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독(倭毒): 식민주의 역사관 일제 식민주의자에 의한 역사왜곡을 왜독이라고 한다. 토인비는 “어떤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역사를 말살하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철학이다”라고 했다. 일제는 36년 동안의 식민통치 시절 우리나라 역사를 철저히 파괴했다. ■민족사서 20만권 강탈 1910년 조선총독부 산하에 취조국을 두고서 모든 서적을 일제히 수색했으며, 다음해 1911년말까지 1년 남짓동안 무려 20만권의 서적을 강탈해갔다. 그러니 한민족의 역사책 같은 것이 최우선적으로 압수되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의하면, “51종 20만권 정도를 가져갔다”고 얘기하고 있다. 사료수집가 이상시 씨는,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단군관련 기록을 중점적으로 약탈해 갔다는 사실을 신문지상에 발표하여 일제의 무도함을 다시 한번 세상에 드러낸 바 있었다(1985년 10월 4일자 조선일보).
■조선총독부의 교육시책 - 조상을 멸시하게 하라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제2대 조선총독으로 사이토(齊藤實)가 와서 문화정치를 표방한다. 이때 발표한 ‘교육시책’에서 사이토는 이렇게 발표했다.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등을 들춰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 아버지와 조상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跡)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일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 내용을 잘 읽어보면, 새삼 우리 한국인들의 사고 속에 우리 나라와 민족에 대한 허무의식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교묘하게 술책을 꾸민 것이 바로 일제 때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금도 일반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조선은 안돼…” “맨날 싸움박질만 하고…” “조선인은 맞아야 돼”라는 식의 깊은 허무의식이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지 않은가. ■역사의 조작 및 날조의 산실 - 조선사편수회
이러한 근본정신 속에서 일제는 1922년 12월 ‘조선사편찬위원회’(약칭 조선사편수회)를 만들고 1938년까지 35권에 달하는 『조선사』를 편찬했다. 그러나 조선사 편찬의 진짜 목적은 조선사의 뿌리를 없애는 데에 있었다. 일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유구한 조선의 고대사를 통째로 말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된 조선의 역사는 처음에는 상고,삼한시대부터 다룰 듯 거론하다가, 차츰 연대가 낮춰지고 다시 삼국 이전이 됐다가 결국은 통일신라 이전부터 다루는 것으로 결정되기에 이른다. 일제는 이 조선사 편찬을 위해서 당시 돈으로 쌀 10만 가마니 이상을 썼다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조선의 역사를 조작, 개작하였는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운, 우리 민족 우리 조상의 역사는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 해방 이전의 역사가 완전 날조된 것이라니 정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 예로 2003년 8월 7일자로 발간된 「주간조선」에는 ‘구한말 지도’라는 게 실렸다. 1999년 6월 26일 국정홍보처가 영국과 공동으로 벌인 조사 결과 조선의 영역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와 사할린 일대까지 그려진 지도가 대량 발견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로마 교황청 등지에서도 조선의 영역이 만주와 흑룡강성 일대를 포함한 지역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일제가 1909(순종3)년 9월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만주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 일대를 만주국 영토로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이마니시 류가 환국(桓f)을 환인(桓因)으로 왜곡하다 일제의 뜻대로 한국 고대사를 주물렀던 주모자였던 당시 교토대 강사 이마니시 류(今西龍:후일 경성제대 교수)는 이병도 등과 더불어 신라부터 고려 때까지의 조선사를 뜻대로 왜곡한 장본인이다. ‘조선사편수회 회의록’을 통해,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삼국유사’의 단군고기 중에 ‘昔有桓L’(석유환국)이라고 되어 있던 것을 ‘昔有桓因’(석유환인)이라고 고친 사실이 드러났다. 이마니시 류가 소장하고 있던 1512년의 삼국유사 정덕본에는, 일연이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 그 나라에 높은 서자 벼슬을 하는 환웅이 있었고 마지막 환웅대에 단군이 나타나 조선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었다(현재 일본 천리대 소재, 국내에서는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그러나 이마니시 류는 변조된 내용을 경도제대 (경성제대를 뜻함) 영인본이라고 하여 발표한다. 그리하여 현재 전해지는 ‘삼국유사’의 판본에는 환국(桓L)이 환인(桓因)으로 변조되었고,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뿌리 역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던 것이다. 이는 원래의 환국시대가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것임에 반해, ‘桓因’이나 ‘帝釋’으로 바뀐 것은 불교적이고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며, 시대적으로도 맞지 않은 명백한 조작이다. 지금으로부터 4336년 전에 세워진 단군의 고조선이 3000년 전의 불교의 부처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이전의 사실이라는 점, 환국은 불교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점 등이 맞지 않다.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회개 그리고 이병도는 이마니시 류의 수서관보가 되어 ‘조선사 편찬’이라는 거대한 역사왜곡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 문교부 장관까지 지냈다. 그는 『조선사』 편집에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사관 수립 사업에 직접 기여하였고, 일제가 유포시킨 식민사관을 해방 후까지 이어주는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한국사학계에는 직접간접으로 이병도의 제자 아닌 사람이 드물다.
