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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장 절대고수(絶代高手)
1. 일환(一環)
한동안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깔려 있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난자림이었다. 그는 조자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몸만 건강하다면 화군악에게 도전할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거다."
조자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마결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결선 이차전에 나오지 않은 이후에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소. 그래서 모두들 당신이
나타나지 않은 걸 더욱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소."
조자건은 사마결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들이라니......?"
"당신이 기권패를 당해 절정검 사공척은 싸우지도
않고 삼차전에 진출하게 되어 있었소. 그런데 갑자기
그도 또한 무림대회에 더 이상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포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소."
조자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공척이? 그가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그건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었던 말이오.
사공척이 갑자기 출전을 포기한 것은 당신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뭐 짐작 가는 일이라도 있소?"
조자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는 문득 사공척이 무림대회에 참가한 진정한
이유가 혹시 자신과 겨루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목표가
없어진 사공척이 더 이상 무림대회에 참가할 의욕을
상실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사마결은 조자건이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그가 아무런 말이 없자 다시 말을
계속했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구룡편 응천성도 또한
결선 일차전에 나타나지 않아 기권패 당했다는
것이오. 그는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갑자기 출전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소."
그 말을 듣자 조자건은 문득 응천성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응천성은 과연 무사히 집마부의 추적을 뿌리치고
빠져나갔을까?
그와 함께 여러 가지 의문들이 조자건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응천성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와 비무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 일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위해 집마부의 고수들을 막아서게 한 것일까?
그리고 그는 대체 어떻게 그때 그 장소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요 며칠 새 그에게 벌어진 일들은 모든 것이 의문점
투성이었다. 그리고 의문은 많았지만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조자건은 결코 조급해 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복잡하고 기괴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이면에 숨은 뜻을 알고 나면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일도 한 가지 실마리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해명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응천성을 직접 만나 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자건은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림대회의 향배도 대충 윤곽이
드러났겠구려?"
의외로 사마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소. 비록 당신과 사공척
등 몇 사람이 출전을 포기했지만 또 다른 의외의
인물들이 속속 나타나 누가 우승할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오."
그의 눈에는 흥미진진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절정검 사공척이나
무형륜 위불군 중에서 우승자가 나오리라고
생각했었소. 하지만 이제는 아니오. 모두들 이번
무림대회에는 천기일환(天機一環)과
천룡대협(天龍大俠) 중 한 사람이 우승할 거라고
말들을 하고 있소."
그 말을 듣자 조자건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되물었다.
"그들도 출전했소?"
사마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예선에 참가하지 않고 바로 결선에
나타났소.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소."
그들의 출현은 사마결의 말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천기일환은 우내십대기문병기 중에서도 서열 일
위(一位)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내력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 숱한
의문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는데 그는 결선 일차전의
삼 일째 되는 날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조자건이 화신묘에서 암습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차창!
"크윽!"
화산파(華山派)의 대표로 출전한
일자매화검(一字梅花劍) 사운평(謝雲平)이 놀라운
솜씨로 관동(關東)의 고수인 창룡도수(蒼龍刀手)
곡자강(曲子岡)을 쓰러뜨린 후 주최측의 다음
출전자를 알리는 목소리가 길게 들려 왔다.
"다음은 괄창산(括蒼山)의 반칠검객(反七劍客)
뇌일봉(雷一峯)과 이십사대문파 중 천기문(天機門)의
대표 간의 대결이오!"
천기문이란 말에 중인들 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천기문? 그런 문파도 있었나?"
중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천기문이란 이름을 오늘
처음 듣게 되었다. 그런데도 천기문은 무림을
대표하는 스물네 개 대문파의 하나에 속해 예선을
참가하지 않고도 결선에 고수를 내보내게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 위에는 어느새 반칠검객 뇌일봉이 우뚝 서서
상대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뇌일봉은 전력(前歷)이 몹시도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무당파(武當派)의 촉망받는
속가제자였다.
