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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문(4) - 용대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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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례 -----
작가 소개
제28장 무림신의(武林神醫)
제29장 절대고수(絶代高手)
제30장 배후인물(背後人物)
제31장 이차음모(二次陰謀)
제32장 백치내력(白痴來歷)
제33장 월하풍정(月下風情)
제34장 영웅추락(英雄墜落)
제35장 삼녀삼색(三女三色)
제36장 천수비호(千手飛狐)
작가 소개
작가 용대운은 1961년 서울 출생에서 출생하여
1985년 서울시립대학교 졸업했다.
1988년 <마검패검(魔劍覇劍)>으로 무협소설계
입문하여, <철혈도(鐵血刀)>와 <유성검(流星劍)>,
<무영검(無影劍)>, <탈명검(奪命劍)>의 검(劍)시리즈.
<권왕(拳王)>, <도왕(刀王)>, <검왕(劍王)>의 왕(王)
시리즈를 집필하였다.
그후 4년간 무협계를 떠났다가 1994년 3월 pc통신
하이텔의 무림동에 <태극문(太極門)>을 연재하면서
집필을 재개하였으며, 현재 "야설록프로" 전속
무협작가로 활동중이다.
제28장 무림신의(武林神醫)
1. 방수(幇手)
조자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결의
모습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갈홍립이 그것을 보고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머금었다.
"흐흐...... 그녀를 찾는가? 그녀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자건은 점점 머리가 무거워졌다. 조금 전 자신이
본 것이 과연 진짜 진결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분장이었는지 기억을 되살리려 했으나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눈마저 가물가물해져 앞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조차 안개에 싸인 것처럼 뿌옇게만
보였다. 그의 귓전으로 갈홍립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흐흐...... 조자건, 이제 각오해라!"
그 살기 띤 음성조차 멀리서 속삭이는 것처럼
아련하게 들려 왔다.
동시에 조자건은 무언가 싸늘하게 매서운 기운이
자신의 양쪽 어깨와 미간을 노리고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빙글 돌려
피했다.
콰쾅!
굉음과 함께 그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실로 무시무시한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그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받아라!"
"이 놈, 이제 마지막이다!"
사나운 폭갈 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오며 조자건은
주위 사방에서 질식할 듯한 기운이 폭풍노도와 같이
몰려옴을 느꼈다. 그는 필사적으로 두 눈을
부릅떴으나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저 무언가
희뿌연 기운이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옴을 희미하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조자건은 그대로 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콰콰쾅! 꽝!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오며 세찬 경기가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그 와중에 조자건은 자신의 등과
옆구리를 두 가닥의 경기가 세차게 강타하는 것을
알았다
펑! 펑!
"음......"
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는
목에서 핏물이 울컥 뿜어져 나왔으나 억지로 삼키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동시에 수중의 나무막대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파파팍!
싸늘한 검기가 폭풍처럼 주위를 휩쓸었다.
"헛?"
그를 향해 사정없이 공격을 퍼붓던 갈홍립과
천지이흉 등은 설마 그가 반격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다급한 헛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어
피했다. 하나 그 중 구루마존 백리장독은 조금 전
부상의 후유증으로 반응이 둔해져 미처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
퍽!
그는 수십 가닥의 검영 중 하나에 목덜미를 강타
당해 입으로 피를 뿜어냈다.
하나 그는 쓰러지기는커녕 두 눈을 악독하게
번뜩이며 오히려 조자건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어 그의
옆구리를 움켜잡았다.
우드득!
뼈마디 부딪치는 음향과 함께 백리장독의 갈고리
같은 양 손가락이 조자건의 옆구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 것은
오히려 백리장독이었다.
"으윽......"
그는 조자건의 갈비뼈를 부러뜨릴 순간 자신의 양
손가락이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의 양 손가락은 어느새 퉁퉁 부어
있었다.
"으으...... 모...... 몸이 쇳덩이보다 더
단단하구나......"
그 순간에 조자건의 나무막대가 그의 머리통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쾅!
미처 비명을 내지를 사이도 없이 백리장독의 백발이
성성한 머리는 피분수를 뿌리며 날아가 버렸다. 하나
그 순간 조자건은 다시 등에 삼장(三掌)과
오권(五拳)을 강타 당했다.
콰콰쾅!
마치 북치는 듯한 음향이 터져 나오며 조자건의 코
밑으로 시커먼 핏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신음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난
것은 공격을 해 왔던 천지이흉이었다.
