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아프지만은 않습니다.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살인을 하였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목표는 이루어야 합니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어차피 버린 인생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가족은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세상에 온 보람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신경 쓸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동생의 마음속에는 길이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먼 훗날에는 조카들 입에서도 이야기될 수 있겠지요. 흙먼지 속에서가 아니라 안락한 거실에서 나누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은행 빚에 시달려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그 공포가 어떠한지. 그나마 남아있는 농장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입니다. 아이들 양육비도 밀렸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헤어날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소한 형과 머리를 짭니다. 그 때부터 이미 형은 자기의 운명을 정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40도 안 되는 인생 속에서 황금 같은 10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요. 나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족의 삶이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달려들고 싶을 것입니다. 모진 어머니가 힘들게 지켰던 농장도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형제는 은행 강도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탕 해서 벼락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대출금 상환과 아이들 밀린 양육비, 그리고 앞으로 써야 할 학비만 마련하기로 합니다. 동생 토비는 범죄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사실 형 태너도 폭력적인 아비로 인하여 인생이 딴 길로 가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강도짓을 한다 해도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돈이 필요한 것이지, 사람을 해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맘대로 됩니까? 시골 조그마한 동네 은행들을 습격합니다. 크게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 경비도 소홀합니다. 무난히 몇 군데를 텁니다.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무슨 강도가 애들 장난하나? 기껏 털어가는 것이 겨우 몇 천 불 정도입니다. 은행을 턴다면 최소한 백만 불은 안 되더라도 ‘만’ 단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신고를 받은 보안관이나 연방경찰조차도 웃음이 나옵니다. 이거 뭐 좀도둑들이야? 그러나 은퇴를 코앞에 둔 베테랑 형사는 눈치를 챕니다. 아주 영리한 놈들이라는 것을. 추적당할 근거를 차단하기 위해 다발이 아니라 푼돈으로 가져가는 겁니다. 그리고 분명 정해진 액수가 있음을 간파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경험은 상식을 넘어 그들의 순서를 그려줍니다. 그 지도를 가지고 추적합니다.
일은 어렵지 않게 잘 진행이 됩니다. 목표했던 액수도 차갑니다. 뒤탈이 없도록, 추적을 당하지 않도록 소위 돈세탁도 합니다. 카지노가 그런 역할도 해주는구나,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큰 것 한번이면 목표는 달성합니다. 그러나 그 위험성을 형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여 일을 그르칠 경우를 대비해서 동생만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합니다. 자기는 전과자이기 때문에 쉽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범죄의 원인을 자신이 짊어지기도 쉽습니다. 동생은 그런 점에서는 깨끗합니다. 그러니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 모르면 누구에게서도 의심받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은행의 규모가 큰 만큼 사람들도 많고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 두 사람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입니다. 결국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살해되는 사람도 발생합니다. 간신히 돈을 챙겨 나오기는 했지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런 경우를 예상하여 형은 기관총을 준비하였습니다. 쫓아오는 주민들을 기관총으로 쫓아냅니다. 그리고 동생을 숨겨놓은 차에 옮겨 태워 따로 보냅니다. 사랑해. 형제의 이별, 마지막 인사입니다. 그랬습니다. 형으로서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고 자신의 가족, 가문을 지키는 마지막 길입니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이 형사는 그 사건에 대하여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강도 같지도 않은 강도, 분명 하나가 아닌데 사살된 것은 한 명뿐입니다. 결국 동생을 찾아옵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만 형사는 그 냄새를 놓치지 않습니다. 도대체 목적이 뭔가? 어쩌면 간단합니다. 대를 이어가면서 질기게 괴롭히는 가난에서의 탈출입니다. 자본은 가난한 사람들의 남은 것까지 무섭게 뜯어갑니다. 그래서 이 가난을 나의 대에서 끝내려고 한 것이지요. 내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는 겁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벗어나기 힘든 굴레입니다.
자본의 힘에 더욱 깊이 빠져드는 가난의 늪, 그 아픔이 있습니다. 여전히 백인우월사상,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이 깔려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현실일 것입니다. 평등을 외쳐도 뿌리 깊은 문화입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법과 의식보다 위에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원제 : Hell or High Water)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