그의 사부는 무당사자(武當四子) 중의 우두머리인
청송자(靑松子)였다. 청송자는 무당 비전(秘傳)의
칠성검법(七星劍法)을 완벽하게 터득한 절세의
검객으로 그가 칠성검법을 휘두르면 허공에 진짜 일곱
개의 별모양이 나타나 상대를 쓰러뜨린다고 알려져
있었다.
뇌일봉은 청송자가 거둔 열두 명의 제자들 중에서
금세 두각을 나타내었다. 하나 이십 세가 되는 해
봄에 그는 파문(破門)을 당했다.
그것은 그가 청송자의 면전에서 칠성검법에 몇 가지
단점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자존심 강한
청송자는 자신이 아끼던 제자가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광경을 보고 진노를 금치 못했다. 결국 뇌일봉은
한쪽 팔이 잘려진 채로 청송자의 문하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칠 년 후, 강호무림에는 외팔이 검객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외팔로 신랄하고 절묘한 검법을 펼쳐 순식간에
무림에 혁혁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얼마 후 그는
단신으로 무당산에 올라가 청송자를 격패시켰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청송자가 파문시킨 과거의
제자 뇌일봉임을 밝히고 자신이 익힌 검법은
칠성검법을 물리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 낸
반칠성검법(反七星劍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반칠검객이라고 불렀다.
그의 반칠성검법은 비단 칠성검법뿐만 아니라
천하무림에 산재한 거의 모든 도가검법(道家劍法)의
극성(極性)이 되는 것이었다.
청송자가 쓰러진 후 무당에서는 몇 명의 뛰어난
검객들을 파견하여 뇌일봉에게 복수를 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그가 괄창산에
거처를 정하고 무림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된 후에도 그의 명성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뇌일봉이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무당에서
이번 대회에 우승하면 과거의 모든 은원(恩怨)을
잊겠다는 통보를 해 왔기 때문이었다. 뇌일봉은 항상
무당파에 파문 당하고 자신의 손으로 사부를
쓰러뜨렸던 과거의 일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모든 과거의 허물을 벗고 싶었던
것이다.
뇌일봉이 한참 동안 서 있었는데도 대 위로
올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차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고 뇌일봉의 안색 또한 조금씩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어디선가 돌연 미끄러지듯 허공을 날아 대 위에
올라서는 하나의 인영이 있었다. 인영의 몸놀림이
너무도 표홀하고 절묘해서 중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각어풍(脚御風)이다......!"
여기저기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각어풍은 두 발의 무릎 아래를 움직이지 않고
날아가는 초상승(超上乘)의 신법(身法)으로 지난 수십
년 간 무림에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뇌일봉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나타난 상대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나타난 인영은 백색 피풍을 두르고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쓴 훤칠한 키의 백의인이었다. 챙
아래에는 짙은 색의 망사를 늘어뜨리고 있어서
아쉽게도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하나 망사 사이로 내비치는 백의인의 눈빛은 기이한
신광(神光)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백의인의 오른쪽 손목에 매어져 있는
기이한 모양의 팔찌였다. 팔찌의 표면에 여러 가지의
동물 문양이 새겨졌는데 자세히 보면 수십 개의 얇은
마디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디의 수는 정확히 구십구 개였다.
구십구 개의 마디로 이루어진 기이한 문양의 팔찌.
뇌일봉은 한동안 망사백의인을 살펴보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귀하는 혹시 천기일환(天機一環)이 아니오?"
망사백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눈이 날카롭군. 내가 바로 천기일환이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중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기일환!
우내십대기문병기 중의 제일인자로
공인되었으면서도 그 동안 좀처럼 강호무림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천기일환이 드디어
무림대회에 나타난 것이다.
뇌일봉의 눈빛이 더욱 번쩍거렸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귀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왔소. 그래서 언제고 기회가 생긴다면 내
반칠성검법으로 귀하의 천기환수법(天機環手法)을 꼭
상대해 보고 싶었소. 오늘 이렇게 귀하를 만나게 되니
내 마음은 몹시 기쁘구려."
뇌일봉에게는 당당한 대가(大家)의 풍모가 있었다.