"으윽...... 몸뚱이가 이렇게 단단한 놈이 다
있다니......"
천지이흉 중의 위남해(魏南海)가 인상을 찡그리며
오른손을 부여잡고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천지이흉의 우두머리인 엽동청(葉東靑)은 이를 바드득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맨손으론 이 놈을 죽일 수 없다. 무기를 쓰자."
엽동청은 즉시 수중에서 거의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낚싯줄을 꺼내 들었다.
그의 이 낚싯줄은 무형마사라는 것으로 보검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천하에서 가장 질긴 실이었다.
무형마사의 끝에는 쇠갈고리 같은 섬뜩한 빛을 뿌리는
어린아이 주먹만한 낚싯바늘이 달려 있었다.
위남해는 허리춤에서 커다란 도끼를 꺼내 들었다.
갈홍립 또한 조자건의 호신강기가 상상을 불허하는
가공한 것임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수중의
철골섭선을 더욱 힘껏 움켜잡았다.
그의 철골섭선은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만든 것으로
스치기만 해도 뼈골이 으스러지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잔은 이미 오른손에 녹피장갑을 낀 채로 허리춤에
매달린 암기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마음놓고 공격을 했다가 백리장독이
머리통이 박살난 채 쓰러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층 신중하고 조심스런 모습들이었다.
반면에 그만큼 이번에 그들이 퍼부을 공격은
악독하고 무서울 것이다.
조자건은 여전히 나무막대를 든 채 우뚝 서 있었다.
하나 지금의 그에게 우뚝이란 단어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절세의 불괴연혼강기로 치명적인 내상은
입지 않았으나 전신의 기혈이 격탕해 코와 입으로
가는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전신의 의복은 이미
갈가리 찢긴 지 오래이며 머리는 산발해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었다.
왼쪽의 갈비뼈는 몇 개가 부러진 상태에서 조금 전
백리장독의 조공(爪功)을 받아 한두 개가 더 부러진
것 같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참기 힘든 고통이
뒤따라서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얼굴과 어깨에 격중 된
귀왕령의 악독한 독기(毒氣)였다.
그는 이미 귀왕령의 독이 상반신에 퍼져 나무막대를
들고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더구나 무리하게
공력을 운용해 상대의 공격에 맞섰기 때문에 독이
더욱 빨리 퍼져 지금은 눈조차 뜰 수가 없었다.
현재 그의 상태로는 네 명의 절정고수가 아니라 단
한 명의 평범한 무사라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천지이흉과 갈홍립, 당잔은 공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린 채 그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그들이
뿜어내는 살기는 점점 더 강해져서 종내 화신묘
전체가 온통 끔찍한 살기로 뒤덮여 버렸다.
일단 그들이 한번 손을 떨치면 실로
번천지복(飜天地覆)할 엄청난 공세가 퍼부어질
것이다. 그리고 조자건은 절대 그 공세 속을 살아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절대절명의 순간, 돌연 화신묘의 지붕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무언가 시커먼 섬광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천지이흉을 비롯한 중인들에게
쏘아져 가는 것이 아닌가?
그 검은 섬광의 기세가 어찌나 날카롭고 흉험하던지
중인들은 하나같이 강호를 진동시키는
절정고수들이었음에도 뒤로 일 장이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파파파파......
수십 가닥의 검은 섬광이 바닥을 강타하며 부서진
돌가루와 먼지가 장내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그
순간 무언가 희끗한 인영이 빠른 속도로 조자건을
향해 다가갔다.
갈홍립이 무슨 낌새를 알아차린 듯 퍼붓는 돌가루와
먼지 속에서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방수(幇手:도와주는 사람)가 있다!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이어 그는 철골섭선을 휘두르며 조자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철골섭선에서 뼈를 깎는 듯한 날카로운 경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와 조자건과 그를 향해 다가들던
검은 인영을 그물처럼 뒤덮었다.
검은 인영은 허공에서 몸을 돌려 선영(扇影)을
피하며 오른손을 쭈욱 뻗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빗살같이 예리한 광채를
번뜩이며 갈홍립의 목덜미를 향해 폭사되어 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고 기세가 맹렬했던지 갈홍립은
감히 맞받아 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황급히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쑤아악!
