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대정읍 신평리 137-1번지.
유형 ; 비석(열녀문)
시대 ; 조선
비석 건립 연대 ; 1941년
구억리에서 신평리로 들어가는 일주도로 입구 좌측에 있다. 열녀 오씨는 제주 화순 사람으로 신평리 박성림(朴成林)의 처이다. 시집간 후 얼마 없어 남편이 죽자(안내판에는 시집가는 날 남편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함.) 그의 뒤를 따르려 했으나 시부모가 생존하여 억지로 만류하며 말하되 '남편에게는 열녀가 되지마는 부모에게는 효도가 안 되므로 시아비가 시키는 말을 어기는 것과 같다.'라고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반드시 새 옷을 갈아올려 정성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자주 남편 묘소에 가서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으며,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여 효도를 다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그 효성과 정절을 둘 다 실천한 것을 칭찬하였다. 유림의 추천과 제주목사의 완문, 찰리사의 완문이 내려졌으며, 태극교의 삼강풍화록의 기록을 근거로 고종7년(1900)에는 쌀과 고기를 하사받는 은전을 입었지만 아직 정표를 세상에 알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손된 자의 도리로서 그 효행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1941년 4월 10일에 이 비석을 세웠다.
비석 전면에는 〔烈女吳氏之門〕, 후면에는 此和順人吳氏之烈也天資仁貞幼有閭模八嫁于密陽人朴成林家未以(?)而喪其所天永絶(?)水穀期欲(?)下從舅姑勉强曰於夫爲烈於親喪孝豈箕倫理乎難遠舅命無(?)逢朔望必尊(?)新六頻往墓所血淚不絶(?)事親至孝鄕黨 其孝烈無(?)全焉故有儒狀及牧使完文察里使完文竝太極三綱風化錄而 高宗庚子九月日特蒙朝家下賜米向(?)之厚恩尙未得□典旌表之揚而爲其子孫者不可泯默先(?)蹟故人□建短碣焉 昭和十六年辛巳四月十日
옆면에는 子南九孫斗祿斗三斗好斗萬曾孫桂芳桂植
이라 음각되어 있다.
《작성 200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