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는 자는 함께 올라가게 하셔
에스라 7장 11절-13절 2024년 7월 21일 주일 오전 말씀지
왜? 사는가? 많은 사람들이 목적도 없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같이 물 폭탄이 떨어지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나라는 어수선하고 경제가 어려워질 때 술로 마약으로 취해 당하는 고통을 잊으려 몸을 망치고 있고 앞으로 살날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친구들과 겟트 볼이나 치며 맛집이나 찾으며 마지막 남은 시간들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낙이 없는 현실입니다. 전12:1-
세상 것만 바라보고 사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나요? 그러나 이때에 에스라서를 양식으로 받게 하신 자들은 삼위로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밝히 보기에 사는 날 동안 내 몸이 성전임으로 날마다 거룩 생활을 하기 위해서 겸손하게 새벽을 깨우고 모든 성경을 양식으로 받기에 간절한 심령에 신령한 기쁨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학사 겸 제사장으로 한날 한날 흠없이 살게 하시는 것을 기뻐하는 해의 영광을 받을 자입니다. 예수님도 이땅에 오셔서 오로지 그 몸을 성전 삼고 30세까지 사시다가 3년간 생명 사역을 하시고 택자들을 위하여 죽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기에 기쁘게 십지가에 달리사 죽음의 잔을 마셨습니다. 요18:11-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로는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한 예수로 십자가 죽음 앞에서 고민과 고통 하시면서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옮겨달라고 애원하는 나약한 예수로 나타내주셨습니다. (마26:39, 막14:36, 눅22:42) 그것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태초부터 계신 성자요 아담 때 가죽옷 구원을 이루신 주를 (창3:21)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를 알지 못한 탓입니다. (마1:21) 그리고 성령까지 약속하시고 보내신 그리스도임을 알지 못하니 믿는다고 하나 여전히 기복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에스라를 2차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실 때 함께 올라가게 하신 자들을 나타내주시는데 영광길은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니고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는가? 그 뜻을 아는 자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몸이 피 값으로 사신 성전인 줄 알고 날마다 거룩생활 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아닥사스다 왕을 들어서 에스라와 함께 올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스7:27-
11절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의 학사인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은 모세 때 하나님이 애굽에서 큰 권능으로 이끌어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히 두 돌판에 새겨주신 십계명입니다. 출20:1-
그 계명을 지키면 가나안에 들이신다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직도 가나안을 천국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에스라서를 잘못 말하게 됩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그 계명으로 1.죄를 알게 되었고 2.죽도록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겸손히 엎드릴 수밖에 없고 3.복음으로 살리심 받고 날마다 양식을 받고 주시는 힘으로 지켜나가게 하사 복을 주시려는 것이요 4.끝까지 그 계명을 지켜나가다가 목베임을 당하게 하사 순교자가 되게 하사 첫째 부활을 얻게 하심이요 계20:4-
5.지킨대로 행한대로 심은대로 상과 영광을 주시려 함입니다. 1계명부터 4계명은 영광을 주시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상을 주시려 함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는 사는 날 동안 그 계명을 지키는 생활로 레위기에 그리고 신명기에 다시 재론해 주셨습니다. 성령 시대에는 서신서까지 양식으로 주셔서 영적 생활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학사는 오늘날의 대학 학부 출신이 아니라 영적으로 아이-청년-아비의 자리로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하여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생명의 빛으로 오사 한생명 한생명 영적으로 살아나게 하시니 아이요 (1장에서 5장까지) 생명의 떡을 먹이사 자라나게 하시니 청년으로 힘있게 죄와 싸워 이깁니다. (6장에서 12장까지) 더 자라나 아구까지 채워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사 유방을 주시매 이제 어디든 보내사 자기 속에 있는 나누는 자리가 아비의 자리요 학사의 자리입니다. 요1서2:13-
오늘날 성경을 글자로 보니 목사들은 박사되려 많은 시간, 많은 재물, 많은 공을 들여서 학위를 받고 교만한 두로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 지식를 파는 장사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겔27:8) 학사 겸 제사장은 그 속에 영적 양식으로 풍성하매 거룩한 생활로 본을 보이고 살고 있는 에스라 라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자로 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는가? 를 깨닫게 하신 자라는 것입니다. 가죽옷 구원을 입힌 아담의 7대 후손 에녹은 뜻도 ‘교수’인데 신학박사가 아니라 영적으로 해의 영광을 받는 십사만 사천으로 자라나게 하시매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자녀를 많이 낳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창5:22-
