고 스스로의 처지를 원망도 하고 부모와 가정을 원망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제 한스럽던 소원이 성취되었다. 야간이나 주간이나 자기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열성에 감동하여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고 보람을 느낀다 했다. 이 학생과 교사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도와 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돌아왔다. 이들의 앞날에 행복이 있기를 마음속에서 기원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4월 구로공단 산하 기업체에서 일하는 어린 근로자들의 야간 부설학교를 돌아보고 그날 쓴 일기 대목이다.
그날 영등포의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 대방여자중학교 세군데를 돌아본 박 대통령은 깨끗한 교복 차림으로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남녀 학생들 사이에 서서 수업 내용을 들어보기도 하고,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책가방을 열어 책과 노트와 필통까지 직접 살펴보았다. 그날의 대통령의 동정을 보도한 신문기사는 한 학생의 책가방 뚜껑에 쓰인 ‘일하면서 배우자’라는 글씨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포착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어린 근로자들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애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그 시대의 수많은 야간학교는 어린 근로자들이 가난으로 중단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했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미래를 향한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새해, 새 희망.’
새해에 잇따르는 말이 희망이다.
작가 신경숙의 삶과 문학에서 읽게 되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다면 ‘희망’일 것이다.
고난 속에서도 오지게 부둥켜안고 놓치지 않는 희망일수록 강렬한 법이다.
젊은날의 고난은 신경숙 문학의 힘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삶의 시련과 고통에서 다듬어진 정교하고 감동적인 묘사가 독자를 사로잡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고난도 힘이다. 역경을 이기는 힘을 준다. 지난날의 고난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다가오는 것은 바로 희망을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신경숙의 삶과 문학은 고난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실종된 엄마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듯이, 그는 이 시대의 실종된 희망을 찾아나서면서 “희망을 부탁해”라는 말을 던지고 있는지 모른다. 희망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달라고 국가사회를 향해서, 또한 그들에게 직접 희망을 가져주기를 부탁하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희망을 부탁해”라고. ◎
[좋아하는 사람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