그가 비록 사부를 쓰러뜨리고 사문(師門)을 배반한
반도(叛徒)라는 일부의 악평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기재가 탁월하고 인물됨이 장중(莊重)한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었다.
당금 무림에서 전설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신비의
사나이 천기일환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럼 손을 쓰겠소."
뇌일봉은 한동안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천천히
옆구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경쾌하게 울리는 검의 울부짖는 소리......, 한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검의 촉감......, 자신을
직시하는 수많은 군웅들의 긴장된 눈초리......
그리고 파란 하늘 사이로 내비치는 솜털 같은
뭉게구름......
뇌일봉은 잠시 한없이 푸른 창공과 따사로이 빛나는
햇살들을 올려다보았다.
처음 검을 잡았을 때의 두렵고 설레는 마음이
다시금 가슴에 되살아났다. 아울러 자신을 질책하고
독려하던 청송자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무당산의 깊은 산중에서 함께 검을 휘둘렀던
동문(同門)들의 모습도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어디에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자신을 키워 준 무당파에 대한 마음의 빚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승패(勝敗)가 어찌되건 상관이 없다. 단지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 뇌일봉은 천리 길을 마다
않고 이곳까지 달려온 그간의 행로(行路)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차앗!"
뇌일봉은 우렁찬 외침을 토하며 수중의 장검으로
천기일환의 목을 향해 찔러 갔다.
파파파팟......!
빗살 같은 검기(劍氣)가 갈 지(之)자 형상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뇌일봉의 반칠성검법은 무당파 비전의 칠성검법에
나타난 단점들을 보완하고 뇌일봉 자신이 칠팔 년 간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만들어 낸 절정검법이었다.
이 검법의 놀라운 점은 무당이나 다른 도가(道家)의
검법들처럼 검을 휘두르는 식이 아니라 찌르는 식이
위주가 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여타의 검법과는
극히 다를 뿐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이하고 신랄(辛辣)하다는 느낌을 일게 했다.
지금도 천기일환의 목덜미 근처
칠개대혈(七個大穴)을 노리고 날아드는 뇌일봉의
장검은 일곱 개의 검기를 뿌리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이것은 반칠성검법 중의
사주칠성(斜走七星)이라는 초식으로 실제로 일곱 번의
찌르기를 병행했기 때문에 그 중 하나에만 격중되어도
그대로 목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무시무시한
수법이었다.
천기일환은 일곱 개의 검기가 지척에 오도록
우두커니 선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막 검기가 자신의 목을 관통하려고 하는
순간 그는 슬쩍 우수(右手)를 흔들었다.
휘리링!
마치 쇠사슬을 쇠막대에 돌리는 듯한 기이한 음향이
울려나왔다. 동시에 허공에 무수한 원(圓)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원들은 끝없이 계속 뿜어 나올 것 같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나타나는 금빛
환(環)들......
뇌일봉은 자신이 펴낸 일곱 가닥의 검기가 그
환영(環影)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그 환영들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 속도와 환영들이 뒤덮은 범위는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것은 환상이다......!'
뇌일봉은 안색이 시퍼렇게 굳은 채 사력(死力)을
다해 장검을 휘둘렀다.
팟! 팟! 팟!
그가 자랑하는 반칠성검법 중 가장 무서운
두전칠성(斗轉七星)이 수십 가닥의 빗살 같은 검기를
뿌려 냈다.
까까깡!
귀청이 떨어질 듯한 쇳소리와 함께 뇌일봉이 뿌려
낸 수십 개의 검기들이 환영에 닿자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것은 마치 수십 개의 물방울들이 바위에
부딪혀 튕겨져 나가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
그 순간, 무언가 화끈한 것이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등뒤로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뇌일봉은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사이엔가 그의 가슴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시뻘건
선혈을 분수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뇌일봉은 그 동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뇌리에 청송자와 동문들, 그리고 처음
무당산에 입산(入山)해서 검을 잡았을 때의 어린
자신의 모습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나...... 나는 이제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
뇌일봉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 순간 그의
몸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2. 천룡(天龍)
천룡대협은 결선 일차전의 마지막 날인 사 일째
되는 날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상대는 해남검파(海南劍派)의 우두머리인
신검무영(神劍無影) 추잔양(鄒殘陽)이었다.
