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청 이 유
신청인 겸 사건본인은 1977년 음력 1월 26일 부 이**, 모 정**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출생 당시 본인의 조부께서는 항렬을 중시하셨기 때문에 성명의 마지막 글자를 ‘*’자로 정해주셨고, 성명의 가운데 글자를 ‘*’자로 정해 주셨습니다.
조부께서 지어주신 성명이었기 때문에 별 불만 없이 사용하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께서 출생신고 당시 아버지께서 동사무소에서 출생신고를 하실 때 실수로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재상재(宰) 대신 재물재(才)로 호적에 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적에 이름이 잘못 올라가 있다고 해서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의 잔병치레와 장남이라는 굴레 속에서 동생들보다는 모든 것이 우월해야 한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웃어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살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좋은 곳에 취직시켜준다며 자신만 믿고 따라오라던 선배를 군 입대도 연기하며 기다렸으나 돌아온 것은 배신 뿐 이었습니다. 배신의 상처로 저희 삶은 피폐해졌고 결과는 학교생활로 나타났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컸던 남들보다 늦은 졸업식과 늦은 군 입대로 인해 취직 시기를 놓친 점, 타인들과 비교했을 때 늦어져버린 사회생활, 건강하지 못한 점 등 모든 것은 제가 원하고 생각했던 인생과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으며, 잠을 줄여가며 노력해도 원하는 곳에 입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직업 훈련을 통해 다른 분야를 공부해도 시작은 잘 되는 것으로 보이나 결과는 항상 같았습니다. 눈을 낮추어 입사를 해도 어떤 이유 때문인지 스트레스성 장염과 탈모, 몸의 이상, 회사의 사정 등으로 오랫동안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다는 죄스러움과 점점 줄어드는 자신감, 무직에 대한 부담감으로 집에 가는 것이 꺼려지게 되고, 부모님과의 대화는 단절되며, 무기력해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소극적인 제 자신을 볼 때마다 괴로웠습니다.
답답함에 신경 쓰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던 사찰과 작명소(철학관)를 어머님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똑같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이야기들 뿐 이었습니다. 이름이 성씨와 사주에 맞지 않아 운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구상하며 계획을 많이 세우지만 언제나 주변을 원망하며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 시작은 있으나 결과가 없으니 만사에 의욕을 잃는다. 매사에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으니 의기가 소침하여 부부간에 근심이 많으며 자손에게도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만일 신체의 질병으로 부모님의 업을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장남보다 차남이 좋을 것이며 그래도 장남이 이러한 오행을 가지게 되면 부모님이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부담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제대로 일을 치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시적인 성공이 있을지라도 모든 일에 쇠퇴하고 운기가 공허하다. 심신이 허약하고 육친이 부덕하거나 사람이 적막하고 매사가 수포로 돌아가니 좋은 자질과 재능이 있어도 빛을 발하기 어렵다. 한시도 편할 날이 없으니 심심이 고달프고 매사가 허망하므로 일생을 고독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매우 흉한 수리이다.』
나열된 제 이름에 대한 성명학적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여태까지 저의 불운한 삶과 너무나 일치하기에 정말 놀랐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제가 하고자 하는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지만 처음엔 좋은 결과가 있는 듯 하다가도 결국은 어떠한 이유로든 제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상대가 일을 그르친다거나 갑자기 없던 일이 생긴다거나 등등으로 좋은 결과를 보는 건 제게 너무나도 커다란 소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학진학, 취업, 연애, 대인관계 등 많은 좌절과 절망을 맛봐야 했고 성격도 소극적, 내성적으로 변해 평소에 무기력함을 많이 느껴야 하고, 한때는 우울증에 시달려 남모를 괴로움을 많이 겪어야 했습니다.
최근 태어난 조카의 이름을 짓기 위해 찾아간 작명소에서 부모님께서는 다시 한번 제 이름에 대해 문의하셨고, 작명가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합니다.
단명의 기운이 있는 이름을 어떻게 자식에게 지어줄 수 있냐며 꾸짖으시고,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무조건 이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제가 평생 불리우며 살아가야 될 제 이름이 제 앞길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누구보다 이름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제가 제 이름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제 이름을 사랑해주고 불러주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름을 정하는 것이다." 라는 책의 한 구절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차별화된 네이밍 컨설팅만 따로 연구하는 회사가 있을 정도로 현대사회에서 그 가치는 더욱 중요해졌고, 크고 작은 회사들이 기업 이미지와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네이밍에 힘쓰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금성사가 지금의 LG로 이름을 바꾸어 이미지 변신을 꽤하였습니다. 이름 하나로 그 기업이나 업체가 갖는 지적자산은 더 증가될 것이고 그만큼 더 큰 이윤 창출과 직결될 정도로 사회 곳곳에서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름은 개인이나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성명학적인 이유는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힘들지만 제 자신이 몸소 느끼고 있는 과거의 불행함을 다시 겪고 싶지 않으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명학적 이름으로 불안감에 휩싸여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개명을 통해 소극적인 성격을 적극적인 성격으로, 부모님께는 집안의 자랑스러운 장남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인생을 살고 싶고, 또한 제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습니다.
2010년 달력이 2장 찢겨져나가면 2011년 새로운 해가 시작됩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전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34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남몰래 눈물 흘리고, 속상했던 일들이 많이 있던 저에게 부디 새로운 희망의 끈을 잡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법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이름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며 법무법인의 도움 없이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얻어 위에 적은바와 같은 불편함과 번민을 덜고자 개명허가 신청을 하오니 제게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넓은 마음과 아량으로 제 소원인 개명을 허락해 주십시오.
두서없이 써 내려온 본인의 개명허가 신청서를 읽어 주시고, 심사를 해 주신 점 정말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정의로운 사회실현을 위해 일하시는 판사님의 마음과 생활에 언제나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첫댓글 아주 잘 작성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