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이 공동묘지가 있는 산을 넘어 마을로 들어가려다가 공동묘지 중간에서 너무나 밝은 얼굴로 뛰어 놀고 있는 한 꼬마를 만났습니다. “공동묘지 근처인데 너는 무섭지 않니?” 하고 물어보니 이 꼬마는 “아뇨!”라고 말하며 오히려 물어보는 이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 봤습니다. “왜 무섭지 않지?” 재차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음성을 들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발을 묶어버립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에도 삶에서 평안과 기쁨,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극복해야 할 가장 절실한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이 ‘두려움’이라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항상 두려움, 염려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현실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의 삶을 살고 있고 언젠가는 이 두려움과 걱정이 끝나는 육체적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속에 염려와 두려움의 상황은 항상 놓여 있지만 이것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 주어진 잠시잠깐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고 오늘 본문을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26절에서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고, 28절에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으며, 31절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이 땅의 하나님 백성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속한 시민이 된 사람이라면 세상속에서 두려움없이 살아야 할텐데 어떻게 두려움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떨쳐버린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지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정말 담대히 이 땅에서 살다가 천국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 우리가 깨달을 두려움의 문제 해결법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29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몸은 죽여도 능히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이란 이 세상에서 권세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몸도 영혼도 능히 지옥으로 멸하실 수 있는 분 즉,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몸 뿐 아니라 영혼도 영원한 형벌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 몸을 죽일 수는 있어도 영혼을 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역설적 표현인데요.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세상을 두려워할 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람이 나를 해칠 힘이 있고, 내 힘으로는 그것을 막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세 있는 사람 앞에서 기가 죽고 주눅이 들어버리는 겁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세상 권세 있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성도들을 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이 땅에서 하나님 우리를 살펴보시는 가운데 경건하고 진실되게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5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본문에서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는 말씀을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에서는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을 멸하실 수 있는 이”,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이” 그 분은 누구실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가르쳐주십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들은 반대로 살아갑니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고 몸과 영혼을 지옥에 던져 넣는 하나님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람이 죽으면 자기 죄로 인해 지옥에 간다”고 사람들에게 말할 때 지옥에 대해 아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지옥을 별로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가보지 않고서 어떻게 지옥이 실재하는 것을 알 수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꼭 내가 가봐야만 실재하고 내가 가보지 않았으면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우리가 비행기타고 외국에 가보지 않았는데 파푸아뉴기니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지, 스페인 산티에고 순례길이 있는 지 어떻게 믿습니까? 요즘은 여러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그 곳을 방문한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그래도 신빙성을 좀 느끼지만 그래도 그것이 가짜 영상인지 어떻게 압니까?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과 그 영상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실재로 경험해서 믿은 것은 아닙니다. 저 먼 우주는 어떻습니까? 태양계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같은 별이 진짜 거기 있는 지, 그렇게 생겼는 지 어떻게 믿습니까? 그냥 믿는 거 아닙니까? 하물며 태양계 밖의 천체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우리의 경험적 지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가르침, 어떤 교훈을 인정하며 믿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경험적으로 체득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영적 지식과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경험하면 믿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신 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지식을 가르쳐주신 분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있지도 않은 지옥을 있다고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그 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보여주시고 그 곳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세상 모든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말씀하시며 세상 일, 세상 분위기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에게 위협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그들 마음대로 행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결코 너를 해치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권세가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을 두려워할 게 아니고, 세상 권세자들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 26절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6절입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억울한 누명을 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언젠가는 분명히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자성어중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잠시 오해받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다 밝혀진다는 말입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말씀은 절대 무오한 진리이기에 우리는 신앙 양심을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참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억울할 때도 다윗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시편 37편에는 다윗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묵묵히 바른 생각, 바른 행동으로 살았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묵묵히 참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꾸준히 선을 행하면서 믿음으로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한 때에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 주시고 나의 억울함을 반드시 밝혀주신다고 선포합니다.