그의 머리카락이 검은 기운에 스쳐 우수수 잘라져
허공에 나풀거렸다. 갈홍립은 모골이 송연해져서
바닥을 한 바퀴 더 구른 다음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나 그때 위남해와 엽동청이 창공에서 먹이를
노리고 떨어지는 매처럼 검은 인영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갈홍립이 그것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심하시오! 그 놈은 구룡편 응천성이오."
금시라도 검은 인영을 짓이길 듯 가공할 기세로
덮쳐 가던 천지이흉이 그 소리를 듣고 몸을
움찔거렸다.
파파파파팍......!
그 순간, 검은 인영은 번개같이 몸을 회전하며
사방으로 질풍노도 같은 강기( 氣)를 내갈겼다. 마치
허공에 강기로 된 거대한 검은 벽(壁)이 쳐진 것
같았다.
안력이 예리한 사람이라면 그 검은 벽이 시커먼
채찍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독사의 몸통처럼 끈적끈적한 빛을 뿌리고 있는
검은 색의 채찍!
그것은 바로 우내십대기문병기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구룡편이었다.
천지이흉은 창졸지간에 기선을 제압 당하고 그
노도와 같은 검은 편영(鞭影)에 격퇴 당했다.
그 순간에 검은 인영은 조자건의 몸을 옆구리에
끼어 안았다.
조자건은 가물가물한 눈을 들어 상대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단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상대가 검은 옷을
입은 단단한 몸매의 소유자라는 것뿐이었다.
검은 인영의 사나이는 그를 내려보지도 않고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내 제안을 한 가지만 들어주면 당신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겠소."
그의 음성은 냉랭할 정도로 싸늘해서 간이 약한
사람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였다.
조자건은 자신을 안고 있는 검은 옷의 사나이를
물끄러미 올려 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마...... 말하시오."
검은 옷의 사나이의 눈빛은 음성만큼이나 차가운
것이었다.
"당신과 비무(比武)를 하고 싶소."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세상에 실없는 사람이라고
했을 지 모른다. 흉험하기 이를 데 없는 격전장에
난데없이 뛰어들어 다 죽어 가는 사람을 붙잡고
비무를 하고 싶다니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하나 조자건으로서는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까닥거릴 힘도 없었으나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흑의사나이는 그를 안은
채로 몸을 날렸다. 설명은 길었지만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은 시간은 큰 숨을 한 번 내쉴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이에 흑의사나이의 주위에는 철통 같은
포위망이 펼쳐져 있었다.
천지이흉과 갈홍립뿐만 아니라 이십여 명의
인영들이 그들을 이중 삼중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응천성! 네 놈이 감히 본부(本府)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갈홍립이 분노에 찬 호통을 내지른 순간에 사나이는
주저 없이 그들의 사이로 뛰어들고 있었다.
한 손으로 조자건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의
손놀림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민첩하고
영활했다.
파파파팍!
그의 수중에 들린 구룡편이 수십 가닥의 검은
그림자를 그리며 사방을 질풍노도처럼 휩쓸자 연거푸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팍! 팍!
"크아악!"
"케엑!"
순식간에 세 명의 무사가 편영에 휩쓸려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그러나 그 순간 응천성은 무언가
차갑고 예리한 기운이 자신의 코앞으로 쏘아져 옴을
깨달았다.
그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파앗!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카로운 바늘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그의 피부가 살짝 갈라져 뺨을 타고 한 줄기 핏줄기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
응천성은 한눈에 그것이 천지이흉 중의 엽동청의
독문무기인 무형마사임을 알아보았다. 하나 공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기도 있다!"
응천성의 고개가 채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한
자루 도끼가 허공에서 불쑥 나타나 그의 등짝을
맹렬한 기세로 내리 찍었다.
응천성은 황급히 몸을 비틀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쭈아악!
구룡편이 한 마리 살아 있는 뱀처럼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도끼가 날아온 곳으로 날아갔다. 그
움직이는 속도와 변화하는 동작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파팍!
도끼와 채찍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격돌하며 미세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음......!"
도끼를 휘둘렀던 위남해는 도끼의 자루를 감으며
쳐들어오는 구룡편의 끝 부분에 어깨를 격중 당해
어깨가 피범벅이 되어 물러났다.
응천성 또한 도끼에 실린 역도(力道)를 완전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가슴이 크게 진탕되어 몸을
휘청거렸다.
쐐쐐쐐쐐!
