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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향(廉香) 전(傳)
염향은 금선왕조 3대임금 명종(明宗)시절 예조판서와 좌의정을 지낸 안정이등공신(安定二等功臣) 충혼공(忠魂公) 염종수공의 6남3녀 9남매중 둘째딸이자 다섯째이다. 금선왕조 태조(太祖) 이진(李晉)께서 개국후 장자에게 나라를 물려주려 했으나 개국에 공이 큰 4남 이동(李動)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3대 임금 강종(强宗)이 되었다. 태조께서 본래 북방의 거란,여진,흉노와 혼인동맹으로 화친하는 정책을 펴고자 했으나 3대 강종때 약간의 논란과 변동이 있었고 4대 명종대에 와서 이를 바로잡으니 이때 나라를 안정시킨 47 충신(忠臣)을 공신(功臣)으로 봉하니 이가 ‘안정공산(安定功臣)’이다.
명종께서 태조의 뜻을 이어받아 거란과 혼인동맹을 재개 거란 14대 황제 예선제(禮宣帝)의 여식을 후비(後妃)로 삼았다. 명종이 선대의 뜻을 이어받아 거란여인과의 후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어린 후자(後子)를 태자로 삼으려 하니 차남 진수대군(眞守大君)이 이를 부당하다 하여 학성재(學成齋 : 금선왕조에서 양반,귀족,공신의 자손들을 교육시키는 일종의 대학기관)에서 동문수학한 20여인의 동료들과 함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인 4대 일종(壹宗)을 몰아내고 왕이 되니 그가 5대 황종(皇宗)이다. 이때 황종과 함께 난을 주도한 최광일(崔光日)이란 이가 있는데 본래 개국공신 최동환(崔東煥)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고 총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수대군의 난’이 성공하니 황종의 명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일등(一等)’에 봉해졌다.
난이 일어나매 정난 주도세력은 친 거란, 친 여진파 신료와 그 가솔 수십여인 그리고 명종시절 공신 47인의 대다수를 몰살시켰다. 바로 이때 화를 입은이중 하나가 충혼공 염종수다. 이때 염향은 마침 주향계(酒香契 : 금선왕조 시절 양반,공신가문 또래의 젊은 여식들끼리 함께 노니는 일종의 친목모임으로 ‘주향계’는 주로 술과 놀이를 즐기는 모임이다.)에 참석했다 화를 면할 수가 있었다. 다만 모임이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변란의 소식을 접하고 급히 친우(親友)의 말을 빌려 달아나 화를 면했다. 염향은 경산도(慶山道 : 아리수 반도 동남지역에 위치한 도(道)로 북부는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남부는 강과 들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로 일시적으로 몸을 피신했다. 난이 어느정도 수습된후 돌아와보니 공(公 : 염종수를 말함)의 집안은 이미 몰살을 당해 가옥은 불에 타 형체를 찾을수 없고 옛 자산(資産)도 모두 몰수당해 찾을길이 없었다. 신분을 숨긴채 다른 가족들의 소식을 묻고자 했으나 난(亂)중에 대다수가 죽거나 행방을 할수없게 되었다는 말만 들을뿐이었다.
좌절한 염향이 경산도로 다시 내려가 한 산골짜기에서 목을 매 자살하려 하였다. 허나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엔 약을 먹어 자살하려 하였다. 잠시 실성한 여인처럼 헤매다 강물에 빠져 하염없이 흘러갔다.
무성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원래 짐승가죽으로 신이나 옷가지 따위를 만드는 천한 갖바치였다. 본래 부인이 있었는데 살림이 워낙 가난하다보니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셋 낳았는데 이후에 혼자 아이를 키우니 이때 첫째 지호가 12살, 둘 때 지현이 10살, 셋째 지철이 7살이었다. 갖바치였지만 글과 학문에 관심이 있어 수성사(守成寺)의 보현대사(普賢大師)를 남몰래 찾아가 글과 경전을 익히곤 했다. (* 금선왕조 이전 화려(華麗)왕조가 삼생(三生 : 전생,현생,내생)과 인과응보를 중심윤리로 하는 석문교(釋文敎)를 국교(國敎)로 하였으나 폐단이 많아 화려왕조를 쓰러트린 금선왕조가 이를 금기시하였다. 허나 일반백성중엔 여전히 산속으로 숨어든 석문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았다. - 금선왕조는 따로 국교(國敎)를 두지 않았다.)
