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4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예배하는 곳 》
요 4:20~21
<예배 전문가가 되자>
2023년 온고을 교회 표어 “예배의 감격을 아는 온고을 성도”입니다.
“오늘도 예배하면서 감동 받을 준비가 되셨지요?” 할렐루야~
금년 한 해, 이 표어대로 살면서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새 해 첫 설교, 지난 주 “예배의 감격”으로 설교했습니다.
우리가 예배의 감격을 아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 2가지를 주문했습니다.
첫째, “예배하는 자가 되자!”
_ 우리의 정체성이 곧 “예배하는 자”라야 합니다.
_ 누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나는 예배하는 자입니다!”
_ 이 대답이 튀어나와야 합니다.
_ 예배하는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는 행복합니다. 할렐루야~
둘째, “예배의 감격을 알자!”
예배하되, 예배할 때마다 감격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_ 의무감에서 하는 예배, 습관적으로 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_ 예배 때마다 감격이 넘쳐야 합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말씀드리기를 “예배는 대나무 마디와 같다!” 기억하시지요?
그리고 한 주간 대나무 한 칸이 자라듯이 “쑤우욱” 자랐지요?
오늘 예배를 통해서 또 한 마디를 만들어갑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자라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예배하는 자가 되자!” / 둘째, “예배의 감격을 알자!”
오늘은 여기에 이어서 셋째가 추가됩니다. 셋째는 “예배 전문가가 되자!”입니다.
예배하면서 예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깁니다. 그렇지않습니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하고 답을 들어야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 예배에 대해 질문한 한 여인을 오늘 만납니다. 그 여인 이름은 ‘포티나’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 여인 ‘포티나’>
2천 년 전, 이스라엘 중부지역, 사마리아에 수가성이라고 있었습니다. “수가성”
포티나는 이 성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사는 포티나!
우리가 오늘 만나게 되는 한 여인입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성경에는 사마리아 수가성에 사는 여인으로 나옵니다. 이름은 안 나와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 전승에는 이 여인 이름이 ‘포티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티나는 어떤 여인인가?
참 기구한 여인입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홀로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느날 동네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갔습니다.
2천 년 전에는 동네 우물을 공동으로 마시고 살았습니다.
포티나가 물동이를 이고 우물에 물길러 나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누구를 만나요?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 포티나!”
예수님은 이 여인으로부터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십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서로간에 아주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 대화 중에서 오늘은 예배에 관한 대화에 주목해 봅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여인이 질문합니다.
(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우리 조상들~” 누굽니까? ~ 사마리아 사람들이지요?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족속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 사마리아에 있는 산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그 산 이름이 ‘그리심 산’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면서 살았습니다.
☞ 사마리아 사람들 뿐이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예배를 했습니다.
☞ 인류의 역사는 신에 대한 예배의 역사입니다.
☞ 사람들이 신을 찾지 않은 시대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의 역사에 신이 있습니다.
포티나가 예수님께 예배에 대해서 질문했으니, 예배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예배의 역사>
인류 역사에서 신께 예배하지 않은 시대가 없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초지종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배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예배하는 장소를 지정해 주십니다.
예배는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모세를 불러서 예배하는 곳을 지정해 줍니다.
하나님이 첫 번째 예배 장소로 지정해 주신 곳이 어딘가요? ~ ‘성막’입니다.
예배할 때는 성막 즉, 텐트를 쳐라, “그곳에서 내가 너희를 만나주겠다!”
맨처음 예배하는 장소는,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는 천막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 광야를 여행하면서 예배할 때마다 텐트를 쳤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성막에서 예배했습니다.
예배하는 장소에 변동이 온 것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계획 때문입니다.
다윗이 성막이 아닌 성전을 지어 예배하겠다고 할 때 하나님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 마음에 예배하는 곳은 견고한 성전보다는 이동이 가능한 성막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도 간곡하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못이기는 척하시면서 들어주십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대에 가서 예루살렘에 백향목과 대리석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때부터 예배하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곳? ~ 없었습니다.
주전 586년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되어버렸습니다.
바벨론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살면서 이들은 예배하는 장소를 만듭니다. 그것이 회당입니다. 시나고그입니다.
