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길 분들
장로님 탈장에 걱정이 앞섰다.
복대를 차도 감출 수 없어 정장을 걸쳤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서둘지 않았다.
전문의 파업으로 전대병원 수술이 어려웠다.
아들딸이 내려와 고민하며 대안을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담당 교수 추천으로 KS병원 진료를 받았다.
날짜가 정해졌다.
주일 오후 입원하여 이튿날 수술할 계획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땀으로 묵은 살림을 버렸다.
택배 오토바이도 처분하고 전기 충전으로 바꿔 드렸다.
1박 2일 가족 여행 떠나 한적한 곳에서 아빠 위로의 시간도 가졌다.
아빠가 매운맛의 음식을 해내 엄지 척을 보냈다.
지난 세월 홀어머니 모시고 힘겹게 남매 키운 보람이라 흐뭇했다.
자주 방문하여 돌보기를 권하자 아빠 건강에 목소리를 냈다.
아빠 몫의 보험과 예금에 치료비 걱정은 날렸다.
아들딸 주일 예배 자리가 빛났다.
‘목사님! 연륜에서 나온 설교가 왜 그리 힘 있게 들리지요.
와~ 대박이어요.’
신바람 났다.
동생 권사님이 ‘오빠! 밥 매겨 보내고 싶다’는 말에 맛집으로 갔다.
하 집사님 생일을 겸한 자리였다.
작은 촛불을 켜서 축하 송 부르고 감사 기도 드렸다.
숯불구이 갈비 맛이 새로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후식 된장찌개 입맛이 개운했다.
일어서기 전, 두려움 없이 수술에 임하도록 축복하고 나섰다.
다음 날, 새벽 기도 마치고 안수 집사님과 병원으로 갔다.
간호사 발걸음이 잦았다.
혈관 찾기 어려워 볼펜으로 팔뚝에 찍은 점이 보였다.
혈당 지수가 170 나왔다.
전날 양념 갈비의 단맛 때문이었다.
복도 끝 창가 의자에 앉았다.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수술 임하는 마음과 진행, 결과와 회복 위해 간구했다.
복부 비만으로 어려운 수술이었다.
4시간 만에 병상의 전화 목소리를 들었다.
‘인공 구조물인 그물망을 달아 쏟아지지 않게 덧댔어요.
탈장이 심해 조금 늦게 왔으면 위험할 뻔했데요.
대학병원보다 훨씬 났네요.
꼼꼼하고 친절한 주치의가 좋아요.
중복된 약 정리해 복용하고 앞으로 관리가 중요할 것 같아요.’
다시 병문안을 갔다.
가스가 나왔고 금식이 풀려 죽을 드셨다.
통증이 줄고 회복력이 빨랐다.
배변이 잘 되고 밤잠도 깊었다.
배 땡 김도 덜해 혈색이 환했다.
수술 부위 시티 촬영을 마치고 휴게실에 앉았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니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이 말씀으로 위로하며 지난날의 은혜를 기억하길 바랐다.
준비한 소고기 야채 죽과 봉투를 전하고 나섰다.
환부 관리 위해 요양병원 입원 계획은 기우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환우가 눈에 밟혀 아렸다.
장로님, 새벽 예배 빈자리에도 눈이 갔다.
수요 예배 걸어온 길목도 쳐다봤다.
빠른 치유로 선한 청지기 사명 다하길 바랄 뿐이었다.
골목 할머니가 주일 예배 못 나오셨다.
열흘간 아픈 딸 집에 머무르셨다.
딸이 자기 두 딸보다 어머니가 편한지 자주 찾았다.
‘목사님, 딸이 누워만 있어요.
기력이 없네요.
눈도 못 뜨고 말도 못 해요.
몸이 흐물흐물하네요.
숨도 몰아쉬고 히말테기가 하나도 없어요.
얼마 못 살랑가 봐요.
오늘 밤에라도 죽을 것 같아요.
손녀가 119를 불렀어요.
보훈병원 응급실에서 검사받을 조건 달고 갔네요.
신경과 의사가 부재중이라 입원이 어려워 난감한가 봐요.
응급 환자라 코 줄 끼웠다네요.
전대 화순에서 유방암 수술받고 오륙 년은 괜찮았어요.
완치된 줄 알고 열심히 일하고 살았거든요.
작년에 머리로 전이되어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했어요.
9월 정기 진료(9/6) 두고 기력을 잃어 어쩔랑가 모르겠소.
화순 전대 치료받고 싶은데 뇌 수술 한 병원으로 가라 한데요.’
‘할머니, 한번 가서 딸 뵈면 안 될까요?’
‘딸이 자기 모습 그렇다고 남에게 안 보려고 해요.
내일 서울정형외과 무릎 주사 맞고 집에 갈 거예요.’
거동 불편한 분이라 미리 매곡동 현대 아파트 정문으로 갔다.
할머니가 서 계셨다. 대문 앞에 내려 메치니코프 꾸러미를 드렸다.
우편함에서 열쇠를 찾았다.
‘급하게 딸 연락받고 가면서 열쇠를 방에 두고 왔네요.’
난감한 상황에 이웃집으로 가셨다.
뒤따라 들어가 뒤 안에 세워둔 사다리를 꺼내 왔다.
담벼락에 대고 할머니가 잡았다.
성큼 올라 담을 넘었다.
뒷집 아주머니가 나이 든 양반 장딴지가 튼실하단다.
아침 전대 운동장에서 웃통 벗고 달린 건각,
4분 34초로 따라잡은 다리였다.
안에서 대문 열고 할머니 짐을 들였다.
이웃을 행복하게 한 일은 향수를 뿌리는 것 같았다.
허브처럼 향기 나는 몸이라 기분 좋았다.
다음 날 병원 갈 시간을 물었다.
증손 돌볼 자 없어 손녀가 보낸 택시 타고 또 가셨다.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가 터졌다.
젊은 날 두 아들 잃고 실성한 여인처럼 사신 분,
시집간 딸 중년에 질고로 떠난 후 옹이 진 어머니,
2년 전 남편 보낸 한 서린 아내,
마지막 잎 새 같은 큰 딸 의지하다 언제 떠날지 모른 엄마!
빈 냄비처럼 달아오른 비정한 세월에 가슴이 넝쿨졌다.
별 다 떨어지면 밤하늘은 깜깜할 것,
하얀 밤 지세며 아프고 부끄러웠던 나날,
눈물 번진 삶에 슬픔을 배웅했지만 다 비우지 못한 뿌리가 보였다.
손을 내밀어 잡아 드렸다.
눈물 빛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더니 소나기가 아침을 깨웠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값없는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셨다.
하늘에서 온 들꽃 향기는 들녘 언덕에서 맡는다.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 땀처럼 풀벌레 울음에 가을의 문턱을 그렸다.
2024. 8. 24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