하루는 무성의 첫째 지호가 아침부터 나무를 하기위해 집을 나섰는데 인근 개울가에 웬 여인이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아버지한테 알리니 둘이 함께 여인을 집으로 데려온뒤 의원을 불렀다. 얼마안가 정신을 차렸는데 한동안 기억을 잃은 듯 자신의 신분을 전혀 말하지 못했고 말을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나)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성에게 발견이 된 여인이 염향(廉香)이다. 무성이 염향을 안심시키며 가족들에게 데려다주고자 그녀의 신분을 거듭 물어보고 가족을 수소문해 알아보려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염향이 자신의 신분을 거의 밝히지 않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말해 무성도 머지않아 체념상태가 되었다. 무성의 집에서 머무는 상태가 된 염향이 하루는 무성의 아이들의 옷을 보니 너무 꾀죄죄하고 다 헤져있어 염향이 직접 아이들 옷을 지어주었다. 갖바치일을 하고 돌아온 무성이 놀라 물으니
“ 갖바치 일을 하시는 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남들에겐 그리도 좋은
옷, 좋은신을 잘 만들어 파시는분이 어떻게 자기 아이들 입는 옷 하나 돌아보지
않으실수 있으십니까. ”
무성이 머쓱하여 답을 하지 못했다.
염향이 또 때론 아이들에게 직접 간식을 만들어주기도 하니 아이들이 좋아하였다. 또 원래 아이들이 밤잠을 잘 자지 못해 무성의 골치를 썩이곤 했는데 염향이 직접 품에 안아주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단꿀’을 먹여주면 아이들이 곤히 잠이들었다. 무성이 염향이 아이들을 재우는 신비의 ‘단꿀’에 대해 물으니 염향은 ‘그저 따뜻한 물에 꿀을 조금 탄것뿐’이라고만 답했다. 무성이 여전히 믿기지 않아 자신도 좀 먹어보면 안되곘느냐고 하니 염향이 기겁을 하며 손을 내저으며 ‘안된다’고 하였다. (* 실은 단꿀은 꿀물에 술을 조금 탄것이나 어차피 이와같은 진상은 추후에도 밝혀지기 어려운 것이다. 혹시 세월이 많이 지난후 후세의 역사가나 의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규명해 낸다면 모를까.)
아이들이 점차 염향을 좋아하며 따르자 아이들이 심지어 그녀에게 ‘어미가 되어즈면 안되겠느냐 ?’고 까지 하니 무성이 난감해서 ‘그러면 못쓴다’고 아이들을 꾸짖었다.
한편 이때 최광일은 도성(都省)에서 정난 이후의 정국을 수습한후 요직에 앉아 염향의 행방을 쫏고 있었다. 한 측근이 이해할수 없다는 듯 물었다.
“ 이미 친 여진, 친 거란파 잔당들이 모두 처단되었는데 그까짓 계집 하나가 뭐 그
리 대단하다고 찾으려 하시나이까. ”
최광일이 답했다.
“ 모르는 소리 마라. 내가 소싯적에 그 계집을 몇 번 만나본적이 있어서 좀 안다.
그 계집이 어릴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해 경서와 전략에 밝은 것을 내가 안다.
혹시 다른 지방에서 지지자들을 모아 반란이라도 도모하려 했다간 큰일이다 !!! ”
이때 마침 염향을 봤다는 목격저가 나와 정난당일 말을타고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던가 난이 끝난 얼마후 가족의 행방을 찾으러 도성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등이 있었다. 최광일이 용모파기를 전국 각지 고을마다 붙여 염향의 행방을 찾으려 했다.
한편 이때 염향의 행방을 찾는이가 있었으니 원래 염향과 혼담이 오가던 기경철이란 이었다. 원래 기경철의 부친 기정수가 사헌집의 벼슬에 있으면서 자신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 안정공신 충혼공인 염종수공 집안의 여식과 자신의 아들이 짝지워지길 원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염향이었는데 한참 혼담이 오가다 정난이 일어났으니 기정수는 걱정하여 아들을 단속했다.
“ 정난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니 함무로 말을 하며 다니지 마라. 행여 염종수의 집안
과 혼담이 오가던 사이임을 알면 우리집안도 낭패를 보는수가 있다. 조만간 다른
좋은 집안의 여식을 짝지워줄터이니 너무 걱정말거라. ”
하니 기경철이 반박했다.
“ 어찌 신의가 있는 사내로서 한번 혼담이 오갔던 처자를 버릴수 있나이까. 반드시
염향낭자의 행방을 찾겠나이다. ”
하고는 벼슬길애 오르는것도 마다하고 염향을 찾으러 나섰다.
한편 이때 무성은 집에만 갇혀있는 염향이 걱정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에라도 다녀올 것을 권했다. 염향이 뜻대로 했는데 이미 이때 이 마을 저자에도 염향의 용모파기가 붙어있어 염향이 놀라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성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는 울면서 사죄했다.
