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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마 7:21-23)
본문은 산상보훈의 결론부분입니다. 산상보훈은 마태복음 5,6,7장으로써 예수님께서 천국백성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결론부분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누가 진정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란 단순히 주여주여 하면서 입술로 고백하는 것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시려고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는 24절 이하에 나오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천국이 확실히 있음을 믿습니까? 만약 천국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 신앙은 처음부터 잘못된 신앙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계 21:4절에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문제요, 질병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계 22:5)을 보면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가 세세 무궁토록 왕노릇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 천국을 소망하며 그 나라에 들어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그 천국에 누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까?
1. 주여 주여 부르는 사람입니까?(21)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는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무슨 말입니까? 기독교는 말의 잔치로 끝나는 종교가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행함을 통해 그 믿음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저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서 실제로는 나여 나여 하면서 자기 뜻대로 사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불신자들이 아니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천국 가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잘 헤아려 봐야 합니다. '주여!'하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부르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내 뜻대로 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여 부르는 것이 그저 하나의 입술의 표현이요, 습관이 된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여!' 이 말은 상대적으로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주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주인과 종은 하늘과 땅차이 입니다. 종은 조건없이 주인에게 헌신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이 내린 그 어떤 명령에도 이유가 없고, 불평이나 불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종은 자기주장이나 자기생각이 없습니다. 종은 조건없이 주인에게 헌신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주인과 종 사이는 오직 순종과 헌신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아니 자기가 종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장할 것 다 주장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사사기의 말씀을 보면 그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그들을 건져 내셔서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받고 많은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사기의 핵심구절은 (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온갖 더러운 죄를 다 행하면서도 전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무력으로 약한 자의 것을 탈취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포기하고 다른 땅을 찾아서 평안하고 기름진 땅을 잔인하게 정복하고 빼앗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사시대가 막을 내린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우선인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먼저입니다.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주장하고 자기 마음에 맞으면 행동하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하지 그 실생활은 그 고백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 15장에 보면 하루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그들은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탄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5:8,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 백성들이 입술로는 예수님을 공경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은 예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의 계명, 세상의 문화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주여'하는 신앙고백이 천국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믿었기 때문에 자동으로 구원받을 거라는 종교적인 확신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이 아니라 우리의 행함을 보시기 원합니다. 신앙고백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을 찾고 계십니다.
오래 전에 어느 시골 교회에 연세가 좀 드신 목사님께서 새로 부임을 하시고 첫 설교로 사랑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주일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입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지난주일 설교를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에 교인들은 수군대면서 킥킥 웃으며 '아무래도 목사님이 기억력이 없나 봐 어떻게 지난주일 설교를 그대로 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 다음 주일이 되었는데 또다시 똑같은 설교를 합니다. 성도들이 화가 났습니다. '우리가 시골 사람들이라고 목사님이 우리를 무시하는 모양이다.' 결국 교회는 목사님을 내보내기로 결정하고 통보를 하자, 목사님은 아무 말도 없이 보따리를 싸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성도들이 좀 안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어 다음 주일에 고별설교라도 하고 가시라고 말합니다.
목사님은 다음 주일에 설교를 하셨는데 역시 그 날도 똑같은 내용으로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없는 모습을 보였으면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고별설교를 하시면서도 똑같은 설교를 하셨을까?' 그들은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회개하고 울면서 목사님이 못 가시도록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교회에 그대로 남기로 하고, 그 다음 주일이 되자 성도들은 당연히 똑같은 설교를 하리라고 예상을 했는데 뜻밖에도 다른 설교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사랑하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하는 돈 주머니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십일조생활을 하지 않는 성도가 있으면 이제부터 모두가 십일조를 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성도들이 그 설교를 듣고 나서 십일조를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안할 수가 없습니다. 안하면 1년 내내 계속 똑같은 설교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고 적고 간에 다 순종해서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자 목사님의 설교가 또 바뀌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전도에서 나타납니다. 모두가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나가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설교가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 모두가 앞을 다투어서 봉사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니까 교회가 놀랍게 바뀌어졌습니다. 교인들 스스로는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날이 갈수록 크게 부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 외치며 형식적이요, 위선적인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 곳입니다. 겉모양과 속 모양이 같은 자들이래야 천국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2. 능력을 행하는 사람입니까?(22)
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날에 주여, 주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여, 주여'하는 것이 필요없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큰 잘못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 주여,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요, 영광스러운 고백입니다.