추잔양은 해남검파의 삼십이대
장문인(掌門人)이었다.
해남검파의 검법은 한 가지 기이한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검날을 기울여서 검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정도(正道)에서 어긋났으나 기세가
번개같이 빠르며 지극히 날카로웠고, 한번 검식을
펼쳤다 하면 반드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야
말았다.
추잔양은 해남검파의 남해삼십육검(南海三十六劍)을
완벽하게 터득한 해남검파사상 세 번째의 고수였다.
평상시 그는 얼음장같이 냉정하고 싸늘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나 비무대 위로 걸어 올라오는 거대한 체구의
산발 황의인을 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떨려 왔다.
천룡대협!
강호 무림역사상 채 서른도 되기 전에
대협(大俠)이란 칭호를 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그는 무림에 출도한 지 이제 겨우 일 년
남짓 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대협'이었다.
누구도 그 사실은 부인하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무공이 고강하거나 그가 소림의
절예를 모두 터득한 소림제일인(少林第一人)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인간(人間)'자체가 남들로 하여금 그를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그를 추종하는 무리의 수는 가히 엄청난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소림외가(少林外家)라고
부르며 천룡대협의 말이라면 기름을 지고 타는 불
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맹종(盲從)의
무리들이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당년의 화군악이 천하제일고수에
올랐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군악은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했는데 천룡대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하나의 세력(勢力)으로 만들었다.
소림외가의 힘은 소림사(少林寺) 자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천하에 자자하게
떠돌고 있었다.
천룡대협은 추잔양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단순히 걸어오고 있는데도 추잔양은 마치 거대한
태산(泰山)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듯한 막대한
압력을 느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더욱 커 보였다.
추잔양도 작은 키는 아닌데 그의 앞에 서니 열
살짜리 소년같이 작고 왜소해 보였다.
더구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내비치는 그
강렬한 눈빛은 태양이라도 꿰뚫을 것 같았다.
추잔양은 아직까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짓누르는 패도무쌍한 기운을 풍기는 인물을 본 적이
없었다.
"소림의 천룡이오."
그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굉량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태도는 의외로 정중하면서도 무게가 있었다.
건방지다거나 광오한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추잔양은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해남검파의 추잔양이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한 채 대의 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먼저 몸을 움직인 사람은 추잔양이었다.
창!
날카로운 검명이 울려 퍼지는 순간에 추잔양의 검은
어느새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천룡대협의 면전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파파파파......
마치 거센 파도가 치듯 매서운 검풍(劍風)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바로 남해삼십육검 중의 절초인
해소산붕(海嘯山崩)이라는 초식이었다.
천룡대협은 서서히 오른손을 말아 쥐었다.
그런 다음 천천히 그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주먹은 일견 아무런 변화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것 같았다.
하나 그 순간 추잔양은 일찍이 받아 본 적이 없는
가공할 압력이 자신의 전면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츠츠츳......
주먹이 채 반도 펼쳐지지 않았는데 추잔양은 수중에
들고 있는 검으로 더 이상 초식을 펼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압력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펼친 해소산붕은 그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우웅......
그래도 추잔양을 향해 다가오는 그 가공할 기운의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추잔양의 안색이 핼쑥해지며 입가로 한 줄기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추잔양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장검을 힘껏
움켜잡았다.
"이야압!"
그는 한 줄기 호통을 내지르며 장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세차게 휘둘렀다. 남해삼십육검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대해참경(大海斬鯨)과
노경파미(怒鯨擺尾)의 두 초식을 연거푸 전개했다.
하나 초식은 끝까지 펼쳐지지 않았다.
파르르......
느릿느릿 다가오던 천룡대협의 주먹이 가늘게
떨린다 싶은 순간 추잔양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수중의 장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따땅!