“ 소녀가 용렬하여 감히 대인을 속였나이다. 용서하소서. ”
무성이 놀라 “ 이 무슨 일이오 ? ” 하니 염향이 그제야 신분을 숨긴 것을 밝히며
“ 소녀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는 것을 사실대로 밝힐수 없는 몸
이었나이다. 역적의 딸임을 아시면 대인께서 소녀를 관아에 고변할 것을 두려워 숨
겼고 이 한몸 살고자 소녀의 신분을 숨겼나이다. 소녀를 살려주신 은인을 기만하고
속인죄 백번 죽어 마땅하니 처분대로 하소서. ” 하였다.
무성이 놀라 염향을 일으키며
“ 귀하신 아씨께선 일어나시오. 어찌 귀하신 몸을 함부로 대하리이까. 또한 억울하게
역적의 누명을 써서 집안이 몰락하였으니 어찌 이런 딱하고 억울한 처지에 있는 아
씨를 고변하리까. 혹여 아씨의 집안이 복원되길 원하시면 미천한 몸이나마 도울수
있는일이 있다면 돕겠나이다. ” 하였다.
염향이 일단 계속 무성의 집에 머물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여전히 염향을 잘 따랐다. 이에 하루는 다시 무성에게 절하며 말하기를
“ 원컨대 나으리의 배필이 되고자 하나이다. ” 하였다. 무성이 놀라 당치않다 하니
“ 이미 역적의 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저는 양반가의 여식이 아니외다. 신분이 드
러난다면 꼼짝없이 죽게 되거나 노비로 팔려갈 몸이니 차라리 갖바치의 아내로
사는 것이 어느 양반댁 부엌데기가 되어 오만가지 수모를 당하며 사는것보다 차
라리 낫나이다. 갖바치의 아내라도 소녀의 현 처지로선 감지덕지니 부디 내치지
마오소서. ”
무성이 사흘밤낮을 고민하다 마침내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마을 주민들에겐
“ 원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처자였으나 지금은 정신이 어느정도 돌아온 듯 하고 사
연을 듣자하니 고아로 자라나 가족없이 떠돌던 오갈데 없는 몸이오이다. 내 집에
머물면서 공교롭게도 눈이 맞았으니 아내로 맞이하기 원하나이다. ”
하고 동네 이장과 고을의 향리까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혼인식을 올렸다. 염향의 본 이름은 숨긴채 ‘미옥이’라고만 했다.
미옥이 무성과 혼사를 치렀을 때 장남 지호는 12살이었다. 애초에 염향을 처음 발견한게 무성이었지만 막상 둘이 혼사를 치른후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에 미옥이 우려하며 무성에게 말하기를 ‘큰아이가 저와 말을 잘 섞으로 하지 않은 것이 혹여 제가 새어머니가 된 것을 싫어하는 것 아닌지 우려되옵니다’ 하였다. 그러자 무성이 되려 미옥을 위로하며 ‘지호가 원래 어릴때부터 나를 닮아 숫기가 없고 말수가 적을뿐 속은 깊은 아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둘째 지현은 이때 열 살이었는데 하루는 동네 아이들과 싸우다 들어왔다. 지현과 싸운 아이들의 부모가 집으로 찾아와 항의하니 미옥이 우선 지현을 불러 연유를 물었다. 지현이 답하기를 ‘원래부터 동네 아이들이 저를 ‘엄마없는 아이’라 놀려댔는데 이제 새어머니가 생기니 다시 말하기를 ‘너희 형제에게 이제 계모가 생겼으나 새어머니가 아이를 가지면 반드시 너희를 구박할것이요 급기야 이 집에서 쫏아내게 될 것이다. 천한 갖바치인 너희 아버지 능력으로 너희 셋을 키우기도 빠듯한데 하물며 그 이상일땐 어떻겠느냐 ? 반드시 너희가 쫏겨나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로인해 분하여 아이들과 다투었다고 하였다.
지현이 이에 ‘안되겠다’ 싶었는지 지현과 싸운 아이들의 어머니를 모두 불러 크게 술상을 대접하고는 ‘내가 비록 부득이한 사정으로 천한 갖바치의 후실이 되었으나 어미없는 아이들을 잘 돌보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 아이들이 더 이상 우리 둘쨰에게 허튼소리 하는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앞에 맹세코 제가 세 아이를 모두 친자식처럼 거둘것입니다’ 약조하니 부모들이 그런대로 수긍하고는 술이 거나하게 취한채로 돌아갔다.
막내 지철은 이때 일곱 살이었는데 어릴 때 어미를 잃었는지 모정을 그리워하였다. 잠자리에서 종종 미옥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는데 처음엔 미옥이 당황하며 거부하였다. 무성이 뒤늦게 알고 손을 잡고 타이르며 말하기를 ‘지철이 아직 나이어리고 어린나이에 어미를 잃어 여러 가지로 그리워하는 것이 많으니 그대가 이해하라’ 하였다. 결국 이때부터 미옥이 지철을 품에 안고 잤고 가슴 만지는 것을 허하였다. 또한 지철이 코를 자주 흘리고 뒷간 가는 것을 무서워하였는데 이로인해 미옥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세수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뒷간 가는데 필히 함께 가주었다.
