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에서 끼적끼적 메모(memo)한것이 평생의 등불!!
필자는 마트에 시장 보러 갈 때도 살 품목을 간단히 메모를 한다.
같이 사는 생불(生佛아들별명)이 무슨 부탁을 할 때도 메모를 한다.
매일 걷는 걸음 수를 메모한 것을 1년 합계를 하면
어마어마한 걸음수다.
평생을 이렇게 걸었으니 다리인들 늙고 병들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메모를 한 것은 머리가 총명하지 못해서다.
젊었을 때부터 메모 습관이 있었다.
때로는 메모의 아둔함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민망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보고 듣고 읽은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에게 잘 묻는다.
그런데 메모에 자신감이든 것은
논어(論語)와 김동길 교수. 이어령박사.
서울대학교수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에 의해서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선인(先人)들의 좋은 글을 기록하여 두었다가
후세에 전한다고 했다.
위의 세분 교수는
“명색이 글 쓰는 사람들의 집에 책이 많은 것은 다른 사람의 책을 읽고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을 메모하였다가 다음에 자기 글을 쓸 때에
참고를 삼기 위함”이라고 했다.
자신들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
김윤식 교수는 남의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자기 글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내글 한 줄을 쓰기 위해서 남의글 열권은 읽어야 한다고 했다.
백주년기념교회 당회장을 지낸 이재철목사는
“이 세상에 창작(創作)이란 없다”
본인은 모르지만 어딘가 누군가의 발자취를 참고하여 자기 것을 만든다
고 하였다.
캐나다 여행 시에 광활한 평야를 지내게 되었다.
옆자리에는 캐나다의 한 유치원교사와 같이 앉았다
교사는 어린이들 그림을 그리면 전부 산이 없는 그림이다
캐나다는 광활한 평야로 산을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간혹 그림에 산을 그리는 어린이가 있다고 했다
그 어린이는 부모 따라 산이 있는 외국을 여행한 어린이라 했다.
아래 내용은 기록과 메모에 관한 내용들이다.
▶가수 싸이가 대학 축제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공연을 촬영하는 것을 보고
“내 공연을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라고 말했다.
▶우리의 기억력은 형편없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망각되거나 왜곡된다
기록은 기억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하는 것 보다 기억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한림대 심리학과 모 교수)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기록 메모를 하는 것이다.
기억과 기록을 구분못해서가 아니다(농월)
▶고대 중국 송(宋)나라의 정치가이며 문인(文人)인 구양수(歐陽脩)는
후진(後進)들의 좋은 글을 보면 기록해두었다가
나중에 이 기록들을 모아 “문림(文林)”이란 책으로 묶었다.
같은 시대의 송(宋)나라 문인(文人) 오자량(吳子良)은 자신이 쓴 책
“임하우담(林下偶譚)”에서 이 점이 바로
구양수(歐陽脩)가 일세의 문학의 대가(大家)인 문종(文宗)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극한 메모 노력 덕분이라 썼다.
▶이해인(李海仁) 수녀(修女)가 산문집(散文集)을 펴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 창작의 원천은 꼼꼼이 쓴 일기장 160권 덕택이다”
(2017.12.20. 중앙일보)
▶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는 고어(古語)가 있다.
“둔한 기록(記錄)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뜻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한 말이다.
▶논어(論語) 제7편 술이(述而) 27장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見多而識之 知之次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알지도 못하면서 지어내는(創作) 자들이 세상에는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많이 듣고 많이 읽어서 그 가운데 옳은 것을 골라 따르고,
많이 보고(多見) 그중 중요한 것들을 기록(記錄)하는 것이
아는 것(知)의 밑바탕이다.
▶중국 당(唐)나라 역사서 가운데 하나인 구당서(舊唐書)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以古爲鏡 可以知興替
“옛것으로 거울을 삼는 것는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원인을 알 수 있게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 전한(前漢)때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역사책 “사기(史記)”는
3000여년의 중국 역사를 기록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간학 교과서로 평가 받고 있다.
사기(史記)의 탄생 배경을 보면
책을 쓴 사마천(司馬遷)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엿볼 수 있다.
등장인물 4000여명에 직업 수만 1300여개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책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위대한 역사책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생생한 가르침을 주는
부분이 있다.