숨돌릴 사이도 없이 이번에는 갈홍립의 철골섭선이
예리한 파공음을 내면서 그의 전면으로 쏘아져 왔다.
응천성은 계속 이런 식으로 그들의 연환공격을
받다가는 자신도 위태로울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구룡편이 제아무리 위력적이라 해도 세 명의
절정고수들을 단번에 물리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품속에 한 사람을 안고 있어서 행동이
자유스럽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응천성은 결단을 내린 듯 조자건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당신을 던지면 무조건 도망가시오. 내가
이들을 막을 동안 당신은 재주껏 몸을 피하란
말이오.'
조자건의 고개가 힘없이 끄덕여졌다.
응천성은 두 눈을 번뜩이며 사납게 수중의 구룡편을
떨쳐 냈다.
"천룡귀해(天龍歸海)--!"
그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폭갈이 터져 나오며 주위
사방이 온통 시커먼 편영으로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그 편영이 펼쳐지는 속도와 위력은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파파파파......
화신묘의 담벼락이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 터졌다. 특히 응천성이 교묘하게 힘을
조절해서인지 동쪽의 담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와 함께 그의 품 안에 있던 조자건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응천성이 초식을 시전함과 동시에
조자건의 몸을 그대로 동쪽으로 던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담벼락이 무너지며 조자건의 몸은 섬전과 같이
화신묘 밖의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놈이 도망간다! 놓치지 마라!"
갈홍립이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응천성이 뿜어낸 편영이 너무도 무서운
위력으로 가로막고 있어서 누구도 뚫고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갈홍립은 이를 바드득 갈아붙이며 응천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놈, 죽어라!"
엽동청과 위남해 또한 두 눈을 흉악하게 번뜩이며
응천성이 펼쳐 낸 엄밀한 편영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콰쾅!
천지를 진동시킬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며 엄청난
경기가 사방을 폭풍노도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음!"
"으음......"
경기의 폭풍 속에서 몇 가닥의 나직한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순간에 조자건의 몸은 이미 화신묘에서 이십여
장 밖의 풀숲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쿵!
그의 몸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뒤따랐다. 하나
그 바람에 오히려 조자건은 조금 정신이 들었다.
"으음......"
그는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
이어 후들거리는 몸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순간, 그는
무언가 싸늘한 안광이 자신을 노려봄을 느끼고 고개를
쳐들었다.
어느 사이에 나타났는지 당잔이 냉혹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일 장 밖 어둠 속에서 우뚝 서 있지
않은가?
"흐흐...... 응가 놈이 나타날 때부터 혹시나 해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보람이 있군."
당잔은 입꼬리에 음산한 웃음을 매단 채 천천히
조자건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오른손은 녹피(鹿皮)장갑을 낀 채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갈색 암기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었다.
조자건은 몸이 마비되었는지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당잔은 다시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 아마 지금쯤 귀왕령의 독기가 심장까지
퍼져 이대로 있어도 네 놈은 일 각(一刻)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왕 죽을 놈이라면 내가
확실하게 죽여주지."
이어 그는 서서히 암기주머니 속에 넣었던 오른손을
빼내었다.
조자건은 그것을 보고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이미 그의 얼굴은 독기로 인해 푸르뎅뎅하게 변해
있었다. 두 눈의 동공마저 완전히 풀려 한 줄기 숨만
내쉬고 있을 뿐 시체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을 본 당잔은 더욱 유쾌하게 웃었다.
조자건을 쓰러뜨림으로써 사천당문은
구호당(九號黨)내에서도 핵심적인 세력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그들의 독술(毒術)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흐흐...... 이 놈, 잘 가라!"
당잔의 오른손이 슬쩍 움직이며 무언가 빗살 같은
광채가 번뜩거렸다.
팟! 팟! 팟!
세 가닥의 독질려(毒疾藜)가 섬뜩한 빛을 뿌리며
조자건의 미간과 양쪽 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빤히 보면서도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순간 석상처럼 꼼짝도 않고 서 있던 조자건의
몸이 움직였다.
그는 왼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오른손을 쭈욱 내뻗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동작이었을 뿐 어떤 기이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빨랐다. 인간의 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파팟!
세 가닥의 독질려는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그의
왼손에 그대로 격중되었다.
하나 그 사이에 조자건의 손에 들린 나무막대는
당잔의 목덜미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었다.
"끄억......!"