미옥이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무성이 가죽으로 신발과 옷가지를 만드는일을 도왔는데 허나 본래 귀한 양가집 여식으로 이런일을 해본적이 없어 서투르기만 하고 실수가 잦았다. 이에 무성이 손을 내저으며 ‘그대가 이 일은 아무래도 맞지 않는 것 같으니 차라리 아이들 돌보는데만 집중하도록 하라’ 하였다. 허나 미옥이 정중히 무릎꿇고 말하기를 ‘천한 여식이 이제와서 나으리의 크신 은혜를 입었는데 이제와 방치하라 하심은 당치 않으십니다. 무릇 세상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이가 누가 있겠으며 어르신께서 저를 세밀하게 가르쳐주시면 제가 스승으로 여기고 성실하게 배워 반드시 일을 익히도록 하겠나이다’ 하였다. 하는수없이 무성이 미옥에게 갖바치일까지 손수 도와주었다.
하루는 밤중에 우연히 지호와 지현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처음에 형인 지호가 아우에게 말하기를 ‘새어머니가 돌아오셔서 지금은 우리를 보살펴주고 계시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새어머니에게 신세지며 살수는 없는일이다. 무릇 내가 열두살이고 네가 열 살이니 머지않아 장가를 들면 독립하여 따로 살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서 각자 배필을 구하게 될것이나 좀 더 일찍 자립하여 손수 돈을벌어 새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는게 어떻겠느냐 ?’ 형이 이와같이 말하니 아우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옥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이게 무슨소리냐 ?’며 방으로 들어왔다. 지호와 지현이 모두 놀라 그 앞에서 절하였는데 미옥이 아이들을 감싸안으며 타이르며 말하기를 ‘내가 이미 너희 아버지와 혼약을 맺었을 때 너희의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약조한것도 다를바가 없다. 이미 한번 너희의 어미가 되기로 약조한바 죽는날까지 배은하는일이 없을것이니 너희는 모쪼록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말라.’ 하였다. 지호와 지현이 여전히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미옥이 손수 손가락을 깨물어 하얀천에 혈서를 써 보여주며 말하기를 ‘만약 내가 너희를 배신하는 일이 있거나 구박하는일이 있거는 하늘이 노하셔서 그날 벼락이 쳐서 이 어미의 영혼조차 구제받을일이 없게 될것이니 그리 알도록하라.’ 하였다.
미옥이 하루는 지호와 지현을 데리고 저자에 놀러나갔는데 진귀한 인형과 장난감 따위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처음 지현이 ‘저 장난감과 인형이 갖고싶다’ 하여 미옥이 가게안에 들어가 값을 물으니 너무 비싸 살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미옥이 처음에 ‘지금은 돈이 없으니 훗날 기회가 되면 사도록 하자’ 하였다. 지현이 칭얼대자 지호가 그런 동생을 나무라며 ‘어찌하여 어머니를 힘들게 하느냐 ? 그만하도록 하라’ 하였지만 지현의 칭얼거림이 그치지 않아 결국 형제간 다툼으로 이어졌다.
하는수없이 미옥이 지호와 지현을 저자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곳으로 데리고 와 타이르며 말했다. ‘둘째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나 오늘은 형의 말이 옳다. 알다시피 너희 아버지가 천한 갖바치의 몸으로 손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니 너희가 이해하도록하라’ 하니 지호는 수긍하였으나 지현이 여전히 수긍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하루는 지현이 동네에 어울리는 아이 서너명과 놀다가 들어와선 말했다. ‘아이들이 며칠후에 인근 야도산(野都山)에 개구리와 도롱뇽을 잡으러 가자고 하니 허락해주소서’ 하였다. 미옥이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어미가 이 마을에 들어와 산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예부터 야도산은 산세가 깊고 험하며 길이 복잡해 예부터 아이들까리 힘부로 놀러갔다가 길을 잃거나 실종되는 경우가 잦았다고 들었다. 가지 않는 것이 좋을듯하다’ 하였다. 미옥이 거듭 완강히 반대하니 지현이 결국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으나 입은 여전히 댓발이 나와있었다.
며칠후 아이들이 기어이 약속을 한 야도산에 놀러가니 다만 지현은 미옥의 거듭되는 반대로 집에 있었다. 밤늦게 아이들이 집에돌아오지 않아 난리가 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찾으러 다녔고 마침내 관아에까지 알려 포졸들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며칠만에 실종된 아이 세명중 두명은 기진한 몸으로 산속에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나 나머지 한명은 끝내 발견하지 못하였다. 돌아온 아이들은 부모가 다행스러워하는 가운데서도 ‘그리 가지말라 일렀거늘 어찌하여 말을 듣지 않았느냐 ?’며 꾸지람을 듣는 것 또한 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지현이 혼자 방구석에서 되뇌이며 말하기를 ‘내 일찍이 계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큰 화를 입을뻔하였도다’ 하고 이후에는 미옥에게 순종했다.