일본은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 역사는 주체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에 의해서만 유지되어 왔다는 요지의 이른바 반도사관론을 대량 유포시켰으며, 우리 역사 사료들을 전부 빼앗아가고 불태우고서는 증거가 있어야만 인정한다는 식의 소위 실증주의 역사방법론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1920년대 ‘조선사편수회’의 학풍을 이어받은 이병도는 나중에 고대사 연구에 “일본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바 적지 않았다”고 스스로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도는 죽기 직전,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국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반성문을 발표한다. 그간 최태영 박사, 송지영 KBS 이사장, 국문학자 이희승 박사 등의 설득으로 과거 자신의 역사관을 크게 수정하여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자에 논설을 게재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를 바라보던 제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어떤 이는 ‘노망 드셨네’ 하며 비웃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때 그와 더불어 『한국상고사입문』(1989년)을 발간했던 상고사연구가 최태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한국땅에서 단군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증사학을 내세워 단군을 가상인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이지요.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이지만 이병도 박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박사는 말년에 건강이 나빴는데, 어느 날 병실에 찾아갔더니 죽기 전에 옳은 소리를 하겠다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했어요. 그 사실을 후학들이 모르고 이박사의 기존학설에만 매달려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한민족이면 누구나 어린아이 때부터 배웠던 ‘동몽선습’이나 ‘세종실록’ 등 각 고전에도 단군기록이 나옵니다. 수백년전 기록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역사기록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판소리할 때도 그 긴 내용을 한자도 바꾸지 않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역사기록은 더욱 정확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서울대법대 초대학장을 역임한 상고사연구가 최태영 박사, 2000년 1월3일자 문화일보 특별대담) 양독(洋毒): 실증주의 역사관 양독은 서양에서 들어온 실증주의 역사학의 해독을 말한다. 이는 “주관적인 판단 없이 역사적 사실을 원래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의 관점을 밑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오직 유적과 유물에 의해 실증된 역사적 사실만을 인정하는 반면, 문헌을 연구하는 사학은 비판한다. 그래서 대표적인 고대사 자료인 『환단고기』 등의 서적을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다는 식의 고증이 중요하다면서, 왜 그들은 중국과 러시아 땅에 묻혀 있는 고조선의 유적과 유물들은 확인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해방 후 국사학계는 1930∼40년대 초기의 학풍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더욱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납북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다양한 국사연구 학풍이 실증주의 학풍으로 단일화되면서 실증주의 사학자들이 우리 나라 국사학계의 핵심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주류에 역사학자 이병도의 영향력이 자리잡고 있었음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그는 역사학계의 대부로서 해방 후 1955∼1982년까지 ‘국사편찬위워회’ 위원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니 일제시대의 식민주의 역사관이 국사책에 반영되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역사가 왜 왜곡되었는가? 왜적이 침범해서 역사책을 불태우고, 내란이 일어나서 우리 역사책을 불태워서 왜곡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가들에 의해서 왜곡되었다”고 하였다. 앞서 소개했던 안호상 박사는, 고대 역사서들이 입증하고 있던 사실을 후대에서 중국과 일본의 사가들이 이 사실을 왜곡 변조했으며, 식민사관에 물든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여기에 기초해 국정교과서들이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지적했었다(1999년 3월 1일자 세계일보).
