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실 여 행
'살 제 남원, 죽어 임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물산이 풍부한 남원에서 즐겁게 지내고 죽어서는 산세가 빼어난 임실에 묻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긴 말입니다. 이처럼 임실은 산세가 아름다워 <동국여지승람>에서도 "산과 물이 첩첩 둘러 있어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수천, 오원천, 갈담천 따위의 이름표를 착용한, 섬진강 상류의 잔물결들이 임실의 산굽이와 논밭두렁을 친친 휘감아 돌며 야트막한 산릉들과 얼싸절싸 어우러져 뭇사람들의 미의식을 사로잡으니, 임실 땅은 가히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는 단어를 예사롭게 구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임실군은 백제 때에 임실현 또는 운수현이라고 불렸습니다. 백제는 섬진강의 배편을 이용하여 일본과 교류를 활발히 하였는데, 임실군은 섬진강 상류에 속하는 곳이므로 섬진강을 끼고 있는 지역들은 일찍부터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점차로 쇠퇴하여 남원부의 속현이 되어 왔으나 북쪽의 전주와 남쪽의 남원을 이어주는 중계지로서의 중요성 때문에 1895년에 다시 임실군으로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동산 의견비ㆍ의견상
오수면사무소 인근 원동산(園東山) 공원에 있는 의견비ㆍ의견상은 목숨을 바쳐 만취한 채 잠든 주인을 구한 갸륵한 충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오래 전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충견이 바로 임실의 의견입니다. 자연석인 의견비에는 정으로 박은 듯한 형상이 보이는데, 거꾸로 보면 주인을 구한 개가 승천하는 모습이 확연해 보는 이들이 모두 신기해합니다. 전북 민속자료 제1호입니다.
개 주인 김개인(金盖仁)이 개를 장사지낸 뒤 개가 죽은 자리에 자기가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는데 잎이 나고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지명을 개 오(獒), 나무 수(樹)를 써서 오수라 부르고 있으며, 매년 4월이면 의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의견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의견비각 앞에는 김개인이 지팡이를 꽂았는데 뿌리가 내려 자랐다고 하는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지름이 1m가 넘는 이 느티나무는 세 그루인데, 나무의 나이는 수백 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앞에는 1975년에 세운 의견상(義犬像)이 서 있어서 실감을 자아내게 합니다.
성가리 백로서식지
임실초등학교 근방 성가마을 인근 야산에는 오래전부터 여름 철새인 백로들이 서식하여 왔는데, 많을 때는 1,000여 마리가 넘었다고 합니다. 백로가 많을 때는 풍년이 들고 적을 때는 흉년이 든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날수록 줄어들어 현재는 500여 마리가 모여 살고 있는데, 종류도 다양해 쇠백로와 중대백로, 황로 등이 한데 살고, 해오라기도 같이 번식하고 있습니다.
우아한 댕기 깃을 휘날리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여울을 지키다가 물고기를 채는 모습이나 소나무 숲 둥지에서 새끼를 돌보는 백로는 사진작가들을 유혹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백로서식지 마을은 백로들과 어울려 풍요롭고 넉넉해 보입니다. 나무 하나에 보통 3~4개의 둥지가 붙어 있다 보니 둥지 쟁탈전도 심합니다. 평균 몸길이가 1m가량으로, 백로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큰 중대백로가 전망도 좋고 가장 넓은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만들고 그 아래에 쇠백로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선대(四仙臺)
섬진강의 이름을 부여받기 전의 상류 물길인 오원천이 흐르는 이곳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네 신선과 네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곳입니다. 오원천 건너편에는 조각공원이 있고, 사선대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 위에 운서정(雲棲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미산성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환상적인 데이트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용암리 석등
임실의 유일한 보물(보물 제267호)인 용암리 석등은 높이가 5.18m로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으로 큽니다. 웬만한 시골집의 지붕보다 더 높아 마을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뜁니다. 원래 이곳에는 '중기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상륜부가 없어진 것 말고는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고, 큰 덩치가 머쓱하지 않게 몸체의 조각도 정교하고 아름다워 눈여겨볼 만한 작품입니다.
옥정호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3도 12개 군을 거쳐 남도 오백 리를 흐르는 섬진강-.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곳곳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릅니다. 강이 발원하는 진안군 백운면 사람들은 '서천' 또는 '백운천'이라 하고, 그 아래쪽의 임실군 관촌면과 신평면 주민들은 '오원천'이라 일컫습니다. 운암면에서는 '운암강'으로 불리고, 순창 땅에 들어서면 '적성강'이 됩니다.
보성 쪽의 실핏줄 같은 냇물이 모여든 지류는 '보성강'이고, 장수와 남원 땅을 가로질러온 물줄기는 '요천'입니다. 이토록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곧 이 강줄기에 대한 토박이들의 애정이 각별하다는 뜻입니다. 강의 발원지 데미샘에서 출발해 옥정호에 이르기까지 강의 상류는 풍광의 아름다움보다는 인정과 자연이 때 묻지 않아 좋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 모두가 고향의 그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합니다.
