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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爻辭>
六三 得敵 或鼓或罷 或泣或歌
(육삼은 득적하여 혹고혹파하고 혹읍혹가로다)
육삼六三은 적敵을 얻어 혹은 북을 치고 혹은 파罷하며, 혹은 울고 혹은 노래를 부르도다.
[왕필王弼의 주注]
육삼六三은 소음少陰의 위에 거하고 육사六四는 장음長陰의 아래에 거하여 각각 응대應待(정응正應)가 있어서 서로 친하지 못하니, 이것을 ‘적敵’이라 이른다.
음陰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거함은 나아가고자 하는 자이니, 나아가고자 하면서 적敵을 꺼리므로 혹은 북을 치는 것이요, 육사六四가 정위正位를 밟고 구오九五를 받들고 있으니,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혹은 파罷하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면 적에게 침공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우므로 혹은 우는 것이요, 육사六四가 순順을 밟고 있어서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여 물러가도 해로움을 받지 않으므로 혹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가기를 항상함이 없게 하면 피곤함을 알 수 있다.
[注]
三居少陰之上 四居長陰之下(注9) 對而不相比 敵之謂也
(삼거소음지상하고 사거장음지하하여 대이불상비하니 적지위야라)
육삼六三은 소음少陰의 위에 거하고 육사六四는 장음長陰의 아래에 거하여 각각 응대應待(정응正應)가 있어서 서로 친하지 못하니, 이것을 ‘적敵’이라 이른다.
[역주]9 三居少陰之上 四居長陰之下 : 육삼六三이 속해 있는 태괘兌卦(☱)는 가족의 상징으로 보면 소녀少女에 해당하고, 육사六四가 속해 있는 손괘巽卦(☴)는 장녀長女에 해당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以陰居陽 欲進者也 欲進而閡敵故 或鼓也 四履正而承五 非己所克故 或罷也
(이음거양은 욕진자야니 욕진이애적고로 혹고야요 사이정이승오하니 비기소극고로 혹파야라)
음陰으로서 양陽의 자리에 거함은 나아가고자 하는 자이니, 나아가고자 하면서 적敵을 꺼리므로 혹은 북을 치는 것이요, 육사六四가 정위正位를 밟고 구오九五를 받들고 있으니,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혹은 파罷하는 것이다.
不勝而退 懼見侵陵故 或泣也 四履乎順 不與物校 退而不見害故 或歌也 不量其力 進退无恒 憊 可知也
(불승이퇴면 구견침능고로 혹읍야요 사이호순하여 불여물교하여 퇴이불견해고로 혹가야라 불량기력하고 진퇴무항이면 비를 가지야라)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면 적에게 침공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우므로 혹은 우는 것이요, 육사六四가 순順을 밟고 있어서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여 물러가도 해로움을 받지 않으므로 혹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가기를 항상함이 없게 하면 피곤함을 알 수 있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육삼六三과 육사六四가 모두 음효陰爻로서 서로 더불어 동류同類가 된다. 그러나 육삼六三은 소음少陰의 위에 거하고 육사六四는 장음長陰의 아래에 거하여 각각 저마다의 응대應對가 있어서 서로 친하지 못하니, 이것을 ‘적敵’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적敵을 얻는다.”라고 한 것이다.
나아가고자 하면 육사六四에게 막혀서 자기를 해칠까 두려우므로 혹은 북을 쳐 공격하나, 육사六四가 정위正位를 밟고 존위尊位을 받들어서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혹은 파罷하고 후퇴하여 패하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면 적에게 침공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우므로 혹 눈물을 흘려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이요, 육사六四가 순順을 밟고 있어서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여 후퇴하여도 해로움을 받지 않으므로 혹은 노래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북을 치고 혹은 파罷하며 혹은 울고 혹은 노래를 부른다.”라고 한 것이다.