"크윽!"
그는 입으로 폭포수 같은 핏줄기를 뿜어내며 뒤로
비틀거리고 물러났다. 그는 고통스런 와중에도 도대체
천룡대협이 무슨 수법으로 자신을 물리쳤는지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이...... 이것이 대체 무슨 권법(拳法)이기에
이토록 무섭단 말이냐......?'
그는 자신이 상대의 일권(一拳)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한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하나
그것이 소림사에서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실현된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임을 그가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중인들은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남검파의 추잔양이 상대의 한 주먹에 패퇴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말로만 들었던 천룡대협의 무공이 자신들의
상상을 몇 배 뛰어넘는 가공스러운 것임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나 그것은 곧 커다란 환호와
흥분으로 바뀌었다.
"우와아...... 최고다!"
"과연 천룡대협이다...... 그는 진정한
소림제일인이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장내를 진동시켰다.
환호성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잘 배웠소."
천룡대협은 그 환호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시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그리고는 멍하니 서 있는 추잔양을 남겨 두고
당당한 걸음으로 대 아래로 사라져 갔다.
환호성은 그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 * *
사마결은 조자건이 없는 동안 벌어진 무림대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 후 조자건을 바라보았다.
"천기일환은 어제 황보세가(皇甫世家)의 대표인
신권(神拳) 황보웅(皇甫雄)을 격파하고 삼차전에
진출했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가 무림대회의
결승에 올라가리라고 예상하고 있소. 그리고 그의
적수는 오직 천룡대협뿐이라고 말하고 있소."
조자건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천룡대협은 언제 또 출전하오?"
"아마 오늘 오후에 이차전을 벌일 거요."
사마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자건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마결과 난자림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 몸으로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거요?"
조자건의 낯빛은 아직도 핼쑥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니 부러졌던 갈비뼈가 채 아물지 않은 탓인지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통증이 뒤따랐다.
하나 그는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난 그 천룡대협이 싸우는 광경을 보고 싶소."
사마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당신은 대체 당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당신은 거의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오. 앞으로도 최소한 서너 달은 꼼짝도 않고
누워 있어도 나을까 말까 한 심각한 상태란 말이오."
사마결이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조자건은 어느새
침상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내 귀는 먹지 않았으니 당신이 그렇게 악을 쓸
필요는 없소. 그리고 내 몸 상태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소. 서너 달이 아니라 삼사 일만 더 누워 있어도 난
아마 화병이 나서 다시 쓰러지고 말 거요."
사마결은 난자림을 돌아보았다.
"난선배, 조형 좀 말려 주십시오. 저러다 아직
아물지도 않은 갈비뼈가 다시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평생 불구가 될지도 모릅니다."
난자림의 입가에 고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들 조씨 형제가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꺾을 수
없네. 난 그래서 진작부터 그들을 설득할 생각 같은
건 아예 포기해 버렸지."
사마결도 절로 쓰디쓴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조자건은 침상에서 일어나 한쪽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었다. 난자림은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천룡대협의 대결하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거냐? 너는 이제 무림대회에 참가할 수도
없으니 그와 겨룰 일도 없을 텐데......"
조자건은 옷을 입다 말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땀이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 옷을 입기만 하는 것인데도 몹시 힘이 드는
모습이었다.
하나 그의 두 눈만은 혜성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 그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 확인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난자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네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면?"
조자건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저는 다시 이곳에 와서 며칠
쉬어야겠습니다."
"네가 생각한 사람이라면?"
조자건은 땀범벅이 된 얼굴에 빙긋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래 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겠지요."
화창한 날이었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고, 날씨는 약간의 무더위를
느낄 만큼 청명하고 깨끗했다.
하나 조자건은 전신에 비오듯 땀을 흘렸다.