당잔의 눈이 부릅떠지며 그의 입에서 괴이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암기를 격출 하던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진 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자신의 목을 관통한 나무막대와
그 막대를 쥔 조자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눈이 서서히 감기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쿵!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당잔은 손도 까딱거릴
힘이 없었던 조자건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자건 또한 휘청거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나무막대가 몸을 받쳐 주는 바람에 그는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졌다면 그는
영원히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야말로 실낱 같은
숨결뿐이었다.
조금 전 그는 자신의 모든 힘과 기력(氣力)을 모아
당잔에게 일격(一擊)을 가했다. 그에게는 오직 단
한번의 손을 휘두를 힘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며 그
일격이 실패했다면 그는 그대로 숨이 끊어져 버렸을
것이다.
금시라도 시체가 될 것 같았던 그가 한순간이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불괴연혼강기를
익혔기 때문이다. 불괴연혼강기는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강기무공이 아니라 인간의 혼(魂)까지
단련시키는 최고의 호신강기였다. 선천적인 지구력에
불괴연혼강기로 단련된 그의 정신력은 가히
초인적(超人的)인 것이었다.
더구나 조자건은 어려서부터의 치밀하고 엄격한
훈련으로 체력이 남달리 강인했다.
그의 강인한 체력과 초인적인 정신력이 빈사 상태의
그에게 마지막 일격을 펼칠 힘을 준 것이다.
다행히 그의 마지막 공격은 성공했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참을 바둥거려서야 그는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나무막대로 몸을 지탱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몸의 감각이 마비된 지 오래였다.
단지 지금의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는 한 줄기 집념(執念) 때문이었다.
천하제일고수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쓰러질 수
없다는 사나이의 오기!
조자건은 비틀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전진해 갔다.
그는 자기가 입은 독상(毒傷)이 과연 치유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설사 죽게 되더라도 이곳에 죽을 수는 없다.
집마부의 마졸(魔卒)들 앞에서 죽는 것은 수치다.
다행히 그를 추적해 오는 집마부의 무리들은
없었다. 응천성이 그들을 잘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그는 풀숲을 벗어났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을까?
그는 몇 번이고 담벼락에 부딪혀 쓰러질 뻔했다.
조그만 돌 조각조차도 그에게는 커다란 바위처럼
느껴졌다.
이미 눈은 보이지 않았고 귀조차 어두워졌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그는 돌연 한 사람의 몸에 부딪혔다.
그 사람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의
의식은 자꾸만 흐려져 갔다.
조자건은 안간힘을 다해 눈을 크게 떴다. 상대방의
얼굴은 분명히 눈앞에 있는데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은 갑자기 음성을 높여 외쳤다.
"맙소사, 지금까지 당신을 찾고 있었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조자건은 그 음성을 듣자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당신은...... 알고 있소?"
상대방은 그에게 물었다.
"무얼 말이오?"
조자건은 잘 굴러가지 않으나 뚜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의 당신 목소리는...... 이제까지 내가 들어본
목소리 중에서 가장 멋진 목소리였소......"
그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하마터면 그 목소리를 영원히 못 듣게 될
뻔했구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사마결의 품속으로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2. 약성(藥聖)
사천당문은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세력을 둔
무림세가였다.
그들은 혈족(血族) 외에는 전혀 다른 제자들을 받지
않아 문하제자들이 많지 않았으며 직계후손은 그 수가
더욱 적어 오십 명도 채 되지 않았다.
하나 지난 수백 년 동안 이 가문(家門)은
강호무림에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혁혁한 명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들의 독술과 암기가 너무도 가공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암기는 모두 일곱 가지였지만 강호에 알려진
것은 그 중 세 가지였다.
그것은 독질려, 육혼망(戮魂芒), 그리고
단혼사(斷魂砂)였다.
그 세 가지만으로도 강호인들은 사천당문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들의 암기를 맞으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어느것에라도 단지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썩어 들어가고 마침내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죽음에
빠져들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해약(解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특히 얼마 전에 사천당문의 현 가주인 천수비호
당력이 특수한 암기 하나를 개발한 후로는 아무도
감히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담량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그 암기의 이름은 귀왕령이라 했다.
귀왕령은 먼지같이 미세한 분말로 이루어져 있어
일단 발출되면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흡입하기만 해도 그 치명적인 독기에 그대로 감염되고
만다.
