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솔직히 로마 제국 쇠망사 5권은 생각보다는 대단히 퀄리티가 좋았습니다.
읽어보고나서는 제가 기번에 대해 가지던 편견의 상당 부분을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그만큼 현재 인터넷상에 돌아댕기는 로마 제국 쇠망사 리뷰들이란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엉터리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
기번이 아예 하지도 않은 소리에서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는데, 그 상상의 나래는 철저하게
로마인 이야기에서 얻은 혹은 자기가 기존에 가지던 기독교 그리고 동로마에 대한 편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다음 내용은 그중 대표적인 오류를 아주 심각하게 반복하고 있는 알라딘의 리뷰들 중 하나를 분석해서
반론한 글입니다.
로마 제국 쇠망사는 로마사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무난한 기본서지만,
동로마 제국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평적인 이해는 20세기 중반을 넘어선 시기에서야 시작되었음을 생각해볼 때, 18세기를 살았던 기번에게는 동로마 제국사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게
무리였음을 반드시 더 생각해봐야만 한다.
부족한 자료를 토대로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하는 기번의 능력은 5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구시대인들의 한계는 여전함 또한 매우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최근의 로마제국 쇠망사에 대한 리뷰들은 이 점을 간과한 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경향들이 강하여,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그런 리뷰들의 대표적인
오류와 오독 그리고 아예 틀린 사실들을 나름대로 정리하도록 한다.
1. 걸핏하면 말하는 게 옛 로마 제국이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건데, 그들이 말하는 껍데기란 그저 로마 제국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1~2세기의 원수정 로마에 불과하다.
모든 기준을 원수정 로마에 맞추고 거기서 달라지면 그것 자체가 악이라는 괴이한 견해는 기번조차도 주장하지 않던 건데 도데체 책을 제대로 읽기는 했는지 궁금해진다.
겨우 백 년도 안되는 시기의 모습을 가지고 반천 년의 역사를 함부로 재단하는 이런 용감한 행태는 동로마 제국에 대해서는 비뚤
어지게 적용되는데, 대표적인 구절. <사방을 둘러싼 이민족의 침략과 내부의 정치적 분열로 콘스탄티노플 주변 지역이나 겨우 유지하는 찌질한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아무래도 로마 제국 쇠망사에 텍스트만 있고 지도가 없어서였는지 이런 용감한 견해가 등장하는 것 같다. 동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주변으로 영토가 축소된 건 1300년대 후반에서 망하기 직전까지 백 년 동안인데, 그 세월이면 소위 동로마 제국 역사로 분류되는 330년부터 보면 십분의 일도 안 되고, 이슬람 제국 맹진기인 7세기 이후로 봐도 반의 반의 세월에도 못 미친다.
로마 제국 쇠망사 5권만 제대로 읽었어도, 동로마 제국이 상당 부분 동안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 불가리아 등의 판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영토를 유지했음은 알텐데. 책을 제대로 읽고 리뷰를 남겨야지 이렇게 대강 잘 알지도 못하고 마구 리뷰를 쓰는 건 기번한테 큰 실례다.
2. 동로마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이래로도 끈덕지게 부단한 체제 개혁과 군제 개편, 쇄신을 통해 강대국의 위치를 12세기까지 유지했다. 대제가 사망한 후 거의 육백 년에 육박하는 시기인데, 육백 년 동안 강대국을 유지한 정체가 "얼마나 허약했는지 보여주는 증거"??
