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막동 선수를 아십니까?
제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들만 나오고 권투선수 김막동에 대한 글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 특징 중 하나는 영정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장례 의뢰 공문에는 고인 사진이 첨부돼 오지 않는다.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동 주민센터 공무원들은 설령 가족이 찾아가도 사진을 내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러주는 '나눔과나눔'은 고인의 연고자에게 부고를 알릴 때 적극적으로 영정에 쓸 사진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채 장례에 와서 당황하는 가족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례에 영정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모두가 영정과 위패를 같이 들고 있는 화장장에서, 나 홀로 위패만 덩그러니 들고 있으면 소외감이 들고 움츠러든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현대의 장례 문화에서 영정 사진은 ‘당연히’ 필요하다.
지난겨울 장례를 치른 한 고인의 영정도 내가 만들었다. 고인의 임종을 지킨 친구들이 그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히 그 사진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주민등록증에서 고인의 얼굴만 잘라낸 뒤 새롭게 배경을 만들고 정장을 입혔다. 그러자 선한 눈매의 고인은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처럼 보였다. 편집이 완성된 영정을 액자에 넣고 가방에 챙겨 퇴근했다. 다음날 오전 장례라 사무실에 들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집에 도착해 고인의 영정을 책상 한쪽에 세워두었다. 그냥 가방에 넣어두기도, 그렇다고 바닥에 두기도 애매했다. 괜히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집에서 생활하는 내내 고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 덕에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땐 눈감고도 고인 얼굴을 그릴 수 있었다.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은 수골(화장하고 남은 뼈를 거두는 일) 도중의 일이었다. 화장이 끝난 유골 속에서 관에 박혀있던 못을 골라내는 승화원 직원의 손을 바라보다 고인의 친구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고인은 어떤 분이셨나요? 제가 사진을 편집해서 한참 고인의 얼굴을 보았는데, 인상이 참 푸근하시더라고요.”
나의 질문에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친구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어 나에게 되물었다. “김O동이를 몰라요? 얼굴까지 봐놓고!”
고인의 이름도, 얼굴도 처음 보는 나는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다는 그 반응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혹시 예전에 활동했던 연예인인가? 아예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친구 중 한 명이 이번엔 정보를 조금 더 추가해 다시 한 번 물어왔다. “복싱 아시아 챔피언 김O동 몰라요? 이 친구가 바로 그 김O동이에요!”
그 말에 반응한 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조회사의 장례지도사였다. “아~ 그 김O동이 이 분이에요? 저는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중앙일보.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지면서도 주먹 뻗던 투혼…복싱 챔피언, 왜 무연고 사망자 됐나
통산 25승<4KO>10패8무를 기록하며 한국 챔피언을 지낸 김막동(50년생, 서울), 그분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봅니다.
<정치판에서 연일 김의겸이 김의겸 하는, 그러니까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본적인 팩트 체크조차 없이 아니면 말고 식 폭로나 거짓말을 남발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화판에서는 문소리가 또 문소리 했다.
과거 주요 선거 때마다 박원순·문재인 등을 공개 지지하면서 세월호 사건 등 굵직한 국면마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 야당 지지층으로부터 대표적인 개념 배우로 꼽히는 문소리가 지난달 25일 밤 KBS가 생중계한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정치적 발언을 했기에 하는 말이다.
그는 이날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서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한 지인을 실명으로 언급했다. "늘 무거운 옷 가방 들고 다니면서 나랑 일해준 안○○. ○○야 너무 고마워, 사랑해. 네가 얼마 전에 10월 29일 날 숨 못 쉬고 하늘나라로 간 게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이런 자리에서 네 이름 한번 못 불러준 게 굉장히 마음 아팠고. “
본인이 상을 받은 주인공도 아니고 시상자로 나와 이런 발언을 하는 게 뜬금없긴 하지만 이쯤에서 그쳤다면 본인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로 고생한 젊은 친구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커서 그랬으려니 하고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이나 시청자들 모두 이해하고 함께 애도했을 거다.
그런데 역시 문소리다웠다. 대신 "진상 규명되고 책임자 처벌 되고 그 이후에 더더욱 진짜 애도를 할게"라며 이태원 참사를 앞세워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부르짖는 촛불 집회 연단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정치적 발언을 이어갔다.
우연히 시상식을 라이브로 지켜보다가 순간 애도(哀悼)의 뜻이 헷갈렸다. 말 그대로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애도인데 문소리가 내건 조건부 '진짜' 애도라는 건 대체 뭘까 싶어서다. 솔직히 슬프지 않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진짜 슬퍼해 주겠다는 시혜적 태도인가.