귀왕령의 해독약은 사천당문에서도 단지 당력밖에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격중된 사람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상처가 안으로 썩어 들어가 온몸에서 고름이 나오고
마침내는 고통스런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악독한 독기는 천하의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 * *
조자건은 죽지 않았다.
그가 입은 상처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는 자신이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계속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가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푹신한
침상에 편안하게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사마결은 바로 그의 침상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마결의 얼굴에는 일종의 흥미롭고도 엄숙한
표정이 있어서 원래부터 이상하게 생긴 얼굴을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조자건이 눈을 뜬 것을 보자 마치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그는 눈을 끔벅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알고 있소?"
조자건은 바싹 말라 있는 입술에 침을 축이며
미약한 음성으로 물었다.
"무얼 말이오?"
사마결은 즉시 그의 말을 받았다.
"당신의 눈빛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멋있는
것이오."
그의 눈동자에는 밝은 광채가 번쩍이더니
어린애보다 더 유쾌한 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하마터면 당신의 눈빛을 영영 못 보게 되는
줄 알았소."
조자건은 인삼과 제비집으로 끓인 연자탕을 먹기
시작했다.
연자탕은 달았지만 그의 입은 구토를 하리 만치
썼다. 연자탕을 먹고 나서야 그는 다소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연자탕은 훌륭한 솜씨에 의해 끓여진 것이었다.
그가 있는 방 안의 장식도 연자탕과 같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게 간결하고 적당했다. 한눈에
보아도 주인의 고아한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
조자건은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이곳은 어디요?"
사마결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열두 번째 집이오."
열두 번째 집이 무슨 뜻일까?
조자건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마결은 다시
말했다.
"나는 당신을 데리고 열두 군데나 뛰어다녔소."
사마결은 조자건을 데리고 밤새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그래서 조자건은 자기가 줄곧 바다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조자건의 독상을 치료해 줄 만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열한 명이나 찾아갔었다. 그러나 그들은
환자가 사천당문의 암기에 맞은 것을 알자 단지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종적으로 조자건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사마결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 이유를
알고 있소?"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사마결의 표정은 자못 심각해졌다.
"첫째 당신은 어깨에 귀왕령을 맞고 다시 왼팔에
독질려를 맞는 천하에 둘도 없는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오."
그의 어조는 농담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귀왕령과 독질려는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맹독(猛毒)을 띤 암기들이오. 그 중 하나만 맞았으면
당신은 벌써 한 줌의 피고름이 되었을 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개의 암기에 격중되어서 두 개의
독기(毒氣)가 서로 몸에서 견제를 했던 거요. 하지만
귀왕령의 독기가 더 지독해서 나중에는 독질려의 독을
뚫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소. 물론 그 속도가 많이
느려지기는 했지만......"
사마결은 진지한 음성으로 말을 계속했다.
"둘째로 이곳 주인이 마침 천지(天池) 부근에서 캔
칠엽연국화(七葉蓮菊花) 한 그루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천하에서 제일 가는 의술(醫術)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오."
칠엽연국화는 천지에서만 나는 특수한 꽃이었다.
이것은 모두 일곱 송이로 되었는데 잎사귀는 연꽃을
닮았고 줄기는 국화를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칠엽연국화는 천 년(千年)에 한번만 꽃을 핀다고
하는데 그 꽃은 천하에서 제일 가는 해독(解毒)의
성약(聖藥)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진귀한
약재로써 아무리 억만 금을 주어도 얻을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였다.
이곳의 주인이 낯선 사람에게 그런 진귀한 보물을
제공하다니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사마결의 말은 계속되었다.
"셋째 당신의 기본적인 체력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용케도 이곳까지 올 동안 귀왕령의 독기를
견뎌 냈기 때문이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마결은 메마른 얼굴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곳의 주인이 당신을 반드시 살리고 싶어했기
때문이오."
조자건은 마침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의 주인은 대체 누구요?"
그 말에 대답을 한 것은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나다."
조자건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구쪽에 한 사람이 우뚝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푸른 학창의를 입고 이마에는 네모난 관(冠)을
쓴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머리가 살짝 희끗하고 차림새가 깨끗했다.
얼굴은 준수하고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어 누가 보기에도 호감을 느낄 만한 인상이었다.
조자건은 한동안 중년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었군요."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외에 누가 귀왕령과 독질려의 독기를 해독시킬
수 있겠느냐?"