하루는 한밤중에 일곱 살 지철이 칭얼대며 울길래 미옥이 놀라 연유를 물었다. 아이가 말하기를 ‘언젠가 우연히 먹은일이 있는 맛좋은 약과와 꿀떡이 먹고싶노라’ 미옥을 보챘다. 미옥이 탄식하며 ‘이 한밤중에 그것도 우리형편에 어딜가서 그 비싼 약과와 꿀떡을 구한다는 말인가’ 하고는 일단 아이를 달래보며 ‘일단 잠을 이루도록 하라. 어미가 생각이 있다’ 하였다.
다음날 미옥이 수소문하여 인근에 한 부잣집을 찾아가 ‘이곳에서 삯바느질 일을 하고 싶소이다’ 하여 주인마님이 허하였다. 일주일여 삯바느질을 한 돈이 모아지자 비로소 지철에게 약과와 꿀떡을 사줄수 있게되니 아이가 입에 ‘헤’하고 벌어졌다. 나중에 무성이 의아하여 묻기를 ‘일전에 지호,지현이와 저자에 나갔을때는 형편떄문에 사줄수 없는 물건이 있다하여 아이들을 심통나게 하더니 막내 지철의 일에는 선뜻 나섰으니 무슨 까닭이오 ?’ 하였다. 미옥이 웃으며 말하기를 ‘셋이 다 어린아이라 하나 첫째 지호와 둘쨰 지현이는 그래도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세상물정을 조금씩 알만한 나이니 그 이치를 꺠우쳐주게 함이었지만 일곱 살 지철이는 아직 그런 이치를 말해주어야 모를 나이니 세 아이를 대함이 어찌 같을수가 있겠습니까. 이치가 이와같으니 나으리께선 의심마소서’ 하였다. 무성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 규환어미라는 이가 있었는데 평상시 남의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험담하기를 좋아하였다. 이 무렵 종종 이웃 아낙들을 만나 말하기를 ‘미옥이란 여인은 실은 밤에 몰래 아이들을 구박하며, 심지어 추운 한겨울날 알몸으로 밖으로 내쫏은일도 있다더라. 그리고 밤에 몰래 외간남자를 만나기도 하는듯하니 반드시 머지않아 아이들은 물론 남편 무성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미옥이 나중에 이를 듣고 기가막혀하여 직접 만나 ‘내가 언제 그와같은 일을 하였는가 ? 내가 지금껏 단 한번도 아이들을 구박한일 없으며 갖바치 무성과 혼인할때도 그저 나를 구해준 은인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리라 약조하고 한것인데 어찌 이제와 그와같은 말을 하는가. 더욱이 내가 밤에 몰래 외간남자를 만난다는 소리는 더더욱 당치않다’ 하였다. 허나 규환어미가 되려 뻗대며 ‘네가 정녕 그와같은 일을 한적이 없다면 없다는 증좌를 내보이라’ 하였다. 미옥이 더는 견딜수가 없어 관아에 고변하였다.
관아에서 조사하니 비로소 미옥어미의 무고함이 드러나 규환어미에게 장 열대를 친뒤 ‘함부로 남의 없는일을 만들어내 다른이에게 폐를끼친 원죄가 있으니 금 열돈으로 보상토록 하라’ 하였다. 규환네는 그와같은 금전으로 갚을 능력이 없어 하는수없이 무성의 갖바치일을 석달동안 대신 도와주는 것으로 값을 대신하였다.
무성의 아이들이 때론 밤늦은 시간에 잠을 이루지 못해 힘들어하였는데 미옥은 이럴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뜰로 나가서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개는 어미없이 자라는 나이어린 소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이야기가 구슬프고 흡사 자신들의 사연같다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들이 울다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미옥이 그제서야 품에 안아 방으로 다시 데려와 재웠다. 무성이 하루는 신기해하며 ‘대체 그대는 그와같은 이야기들을 어디서 들어 알고있는가 ?’ 하니 미옥이 ‘어디서 들었다기보단 어린시절 읽은 옛 서책에서 접한것도 있고 간간이 들은 전설이나 설화도 있사옵니다.’ 하였다. 무성은 다만 탄복하면서 ‘아무래도 그대에게 예사로운 기운이 깃들어있지 않은 것 같도다’ 하였다.