무림대회가 벌어지는 종산의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하마터면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가 용케도 쓰러지지 않은 건 때마침 사마결이 그의
팔을 붙잡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뼈대가 남들보다 특별히 굵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부축하면서 사마결은 조자건의 뼈대가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곳까지 오기는커녕 침상에서
일어나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뼈대가 강한 사람은 성패사활(成敗死活)을 막론하고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사마결도 조자건이 존경스러웠다. 하나 그는
내색하지 않고 비무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 다행히 늦지는 않았군. 보시오, 저 자가 바로
천룡대협이오."
사마결은 손을 번쩍 들어 비무대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우람한 체구의 황의인을 가리켰다.
조자건의 시선은 벌써부터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한번 슬쩍 눈으로
스치기만 해도 그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 굳건한 양 어깨와 굵직한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남성적인 힘......, 커다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균형잡인 몸매......, 그리고 그 전신에서 풍기는
독특한 기운......
조자건은 조용히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마결은 조자건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웃는 거요?"
조자건은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웃었소. 그는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구려."
사마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정말 당신은 천룡대협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오?"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름은 번우량이라 하오."
그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는 예전에 나의 동문(同門)이었소."
3. 파멸(破滅)
번우량은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니 엄밀히 말한다면 사내가 들고 있는 기이한
모양의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처럼 얄팍하면서도 끝이 이상한 모양으로 꺾여
있는 기형의 칼.
그 칼을 쥔 손은 오직 뼈와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이 깡말라서 마치 시체의 손 같았다. 하나 그 손의
임자는 결코 시체가 아니었다.
동해쇄겸도 매일립.
천룡대협 번우량의 두 번째 상대자는 바로
우내십대기문병기 중의 하나인 매일립이었다.
천룡대협과 동해쇄겸도의 대결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군웅들의 시선을 끌기에 족한 것이었다.
한 사람은 소림사에서 심혈(心血)을 기울여 배출해
낸 소림제일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한번 칼을
뽑으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만다는 공포의 도법을
가지고 있는 우내십대기문병기 중의 하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천룡대협이 이번에도 과연
맨손으로 매일립의 쇄겸도를 상대하겠느냐는
점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천룡대협은 소림의 절예 중 특히
내가공력(內家功力)을 이용하는 무공에 정통해서
맨손의 무공으로는 가히 당세제일(當世第一)이라고
했다.
하나 쇄겸도는 결코 맨손으로는 막을 수 없는
절세의 기병(奇兵)이었다.
대체 천룡대협은 무슨 수로 매일립의 동해쇄겸도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매일립은 독사같이 날카로운 눈으로 천룡대협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비쩍 마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칼날 같은 기운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싸늘한 것이었다.
번우량은 여전히 양손을 늘어뜨린 채, 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마치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박은 천년거목(千年巨木)을 연상케 했다.
어떠한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끄떡하지
않을 거대한 고목!
번우량 자신의 마음도 고목처럼 담담했다.
그는 매일립의 칼날 같은 기세도 느꼈고 쇄겸도의
날카로움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 두렵다기 보다는
오히려 투지가 일어났다.
매일립은 그가 출도한 이후 겨루는 인물들 중 가장
강한 고수였다.
그는 아직 단 한번도 자신의 전력을 쏟아 내 본
적이 없었다. 아직 그럴 만한 적수도 만나지 못했을
뿐더러 자신조차 자신이 전력을 쏟아 내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몸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막강한 내공지기는
소림의 신공(神功)에 융합되어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으로 향상되어 있었다. 그 가공할 힘이
뿜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쾌액!
언제 발출했는지 모르게 매일립의 쇄겸도가
번우량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그
눈부신 쾌도(快刀)는 가히 가공스럽다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번우량의 두 발은 여전히 대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육중한 몸은 어느새 쇄겸도의 예리한
칼날을 피해 한 자쯤 옆으로 이동해 있는 것이
아닌가?
스윽!
그 순간,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던 쇄겸도가 기이한
호선을 그리더니 그대로 옆으로 이동해 있는 번우량의
뒤통수를 향해 쏘아져 갔다. 그 예리한 각도의 변화와
움직이는 속도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쇄겸도의 칼끝은 번우량의 뒤통수를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아앗!"