[疏]
六三與四 俱是陰爻 相與爲類. 然三居少陰之上 四居長陰之下 各自有應對 而不相比 敵之謂也 故曰“得敵.”
(육삼여사 구시음효 상여위류 연삼거소음지상 사거장음지하 각자유응대 이불상비 적지위야 고왈 “득적”)
육삼六三과 육사六四가 모두 음효陰爻로서 서로 더불어 동류同類가 된다. 그러나 육삼六三은 소음少陰의 위에 거하고 육사六四는 장음長陰의 아래에 거하여 각각 저마다의 응대應對가 있어서 서로 친하지 못하니, 이것을 ‘적敵’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적敵을 얻는다.”라고 한 것이다.
欲進礙四 恐其害己 故或鼓而攻之 而四履正承尊 非己所勝 故或罷而退敗也.
(욕진애사 공기해기 고혹고이공지 이사이정승존 비기소승 고혹파이퇴패야)
나아가고자 하면 육사六四에게 막혀서 자기를 해칠까 두려우므로 혹은 북을 쳐 공격하나, 육사六四가 정위正位를 밟고 존위尊位을 받들어서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혹은 파罷하고 후퇴하여 패하는 것이다.
不勝而退 懼見侵陵 故或泣而憂悲, 四履于順 不與物校 退不見害 故或歌而歡樂也 故曰“或鼓或罷 或泣或歌”也.(注10)
(불승이퇴 구견침능 고혹읍이우비야 사이우순 불여물교 퇴불견해 고혹가이환락야 고왈 “혹고혹파 혹읍혹가”야)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면 적에게 침공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우므로 혹 눈물을 흘려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이요, 육사六四가 순順을 밟고 있어서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여 후퇴하여도 해로움을 받지 않으므로 혹은 노래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북을 치고 혹은 파罷하며 혹은 울고 혹은 노래를 부른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10 六三與四……或泣或歌也 :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은 ‘적敵’을 육사六四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혹고혹파或鼓或罷 혹읍혹가或泣或歌’를 ‘육삼六三이 육사六四와 대적하여 북을 치며 공격하나 이기지 못하고 후퇴해서 두려워 울기도 하고 해로움을 받지 않아 노래하기도 함’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정이천程伊川과 주자朱子는 ‘적敵’을 상구上九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는바, ≪정전程傳≫은 다음과 같다. “적敵은 대적對敵함이니, 서로 믿는 자를 이르는바, 정응正應인 상구上九가 이것이다. 육삼六三과 육사六四가 모두 허중虛中으로 부신孚信을 이룬 주체가 되었으나 처한 바가 다르다. 육사六四는 제자리를 얻고 정正에 거하였으므로 짝을 잃어 위를 따르고, 육삼六三은 중中하지 못하고 정正을 잃었으므로 짝을 얻어 뜻을 매어둔다. 유열柔說의 자질로 이미 매여 있는 바가 있으니, 오직 믿는 바를 따라서 혹 북을 펼쳐놓고 치기도 하고 혹 그만두기도 하며 혹 슬피 울기도 하고 혹 노래하며 즐거워하기도 하니, 동하고 쉬며 근심하고 즐거워함이 모두 믿는 바에 매여 있는 것이다. 오직 믿는 바에 매여 있으므로 길흉吉凶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밝고 통달한 군자君子의 소행은 아니다.”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적敵은 대적對敵함이니, 서로 믿는 자를 이르는 바, 정응正應인 상구上九가 이것이다.
삼효三爻와 사효四爻가 다 허중虛中으로 부신孚信을 이룬 주체가 되었으나 처한 바가 다르다.
사四는 제자리를 얻고 정正에 거하였으므로 짝을 잃어 위를 따르고, 삼三은 중中하지 못하고 정正을 잃었으므로 짝을 얻어 뜻을 매어둔다.