지호가 하루는 아우 지현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비록 지금은 우리를 잘 보살펴주시지만 어차피 우리를 낳아주신 친 어머니가 아니니 한계가 있다. 또한 어머니가 본래 예사로운 신분이 아니었음도 알고 있다. 언젠가 때가오면 어머니는 본래의 신분을 회복하여 보내드릴분이며, 또한 우리가 나이들어 장가를 들게되면 새로 들어온 색시는 반드시 어머니를 불편하게 여길것이니 그 또한 우리의 훗날 배필을 위해 못할일이다. 지금은 아직 우리 나이가 어려 이런일을 정식으로 논하기 이르지만 먼 훗날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보내드리고 우린 우리대로 살길을 찾아야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미옥이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놀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을 지어보이며 넌지시 말하기를 ‘너희가 요즘 어미를 속인 것이 있느냐 ?’ 하니 지호와 지현이 함께 ‘없사옵니다’ 하고 답하였다. 또 한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저자에 나가 재미있는 볼거리를 구경시켜준후 데려오는길에 잠시 쉬며 묻기를 ‘이 어미가 죽는날까지 반드시 너희와 함께 할것인데 어찌 생각하느냐 ? 나중에 너희가 때가되면 마땅한 배필도 만나게 하여 장가도 보내주어야 할것인데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구나.’ 하였다. 지호와 지현이 당황한 듯 서로를 돌아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이에 미옥이 정색하며 말하기를 ‘너희가 하는 이야기를 이미 다 들은바 있거늘 어찌 계속 어미를 속이려하느냐. 이미 어미거 네 아버지의 배필이 된 이상 다 죽은 목숨을 구해주신 너희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라도 평생을 너희와 함께 할것이며 또한 훗날 너희에게 합당한 배필을 찾아주는데도 게으르지 않을것이니 걱정하지마라. 또한 이미 한번 역적의 누명을 쓰고 천한 신분으로 내려온 이상 이전의 신원이 회복되기 어려움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죽는날까지 너희와 함께할것이요 떠나는일이 없을것이니 더 이상 쓸데없는 논의는 삼가도록 하라’ 하니 지호와 지현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잘못했노라’ 사죄하였다.
지철은 아직 나이가 어려 어미정을 그리워하여 자주 미옥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오히려 미옥을 따름은 가장 먼저부터 시작되었으나 아직 나이어려 그 힘듬이 한층 더하였다. 한번은 또 한밤중에 칭얼대며 맛난 것이 먹고싶다고 하니 나중에 미옥이 직접 근방에 우물을 파고 손수 얼음을 채운뒤 꿀과 설탕을 준비해서는 아이에게 보여주며 ‘밤에 목이 마르거나 배가고프면 이 어미가 직접 단물을 먹여줄테니 너무 걱정마라’ 위로하였다. 아이 옷이 너무 꾀죄죄하니 직접 옷을 빨아주고 바느질을 하며 새옷을 입혀주곤 하였다. 지철은 미옥을 가장 지극히 사랑하여 곁을 떠나는일이 거의 없었다.
이때에 기정수의 아들 기경철은 여전히 염향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었으니 부친이 다시 불러 꾸짖으며 말했다.
“ 네가 옛적 정혼자와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함은 갸륵한뜻이 분명하나 이미
한번 역모에 연루되어 삼족이 멸한집안의 여식을 무슨재주로 찾으려느냐 ? 설사
그 아이가 극적으로 탈출하였다 하더라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양반가 규수로 곱
게만 자란 그 아이가 험한 세상에서 무슨수로 살아남겠느냐 ? 지금껏 소식이 없
으면 이미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 다시는 찾지 말도록 하라. ”
하고 다시 덧붙여 말하기를
“ 설사 그 아이가 살아돌아온다 하더라도 이미 역적의 집안 여식이 된 아이를 어
쩌겠다는것이냐 ? 공연히 가문에 화가 미칠수도 있는일을 벌이지 말고 자중토록
하라. ”
하고는 실세가 된 명분가와 짝을지어 아들의 혼사를 추진하려 하였다.