그의 말은 얼핏 들으면 건방지고 일면 광오하기까지
했었지만 조자건이나 사마결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금 천하에서
오직 그뿐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약성(藥聖) 난자림(蘭子林)이라고
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금 천하의 제일 가는
신의(神醫)였다.
또한 조립산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난자림은 조자건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사마결이 데려온 사람이 너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나는 그 동안 줄곧 너를
찾고 있었다."
그의 음성은 비록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말로
표현 못할 뜨거운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조자건 또한 그를 보자 한동안 감회에 사로잡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사실 난자림을 그리 많이 만나지는 못했다.
조립산은 항상 천하를 정처없이 떠돌고 있었고,
난자림 또한 자신의 거처에서 좀처럼 나오는 법이
없어 그들이 함께 어울릴 기회란 좀처럼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난자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난자림과 조립산은 이십여 년 동안 사귀어 온
사이였다.
그들은 교우 관계가 넓은 사람들도 아니었고
여기저기에 친분 관계를 쌓을 만큼 한가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조자건은 몇 번인가 조립산을 따라 난자림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들이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만나면 그저 술잔을 앞에 놓고 술을 마실
뿐이었다. 남들처럼 웃거나 떠들지도 않았고 시시한
농담을 지껄이지도 않았다. 간혹 한두 마디
선문답(禪問答) 같은 말을 주고받을 뿐 묵묵히 술만
마셨다.
그리고는 또 말없이 헤어질 뿐이었다.
어렸을 때 조자건은 그들의 이런 모습을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하나 자신도 나이를 먹게 되자 그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단 이해할 뿐 아니라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은 말이 필요치 않은 사이였다.
아무런 말이 없이 그저 마주보고만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그런 사이였다.
언젠가 한번 조자건은 조립산에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난자림은 어떤 사람인가요?"
조립산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는 친구로 사귀어도 될 만한 사람이다."
조립산은 난자림의 성격이나 인간성, 행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 조자건은 조립산의 짧은 말 속에서 난자림이란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난자림을 조자건은 오 년 만에야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난자림은 그 동안 조금도 변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난자림이 본 조자건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많이
변해 있었다.
그는 조자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너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그의 짧은 질문 속에는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조립산이 화군악에게 패해 죽은 후 조자건은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그는 지난 세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강호에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지독한 상처를
입게 되었을까?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난자림은 짤막하게만
물었을 뿐이었다.
조자건의 대답 또한 짤막했다.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의 짧은 대답 속에도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는 그 동안 빈둥거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형의 죽음을 단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난자림은 이해했다.
그는 비록 조자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일전에 조립산이 그에 대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건은 성질이 조금 고약한 면이 있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을 가지고 있네. 그것은 절대로 실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가 어떤 일을 했다고 말하면
그건 틀림없이 그 일을 해치웠다는 것을 뜻하네.
조립산 자신도 결코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난자림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자건의 짧은 대답에도 수긍을 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물어 본 사람은 사마결이었다.
"당신은 대체 어떻게 해서 사천당문과 시비가 붙게
되었소? 귀왕령은 그들도 무척 귀하게 여겨서
여간해서는 사용한 일이 없는데......"
조자건은 그 말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도 그것이 궁금했다.
그는 지금까지 사천당문과 아무런 은원 관계가
없었다. 그들을 만난 적도 없었고 원한을 맺을 만한
어떤 일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를 공격했다. 악독한 암기를
써서 그를 사경(死境)에 몰아 넣었다.
그 빚은 꼭 갚고야 말 것이다.
사마결은 조자건이 아무런 말이 없자 그의 안색을
살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 셈이오?
무림대회도 물 건너가 버렸는데......"
조자건은 퍼뜩 정신이 들어 급히 물었다.
"무림대회는 어떻게 되었소?"
사마결의 음성은 왠지 퉁명스러워 보였다.
"물론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오. 하지만 이제는
당신과는 상관없는 대회가 되어 버렸소."
조자건의 안색이 가볍게 굳어졌다.
"그럼......"
사마결은 문득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삼 일 동안이나 혼수상태에 있었소. 그리고
결선 이차전은 어제부터 시작되었소."
그의 음성은 표정만큼이나 무거운 것이었다.
"당신은 기권패가 되었단 말이오."
첫댓글 ㅈㄷㄱ~~~~~~````````
감사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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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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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글구 잘 봅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