오늘날 박사가 되어 교단들의 신학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성경을 지식으로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날마다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한말씀 한말씀 주신 율법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자기 양식을 삼은 자요 이제 나누는 일을 하게 하시려 그 입에 학자의 혀를 주신 자라는 것입니다. 사50:4-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깨닫게 하신 말씀을 아구까지 채워주시고 이제 성전을 지은 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나눠주게 하시려 결심하게 하시고 당시에 아닥사스다 왕을 들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게 하시려 조서까지 내리게 하신 역사입니다. 바사나라에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 세왕들은 에스라처럼 자기들의 영이 살아나고 자라나고 하늘의 영광을 밝히 보고 이룬 역사가 아니라 유다 백성들의 신앙을 보니 여호와가 크고 대단한 신으로만 느껴져서 자신들의 왕권과 왕자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스7:23-
심지어 악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까지도 불 속에서 살아난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고 하나님께 함부로 말하는 자는 그 몸을 쪼개 거름 터로 삼겠다고 한 것입니다. 단3:29-
12절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모든 왕의 왕은 당시에 하나님께서 바사 나라로 주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아하수에로 때는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도였으니 얼마나 큰 나라인 줄 알게 됩니다. 에1:1-
그만큼 권세있는 자를 들어서 에스라를 높이셨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국무총리로 세우셨고 다니엘도 총리로 세우셨고 포로에서 3차로 올라오게 하신 느혜미야도 올라오게 하셨는데 역시 술 맡은 관원장으로 중요한 관리였습니다. 심지어는 에스더는 왕후까지 되게 하신 것은 필요한 때에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에4:14-
왜? 아닥사스다 왕때 에스라를 바사에 고위 관리가 되게 하셨을까요? 오늘도 믿음의 사람들을 세상의 관리가 되게 하신 것은? 생명 역사를 위하여 일하라고 세운 것이지 육신 평안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니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만 하면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손 가락질 까지 받는 자리에 떨어져 짓밟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5:12-
에스라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론의 16대 자손으로 보내셨고 도우사 율법을 하나하나 깨닫게 하사 준행하게 하시고 바사 나라에 학사들을 가르치는 지위를 주셨고 이제 그 율법을 저버렸던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선한 일을 하게 하신 것을 밝히 보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고 언제나 준비된 자를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늘 양식으로 채운 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하신 자입니다. 다시 세워지게 하셨으니 이제는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대 주권자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부분까지 주장하십니다. 고위 관리의 자리에만 있으면 육신은 아주 편한 삶을 살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를 들어서 성전을 견고케 하신 일에 쓰신 것입니다. 에스라는 영과 육 무엇이 귀한지? 하늘 것과 땅에것 가치 판단이 뚜렷한 자입니다. 이런 자를 들어서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3절 조서하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조서하노니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역사로 기록하게 하신 것이니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로만 보면 양식은 되지 않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장하시고 에스라로 그 일을 하게 하시려고 이루신 역사입니다. 포로 생활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니 왕의 명령이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마음대로 올라가지 못하는데 이제 1차로 고레스 왕으로 2차로 아닥사스다 왕으로 허락케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찌어다 에스라는 성경을 글자로 가르치는 신학교 교수가 아니라 아버지의 집에서 율법을 영의 양식으로 나누러 가게 하신 자입니다. 이제 에스라처럼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자기 몸도 성전인 줄 알아서 거룩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복음이 믿어지고 진리로 자라난 자들입니다. 에스라를 앞세우시고 그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자를 모집한 것입니다. 지금도 복음이 무엇인지? 바로 알기를 원하는 자들, 자기 몸이 성전인 줄 아는 자들, 에스라처럼 그 영광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 받기를 원하는 자들을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너희 몸이 성전이니 약속하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기까지 양식을 채우라는 것이요 행1:4-
이제 충만함 받은 후 열매와 생명 역사를 이뤄가는 영적 생활이 예루살렘인데 날마다 진리로 자라나 거룩 생활로 예비한 자들을 첫째 부활로 일으켜 천 년 동안 더 열매 맺게 하시다가 영원한 하늘나라 영광성에 들어가서는 흠없이 주님의 신부들이 예루살렘으로 그 생활한 대로 상과 영광을 받고 세세토록 즐거워 찬송하는 곳입니다. 계21:2-
사도바울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순교키를 원하는데 빌립 집사와 네명의 딸들은 울면서 말릴 때 왜? 나와 같이 순교의 자리까지 가지는 못하면서 내 맘을 상하게 하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행21:13-
예루살렘은 지금 이스라엘 나라 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데도 성지 순례와 제3성전을 지어야 예수님 그곳에 오신다고 하는 거짓된 자들도 나타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