사기(史記)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마천(司馬遷)이 말했다.
小子不敏 請悉論先人所次舊聞
소자(小子)가 어리석고 둔하지만(不敏)
“선조(先祖)들이 정리해 놓은 옛날의 기록(記錄)들을 참고로 하여
사기(史記)를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영남대학교 동빈문고(東濱文庫)에 다산(茶山) 선생의 손때가 묻은
“독례통고(讀禮通攷)”란 책이 있다.
이책은 청(淸)나라 때 학자 서건학(徐乾學)의 방대한 저술이다.
이책의 아래위 옆 여백(餘白)에는 그때그때 중요한 내용을 적어둔
다산(茶山)의 친필 메모가 빼곡하다.
다산(茶山) 선생은 메모를 적은 날짜와 상황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병중(病中)에도 썼고, 비올때(雨中)도 썼다.
다산(茶山) 선생의 놀라운 작업의 바탕에는 수사차록(隨思箚錄)이 있다.
※수사차록(隨思箚錄)-책을 읽거나 무엇을 본 상태에서 생각을 놓치지
않고 적어두는 끊임없는 메모의 습관이다.
“묘계질서(妙契疾書)”란 말이 있다.
▷묘계(妙契)-번쩍 떠오른 깨달음이다.
▷질서(疾書)-빨리 써 놓는다는 뜻이다.
▶중국 송(宋)나라 대 유학자(儒學者) 주자(朱子)가 쓴
“장횡거찬(張橫渠贊)”에서
精思力踐 妙契疾書
생각을 정밀하게 하고 실천에 힘쓰며, 깨달음이 있으면 재빨리
기록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썼다.
조선후기 최고의 실학자(實學者)인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도 위의 묘계질서(妙契疾書)의 방법을
평생 실천했다.
경전(經典)을 읽다가 중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을 메모로 붙들어 두었다.
이런 메모들이 모여
“시경질서(詩經疾書)” “맹자질서(孟子疾書)” “가례질서(家禮疾書)”
“주역질서(周易疾書)” 같은 명문장의 책이 만들어졌다.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百科事典的)인 책 “지봉유설(芝峰類說)”도
이수광(李睟光)이 책을 읽을 때마다 처음보는 단어와 문장들을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 메모로 만들어진 결과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처음부터 청(淸)나라 여행 도중에 쓴 글이 아니다.
귀국 후에 쓴 글이다
여러 해 동안 청나라를 여행한 노정(路程) 도중 청(淸)나라를 보고
느끼고 생각날때 그때 그때 메모하여둔 비망록(備忘錄)을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다.
만일 그때의 메모가 없었다면 “열하일기”도 없었다.
▶이덕무(李德懋)는 조선 후기의 북학파(北學派) 실학자(實學者)다.
이덕무가 쓴 책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새긴 풍경들을 붙들어둔 기록(記錄)이다.
아주 적고 별것 아닌 일상(日常)의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서 말 구슬로 꿰어져 보석처럼 영롱하다.
이덕무 또한 못 말리는 메모광이었다.
▶모든 위대(偉大)한 바탕에는 예외 없이 메모의 힘이 있다.
생각과 기억은 미꾸라지처럼 손가락 사이로 빨리 빠져나간다.
달아나기 전에 붙들어 두어야 내 것이 된다.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읽을때는 머리에 꽊차있지만
돌아서면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메모가 있으면 끄떡없다.
머리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손과 연필을 믿어라.
그냥 지나치지 말고 몇자 끄적끄적 기록으로 남겨야
내 것이 된다.
▶빌게이츠는 소문난 독서광이라 했다.
1년에 평균 50권의 종이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어린 시절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읽고난후의 독후감 기록이었다”
▶옹독취보(甕櫝聚寶)란 글이 있다
중국 명(明)나라 학자 오정한(吳廷翰)의 책상 옆에는 나무로 짠 궤 하나와
옹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책을 읽다가 의혹이 생기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얼른 적어 그 안에
담아 두었다.
역사(歷史)책을 읽다가 생긴 의문은 항아리 속에 넣고,
경서(經書)를 읽다가 떠오른 생각은 나무궤에 담았다.
이 메모들이 상당한 분량이 되자 그는 이를 따로 엮어
책 한 권으로 묶었다.