시편 37편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숨길래야 숨길 일이 없고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되어 죄를 지은 사람들도 모두 다 그 죄악이 밝히 드러나고 언젠가는 처벌받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울산광역시 남구에서 한 남성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들을 유심히 살피며 걷다가 사이드미러가 접히지 않은 차량 한 대를 발견하더니 그대로 조수석 문을 열고 쓱 들어갑니다. 잠시 후 이 남성은 차량에서 현금을 훔쳐 나왔는데 이 장면이 CCTV화면에 찍혔고 여러 CCTV분석을 통해 범인을 검거했다고 합니다. 또 최근 어느 유명 가수가 음주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신호대기중이던 택시를 들이받았는데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지난 후 그 가수 매니저가 경찰서를 찾아와서 자신이 그 차량을 운전했다고 자수했다고 합니다. 정황상 뭔가 이상해서 경찰이 그 유명가수를 불러 여러 가지 조사를 한 끝에 본인이 운전했다는 자백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음주운전이나 다른 사실에 대해선 허위자백을 했는데 결국 나중에 여러 CCTV와 근처 차량들의 블랙박스를 확보해서 실제상황이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모든 일들이 다 밝히 드러나는데 하물며 우리를 살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숨기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세상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잠언 29장 25절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이 말씀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올무에 걸린 짐승은 꼼짝 없이 사냥꾼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두려움은 사탄 마귀가 사람들에게 친 그물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 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온갖 누명을 썼습니다. 성만찬을 진행할 때 진행했던 멘트를 불신자들이 듣고서는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의 피와 살을 먹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인들이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데 예배를 진행하는 사람이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라는 말했는데 불신자들이 듣고서는 그리스도인은 근친상간하는 자라고 오해했습니다. 황제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였기에 반역자라고 오해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곳곳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는 불효막심한 종교라고 비난합니다. 가족보다 종교가 더 우선이냐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예수님을 믿으며 신앙을 지키려 할 때 엄청난 오해를 받거나 손해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억울함을 당하는 것, 누명을 쓰는 것 때문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7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운명을 좌우할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의 모든 힘이 있는 자들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참새 한 마리 생사도 주장하시며 모든 인간 사정을 아시고 나를 보살피며 내 누명을 벗기시며 공의와 공평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온전히 하나님만 의식하며 세상의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 우리가 깨달을 두려움의 문제 해결법 둘째로,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0,31절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나님은 우리 머리털 숫자까지 다 세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고 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의 피 값으로 사신 당신의 자녀들을 왜 돌보지 않으시겠느냐?’는 겁니다. 참새 한 마리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하나님의 주권과 돌보심 가운데 있는 것인데, 바로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그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두려워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고 승리와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지금 이 시간 함께 하시며 우리 모든 삶, 일거수일투족까지 다 살펴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결코 자녀들에게 해로운 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혹 우리에게 환난과 시련을 허락된다면 거기엔 뭔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환난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더 깊이 온전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환난과 시련을 통해서 더 깊은 신앙과 인격의 성숙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 크신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밝히 보여주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8절의 말씀도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지난 주 보았던 마태복음 10장 18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 주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느꼈습니까? 우리는 현실에 민감하고 우리의 감정에 민감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에 놓이면 불평과 원망이 앞서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을 통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줄 수 있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끌려가는 와중에 총독과 분봉왕과 심지어 로마 황제까지 만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히기 전 소아시아지역, 마케도니야지역에서 선교여행할 때도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잡혔지만 그 감옥에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면서 온 도시를 복음화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기록을 보면 사도 바울은 분명히 감옥을 가게 될 때에도 그 때마다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고 감옥에 잡혀 들어가면서도 그 핍박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떤 상황이라고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9,20절입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황당한 일을 당하고 어려운 순간을 경험하게 될 때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 우리 주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너무 답답하고 암담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 때 도무지 길을 알 수 없고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3장 11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이 모든 상황속에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지만 결국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 우리가 굳건히 그 어려움을 담대히 견디게 할 능력은 바로 성령으로 인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에 매여서 살아가는 신앙인은 오늘 당하는 고난과 고통, 핍박과 박해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속에는 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뜻이 있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절대 우리 인생에 무의미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일, 힘든 상황속에서는 내가 이겨낼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끌어다가 사람들 앞에 세울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신다면 결코 혼자 걷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세밀한 손길로 우릴 보호하고 계심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선진들 중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하심을 제일 많이 경험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다윗일 것입니다. 그는 한평생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렸습니다. 엄청난 두려움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지만 그는 항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방패삼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철저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간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그 분의 세밀하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악한 사고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섬세하시고 확실하신 그 사랑안에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 우리가 깨달을 두려움의 문제 해결법 셋째로, 담대하게 주님을 시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본문에서 “나를 시인한다”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신뢰하며 그에게 충성을 다짐한다는 뜻입니다. 박해받는 상황이라도 사람들에게 “나는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그 분의 가치관대로, 그 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는 선포입니다. 심지어 나를 죽인다고 할찌라도 나는 그 사람들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시오 예수님으로 인해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 담대한 고백만이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다리 부러진 장수 성 안에서 큰 소리 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수는 성 밖에 나가서 적군과 마주하여 큰 소리를 지르며 싸워 이겨야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인데 성 안에서 제 아무리 큰 소리 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 주 예수님을 시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교회 안에서 신앙고백하며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 잘 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나가서 삶속에서 주님을 시인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시인하신다는 말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고,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며 말하고 행동한 것들을 다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 계시록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당당하게 시인하며 살아야 할 것을 주님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면 주님도 하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시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아버지 앞에서 부인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두렵다거나 부끄럽다고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을 시인하며 산다는 것은 “매사에 나의 속 마음과 언행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생각하며 말씀을 따라 살며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고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워할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 지, 내가 어떤 존재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지를 두려워하며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킬 때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를 인정하시고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확신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신뢰할 때 두려움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강압적인 환경도 두렵지 않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앞에서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을 표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신앙인이기 때문에 하지 못할 것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해야 할 것은 꼭 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으로 잘 믿으면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약합니다. 사람 관계에서도 우리가 마음은 있는데 고백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정말 약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실한 믿음, 이제 표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참 신앙 이제 우리 주변사람들에게 알리시기를 바랍니다. 표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담대히 살아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 믿음의 표현이 왕성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우리에게 생기는 일상적인 일들을 항상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세상살이가 항상 이런 걱정과 두려움뿐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상황을 두려워하고 현실을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을텐데 그 상황에 마음을 빼앗기고 두려워합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상황, 환경에 마음을 빼앗겨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담대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황속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말하는 지를 가르쳐주시고 우리 삶속에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두려움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면서 담대하게 우리 주 예수님을 시인하며 주님 사랑을 표현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가족까지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완벽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믿음가운데 담대하게 떳떳하게 세상 누구에게도 비굴하지 말며 하나님앞에서만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서 이 땅에서도 바른 믿음으로 승리하며 저 천국에서도 하나님앞에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바로 이 믿음 가지고 험한 이 세상을 넉넉히 헤쳐 나가면서 마침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