처음 도총관집 5녀중 셋째인 한씨(韓氏女)와 혼담을 추진하려 들었는데 사주단자가 한참 오갈 때 오히려 경철이 달아나고 말았다. 자연스레 파혼이되자 부친이 아들을 다시 엄히 질책하며 두 번째 혼사를 추진하려 하였는데 이번엔 정난공신 2등에 봉해진 유성환(柳成煥)의 집 8남매중 다섯째딸과 혼사를 추진하려 하였는데 혼례식날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가던도중 말을 돌려 달아나 자신의 친구들과 시회를 열고 술판을 벌이다 열흘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부친이 거듭 기가막혀 엄히 꾸짖으며 말하기를
“ 네 어찌 망령되이 인륜지대사를 이렇게 그르치려하느냐 ? 너로인해 우리 집안
망신살이 뻗친것도 차마 얼굴을 들수 없는일이거니와 너로인해 혼사가 파해져
다른곳으로 시집갈 처지도 못된 처자들의 앞날은 어찌할참이더냐 ? 옛적 정혼
자와의 신의는 중하고 지금 혼사를 추진하는 집안 처자와의 신의는 중하지 않
다는 말이더냐 ? 게다가 네가 여전히 역적의 집안 딸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세
상이 알게되면 결국 가문에 화근이 미칠터이니 두 번다시 경거망동하지 말라
!!! ”
엄히 꾸짖고 다시 세 번째 혼사를 추진하니 경철이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이번엔 대체학 벼슬하는 변승우(邊昇優) 대감댁 2녀와 혼사가 추진되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경철이 이번에는 순순히 승복하였다. 혼사를 치르고 일주일여쯤 지났을 때 새 부인을 불러 말하기를 ‘나는 부득이하게 부친의 뜻을 저버릴수가 없어 혼사를 치루었으나 이전 정혼녀였던 염향낭자의 소식이 걱정되어 그 근심을 놓을수가 없소. 만약 염향아씨의 생사만 확인이 된다면 돌아올터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시오’ 서한 한 장을 남기고 먼길을 떠났다.
한참후에 경철이 경산(慶山)땅에 이르러 염향을 발견하였다. 염향은 이때 미옥으로 이름을 고친뒤인데 경철을 알아보았으나 바로 외면하였다. 답답함에 경철이 직접 미옥의 사는집을 찾아가보았는데 이미 한 남자와 살고있고 아이들까지 있는 것을 보고 기막혀하였다. 경철이 한밤중 무성을 불러 멱살을 잡으며 따지기를 ‘네가 천한 갖바치주제에 그 아씨가 감히 어떤분인줄 알고 차지하였느냐 ? 천한 신분으로 양반집 귀한 여식을 희롱했으니 관아에 고변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였다. 미옥이 뒤늦게 이를 발견하고 만류하여 말하기를 ‘높으신 도령께서 이 무슨 망령된 일이오이까 ?’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미 역적의 몸으로 노예의 신분으로 강등된지 오래인데 이제와 과거의 신분이 무슨 소용이외까. 평생을 노비로 핍박받으며 살아갈 처지였던 몸을 단지 갖바치의 아내로라도 거두어준 낭군께 감지덕지인것이니 더는 말하지 마소서.’ 하였다. 경철이 거듭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허면 정녕 아이까지 있는 천하고 늙은 홀아비와 평생을 살겠단 말씀이오이까 ?’ 하니 미옥이 답하기를 ‘이미 제가 낭군으로 삼았으니 더 이상 홀아비가 아니며 이미 아이들을 제가 친자식으로 품었으니 어미로서 도리를 다할뿐이외다’ 하니 더욱 기가막혀하였다.
경철이 나름 꾀를내어 무성의 아이들을 꼬셔내 저자에서 맛난 것을 사주며 말하기를 ‘너희 어미는 본래 이런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요 시절이 어수선해짐에 잠시 몸을 숨겨 이곳까지 오게된 것뿐이다. 이제 신분이 회복되면 본래의 양반 신분으로 돌아갈것이니 더는 너희 어미를 힘들게 하지말고 그만 놓아주라.’ 설득하였다. 적당한 금전까지 얹어주며 ‘만약 어미를 돌려만 보내주면 너희 셋이 앞으로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재물로 후사할 것이다’ 하였다.
아이들이 밤늦게 돌아왔는데 미옥이 모든 것을 알고 매섭게 회초리를 치며 말하기를 ‘너희가 진정 나를 어미로 생각한다면 어찌 배신함이 이와같을수 있느냐 ? 죽는날까지 너희 아버지의 안해로 그리고 너희들의 어미로 도리를 다할것이라 수도없이 말했건만 한낱 낯선 무뢰배의 말에 현혹되어 이런일을 벌인단말이냐 ?’ 하고 엄히 꾸짖으니 세 아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눈물로 참회하였다. 미옥이 무성과 아이들을 부둥켜안고는 밤새도록 울었다.
경철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관아에 소소을 제기하니 사또가 말하기를 ‘미옥이 비록 한때 양인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신분이 강등되어 천인이고 이미 혼사를 치러 갖바치의 아내가 되어있으니 신분이 높다하여 이를 강제로 취하려함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미옥이 천한 신분이 되고서도 지어미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있고 아이들을 돌봄도 지극하니 기공은 더 이상 과한 욕심을 부리지말고 승복하도록 하라’ 하였다. 경철이 그제서야 ‘아무래도 낭자와 나는 이 생에서 인연이 아닌가보오이다.’ 하고는 사죄의 절을 한번 크게 올리고는 떠났다.