유대인 10가구가 되면, 처소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거기서 예배했습니다.
유대인의 이러한 전통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되돌아왔습니다. 포로귀환입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와서 허물어진 성전을 새로 지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 예배는 스룹바벨 성전에서 드렸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을 예수님 오시기 전 20년부터 증개축하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웅장하게 짓는 성전을 ‘헤롯 성전’으로 부릅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헤롯 성전 시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계시는 동안, 이스라엘은 헤롯성전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려면 반드시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성전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을 지나갑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포티나를 만나서 물 한 모금 얻어 마십니다.
그리고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대화 중에 포티가 예배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포티나의 이 질문은 “진짜 예배하는 곳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 즉, 그리심산에 있는 산당에서 예배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성전’에서만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포티나는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의 주장이 엇갈리는데 누가 옳으냐는 것입니다.
포티나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신을 찾아 예배하면서도 긴가민가 합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된 예배를 하고 있나?’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신을 안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배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말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종교에 따라 예배합니다.
설령 종교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예배를 합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예배를 합니다.
등산을 다니다보면, 길 가에 탑을 쌓아놓은 것, 쉽게 발견합니다.
연못 안에 동전 던지기,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 세상일, 사람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안다면, 신 앞에 부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한 치 앞을 모릅니다.
한 시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오직 신만이 아십니다.
☞ 그러니 사람마다 예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신에게 빌면서 삽니다. 문제는, 과연 어떤 신께 예배함이 옳으냐?
내가 지금 신께 빌고, 기도하고, 예배하는데,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의 이러한 행위, 과연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 이에 대해 대답해 주는 유일한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대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예배에 대한 대답>
(2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의 이 대답!
핵심은 예배의 장소를 지구상의 어느 한 곳으로 한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성막 ⇨ 솔로몬 성전 ⇨ 회당 ⇨ 스룹바벨 성전 ⇨ 헤롯성전으로 한정했다가 해제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헤롯 성전을 보고 “대단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그때 이미 예고하셨습니다.
막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성전이 엄청난 규모로 증개축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주님께 “참 대단하지요?”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말씀의 뜻은 “예배하는 장소가 이제는 건축물이 아니다!” 이 뜻입니다.
어느 한 장소, 특정한 건물에서 예배하던 시대는 끝이 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고 40일간 더 계시다가 제자들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이 땅에 성령님이 오시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배처소가 어떻게 변하지요?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배하는 곳은 이제 어느 특정한 건물이나 장소가 아닙니다.
☞ 두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이면, 그곳이 교회요, 예배 처소입니다.
“~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은 지금 우물가에서 만난 포티나에게 예배처소의 획기적 변경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예배처소는 이렇게 변천과정을 거칩니다.
①산당⇨ ②성막⇨ ③솔로몬 성전⇨ ④회당⇨ ⑤스룹바벨 성전⇨ ⑥헤롯성전⇨ ⑦교회
<포티나 유비>
예수님께서 이어서 대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23절로 24절입니다.
(23~24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랬더니 포티나가 뭐라고 하지요?
(25절)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 포티나, 대충 넘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요?
포티나에게 가장 간절한 것이 예배입니다. 그에게 예배는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포티나에게 왜 예배가 그렇게 간절해졌습니까?
남편없이 홀로 두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팍팍하겠습니까?
수가성 여인 포티나의 삶은 오늘날 예배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 대한민국,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포티나의 영적 갈급함,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갈급함이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 포티나, 그 이상으로 목이 탑니다.
한국의 현실, 먹고살기에는 좋아졌는데, 행복은 가난하게 살 때보다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 예배입니다.
포티나는 정말 그러한지 끝까지 질문하는 여인입니다. 왜요? 그만큼 갈급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배에 대해서 대답해 주시자 포티나는 25절에서 대답합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올 줄 내가 안다. 그 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해 주십니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 메시아다!”(26절)
우리가 포티나처럼 예배에 대해서 갈급하면, 우리의 예배에 주님은 감동을 주십니다.
첫째, “예배하는 자가 되자!” 둘째, “예배의 감격을 알자!” 셋째, “예배 전문가가 되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