중인들 틈에서 다급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가공할 기세로 번우량의 뒤통수를 노리고 들어가던
매일립의 손이 우뚝 멈춰지더니 그의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중인들은 영문을 몰라 두 눈을 부릅뜨고 장내를
주시했다.
주르르......
물러난 매일립의 입가로 한 줄기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매일립이 쇄겸도로 막 번우량의 뒤통수를 찌르려는
순간 그는 돌연 한 가닥의 막강한 기운이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은 너무도 돌발적이고 갑작스럽게 나타났기
때문에 매일립이 황급히 몸을 빼냈으나 심맥(心脈)이
진동되어 내상을 입게 된 것이다.
매일립은 두 눈을 번뜩이며 번우량을 노려보았다.
번우량은 여전히 그 자리에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하나 매일립의 날카로운 시선은 그의 오른쪽 손가락
중 세 개가 이상한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달걀을 집으려는 듯 구부러진 채 모아져 있는
세 개의 손가락!
매일립은 그것을 보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것은 혹시 고심종(叩心鐘)이란 수법이 아니오?"
번우량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의 안목은 과연 날카롭구려. 이것이 바로
고심종이오."
고심종은 지공(指功)도 아니고 조공(爪功)도 아닌
기이한 수법이었다.
이것은 세 개의 손가락에 각기 서로 다른 공력을
끌어 모아 그것을 융합해서 발출시키는 것으로 흔적도
없고 소리도 없는 무형(無形)의 내가공력이다.
하나 세 개의 융합된 기운이 서로 강하게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서는 설사 안다고 해도 그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회전하는 기운에 심맥이
진동되어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마는 무시무시한
내가수법(內家手法) 중 하나였다.
그것이 마치 가슴[心]속에 있는 종(鐘)을
두드리는(叩)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고심종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이 고심종 수법은 그 위력만큼이나 익히기가 어려워
지난 수십 년 간 소림사 내에서도 완벽하게 터득한
사람이 없었다.
매일립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쓰윽 닦으며 양손으로
수중의 쇄겸도를 움켜잡았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구름 같은 기세가 피어
올랐다. 그 기세는 먼저 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맹한 것이었다.
우우웅......
그의 쇄겸도가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부르르
떨리며 기이한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음향은 마치
피를 부르는 죽음의 사신(死神)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이상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조자건이 담담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매일립이 드디어 그 수법을 쓰려는군."
사마결은 흠칫하여 물었다.
"파멸도 말이오?"
"그렇소."
"그렇다면 이제 그가 파멸하든 당신의 친구가
파멸하든 양단간에 결판이 나겠구려."
조자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결은 그의 안색을 살피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별로 걱정스런 표정이 아니구려."
조자건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번우량은 잘해 낼 거요. 그리고 내가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소?"
그 음성을 듣고서야 사마결은 조자건도 가슴을
졸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그것을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
번우량은 조금도 가슴을 졸이거나 긴장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나 태도는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그가 앞으로 닥칠 무시무시한 일격을 알고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하나 매일립은 알 수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번우량의 허술한 듯 늘어뜨려져
있는 양손에 서서히 어떤 가공할 기운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그 기운은 점점 강력해져서 눈으로 보고 있기만
해도 전신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매일립은 자신이 끌어올린 파멸도의 기운이
번우량의 양손에 모여진 기운과 허공에서 부딪쳐 작은
소용돌이를 이루는 것을 보았다.
그의 뇌리에 문득 자신이 처음 파멸도를 익혔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는 원래 보잘것없는 떠돌이
낭인무사(浪人武士)였다.
명문세가의 출신도 아니고 남들처럼 훌륭한 사부를
두지도 못했다.
그의 사부는 홍광(洪廣)이란 이름 없는
삼류무사였는데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채 매일립을
찾아와 불쑥 하나의 너덜너덜한 양피지조각을
내밀었다.
그것이 전설로만 알려진 파멸도의 비급임을 알았을
때 그는 얼마나 놀랐던가?