안타까운 사고의 원인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시스템 부실을 밝혀 재발을 막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이걸 왜 애도와 연결지을까. 아마 나뿐만 아니라 그날 이 말을 들은 적잖은 시청자는 본능적으로 이런 의심을 했을 법하다. 정말 평소 아꼈던 지인을 애도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위해 한 인간의 죽음마저 도구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한 배우의 돌출 발언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이날 문소리의 발언이 이태원 참사 이후 일부 야당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촛불 집회에서 보여준 행태와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19일 촛불 집회 당시 김용민·안민석·양이원영·유정주·황운하(민주당)·민형배(무소속) 등 야당 의원들은 이태원 사망자 명단과 유족 영상이 나온 연단에 서서 잠시 희생자를 애도하는 척했지만 결국 "윤석열 정부는 인간 사냥을 멈추고 퇴진하라"는 대선 불복을 넘어서는 비이성적인 정치적 의도를 드러냈다.
이러니 이태원 사망자가 이들 야당 인사들에겐 그저 윤 정부 퇴진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리고 민변 주도로 기획된 일부 유족의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을 놓고 작가 한지원이 "누군가 형언할 수 없는 가족들의 슬픔을 포획하여 정치적 보복으로 가공하고 있다"고 탄식했던 바로 그 애도로 위장한 정치적 선동이 비단 민변 사무실이나 서울 도심 촛불 집회에서만이 아니라 이날 청룡영화상 무대에서도 표출된 셈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건 이 날 문소리의 발언은 단순히 그의 편향된 정치색을 드러내는 데 그친 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론 위선을 스스로 드러내는 계기도 됐다는 점이다.
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는 어시스턴트는 연예계의 대표적 약자다. 퀵 비용보다 싸게 먹히는 인건비로 하루종일 자기 몸만큼 무거운 옷 가방을 날라야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다 따라다니는 연예인의 일정에 무조건 맞춰야 하는 탓에 표준 근로 시간이라는 게 무의미하다. 그런 격무에도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소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일찌감치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하기도 했고 세월호나 미투 운동처럼 주목도 높은 사안에는 어김없이 정치적 발언을 했던 그가 늘 함께 일하는 촬영 현장 스태프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냈다는 얘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주변 약자가 겪는 부조리에는 눈을 감으면서 그런 약자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또다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피력하기 위해 소재로 삼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이번 문소리의 발언을 보고 새삼 깨닫게 됐다. 비단 문소리뿐만 아니라 지금 윤석열 퇴진이라는 두 단어에 함몰돼 이태원 참사를 둘러싸고 온갖 몰상식을 일삼는 야당측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다.
김의겸은 연일 김의겸 하면서 그가 과거 얼마나 기본에서 거리가 먼 기자였는지 스스로 폭로했다. 문소리는 다를까.>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
1970년대 중반은 대한민국 프로복싱의 황금기였습니다.
특히 가장 가벼운 체급인 주니어플라이급에서는 김성준, 정상일, 김막동, 김태식, 김환진이 있었고 바로 장정구, 유명우 등 쟁쟁한 선수들이 활약을 했습니다.
사실 김막동 선수는 열거한 선수 중에 조금 빠지는 선수였는지도 모릅니다. 세계 챔피언, 동양 챔피언도 아니고 한국 챔피언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파이팅 넘치던 그는 당당한 선수였습니다.
앞에서 김민석 팀장이 봤다는 게임은 김막동 선수가 마지막으로 싸웠던 일본의 구시켄 요코와의 경기였을 겁니다. 이때 김막동 선수는 이미 한물 간 퇴물 수준이었고 구시켄 요코는 일본의 떠오르는 별이었고, 국민 영웅이었습니다.
구시켄 요코가 논타이틀전 상대로 만만한 김막동 선수를 선택했다는 것은 당시에도 확실한 얘기였습니다. 저도 이 경기를 중계방송으로 봤습니다. 일방적으로 몰리다가 패했지만 그는 끝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기억합니다. 통산 25승<4KO>10패8무의 전적이니 아주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한국 프로복싱의 황금기에 김막동 선수는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빈곤하다. 그 사실을 살짝 비틀어 이야기하자면, 모든 무연고 사망자가 빈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고인이 빈곤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빈곤은 게으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너무도 손쉽게 단정 짓는다. 종종 기사를 보다 보면 그렇게 고인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길래 잘 살았어야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성실하게 살았어야지.'
전직 ‘복싱 챔피언’이었던 고인에게 누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고인이 게으름을 피우며 성실하지 않게 살았다고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경기는 일본에서 치러졌다. 당시의 일본 관중들이 고인을 응원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 고인은 투지를 불태우며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끝내 수건을 던졌지만, 그 전까지는 끊임없이 주먹을 뻗고 있었다. 나는 영상을 끄고 버스 등받이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눈을 감자, 이번엔 고인이 내지른 주먹이 생생히 그려졌다.>중앙일보.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지면서도 주먹 뻗던 투혼…복싱 챔피언, 왜 무연고 사망자 됐나
김막동 선수가 은퇴한 뒤에 을지로에서 아주 작은 분식점을 차렸고 배달을 다니던 모습을 제가 티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화려한 삶은 아니었어도 그는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이라고 기억합니다.
많이 늦었지만 삼가 김막동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그가 조금만 정치적으로 살았더라면 무연고 사망자는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기웃거리고 ‘정치적’으로 살려고 웃기나 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