옹기에 담긴 메모는 “옹기(甕記)”란 책이 되고
나무궤에 든 쪽지는 “독기(櫝記)”란 책이 되었다.
▶중국 역사학자 이평심(李平心)은 오근독서법(五勤讀書法)을
강조했다.
독서에서 다섯 가지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꼽은 다섯 가지는 아래와 같다.
勤閱讀-부지런히 읽고
勤摘錄-부지런히 기록하여 둔다
勤記心得-부지런히 외우고
勤分類-부지런히 분류하여 두고
勤編寫-부지런히 편집해서 정리해둔다.
▶앙엽기(盎葉記)라는 기록이 있다.
옛사람은 농사를 짓다가도 문득 공부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면
감나무 잎을 따서 거기에 얼른 적은 뒤 밭두둑 가에 묻어둔 항아리
속에 담아두곤 했다.
이덕무와 박지원은 이 일을 본떠 자신들의 평소 메모를 묶은 비망록
제목으로 “앙엽기(盎葉記)”라 이름붙였다.
▶한국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기록에 너무 무관심하다
가계부 일기 쓰기는 몇일 몇 달 못간다
동아일보 1990.1.15.
▶“나는 컴맹입니다.
타이프는 잘 치지만 글은 내 손으로 써야 내 혼이 담길 것 같았어요.
글이란 나를 떠나 독자와 대화하는 것인데
혼(魂)이 발산(發散)되려면 내 손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내용이 말라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은 생각 날때마다 만년필로 몇자 적어 둡니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아카이브(archive) 컴퓨터 용어가 있다.
데이터(data)를 보관해두는 곳이다.
archive(아카이브)는 “기록 보관소” “기록 보관소에 보관하다”라는
의미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백업(backup)용이나 또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한 곳에 파일들을 모아둔 것”을 아카이브(archive)라고 한다.
▶“과골삼천(果骨三穿)”이란 고사가 있다.
복숭아뼈에 구멍이 세 번 났다는 뜻이다
다산(茶山)이 강진 유배시 가장 아꼈던 제자 황상(黃裳)은 나이 70이
넘어서도 메모(抄書기록)를 계속 했다.
사람들이
그 나이에 메모는 해서 무엇 하느냐"고 하자,
“우리 선생님은 강진에서 20년 유배 생활 동안 복사뼈에 세번 구멍이
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하셨다.
생각만나면 종이든 어디든 메모를 하여 두셨다
그리고 다음 책을 쓰실 때 그 메모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거기에 비하면 내 공부는 공부도 아니다."
이른바 “과골삼천(果骨三穿)”의 고사가 여기서 생겨났다.
▶“박람강기(博覽强記)”는 이덕무(李德懋)의 독서한 기록내용이다
그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 책바보 “간서치(看書痴)”라 불렸다.
그는 읽은책 내용에 중요한 부분을 반드시 기록하였다.
▶“둔필승총(鈍筆勝聰)”이란 말이 있다.
메모하는 무딘 붓이 총명함보다 낫다는 말이다.
책을 읽고 며칠 지나면 알갱이는 흩어지고 잔상(殘像)만 남는다.
그래서 몇 자 옮겨 적기 시작한 것 나중에 글의 핵심이 된다.
▶정조(正祖)는 특이한 임금이었다.
경연(經筵)에서 신하의 강의를 듣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강의를 했다.
“시경(詩經)”을 강의할 때 신하들에게 내준 숙제만 800문항이 넘었다.
큰 학자라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많았다.
신하들은 끊임없는 임금의 숙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 강의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학생은 정약용이었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척척 대답해서 제출했다.
정조가 다산(茶山)의 답안지에 어필(御筆)로 내린 평가가 이랬다.
“백가(百家)의 말을 두루 인증해 출처가 끝이 없다.
평소의 온축(蘊蓄)이 깊고 넓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다산(茶山)은 둘째 형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들이 사서(四書) 분야에는
남은 이삭이 없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직접 살펴보니 도처에
체수유병(滯穗遺秉)이더라고 했다.
체수는 벼이삭(落穗)과 같은 의미다.
※온축(蘊蓄)-속에 깊이 쌓아 둠. 또는 그런 것.
※체수유병滯穗遺秉)-추수가 끝난 뒤에 논밭에 떨어진 이삭.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