역사가 단지 흘러가버렸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잊혀지고 마는 것일까? 우리의 민족혼 속에는 서양식의 근대적인 과학주의 역사관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깊은 잠재적 사상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유적과 유물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식 무의식 속에 살아숨쉬는 민족혼이야말로 역사의 실체를 찾아가는 단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문화의 정신사 속에는 상제문화와 제사문화, 그리고 풍류신도가 면면히 전승되어 오고 있다. 잃어버린 고대사의 복원을 통해서만 이러한 민족문화의 정수를 되살려 낼 수 있다. 매년 설, 추석만 되면 수천만 명이 모든 일을 제쳐놓고 오직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아나선다. 이는 뿌리를 찾아가는 원시반본 문화의 표상이다. 또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 당시 한반도를 붉게 수놓은 인간꽃, 태극 물결을 보라. 이것은 풍류신도의 저력이 아닌가. 이제 한민족이 상제문화를 복원하여, 세계일가문명을 주도할 영광의 그날을 그려본다.
| 자료출처 : 월간개벽 2003년 10월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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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000년 역사를 증거하는 환단고기가 세상에 드러나지않았을 뿐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죠.
역사스페셜 제작팀 스스로도 이것은 환단고지 자체를 연구해보는 것이지, 과학적임을 입증한 것은 아니라 했습니다....왜곡해서 올리지 마시길...
실제 환국의 문명에서 수메르문명이 이어진답니다. 환단고기에서 수밀이국이라 했던 대목이 그거죠. 그리고 역사학자들에게서 밝혀진바에 따르면 고대 수메르인들의 머리는 검고 우리 한민족과 같은 모습의 동방인이라합니다. 아시다시피 수메르 문명은 가장 오래됬다고 쳐주는 문명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환단고기에서의 오성취루 현상이 천문학적으로 조사해본바 적중했습니다. 내용상 딴지 걸 수 없다 이말입니다. 자꾸 이상한 쪽에서 딴지 거시지 마시지요.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 제가 아는 메소포타미아 발굴자들 중에서 수메르인들이 그렇다고 한 학자들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이라 하셨으니. 부디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이름을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한국 고대사가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으나. 아랍고대사까지 한국 고대사로 자신있게 치부하시면서 '딴지걸지 마시지요.'라고 말하는 님의 태도에 의구심을 품고 이렇게 감히 말씀드립니다.
또한 수메르인들이 이용하는 설형문자와 소위 가림토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지도 덤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것도 언어학적 공통점으로 말입니다..모양이 비슷하다니 이런 것은 제하구요.
실제 수메르문명의 유물을 보면 도저히 황인종이라 생각할 수 없는 머리가 꼽슬하며 눈이 크고 코가큰 백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든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란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문외한의 우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렇담 그 환국이란 것이 우리만의 조상이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시기의 유물이 우리나라는 일제하에서 수거되어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영역에서는 여전히 남아있어서 그 나라 사학자들의 연구자료가 되어있어야 정상 아닌가요?
실증주의 사학의 폐해도 물론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지역, 특정 몇몇 문헌에 의한 연구결과를 그 광대한 시기, 광대한 영역에 대해 일반정의 내리는 것은 너무 앞질러 나가는 것 아닙니까?
오성취루 하나로 그 서적의 모든 내용이 검증된 자료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까? 황당하기 이를데가 없군요. 게다가 오성취루조차도 엄밀히 말하면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 구체적인 자료가 있었지만 홈페이지가 잘려버려 원문을 구할 길이 없군요.
역스에서 검증된 환단고기 웃지지 마십시오 방송이나 보셨습습니까 뒤에 환단고기가 정사가 아니라는 근거를 댄 뒷 부분만 자르고선 마치 역스에서 환단고기를 인정한거 처럼 말하는군 요 나참 어이가업어서
강립님. 말씀이 좀 지나치신 듯 하네요.;;;
참나 어이가 없군요 내가 증산도가 이런식으로 나오니까 싫은겁니다. 모 역사학자들이 검증을 헀다고요 어이가없군요 재야학자들의 주장 을 믿고선 친일강단이라고 이런거반대하는 역사자들 몰아세우고 참 나
그랬나요 그럼 고치죠 앞으로 말좀 부드럽게 하곘습니다.
네 ^^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논의를 이끌어 가도록 저 역시 노력하겠습니다.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