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추단감나무 김성자
“무슨 이런 일이 있노“ 단감밭을 바라본 어머니의 한숨 섞인 소리가 감나무 밭을 뒤흔들었다. 한 달 동안 병원에 계셨던 어머니는 올여름 비가 많이 오고 무더웠던 날씨를 기억 못 하시는 것 같았다.
올봄, 나는 어머니 대신 단감 농사를 잘 지어보려고 큰맘 먹고 일찍 유황 소독을 했다. 작년에는 제 시기에 소독 못해 상품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면 어머니는 단감나무에 가지치기를 하셨다. “올해는 감꽃이 많이 피었네.” 아침이면 어머니는 자식 키우듯 단 감 밭 언저리에 서서 혼잣말을 하셨다. 손톱만 한 감꽃들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어릴 때 우리 마을에는 단감나무가 귀했다. 팔월 하순이 되면 동네 아이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단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쟁취하듯 단감을 주워보려고 애를 썼다. 일찍 나온 아이들 손에는 여러 개 단감이 쥐어져 있었고 나중에 온 친구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나는 번번이 늦게 일어나 단감 하나 주워본 기억이 없다.
단감이 귀하던 시절에 동생과 나는 익지도 않은 대봉 풋감을 주워서 소금물에 삭혔다. 나흘이 지나면 떫은맛은 없어지며 단감처럼 아삭한 식감도 살아있어 간식으로 먹었던 추억이 아슴아슴하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10년 전 집 앞 묵은 밭에 태추감나무 묘목을 열두 그루나 심으셨다. 자식들은 모두 제 갈 길을 떠나고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 계절마다 곡식을 심으려고 하면 일이 많고 어머니 혼자 일이 버거워서 단감나무를 심었다고 하셨지만,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해서 감나무를 심으셨다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어머니가 심은 단감나무는 신품종인 태추감나무다. 태추단감은 한자어로 클 태(太), 가을 추(秋)로 추석 즈음에 나오는 큰 단감을 말하는데 아마도 조상을 기리는 차례상에 크고 달고 예쁜 감을 올리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추석이 드는 9월 중순부터 수확이 가능한 태추감은 단감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당도가 높고 배처럼 시원하다. 오죽하면 어머니는 태추감을 배감이라고도 부르는데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한 달 정도가 제철 시기라 이때가 아니면 태추감을 맛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름도 생소한 태추감을 처음 먹어본 지인들은 세상에 이렇게 달콤하고 아삭거리는 단감 맛은 처음 맛본다며 태추단감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힘이 들더라도 감나무를 지성으로 가꾸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해마다 감을 따서 자식들 집으로 보내셨다. 여덟 명이나 되는 딸네 집은 물론이고 고명 아들이었던 남동생네는 여기저기 선물할 곳이 많을 거라 생각해 가장 크고 좋은 것으로 넉넉하게 보냈다. 남동생은 단감을 받고 나면 어머니가 겨울 동안 따뜻하게 보내시라고 두툼한 봉투를 안겨 드리곤 했다.
2년 전 어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딸만 여덟 명이던 집에 아들 낳았다고 마을에 잔치가 벌어질 만큼 대단했던 아들이었으니 어머니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제 앞길 열어간 듬직한 아들이 당신한테 인사도 없이 떠났으니 어머니는 그때부터 기력을 잃으셨던 것 같다. 부쩍 건강이 나빠진 어머니는 병원에 입, 퇴원을 반복하며 누워서 계시는 날이 많아졌다.
해마다 남동생집으로 가는 것을 태추감나무도 눈치챘는지, 올해는 정말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적게 열렸지만, 자매들한테 한 박스씩은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감나무에 마음을 쏟았다. 하나, 세종과 김해를 오르내리며 농사를 지으려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한 번 소독할 때 벌써 다른 과수원에서는 다섯 번 소독을 했다고 하고, 소독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이웃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복잡했다.
7월에 소독을 하기로 마음먹고 세종 집에 왔는데 남편이 119에 실려 응급실에 들어갔다. 간경화인 남편은 6년째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살고 있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칠월의 장맛비는 그칠 줄 몰랐다.
남편의 투병생활이 길어지면서 추석이 지나서야 친정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도 뵙기 전에 감나무 밭으로 달려갔지만, 며칠 전 요양보호사 선생님한테 전해 들은 것처럼 감나무에 감은 보이지 않았다. 잘 익어 어머니의 손길만 기다리던 감이 기척 없는 어머니방을 바라보며 하나 둘 떨어져 누운 것이다. 어머니처럼 감나무도 제 몸을 덜어 내며 쓸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의 바깥출입이 드물어지면서 애지중지하던 감나무도 갈수록 수척해져 갔다. 구순이 되면서 갑자기 내림세를 타는 어머니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수시로 앞마당을 발밤발밤거리는 어머니를 눈에 담고 있는 감나무도 외로움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잦은 병치레로 한달씩 병원에 계시는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단감나무는 혼자 시골집을 지키며 어머니가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올 가을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한 자식들이 요양병원을 입에 올릴 즈음 낙심한 듯 단감도 풀밭에 모두 떨어져 누운 것 같다. 한 알도 남김없이 떨어져 뒹구는 감을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제 어머니가 병원으로 떠나시면 누가 이 태추감나무를 관리할까. 당장은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되면서도 자꾸 단감나무가 눈에서 맴도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직은 아니라고 도리질을 하면서, 요양병원에 가시게 된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깊게 뿌리내린 단감나무처럼 오래오래 자식들 곁에 계실 것이라고. 내년에는 알맞게 아삭아삭하게 익은 단감을 따다 어머니께 맛보여드리겠다고 수시로 마음을 다진다.
갑작스럽게 쓰러지신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지 벌써 열흘이 되어간다. 하루하루 가을볕이 아까워지는 오후에 어머니를 생각하며 철없이 떨어진 감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 한국산문 2024년 1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