수많은 물줄기들은 임실을 지나면서 섬진강 댐에 막혀 옥정호를 이룹니다.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걸쳐 있는 옥정호는 산인 듯 물인 듯 섬진강 물길을 품고 있습니다. 호수 안에는 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외안날'이라는 섬마을이 있어 한결 운치가 더하는데, 이 섬이 물안개로 뒤덮인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묵화가 됩니다.
옥정호반 드라이브코스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 옥정호의 그림 같은 풍경과 거대한 호수로 파고들며 마을을 굽이도는 호반도로의 풍광을 내려다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5.8km에 이르는 이 옥정호 호반길은 여체의 곡선미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우수상으로 선정된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입니다.
중기사 터(용암리 석등)에서 10여 분 달리면 운암면소재지인 쌍암리에 이르는데, 여기서부터 옥정호반 드라이브코스가 시작됩니다. 길 모롱이를 돌아설 적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풍광이 변화무쌍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호반길은 잠시 27번 국도와 합류했다가 운암교에서 다시 운정리 범호마을까지 이어집니다.
다시 되돌아 나와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 코스가 옥정호반길 중에서도 가장 운치 있는 길로 꼽힙니다. 맑은 호수에 잠긴 산영(山影)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한적하고 조용한 숲길에서는 새소리나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만 들려옵니다.
섬진강 상류, 맛 기행 다슬기탕
다슬기는 '청정자연' 및 '1급수'와 동의어입니다. 그만큼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민물조개입니다. 임실이 다슬기로 유명한 건, 그만큼 깨끗한 자연을 가진 지역이란 뜻입니다. 임실에서도 강진면이 다슬기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다슬기가 산지인 옥정호와 천담이 지척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슬기는 손이 많이 갑니다. 손톱보다 작은 다슬기를 하나하나 까야 합니다. 일일이 바늘로 꼭 찍어서 빼냅니다. 다슬기는 봄과 가을이 제철입니다. 제철에는 바로 잡은 다슬기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그 외에는 삶아서 냉동해 뒀다가 씁니다. 전국 많은 곳에서 다슬기탕을 하지만 전라도 손맛은 따라오기 힘들고 그중에서도 임실군 강진면의 다슬기탕을 최고로 칩니다.
걷고 싶은 길 장천선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여우치 마을을 떠나 옥정호수를 동쪽으로 돌아 나왔다. 호수의 아침 물안개가 산골짝마다 퍼져서 고단한 사람들의 마을을 이불처럼 덮어 주고 있었다. 27번 국도를 따라 20여 km를 남쪽으로 달렸다.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덕치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은 아직 강이라기보다는 큰 개울에 가까웠다."(김훈ㆍ'섬진강 기행'에서)
섬진강은 옥정호를 지나 진메마을에 닿습니다. 강줄기는 진메에서 크게 휘어지며 천담마을과 구담마을 앞을 흐릅니다. 천담마을은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에서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장산리(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4km의 강변길은 '걷고 싶은 장천선'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에 닿기까지 길은 섬진강 따라 깊어집니다. 깊어지되 늘 볕이 들어 외진 곳을 향한다는 느낌 없이 다만 여유롭고 따스합니다. 건너편 강변에는 방목 중인 흑염소가 풀을 뜯고 강에선 울퉁불퉁 바위 사이로 물오리 떼가 열 맞춰 나아갑니다. 이 풍경을 품은 섬진강은 넓어 그저 파동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때로 마주치는 협곡에서만 큰 물소리로 제 나아가는 방향을 알립니다.
강을 감싸고 있는 둔덕 같은 장산이 강물에 비친 모습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시인은 '섬진강 15'에서 노래했습니다.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구담마을
천담마을을 지나 임실군에서 섬진강의 마지막 구간인 구담마을로 이어지는 강변길과 강마을 풍경은 섬진강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길은 오솔길을 닮거나 강과 바싹 붙으며 이어집니다. 이 아름다운 길의 끝은 구담마을 당산터입니다. 언덕 위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발 아래로는 섬진강물이 굽이쳐 흐릅니다. 지금껏 걸어온 섬진강과, 앞으로 굽이치며 나아가는 섬진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1998년 개봉, 한국영화 사상 해외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입니다. 영화 흐름상 1951년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 산하를 현실적이고도 아름답게 담아내기 위해 스태프들이 7개월간 전국을 샅샅이 뒤진 끝에 선정했다는 곳입니다. 그만큼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소박한 우리 옛 마을의 모습이 간직된 곳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박사골 엿마을
삼계면은 2009년 12월 현재 박사 학위 취득자가 143명으로, 1개면에서 배출된 박사의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아 박사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지세 자체가 온통 명당이어서 공부한 선비들이 모여들었고, 그 결과 거기에서 다시 선비들이 나올 수 있었으며, 이런 특이한 현상이 주민들의 자부심을 이루고, 향학열을 고취시킨 데서 많은 박사들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 세심천이 유유히 흘러 마음을 씻고 쉬어가고픈 곳이어서 마을의 본래 이름은 세심(洗心)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세심천 앞에는 조선시대의 학자 양돈을 기념하는 광제정이 있는데 유서 깊은 선비들의 마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태동될 무렵부터 이 마을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전통쌀엿은 맛이 있다고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고, 연 매출 40억 원을 돌파할 정도로 유명해지자 박사골마을이란 이름 외에 엿마을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