세월이 흘러 무성의 아이들이 자라 지호는 19세, 지은 17세, 지철이 14세가 되었다. 하루는 미옥이 아이들을 불러 ‘너희는 본래 아비가 천한 갖바치 신분이니 특별한 일이 없는한 평생을 이 신분을 헤어가니 힘들 것이다. 내가 본시 팔자가 기구하여 너희 아비의 후처가 되어 지금껏 너희들을 정성껏 키워왔으나 너희들의 앞날이 그리 밝지 못한 것이 내 지금껏 근심이었다. 허나 만약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 너희가 공을 세운다면 그로인해 신분이 바뀌는 운이 돌아올지도 모르니 한번 대비를 해보도록하자’ 하고는 병서와 전략집을 가져와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때 동남방 외족(外族)들이 경산(慶山)땅 동남부 해안에 나타나 난리를 일으켰다. 외족들은 대개 해안가 마을과 도시들을 습격하였는데 포항,울산,경주등의 10여고을이 침탈되었다. 이때 미옥이 급히 3형제를 불러 말하기를 ‘지금 동남방 외족이 경산땅에서 난리를 일으키니 조정에서 진압하기 쉽지 않은듯하다. 너희는 지금껏 어미에게서 배운 지혜들이 있으니 한번 나서도록하라.’ 하였다. 이에 지호,지철,지현 3형제가 제각기 100여인의 무리를 이끌고 외족들의 난을 진압하러 나섰다.
먼저 지호가 100여인을 거느리고 포항땅에 이르니 무리들에게 말하기를 ‘외족들은 한낱 해구(海寇)에 불과하니 지략이 없고 치밀한 계획이나 목적도 없어 충분히 섬멸할수 있을 것이다. 너무 겁먹지 말라’ 하였다. 이후 포항의 마을을 점거한 외족들의 주변에 진을친뒤 밤마다 기이한 울음소리와 연기를 피어오르게 했다. 외족들이 본래 문명이 발달하지 못해 귀신과 요괴를 두려워헀는데 밤마다 귀신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 두려워하며 울거나 도망치는이까지 있었다. 이때 지호가 100여인의 무리를 이끌고 공격하여 외족을 격파하고 포항땅을 회복하였다.
지현이 100여인을 이끌고 울산으로 나아가지 이곳의 외족들은 강가에 진을치고 있었다. 지현이 말하기를 ‘외족들은 물싸움에 능하구 육지싸움을 못하니 강변이 진을 친 뜻도 반드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벌판으로 유인하여 섬멸토록하자’ 하고는 소수의 무리로 북과 징과 꽹과리를 치니 외족들이 놀라고 화가나서 달려나왔다. 이윽고 지현의 무리들으 외족을 벌판으로 유인한뒤 대군을 몰아 외족을 섬멸하였다. 울산땅을 이렇게 탈환할수 있었다.
지철은 100여인을 이끌고 경주로 나아갔다. 경주에 산이 많이 외족들은 어찌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지철이 말하기를 ‘외족들은 산에 익숙지 못한곳에서 자라났으니 우리가 충분히 깨트릴수 있다. 하고는 평지에 길을 터놓고 산길을 막아놓아 외족들이 그곳으로 지나가게 한후 화공을 써서 외족을 섬멸하였다.
지호,지현,지철 3형제가 외족을 격퇴하니 조정에서 기뻐서 불러 이들을 치하하였다. 3형제가 말하기를 ’다만 저희가 나라에 공을 세운 것은 어머님의 크신 가르침이 있었을 따름이니 영광을 저희를 길러주신 어머님께 바치고자합니다‘ 하였다. 왕이 바로 3형제의 어미를 들게하니 미옥이 그제서야 염향이란 본래 이름을 밝히고 ’나라에 죄를 지은 자손으로 다만 천한신분의 아낙이 되어 숨어사는 것으로도 감지덕지하여 다만 선대가 나라에 지은죄를 씻어 신원을 회복할날만을 기다렸을뿐 다른뜻이 없었나이다‘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염향의 본래 이름을 회복하고 조상의 신원도 복원하여 제사를 지낼수 있도록 허하였다. 염향에겐 승명부인(承明婦人)이란 칭호와 열근의 금은보화를 하사하였으며 훗날 나이들었을 때 쓸수 있도록 금으로 만든 궤장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무슨일이 있을 때 별도의 허가없이도 왕궁을 출입할수 있는 특권을 하사하였다. 남편에게도 벼슬을 내리려 하였으나 본래 천하고 배운 것이 없다 사양하니 다만 천인의 신분만 벗게하여 고향에서 향리로 지낼수 있게해주었다. 별도의 글을 가르치는 스승을 내려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수 있도록 보완해주었다. 3형제에게는 각기 신의장군(信義將軍),신묘장군(信妙將軍),신형장군(信形將軍)이란 칭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