롬10: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회개한 우편 강도는 그의 생명이 끊어지기 직전에 주님을 향하여 '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 나같은 죄인을 기억해 주옵소서!'하고 고백하고 기도했더니 즉시 우리 주님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주여'소리 한번하고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여! 주여!'하는 고백이 진정한 고백이냐가 문제입니다. 주여! 주여!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인으로 나의 주권자로, 믿고 고백하느냐 믿지 않고 고백하느냐 그 문제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 모두 주여 이 고백 속에 나의 생명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나의 주권자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구걸하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그를 측은히 여겨 기도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하자 그의 발목에 힘이 생겨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앉은뱅이를 낫게 한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낫게 했으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22절은 다시 보면 주여, 주여 외치는 자들이 세 가지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1)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말합니다. 주의 종이란 명분하에 거짓 예언과 거짓 가르침으로 영혼을 죽이는 거짓 선지자가 이 땅에도 많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말세에 여러분들이 교회를 잘 선택한 것도 큰복입니다. 아멘입니까? 우리 양문교회의 강조점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이것이 한마디로 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없는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 없는 말씀 속에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예수님만 전하려고 합니다.
2)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고 했습니다. 귀신을 쫓는 것도 하나님의 큰 능력입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음을 받고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귀신이 나갈 때는 굉장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귀신을 쫓아낸다고 다 진짜는 아닙니다. 이단들도 귀신을 쫓아내고, 무당들도 귀신을 쫓아냅니다.
3)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쳤고, 앉은뱅이도 일어났고, 맹인도 눈뜨게 하는 기적을 많이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거짓 선지자들도 이러한 기사와 이적을 잘 일으킨다는 것입니다.(마 24:24)을 보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사람들은 기사와 이적을 보고 따라다닙니다.
기사와 이적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적과 기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복음이 전부요, 말씀이 전부입니다. 22절을 다시 한번 간추려 보면, 그날은 바로 심판 날을 가리키는 말로 심판 날에 예수 앞에 서서 하는 말이 '예수님! 왜 나는 모른다고 하십니까? 내가 주의 종으로써 설교도 얼마나 잘했고, 큰 권능을 받아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낫게 했는데 주님께서 그래도 저를 잘 모르겠습니까?‘ 이때 우리 예수님이 대답이 무엇입니까?
23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겉으로 보면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주여, 주여 합니다. 선지자 노릇도 합니다. 귀신도 쫓습니다. 능력도 행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직분도 받았고 많은 일을 했는데 주님이 모르신다고 부인하시면 이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닙니다.
실컷 예수 믿고 충성한다고 했는데 주님 앞에 서는 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님이 모르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지옥 음부에 갈 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주님이 모르신다고 하십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겉으로 나타난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셨고, 롬 10:10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은 마음도 없이 입술로만 시인하는 그런 신앙의 고백이 아닙니다.
입술의 고백이 마음의 고백과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 중심에 겸손함이 있는가? 사랑이 있는가? 진실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양심을 버리지는 않았는지? 자기의 명예를 위해 남을 짓누르지는 않았는지를 보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기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가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문제는 마음에 없는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신앙고백을 주님은 거부하십니다. 눅 6:4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즉 왜 불법을 행하면서 '주여, 주여 하느냐?'는 질타입니다. 여기 불법이란 '아노미아'란 말로, 즉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불법을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능력을 행하고 큰 일을 행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한다면 주님과 관계없는 일인 것입니다. 아니 불법을 행하는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직분을 받았든지 그 일에 충성하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대로 순종한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21).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여기에 천국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천국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은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 중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직분을 받고, 큰 능력을 행한 사람은 다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리라는 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부를 뿐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영원한 천국과 연결된 하나님나라가 우리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땅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 뜻앞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주여주여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모셔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천국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분의 뜻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가 그곳에 임하고 그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천국과 연결되어 있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주여 주여'하는 것이 거짓된 외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을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원리는 직분과 능력을 행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름이 열매로 나타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직분을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요 6: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여기에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곧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요 6:28절을 보면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입니다. 잘 믿는다는 것이 애매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잘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순종하는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대하는 진정한 행복이 지금 이곳에서도 체험할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신앙생활은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알고 믿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신앙인의 비극이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입으로만 주여주여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뜻대로 살고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끊임없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주목하십시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주목하고 하나님앞에 뜻앞에 순복할 때 그곳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참석하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종으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고 천국백성으로 확실한 증거가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