그리고 동로마제국에서는 <이렇게 황가(皇家)를 이룬 사례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대놓고 틀린 소리를 뻔뻔히 하는데 오히려 안정된 황위 계승은 로마 제국 전성기 때에도 드문 일이었다. 동로마 제국 역사 천 년기에서 안정적인 왕조들인 헤라클리우스, 이사브리아, 마케도니아 등의 왕조들은 백오십 년 혹 이백 년 동안 유지되었는데 이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딱 맞는 형국? 외혀 팔라이올로구스 왕조는 가장 약체일 동안에도 최장수를 자랑했다. 왕조의 안정성에 대한 몰이해도 문제지만 그 자체가 국가 체제를 담보한다는 이상한 견해를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3. 크리스트교가 허약해진 제국 곳곳에서 망조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는 건 기번도 하지 않은 거짓말이다.삼위일체 논쟁과 성육신 논쟁에 이어서 또 다른 신학논쟁과 파벌싸움? 그건 제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이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부터 반복되던 것이고, 다 꺼져버린 학문의 불꽃이 살 수 있었던 건 크리스트교의 비호 덕분이었으며 동로마 제국의 학술와 논리학이 발달에 불을 당긴 건 교리 논쟁이었다.
4. 각자의 주장에 외곬으로 빠진 광신(狂信)은 국가의 안위에마저 큰 해악을 끼쳤다? 그런데 그렇게 광신으로 빠진 국가가 어떻게 강대국 지위를 육백 년 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참으로 미스테리다. 바울파와 야고보파라는 근본주의적 종파가 사라센인들이 쳐들어 왔을 때 자신들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의 안위를 팔아넘긴 걸 예로 드는데, 제국이 그로 인해 입은 타격은 불과 십 년도 가지 않았다.
게다가 이슬람교 쪽에서도 쿠람마이트들과 마론다이트파들은 "기독교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의 안위를 팔아넘겼는데, 왜 이건 쏙 빼놓고 말하는 걸까? 기번은 양쪽 사례 모두 공평하게 다루었는데 왜 이렇게 엉터리로만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이 위기에 처할 때 서방 기독교 세계는 그렇게 수수방관하지 않고 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베네치아인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사수하려 한 것, 교황이 적극적으로 제국을 도우려 했던 것, 분명히 로마 제국 쇠망사 5, 6권에 나온다.
기번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문제지만, 편향적인 내용 해석에 자기 편견만 적극적으로 끼워넣는 이런 건 정말이지 폐혜가 크다.
5. [로마제국 쇠망사 5]권의 동로마 제국에 대한 내용은 이렇듯 아주 위험성이 크다. 그나마 기번이 쓴 내용만 제대로 읽어도 위험이 큰데, 이 지경으로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서 잘못 이해하거나 편향적인 부분만 기억하는 건 아주 큰 문제가 있다.
문제는 그런 타락과 부패, 무능이 고쳐지는지 혹은 자정되는지 여부인데 이건 역으로 크리스트교 성직자들의 감시와 감찰에 의해 가능했다. "점차 변질되기 시작하는 크리스트교의 세속적 권력 추구와 무관용성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 오히려 여기서 읽히는 건, 현대 한국의 어떤 독자가 가지고 있는 지독히 불건전한, 그리고 광신적인,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이다.
광신도가 싫다고 광신적으로 배격하면 같은 광신도가 될 수 밖에는 없다. 제발 역사책은 맨 정신으로, 특히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읽도록 하자.
로마 제국 쇠망사 5권은 때문에 반드시 필독서임을 여기서 재확인한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함부로 기번이 한 얘기인양 도처에서 떠들어대는 불량 리뷰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흠 제목의 기번이 들어가있길래 기번 개갞끼를 외칠라 했지만 꼭 그런것도 아니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설픈 리뷰어들이 악의적인 왜곡을 하는 게 큰 문제.
리뷰어가 기번책을 읽은게 아니라 나나미 책을 읽은듯
사실 시오노 나나미책을 읽고 다른책을읽을경우 둘다 수용할줄 아는사람과 이미 기존의 견해를 못버리는 2가지 부류가 있는데 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주변인들도 그렇기 때문에 와닿는 말이네요 특히 종교얘기는 로마제국은 기독교가 망쳣다 우끼끼라고 외치는 주변에 정신나간지인들이 많은지라... 그영향은 다 그분께받은....