유열柔說의 자질로 이미 매어 있는 바가 있으니, 오직 믿는 바를 따라서 혹 북을 쳐 음악을 베풀기도 하고 혹 그만두기도 하며 혹 슬피 울기도 하고 혹 노래하며 즐거워하기도 하니, 동하고 쉬며 근심하고 즐거워함이 모두 믿는 바에 매어 있는 것이다.
오직 믿는 바에 매어 있으므로 길흉吉凶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밝고 통달한 군자君子의 소행은 아니다.
【傳】
敵 對敵也 謂所交孚者 正應上九是也
(적은 대적야니 위소교부자니 정응상구시야라)
적敵은 대적對敵함이니, 서로 믿는 자를 이르는 바, 정응正應인 상구上九가 이것이다.
三四皆以虛中爲成孚之主 然所處則異
(삼사개이허중위성부지주나 연소처즉이라)
삼효三爻와 사효四爻가 다 허중虛中으로 부신孚信을 이룬 주체가 되었으나 처한 바가 다르다.
四 得位居正 故亡匹以從上 三 不中失正 故得敵以累志
(사는 득위거정이라 고망필이종상하고 삼은 부중실정이라 고득적이루지라)
사四는 제자리를 얻고 정正에 거하였으므로 짝을 잃어 위를 따르고, 삼三은 중中하지 못하고 정正을 잃었으므로 짝을 얻어 뜻을 매어둔다.
以柔說之質 旣有所係 唯所信是從 或鼓張 或罷廢 或悲泣 或歌樂 動息憂樂 皆係乎所信也
(이유열지질로 기유소계하니 유소신시종하여 혹고장 혹파폐 혹비읍 혹가락하니 동식우락이 개계호소신야라)
유열柔說의 자질로 이미 매어 있는 바가 있으니, 오직 믿는 바를 따라서 혹 북을 쳐 음악을 베풀기도 하고 혹 그만두기도 하며 혹 슬피 울기도 하고 혹 노래하며 즐거워하기도 하니, 동하고 쉬며 근심하고 즐거워함이 모두 믿는 바에 매어 있는 것이다.
唯係所信 故未知吉凶
(유계소신이라 고미지길흉이라)
오직 믿는 바에 매어 있으므로 길흉吉凶을 알지 못한다.
然非明達君子之所爲也
(연비명달군자지소위야니라)
그러나 밝고 통달한 군자君子의 소행은 아니다.
[주희朱熹의 주역본의周易本義]
적敵은 상구上九를 이르니, 믿기를 궁극히 하는 자이다.
육삼六三은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열說의 극極에 거하여 상구上九와 응應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여 그 상象이 이와 같은 것이다.
【本義】
敵 謂上九 信之窮者
(적은 위상구니 신지궁자라)
적敵은 상구上九를 이르니, 믿기를 궁극히 하는 자이다.
六三 陰柔不中正 以居說極而與之爲應 故不能自主而其象如此
(육삼은 음유불중정하여 이거열극이여지위응이라 고불능자주이기상여차하니라)
육삼六三은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열說의 극極에 거하여 상구上九와 응應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여 그 상象이 이와 같은 것이다.
<상전象傳>
象曰 或鼓或罷 位不當也
(상왈 혹고혹파는 위부당야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혹은 북을 치고 혹은 파罷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위부당位不當] 혹은 북을 치고 혹은 파罷하여 나아가고 물러감이 항상함이 없는 까닭은 다만 자리에 마땅하지 못하여 망령되이 나아가기 때문이다.
[疏]
‘位不當’者 所以或鼓或罷 進退无恒者 止爲不當其位 妄進故也.
(‘위부당’자 소이혹고혹파 진퇴무항자 지위부당기위 망진고야)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거함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가 없고 오직 믿는 바를 따르니, 처한 바가 정正을 얻었으면 믿는 것이 법이 있을 것이다.
【傳】
居不當位 故无所主 唯所信是從 所處得正 則所信有方矣
(거부당위라 고무소주하고 유소신시종하니 소처득정이면 즉소신유방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