홍광은 우연히 그 도보(刀譜)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맹렬한 추적을 뿌리치고 그에게 달려왔던
것이다.
한번 펼치면 반드시 상대를 죽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고 만다는 죽음의 도법!
홍광은 그것을 익힐지 말지를 전적으로 매일립의
결정에 맡긴 후 숨을 거두었다. 그는 싸늘하게 식어
가는 사부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파멸도의
도보(刀譜)를 손에 들고 또 얼마나 망설였던가?
이것을 익히면 강호를 진동시키는 무서운
도객(刀客)이 될 수가 있다. 반면에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면 도저히 물러날 여지가 없이 자신은 한줌
고혼(孤魂)으로 화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달 동안이나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 동안 벌판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황야(荒野)에서 며칠 간이나 노숙(路宿)을
하기도 했었다.
동해(東海)의 차가운 바다 속에 뛰어들어 숨이 막힐
때까지 물 속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하나 자신이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파멸도보(破滅刀譜)를 받아 들었을 때부터
그는 이미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 달의 방황이 끝난 후 그는 주저 없이 파멸도보를
집어들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오 년 후, 그가 다시 산을 내려왔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의 쇄겸도를 막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한때나마, 정말 한때나마 매일립은 자신의 파멸도를
꺾을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에 불과했다.
파멸도는 비록 천하에 으뜸가는 절세의
도법(刀法)이 분명하지만 절대무적(絶對無敵)은
아니었다. 이제 그것이 증명될 것이다.
번우량의 양손에 모여든 기운은 소림사 내에서도
아직까지 아무도 익힌 사람이 없다는
사자모니인(獅子牟尼印)이 분명했다. 자신의 파멸도가
과연 그 절세무적이라는 사자모니인을 깰 수 있을까?
아니, 사자모니인 뒤에 숨겨진 천룡대협의 가공할
힘을 당해 낼 수 있을까?
매일립의 메마른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지난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
파멸도를 익히기 전의 그는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떠돌이 낭인무사(浪人武士)에 불과했었다.
아무도 그를 주시하거나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없었다.
파멸도는 그런 그에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비록 그 파멸도로 인해 자신이 파멸 속으로
빠져든다고 할지라도 지난 몇 년 간은 정말 멋진
시간들이었다. 그는 강호무림의 우상이 되었으며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고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을 향해 퍼부어지던 그 많은 찬사와 경탄의
시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매일립은 한 달의 방황 끝에 끝없이 넓은 동해
바다를 보면서 자신이 부르짖었던 외침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외쳐 댔다.
후회하며 평생(平生)을 보내느니 하루를 살더라도
제왕(帝王)처럼 살고 싶다!
그 순간 매일립은 번우량을 향해 달려들며 전력으로
파멸도를 펼쳐 냈다.
* * *
오는 도중 사마결은 조자건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와 오랜 친구라면서 왜 그를 만나지 않는
거요?"
조자건은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내가 이곳에 있는 줄을 알면서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소. 왜냐하면 그는 반드시 무림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었고 나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산란해 질까봐 두려웠던 거요."
"......!"
"그러니 나도 또한 무림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그를
심란(心亂)하게 만들고 싶지 않소. 그는 이번 대회에
전력을 다하고 있소."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 보고 싶어하면서도 만나면 심란해질까봐
만나지를 못한다니...... 당신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구려."
이번에는 조자건이 침묵을 지켰다.
사마결은 그를 지켜보다가 돌연 히죽 웃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 아니오?"
"뭐가 말이오?"
"그 동해쇄겸도 매일립 말이오. 천룡대협의 주먹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면서도 그의 얼굴 표정은 아주
평온해 보였소. 마치 세상 일에 더 이상 아무런
여한(餘恨)도 없는 사람처럼 말이오."
조자건은 아무 대꾸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참 후, 그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여한이 있을 수 없겠지. 파멸도를 익힐 때부터
이미 그는 오늘과 같은 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ㅈㄷㄱ~~~~~`````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감사하면서 봅니다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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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감사
즐감
감사합니다 글구 잘 봅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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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